중국이야기/사회문화

북경여행 관광명소

영원한 울트라 2007. 10. 8. 16:12

1.천안문   2.천안문광장   3.자금성   4.이화원   5.만리장성   6.역사박물관   7.천단공원   8.광제사   9.민족문화궁   10.북경동물원

11.경산공원   12.명십삼릉   13.유리창   14.중산공원   15.향상공원   16.고궁별칭   17.북해공원   18.옹화궁   19.인민대회당

20.노동인민문화궁   21.북경고관상대(천문대)   22.운거사석경산   23.담자사   24.계대사   25.공자묘   26.대관원   27.석화동

28.백운관   29.계태사   30.와불사   31.벽운사   32.로구교   33.북경(베이징)대학   34.청화(칭화)대학   35.왕푸징거리

36.용경협   37.모주석기념관   38.북경(베이징)오리고기

 

 

 

1.천안문

천안문(天安門)

 명청시대 항성 정문, 명나라 1417년에 처음 설립. 황제의 조서를 전국에 발표하던 곳.

 초기에 승천문(황제가 하늘로 부터 명을 받아 잇는다)으로 불리웠으나 1457년에 소실, 청나라 1651년 천안문(천하 편안 하게 한다)으로 개명되어 현재까지 사용. 전체 너비 1,710㎡, 성루 너비 62,77㎡로서 매우 거대한 문.

 성루 지붕 네 모서리에는 선인을 필두로 용, 봉황, 사자, 기린, 천마 등 전체 11개 조각들이 서 있다. 이는 성루를 호재 등의 재난으로부터 지킨다는 의미이다.

 전체 5개의 문 중, 가운 데 문이 너비 5,25m 높이 8.82m, 길이 30m로 가장 큰 규모이다. 이전에는 황제만이 드나들 수 있는 어도였다. 어도의 좌우 두 문은 왕이나 고관대신 들어 드나들던 문이었으며 그 옆 두 문은 관리나 병졸 등이 드나들던 문이다. 문 앞 좌우에는 화표라 불리는 2개의 큰 기둥이 서 있다. 화표 위의 동물은 후라 불리는 짐승이다. 이 후는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반면 천안문 뒤쪽의 후는 북쪽 황궁을 바라 보고 있다. 후는 황제의 거동을 주시하는 신성한 전설상의 동물이다. 뒤쪽 후는 황제가 궁 안에만 머물며 국정을 돌보지 않을 때 황제에게 밖에 나가 민정을 살피도록 권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황제가 출문하기를 기다리는 이 후를 일컬어 망군출이라 부른다. 그리고 앞쪽의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후는 황제가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을 때 어서 돌아와 국정을 처리하도록 군했다하여 망군귀라 부른다. 천안문 앞의 조그마한 강물은 금수하이다. 금수하 위의 5개 다리는 금수교이다. 맨 가운데 다리는 황제만이 건널 수 있는 다리이다. 금수교 양쪽의 사자상은 왕궁을 외부로부터 지키고 있다. 또한 황제가 하늘이나 땅에 제사를 지내려 갈때나 출정할 때 반드시 통과하는 문이었다. 1911년12월 25일 천안문에서는 중국 마 지막 황제 푸이가 퇴위조서를 발표하였으려 1949년에는 마오쩌똥이 신중국 성립을 선포하였다. 입장료를 내면 성루 위에 올라갈 수 있다.

 톈안먼이 광장은 북쪽 끝에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광장 중심부에는 2층의 대리석 기단 위에 민족의 독립과 자유 그리고 인민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인민영웅기념비(1958년 완성)가 있고, 광장 동쪽에는 기념박물관 단지(1961년 개장)가 있다. 여기에는 중국혁명박물관(1919년 이후의 역사를 다룸)과 중국역사박물관(1919년 이전의 역사를 다룸)이 들어서 있다. 인민영웅기념비의 남쪽에는 마오쩌둥 기념관[毛澤東紀念館:1977 완공]이 있는데, 그곳에 마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좀더 남쪽에는 명(明) 영락연간(永樂年間:1402~24)에 세워진 치엔먼[前門]이 있다. 광장의 서쪽에 인민대회당이 있다.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매년 이곳에서 개최되는데, 1만개 이상의 좌석을 갖춘 회의장과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회장을 갖추고 있다. 대규모 군중집회 장소로 이용하기에 적절하게 설계된 톈안먼 광장은 1919년 이래 학생 시위대의 집회장소가 되어왔다. 특히 1989년 6월 이곳에서 잇달아 발생한 극적인 학생시위가 강제로 진압되었다.

 1.개장시간:매일 9시~16시30분

 2.등루입장료;15원

 3.주의사항;천안문 오르기전에 가방을 보관소에 맡겨야한다

 4.교통편:전철을 타고 前門역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면 된다

 

 

2.천안문광장

2. 천안문 광장
  북경을 방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찾아가 기념촬영을 하게 되는 천안문 광장은 중국 현대사에 있어 굵직한 역사적인 현장이다.
  1966년 문혁(文化大革命) 당시 백만이 넘는 홍위병이 운집한 곳도, 1976년 사인방과 주은래 양편의 지지 세력 사이에 충돌이 있었던 현장도 이곳이었고.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곳도 바로 이곳이다.
  북경시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총면적은 40여만 평방미터로서 현 재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이다. 광장 중심에는 인민 영웅 기념비 가 우뚝 서 있다. 기념비 남측은 모주석 기념당이다. 광장 북측은 천안문 성루이고 서측은 인민대회당이고 동측은 중국 역사 박물관과 중국 혁명 박물관이고 남측은 정양문과 전문전루이다. 이러한 웅장한 건물들은 광장과 혼연일체가 되어 장려한 화폭을 이룬다.
 고궁 천안문의 북쪽에 있다. 일찍이 자금성으로 불려졌던 명,청때의 황성으로 현재는 박물관. 약 72만 제곱미터의 광대한 부지에 대, 소 궁전과 누각이 건평 15만 제곱미터이고 그 방수가 9,00 0개가 넘는다.
 ① 교통편; 전철을 타고 前門역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면 된다.
               또는 2, 4, 10, 116번 버스를 탄다.  
 
 
 
3.자금성
 

고궁박물관(자금성(紫禁城))

 북경시의 중심에 위치한 명·청대의 황궁으로, 천안문 정문으로 들어가 울창한 가로수 길을따라 단문과 오문을 지나 보이는 곳으로 중국에서는 고궁(故宮)이라는 이름이 더 친근하게 이용되고 있다.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천자의 궁전은 천제가 사는 '자궁(紫宮)'과 같은 금지 구역(禁地)과 같다"는 데에서 연유된 것이다. 전체 면적은 72만㎡이며, 총 9999개의 방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궁전 건축물이다. 하늘의 천제가 거주하는 자미단(紫微壇)이 만 칸 규모, 중국 황제의 거처인 자금성은 그래서 9999칸이란다.

북경-자금성-02.jpg

 1406∼1420년에 건조된 이래로 5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15명의 명나라 황제와 9명의 청나라 황제가 일생을 보냈고, 현재는 105만점의 희귀하고 진귀한 문물이 전시·소장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자금성은 외조와 내정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오문과 태화문을 지나면 흔히 '3전'이라 부르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나타난다. 3전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자금성의 내정에 이르게 되고 이곳에는 건천궁, 교태전, 곤녕궁 등이 있으며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동육궁과 서육궁이 자리잡고 있다.

 방어의 목적으로 궁전 밖에는 10m의 담이 있는데, 사방에는 성루가 있고 밖에는 호성강(護城河)이 흐른다. 80년대의 유명한 영화인 "마지막 황제"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꼼꼼하게 관광을 하는 데에는 하루가 꼬박 걸린다. 그냥 가로질러 가는 데에만도 2시간 정도가 걸릴 만큼 넓은 곳이다.

 또 얼마 전에는 영화촬영의 배경지가 되었던 것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공연도 열려 문화유적지나 관광지로서 뿐만 아니라 중국시민의 휴식장소, 문화장소로서도 이용되고 있다.

 1987년에 이르러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오  문

   (午門)

 고궁의 정문으로서 높이 35.6m이다. 아래는 높고 큰 벽돌 돈대, 돈대위에 승루 5개가 건조되어 있는데 속칭 "오봉루"라고 한다. 오문 주 건물은 면적이 9칸, 겹처마 무전식 지붕이며, 양측에 종고정이 설치되어 있다.  매번 조회나 축전 때 북을 두드리고 종을 쳐 위엄을 과시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할 때면 황제가 친히 오문에 나와서 포로들을 접수한다.

◇ 동사자

 태화문 앞 동서 양측에 각각 구리 사자 하나가 웅크리고 있는데 동쪽의 것은 수컷이고 서쪽의 것은 암컷이다.숫사자는 오른발로 수구를 밟고 있는데 권력과 천하통일을 상징 하며, 암사자는 왼발로 어린 사자를 쓰다듬고 있는데 자손들의 창성을 상징한다.

◇ 동거북

 태화전 앞 동서 양단에 각각 선학과 거북을 하나씩  놓아두었는데 등에 뚜껑이 있어 단향을 피우면 연기가 주둥이로 피어 나온다. 선학과 거북을 장수를 비유한다.  

◇ 태화전

   (太和殿)

 높이 8.13m 의 3층 한백옥석 기초위에 건조, 궁전 높이 35.05m 동서 넓이 11칸 남북 길이 5칸이밖에 낭하기둥이 한줄 늘어서 있고 궁전 내외, 기둥이 도합 84개이며 번쩍 들린 겹처마에 지붕은 황기와를 얹고 장식이 점쟎고 화려하며, 기세가 비범하다. 명,청 시기 황제의 즉위, 대혼, 축수 및 중대한 축전,출정등 행사를 모두 이곳에서 거행하였다. 태화전의 내부를 보면은 면적이 2377㎡이며, 중앙에 금칠을 한 용조각 보좌와 병풍이 놓여 있고 그 양측에 6개의 금칠 반룡기둥이 서있다.

 천장 한가운데는 구슬을 갖고 노는 금용으로 장식되어 있고 원구 헌원보경이 거꾸로 드리워 있으며, 천정판에는 옥새 채색화가 그려져 있다.

◇ 중화전

   (中和殿)

 태화전 뒤에 위치, 정자식 건축이다. 황제가 태화전에 나가  청정하기 전에 먼저 중화전에서 쉬면서 내각, 예부 대신 및 시위들의 예를 받은 후 승여(속칭 가마라고 한다. 현재 중화전에 보전되어 있고 청나라 황제가 궁내에서 사용하던 교통수단의 하나)를 타고 태화전에 이른다.

◇ 석  조

 운룡 계석 어로로 보화전 뒤 기반위에 깔려 있다. 무게  250톤의 옹근 돌조각으로 벼랑, 해수, 상운, 9마리의 반룡이 세겨져 있다. 이는 명나라 때 궁내 최대의 석조이다.

북경-자금성-석조.JPG

◇ 건청궁

   (乾淸宮)

 내정의 첫 궁전으로서 명, 청 시기  황제의  침실이며 또한 일상 정무를 처리하던 전당이다. 건청궁 내부를 보면 정중은 보좌, 그 위에 "정대광명(正大光明)"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바른 것을 밝힌다는 통치 원리이다. 이 편액은 청나라 순치제의 글씨라고 한다. 청나라 때에는 강희 황제 이후 재위 황제가 생전에 황위 계승자를 선포하지 않고 내정한 계승자 이름을 써서 휼갑(譎匣)안에 봉해 넣고 편액 뒤에 보관해 두었다가 일단 황제가 서거하게 되면 즉시 휼갑을 열고 황제 계승자를 선포하였다.

 황제가 서거하면 자신의 몸에 간직하고 있던 또 한 장이 계승자 이름과 일치해야 다음 황제가 정해졌다고 한다.

 보좌는 전부 금박을 입히고 루비와 에머랄드를 상감한 금보좌로서 팔걸이와 등받이는 모두 금룡으로  휘감았다. 보좌 뒤는 금칠한 병풍이며 병풍 중앙에 8개의 금좌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황제가 자신을 단속하는 격언이다.

◇ 곤녕궁

   (坤寧宮)

 명대에는 황후의 침전이었으나 청대에 와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청나라의 강희, 동치, 광서 황제가 이 궁전에서 혼례식을 했다고 한다.

◇ 신무문

   (神武門)

 고궁 후문이다. 문루가 10m 높이이 고궁 성벽 위에  건조되어 있으면 겹처마무전식 건축으로서 문루내에 종과 북을 설치해 놓고 문루 아래 성벽에 3개 아치문을  내었다. 청나라 때 수녀 선발시 응시 여자들이 이 문으로 입궁하였다. 현재 중간문 위에 중국의 문화거인 곽말약선생이 쓴 "고궁박물원" 석조 편액이 상감되어 있다.

 1.개장시간:9시~16시
 2.입장료:30원
 3.교통편:1,5,10,57번 버스를 타고 천안문에서 내린다
 4.전화:65132255
 
 
 
4.이화원
 

이화원(和園)

 이화원은 북경시 서북 교외에 위치, 도심에서 약 19km 거리로 청나라때의 황실 원림과 행궁이었다. 이화원의 원명은 청의원이며 1764년에 건조되었다. 부지 290㏊, 그 중 수면이 220㏊이다. 원내는 궁정구, 전산 전호구, 후산 후호구 3개 경치구로 나뉜다. 전당, 누각, 정자가 도합  3,000여칸으로  황제와 황후가 정치 활동을 하며 휴식, 유람하던 곳이다.

 1860년 영국,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불타 버리고 1888년에 자희태후가 해군경비 500만냥 배근을 유용하여 재건, 10년만에 완공, 이름을 "이화원"으로 고쳤다. 이화원은 북쪽은 만수산을 등지고 남쪽은 곤명호를 안고 있다. 불향각을 주체로 지형과 수면을 충분히 이용하여 가산의 조성으로부터 길의 주향, 전당 누가의 배치로 부터 다리의 조형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전통적 원림 조성 기예를 충분히 계승, 발양함으로써 상부 상조의 전체적인 원림 예술 효과를 나타내었다.

◇ 동궁문

   (東宮門)

 이화원 정문이다. 문은 삼명이암의 무전식 건축으로, 중간 정문은  "어로"로 황제, 황후가 출입하고 양쪽 문은 왕공, 대신들이 출입하며 태감, 병졸들은 남북 양측 옆문으로 출입하였다. 편액의 "이화원" 세 글자는 광서 황제가 쓴 것이다. 운룡석에 구슬을 갖고 노는 두 마리의 용이 부조되어 있는데 용은 황실의 존엄의 상징이며 또한 유지와 칙령의 표징이다.  

◇ 인수전

   (仁壽殿)

 궁정구의 주요 건축물의 하나로서 원명은 근정저, 광서 연간에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 어지 정치를 베푸는 자는 장수한다는 뜻이다. 인수전은 청나라 말년 자희태후와 광서 황제가 정무를 보던 대전이며 또한 중국 근대사상 변법유신 운동의 획책지의 하나이다. 1898년 광서 황제가 이 대전에서 개량과 두령 강유위를 소견하고 총리 각국 사무 아문장경상행주로 임명, 이로부터 유신 변법의 서막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봉건 보수세력의 반대로  "백일 유신"은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 낙수당

   (樂壽堂)

 대형 사합원으로 자희태후의 침전이다. 대전은 붉은 기둥에 회색 지붕으로 조형이 특이하고 웅장 화려하다.

자희태후

   (서태후)

(=西太后)

 자희의 성은 엽혁나라, 청나라 제7대 황제 함풍(1851년~1861년 재위)의 귀비로서 함풍이 죽은 후 "수렴청정"의 명의로 48년 동안이나 조정의 대권을 독점하였다. 1905년 네덜란드 화가 Hubert Vos가 초청에 의해 자희태후의 초상화를 그렸다.이해 그의 연세 70을 넘었다. 화상은 현재 덕화원 내에 보전되어 있다.

◇ 대희루

 큰 정원 "덕화원(德和園)"내에 건조, 현재 중국에서 보전되고 있는 최대의 고대 극장으로서 높이 21m, 상, 중, 하 3층으로 나뉜다. 아래층 천정판 중심에 천창을 내어 위층 무대와 통하게 되어 있으며 중간층 무대는 권양기로 도구와 배경을 위 아래로 오르내릴 수 있게 교묘하게 설치하여 변화 무궁하다.

◇ 장 랑

   (長廊)

 동쪽의 요월문에서 서쪽의 석장정까지 총 길이 728m, 도합 273칸의 화랑으로 중국 회랑 건축중 제일 크고 제일 길고 제일 명성이 높은 장랑이다. 장랑의 채색화 제재는 꽃, 새, 나무, 돌, 산, 물, 인물등 매우 광범위하다. 8세기 중엽 건륭 황제(1736-1796년 제위)가 궁정의 화가를 서호에 파견하여 사생하게 하였는데 546폭의 서호 경치를 그려 장랑의 273칸 화랑의 들보에 전부 옮겨 그렸다.

 금세기 60대 중국정부는 서호풍경화를 보류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특색을 지닌 채색화 1만 4천여폭을 더 그려 장랑을 제일의 화랑으로 되게 하였다.

◇ 불향각

   (佛香閣)

 만수산 전산 비탈 21m 높이의 거색기반 위에 건축, 남쪽은 곤명호를 마주하고 북쪽은 지혜해 불전을 등지며, 이 불향각을 중심으로 각 건축군이 매우 정연하고 대칭되게 양날개로 펼쳐지면서 서로 호응하여 마치 한마리의 박쥐모습을 하고 있다. 1860년 불향각은 영국,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불타버리고 그 후 원상태로 재건하였는데 이는 라마교의 건축물이다.

◇ 청연방

   (석배)

 석방이라고도 한다. 1755년에 건조, 몸체는 거석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총길이 36m, 상하2층 선실이 있다.  "물(백성)은 배(왕조)를  띄울수도 있고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뜻을 취하여 청왕조는 반석과 같이 튼튼하여 물이 전복시킬 수 없음을 비유하였다.

◇ 17공교

 곤명호 동쪽 제방과 호심의 남호도를 연결하는 대형 석교로서 총길이 150m이다. 교두와 난간 기둥에 도합 544마리 돌사자가 조각되어 있는데 형태가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1.개장시간:매일9시~16시
 2.입장료:8원
 3.교통편:330,332,333,362,375번 버스를 탄다
 4,전화:62581144
 
5.만리장성
 

만리장성(萬里長城) 

 "不到長城非好漢(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으면 호한이 될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진의 강력한 통일제국체제가 낳은 상징적 산물이다. 베이징에서 서북쪽으로 약 75km쯤 떨어진 곳에 교통이 편리하다는 뜻인 "사통팔달"에서 이름이 유래한 "팔달령"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만리장성을 가장 잘 볼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지어지기 시작한 장성은 20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실제는 약 6,400㎞(중간에 갈라져 나온 가지를 모두 합하여)에 걸쳐 동서로 뻗어 있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 유적이다.

북경-팔달령1.jpg

 장성은 북방의 유목민족들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지어졌다. 북방의 유목민족들은 시베리아의 혹한으로 더 이상 북쪽으로는 진출할 수 없게 되자 남쪽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기후가 온화하고 물자가 풍부한 농경지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만리장성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따라서 만리장성은 단순히 군사적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막인 동시에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문화를 구분하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다.

 오늘날 말하는 장성은 명나라에 지어진 것으로, 서쪽 감숙성의 가욕관(嘉浴館)에서 시작하여 요녕성 압록강변에 이르는 635km 길이의 성벽이다. 그리고 만리장성에 설치되어 있는 가드레일케이블카는 좀 더 편하고 색다른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제는 흘러간 역사의 자취가 된 장성은 세계 7대 건축물에 꼽힐 정도로 세계적인 유적지이다.

 또 만리장성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거대한 명성을 만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던 사람들이 일을 하다 죽으면 그 자리에 묻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현재 개방되는 바다링[八達嶺(팔달령)] 근처의 장성은 높이 8.5m, 두께는 밑부분 6.5m, 윗부분 5.7m이며, 위에는 높이 1.7m의 연속된 철자형(凸字形) 담인 성가퀴[城堞(성첩)]를 만들고 총안(銃眼)을 냈고, 120m 간격으로 돈대(墩臺)를 만들어 군사의 주둔과 감시에 이용하였다. 오른쪽이 왼쪽보다 완만하여 오르기가 다소 편하다. 청나라 때에는 군사적 의미를 상실하고 몽골과의 정치적 경계에 불과하게 되었다.

☞ "하루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진나라 시절, 각 가정마다 힘 쓰는 남자들은 차출되어 만리장성의 부역으로 끌려가야했는데 어느 마을에 갓 결혼한 신랑이 만리장성 공사장으로 끌려 가게 되었다. 신부는 남편이 돌아 오기만을 학수 고대했지만 시간이 가도 소식이 없었다. 어느 날, 이 마을을 지나던 나그네가 이 집에 묶에 되었다. 너무나 아리따운 신부의 자태에 넋이 나간 나그네는 떠나지를 못하고 며칠을 묶다가 그만 어느 날 밤에 사고를 칠라고했다. 허지만 의외로 신부가 덤덤했다. 신부는 기꺼이 나그네와의 하루밤을 허락했다. 그 대신 조건으로 편지 한장을 만리장성의 관리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루밤을 보낸 나그네는 길을 떠났고 약속이 지키기 위해 신부의 편지를 전했다. 그런데, 편지를 읽은 난 관리는 난데없이 나그네를 붙잡아서 만리장성 노역장으로 끌고 가고 다른 남자 한명을 그냥 보내주었다.

 신부는 편지에 결혼한지 얼마 안되서 남편이 끌려갔고, 그래서 아이도 없이 여자 혼자 살고 있다며 나그네와 벌어진 일이며 남편을 위해 정절을 버렸다는 것..등등 구구절절 애절하게 사연을 적었다.

 그 편지를 읽은 관리가 감복을 해서는 나그네를 신랑대신 잡아두고 신랑을 집으로 보냈다. 그 관리는 나그네에게 말하기를 "너는 그 지고지순하게 정절을 지킨 처와의 순결을 하루밤이라도 가졌으니 충분히 그 처의 남편대신 일할 이유가 있노라"

 

 1.교통편:前門등에서 여행버스가 운행한다. 또는 북경남역에서기차를 타고 만리장성까지 가면 된다.

 2.입장료:30원

 

 

6.역사박물관

 

인민대회당과 서로 대칭대는 건축물로서 총면적 6만 9000㎡이다. 박물관 내에는 170만년전의 원인유적부터 1840년전까지의  문화재  30만점이 수장, 진열되어 있다. 그 중 대부분은 1949년 후의 고고발굴품으로서 매우 높은 역사적 가치와 에술적가치를 보유하고 있다

 

천안문광장의 동쪽에 있다. 5000년에 걸쳐 중국의 역사를 원시사회,노예제사회,봉건사회 3단계로

나눠서 알기 쉽게 표시하고 있다

 

1.교�편: 特1번 혹은 1,57번 버스를 탄다

2.입장료: 5원

3.개장시간: 8시30분-16시30분

4.전화: 65128986

 

 

 

 

 

 

 

 

 

 

 

7.천단공원

 

천단공원(天壇公園)

 천단은 명, 청 시기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장소이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교외에 나가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는 것은 주나라 때에는 이미 대전으로 되고 한나라, 당나라(618~907년)때에는 제도롤 되었다. 15세기 초 명나라때 천지단을 천지단을 건조하여 하늘 땅에 함께 제사를 지냈는 데 중엽에는 사방 교외에서  각각 하늘, 땅, 해, 달에 제사 지내는 제도를 실행하였다. 이곳은 전문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제공되었으므로  천단이라 명하였다. 청나라 때 확장하여 현재 중국에서 보존되고 있는 최대 규모의 제단 건축군이다.

 천단은 부지 272㏊, 건축 배치가 "回"자형을 이루며 2개 단벽에 의해 내단, 외단 두부분으로 구성된다. 외단벽은 총길이가 6,416m, 내단벽은 총길이가 3,292m이다. 내외단벽의 북부는 반원형을 이루며 북부가 높고 남부가 낮은데, 이는 하늘이 높고 땅이 낮음을 표시하며 또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짐"을 표시한다. 천단의 주요 건축물은 내단 중축선의 남북 양단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 사이를 넓은 단계교로 연결하고 있다. 남으로 부터 북으로 원구단, 황궁우, 기년전, 환건전등과 그 밖의 신주축, 재성정, 재궁 등 건물과 고적이 늘어 서 있다.

◇ 황궁우

   (皇窮宇)

 전문 신주를 모셔놓는 사당으로서 속칭  침궁이라고 한다. 높이 19.5m, 밑부분의 직경 15.6m, 목조구조이며, 지붕은 8개 기둥에 의해 지탱되고 대들보가 없이 두공을 쌓아올렸으며, 천장판이 층층이 축소되어 아름다운 궁륭식 천정을 형성하였다.  

◇ 회음벽

   (回音壁)

 황궁우의 담으로 원형이며, 둘레가 193.2m, 높이가 0.9m 이다. 이는 벽돌을 다듬어 가며 빈틈없이 이어 쌓은 담으로 두 사람이 각각 동서 벽밑에 서서 벽에  대고 낮은 소리로 말하여도 음파가 담벽을 따라 계속 반사 전진하며 서로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다.

◇ 삼음석

   (三音石)

 황궁우전 앞 어로 위의 세번째 석판이다.전당 문을 활짝 열어놓고 석판 위에 올라서서 박수를 치거나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를 들을수 있다. 그것은 세번째 석판이 둥근담의 중심에 위치하여 여기서 소리를 치면 음파가 거의 동시에 원형 엔담에 부딪쳐 도울려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왕시대에는 이것은 신비한  색채를 씌워  "인간세상에서 속삭이는 말도 하늘은 우뢰소리 듣듯 잘 알고 있다."고 하였다.

◇ 원구단

   (圓丘壇)

 한백옥석 난간으로 둘러싼 3층 석조 원대로서 높이 5m, 옥처럼 희여서 그야말로 장관이다. 명청 시기 매년 동지날 황제가 친히 이 곳에 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하늘, 상재가 하사한 풍년과 태평에 감사를 드리고 또 내년의 국태 민안을 기원하였다. 원구단 상층 단면의 중심석을 천심석이라고 한다. 중심석에서  밖으로 층마다 9환의 부채형 석판을 깔았는데 환마다 9개씩 더 가하여 도합 3402개이다. 이 석판은 크기가 같고 모양이 같으며 빈틈없이 밀접시켜 수백년 비바람에  침식되었어도 여전히 평평하다. 사람들이 천심석 위에 서서 낮은 소리로 불러도 즉시 우렁찬 메아리를 들을수 있다.

◇ 구룡백

 회음벽 밖에 위치, 전하는 말에 의하면, 명나라 영락  연간에 재배, 5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나무줄기가 비비 꼬이고 뒤엉켜 흡사 9마리 용이 서리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구룡백이라고 이름지었다.

◇ 기년전

   (祈年殿)

 기곡전이라고도 하며, 명, 청시기 맹춘에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던 곳이다. 그 구조 형식은 위는 집이고 아래는 단이며 3층 처마는 층층이 작아지면서 우산 형태를 이루었다. 기년전 높이는 32m, 밑부분 직경은24.2m,  6m 높이의 둥근 한백옥석대 위에 우뚝솟아 있는데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 기세가 비범하고 웅장 화려하다. 기년전은  "경천예신(敬天禮神)"의 사상으로 설계, 전내의 기둥은 모두 특정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안층의 4개 용정 기둥 간의 공간은 춘하추동 4계절을 상징하고, 중간층의 12대 붉은 기둥에 의해 분할된 공간은 1년 12달 '월'을 상징하고, 외층의 12개 처마기둥은 하루의 12개 시간을 상징하며,보정 아래의 뇌공주는 황제의 "천하통일"을 상징한다 .

 1개장시간;8.30~18.30

 2.입장료:14원

 3.교통편:17,54,106,116번 버스를 탄다

 4.67028866

 

 

 

8.광제사

 

광제사 부성문내대가(푸청먼내다이제阜成門內大街) 동쪽에 위치

지하철2호선 푸청먼(부성문역:阜成門) /개장시간 08:00~16:30 /연락처: 66160907

광제사는 12세기 금나라 때 건축된 사찰로 명나라 헌종때 새롭게 건축하여 그 이름을 홍자광제사(홍쓰꽝지스: 洪慈廣濟寺)라고 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축물들은 화재 후 1935년에 재건축된 것 들이다. 광제사는 현재 중국 불교사찰 총단 이기도 하다. 북경에 있는 대부분에 사찰이 시외각에 빠져 있지만 광제사는 시내에 있는 몇 않되는 사찰 중 한곳이다. 사찰 주변에는 시장이 있어서 소음과 사람들에 바쁜 움직임 때문에 혼잡하지만 사찰 안에 들어서면 외부의 소음과 번잡함과는 차단된 도심속의 평화롭고 고요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사찰은 크게 4개의 정원으로 이루어졌다. 가장 앞에 있는 종루와 북루는 현재는 사용하고 있지 않다. 미륵전(미러디엔: 彌勒殿)에는 미륵불과 사천왕상이 있다. 그리고 사찰의 주정전인 대웅보전(따숑바오디엔: 大雄寶殿)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불교의 3개 시대의 부처상(연등불, 석가모니, 미륵불)과 청동 18나한상이 있다. 뒤에 있는 제단의 북쪽 벽에는 손가락으로 그린 커다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1745년 청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림에는 수 백명의 사람들에게 불교를 설법하고 있는 석가모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3번째 정원에는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는 원통전(웬통디엔: 圓通殿)이 있다. 그리고 4번째 정원에는 부처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2층으로 된 사리각(서리거: 舍利閣)가 있다. 매달 음력 1, 8, 15, 23일이 되면 불교신자들이 이곳을 찾아 참배를 한다.

 

 

 

9.민족문화궁

 

 천안문 서쪽에 있다. 인구는 전 인구의 6.6% 이면서 면적은 전국토의 60%를 점유하여 소수민적의 역사를 한눈에 관람할수 있고

 내부에는 박물관, 도서관, 오락실, 강당이 있다

 

 

 

 

10.북경(베이징)동물원

 

중국 베이징시에 있는 동물원.
설립연도 1906년
구분 동물원
소재지 중국 베이징
규모 56ha
베이징동물원 입구 /

1906년 청()의 서태후(西)가 건립하였으며, 면적 56 ha이다. 건립 당시에는 일반시민에게 공개하지 않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1950년부터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입장권은 원내 각처에 있는 매점에서 사서 나갈 때 내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진기한 동물로는 자이언트팬더를 비롯하여 타킨 ·흰주둥이사슴 ·단정학 ·흑꼬리두루미 등이 있고 그 밖에 야생양인 야크 ·산양류가 많다.

번식률이 높고, 특히 중국대륙 특유의 동물인 자이언트팬더의 십수회에 걸친 번식성공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육동물수는 포유류 156종 605마리, 조류 237종 3008마리, 합계 428종 3760

시의 서쪽 교외에 있다. 팬더곰으로 유명하지만 그외에도 진기한 동물을 볼수 있다

 

1.교통편: 7,16,27,45,102,103,105,107,111번 버스를 탄다.

2.입장료: 1원(원내의 다른 전람관을 볼때 다시 표를 구입해야한다.

3.개방시간: 8시30분-17시

4.전화: 62176655

 

 

11.경산공원

 

경산공원(景山公園 : 징샨공위엔)

북경-경산공원.jpg

 북경성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황실 정원이다. 전체 면적은 23㎢이며, 소나무와 삼나무가 울창하고 고목들이 하늘 높이 솟아있다. 경산공원은 이미 수백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1179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명 영락(永樂) 18년(1420년)에 석탄과 자금성 통자하(筒子河)의 진흙들을 가져다가 원나라 건축물인 영춘각(迎春閣)의 옛 터에 쌓아 두었는데, 이것이 하나의 흙산을 이루게 되었으며 당시에는 "만수산(萬壽山)"이라고 불렸다.

 또한 명 숭정(崇禎) 17년(1644년)에는 이자성이 북경성을 공격했을 때로, 당시 황제였던 숭정은 궁궐을 빠져나온 후 이 곳 경산에 올라와 스스로 나무에 목을 걸고 죽었다고 전해진다. 청나라 순치(順治) 12년(1655년)에 만수산은 현재의 경산이라는 이름으로 바꼈다. 경산공원은 북경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북경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날씨만 뒷받침해준다면 그 경관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12.명십삼릉

 

명13능((明十三陵)

북경 창평구 군도산 남쪽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명 13릉은 명대(1368년~1644년)의 13명 황제의 능묘군이다.
이곳에는 또 23명의 황후와 1명의 귀비가 묻혀있다.
명대는 1409년에 이미 오늘의 창평에 능을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며 1644년 명왕조가 멸망하기까지 13릉의 영조공사는 무려 200여 년이 걸렸다.

명 13릉은 현재 중국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제왕능침이 제일 많은 황릉 건축군 이다. 능침구역은 삼면이 산에 둘러싸이고 중간은 둘레가 약 40㎢되는 작은 분지로서 자연적으로 봉쇄된 양상이며 남쪽으로 북경과 접해있어 능구의 천연문호이다.

13개의 능묘는 분지의 동. 북. 서 3면에 분포되고 제각기 산봉을 하나씩 등지고 있다. 처마가 높이 들리고 보성이 높이 쌓여 있어 나름대로 유궁을 이루고 있다.

능묘군은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면서도 또 각기 자체의 규모와 특색을 지니고 있다.

장릉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으로는 헌릉(인종), 경릉(광종), 유릉(영종), 무릉(헌종), 진릉(효종), 강릉(무종), 정릉(신종), 소릉(목종), 사릉(사종)이 차례로 있고 오른쪽으로는 경릉(선종), 영릉(세종), 덕릉(희종)이 차례로 자리해 있다.

13개 황릉의 형상과 구조는 기본적으로 같아 모두 담장이 둘러져 있고 중축선위에 능문, 능은전, 영성문, 석오공, 명루와 보성이 차례로 자리하고 있다.

천수산 주봉의 남쪽기슭에 자리한 장릉은 명대의 세번째 황제인 성조 주체와 황후 서씨가 합장된 능침이다.

명대 13릉 가운데 시간이 제일 오래 걸리고 건축규모가 가장 크며 지상 건물이 제일 완전하게 보전된 능묘로 기본적으로 원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장릉의 주 건물은 능은전으로 1427년에 건조되었는데 명대의 황궁 금남전을 모방하였고 면적은 1,956㎡로 중국 최대의 목조 고건물이다.

장릉은 북경 고궁의 태화전. 산동 곡부 공묘의 대성전과 더불어 중국의 3대 전각으로 불리고 있다.
정릉은 명대의 열세번째 황제 주익균의 능묘이며 중국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제왕능묘이다. 중국이 창건된 후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1956년에 정릉을 공식 발굴하였다.

정릉은 건조된지 4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견고하다. 지하궁전은 길이 27m, 총 면적 1,195㎡, 벽돌과 돌로 건조된 아치형 건축물로 묘실은 5개의 전당이 서로 이어져 있다. 지하궁전에서는 각종 문화재 3,000여 점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에는 제후들이 생전에 사용하였던 일용기물과 복식이 많다.

출토된 금관과 봉관은 유달리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그 중에서 제일 무거운 봉관은 무게가 2.905g에 달하고 5,449개의 진주와 128개의 보석이 박혀있다.

이밖에 정교하게 제작된 금술 주전자, 옥잔, 옥사발, 청화자기, 삼채자기화로 등은 모두 보기 드문 진품으로 당시의 최고 공예수준을 보여준다.

명 13릉은 1957년 북경시 정부로부터 중요 문화재 보호대상으로 선정되었고 1961년 국무원에 의하여 전국 중요 문화재 보호대상이 되었다.

195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동안 장릉. 정릉. 소릉과 신도는 잇달아 문화재관광지로 개발되어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봉건 황제들이 백성의 출입을 금지하였던 능원이 오늘날 관광지가 되었다.

관광객들은 또 13릉 저수지. 정릉박물관. 명대 황제 밀랍소상관. 구룡유락원 등 경관을 참관할 수 있다.

명 13릉은 2003년 <세계유산 목록>에 수록되었다.

 

 

 

13.유리창

골동품과 전통의 거리 유리창(琉璃廠 : 리우리창)

 북경 화평문(和平門)에 위치해 있으며, 200년 전인 청대 건륭 연간에 형성되었다.

 유리창이라는 이름은 원나라때 유리기와 공장이 있던 곳이라고 해서 붙여졌다. 처음에는 과거를 치르기 위해 북경으로 온 사람들 중에서 과거에서 낙방한 사람들이 거리를 정리한 다음 가져온 서적, 먹, 벼루 등을 가지고 나와서 팔았던 곳이었다. 그리고 청조가 멸망한 이후에는 몰락한 귀족 자제들이 문중에서 소장하던 품목들을 가지고 나와 팔아서 생활을 이어갔다. 시간이 지나 점점 하나의 시장이 형성되었고, 마침내는 골동품을 거래하는 전통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북경-유리창.jpg

 현재 이곳에는 100여 개의 상점이 있으며, 고서 이외에도 도장, 벼루, 먹, 붓, 탁본, 각종 골동품, 공예품 등이 판매되고 있다.

 1.교통편:전철을 타고 和平門역에서 내려 남쪽으로 약 200미터 걸어가면 된다.

 

 

 

14.중산공원

  천안문 서쪽에 위치, 시내관광을 하다가 피곤하면 조용히 쉴 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공원으로 연못가에 찻집도 있다.

 1.개장시간;6~21시

 2.교통편:1,5,20번 버스를 탄다

 3.전화:6605543

 

 

 

15.향상공원

  북경 서북쪽 교외에 위치 역대 황제들이 수렵을 즐기던 곳으로, 10월중순~11월 상순에는

  단풍을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겨울의 설경도 유명하다. 공원 안에는 향산호텔이 있다.

   *교통편;자연동물원에서 360번, 이화원에서 333번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타고 萍果園역에서

    내려 318번 버스로 환승한다.

 

 

16.고궁별칭

  자금성 북경시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명,청조때 왕궁으로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규모가

  가장크고 가장 완전한 고대 건축물이다. 지금까지 5백여년에 걸치는 역사 과정에 전후로

  명,청 2개 왕 조의 24대 황제가 여기에서 즉위하고 거주하였다. 고궁내에는 대 량의

  진귀한 문물과 예술픔이 소장되어 있어 중국 �대의 박물관이라고도 말할수 있다.

  개방시간:매일 8,30~15.30

 

 

17.북해공원

 

북해공원(北海公園)

 고궁의 서북쪽에 있는 이 공원은 북해라는 아름다운 호수가 중심이다. 여기는 요, 금, 원, 명, 청의 역대 황제의 어원(御苑)이었던 곳이다. 호수의 남쪽에 이 공원의 심벌인 큰 흰탑이 보인다. 이 탑이 있는 곳이 북해공원의 중심지역인 경도(瓊島)이다. 궁정요리로 유명한 음식점이 이 경도 안에 있다. 섬으로부터 배로 서북쪽으로 건너서 조금 가면 흙담에 둘러싸인 일각에 구룡벽(九龍壁)이 있다. 이 구룡벽은 고궁 황극문 내의 구룡벽과 함께 유명하다. 북해공원에는 또 하나 볼거리가 있다. 그것은 공원의 남문 입구 근처에 있는 단성(團城)이다. 단성이란 환상선(環狀線)을 따라 이어진 예전의 성벽 중 일부인데, 역시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옥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옥옹(玉甕)도 있다. 징기스 칸의 손자 쿠빌라이에게 바쳐진 헌상물이라고 한다. 베이징의 700년 흥망을 계속 보아온 그릇이라고 생각하면 값어치가 있다. 여름에는 보트가 있어 호수가 꽤 활기에 넘친다.

  1.교통편:5,13,101,109,111,118번 버스를 탄다

  2.입장료:5원

  3.개방시간:8시~17시

  4.전화:64031102

 

 

 

 

18.옹화궁

옹화궁(雍和宮=용허궁)

옹화궁(雍和宮)은 베이징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가장 잘 보존된 라마묘(喇麻廟-라마를 모시는 사당)이다. 옹화궁은 명나라 시대에는 귀족들이 휴식을 취하던 곳으로, 청광서(淸光緖) 33년(1694년)에는 옹친왕부(雍親王府- 옹시 왕궁)로, 옹정(雍正) 3년(1725년)에는 옹화궁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청나라 건륭 9년(1744년)에 라마묘로 고쳐 라마교의 사무를 보는 곳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옹화궁에는 로천왕전(路天王殿), 옹화궁전(雍和宮殿), 영우전(永佑殿), 법륜전(法輪殿), 만복각(萬福閣), 궁동서원(宮東書院), 평안거(平安居), 여의실(如意室), 해당원(海棠院), 화원 등이 있다. 특히 법륜전(法輪殿)의 모습이 제일 웅장하고 멋있는데, 십자형으로 되어 있는 집 위에는 5개의 작은 누각이 있고, 각 누각에는 한개의 라마탑(喇麻塔)이 놓여있다. 옹화궁에 있는 제일 큰 건축물인 만복각(萬福閣)은 좌우에 있는 영강각(永康閣), 연안각(延綏閣)과 일체를 이루고 있으며, 누각 안에는 백단목(白檀木)으로 된 세계에서 제일 큰(높이 26m) 나무부처가 앉아 있다.

 옹화궁 법륜전(法輪殿)에는 라마황교(喇麻黃敎)의 창시자인 종객바상(宗喀巴像)을 모시고 있는데, 종객바상의 얼굴과 손은 모두 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현재 옹화궁은 베이징의 유명한 라마묘(喇麻廟)로서 전국 중점 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1.개장시간:매일9.00~17.00

  2.교통편:전철을 타고 옹화궁역에서 내려 조금 걸으면 된다.

  3.입장료:15원

  4.전화:64044499

 

 

 

19.인민대회당

 

중국 인민대표대회 회의장.
소재지 베이징 톈안먼광장 서쪽
건립연도 1959년 8월
건립자 중국
건축양식 건축면적 17만 1800㎡, 정면 너비 76m, 안쪽 길이 60m
인민대회당 / 중국 베이징. 1959년 8월에 건립된 인민대표대회 회의장.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 서쪽에 있으며, 톈안먼광장·중국역사박물관·민족문화궁()·베이징잔[ ) 등과 함께 중국정부 수립 후 10년간 중국건축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전국 각지의 설계부국, 건축가들이 제출한 설계안을 기초로 1959년 8월 완성되었다.

건축면적은 17만 1800㎡, 평면은 산자형()이며, 중앙의 큰 홀 뒤쪽에 정면의 너비 76m, 안쪽으로의 길이가 60m로 탁 트인 인민대표대회의 회의장이 있다. 1만 4,0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연회장도 있다. 러시아와의 우호시대에 정착한 전형적인 건축의장()으로 전국 각 성·시에 있는 대회당의 본보기가 되었다.

 

1.교통편: 2,4,10,116번 버스를 탄다

2.개장시간: 8시-17시

3입장료: 15원

4주의사항: 반드시 가방은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

 

 

 

20.노동인민문화궁

  천안문의 서쪽에 위치, 극장, 체육관 등이 있고  공원의 북단에 위치한 해자에서는 여름에는 뱃놀이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타기도

  한다.  나무 연못이 많고,  이곳에서 추도집회를 갖는다.

  1.교통편:1,4,10,20,52번 버스를 탄다.

  2.개장시간:8~20시

 

 

 

21.북경고관상대(천문대)

  북경시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지금까지 540여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기는 옛날 원모습을 그표를 비롯한 기타 관측계기들이

  진열되어 있어  북경의 독특한 경물로 되었다.

  전화:5128923

  개장시간:오전9.00~11.00(화요일 휴식)  오후13.00~16.00

 

 

 

22.운거사석경산

 북경 서남으로 60킬로 떨어진 방산현에 위치해 있다.  운거사 당조 초년에 축조 되었으며 중국 북방의 불교성지이다.

 방산석경은 세계적으로 규모가 가장 큰 석경인데 그것을 보관한 곳을 석경산 이라고 한다. 산에는 9개의 석굴이 있는데

 도합 4196매의 경관이 소장 되어 있다.  석굴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석불이 있으며 산 위에는 당나라와 오나라때 축조된

 탑들이 있어 운거사의 사찰들과 한테 어울려 고대 불교문화 특색을 띤 풍경 유람구를 형성 하였다.

 

 

 

23.담자사

 

담자사 법사가 사나운 호랑이를 제도한 이야기

 

 

          

담자사(潭柘寺:탄쩌스); 3세기경의 진(晋)대에 창건된 베이징 최고찰(最古刹). 지금은 명·청대에 재건된 것이다. 원세조 쿠빌라이의 딸 묘엄공주의 묘탑도 이곳에 있다.

 

                             

                                        담자사(潭柘寺) 티벳식 고탑림(古塔林)

 

글/북경대법제자

 

[명혜망] 북경 서남방향으로 40여 km되는 산기슭에는 국내외적으로 유명한 고대 사찰 "담자사(潭柘寺)"가 자리잡고 있다. 사찰 밖의 한 뙈기 탑림(塔林) 속에는 유독 사람의 이목을 끄는 티벳식의 고탑(古塔) 한 채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하탑원(下塔院) 밖에 자리잡고 있는 "호탑(虎塔)"이다.


담자사(潭柘寺)는 원명 수운사(岫雲寺)라고 하며 서진(西晉)년 부터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산간에 산뽕나무(山柘), 용담(龍潭)이 있기에 담자사로 민간에 불려지고 있다. 여기에서 이야기 하나가 유전되고 있다. 옛날 이 일대는 산이 깊고 나무가 무성하였으며 야수가 출몰하였다. 호랑이 한 마리가 늘 이 사찰 부근의 마을에 뛰어들어와 사람과 가축을 해치고 있어 백성들로 하여금 종일 우려케 하였다. 사찰에는 무예가 출중한 인량이라고 하는 법사가 있었다. 그는 백성을 위하여 해를 끼치는 호랑이를 없애버리려고 하였지만 불문에는 살생금지의 계율이 있는지라 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호랑이를 길들일 수 있으면서도 그 생명을 해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은 인량법사의 속병으로 되었다. 일일 좌선하고 있는 도중 그는 문득 불법무변(佛法無邊)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량법사는 "단신으로 심산 속에 들어가 호랑이를 굴복시키며, 만약 실패하여 분신쇄골이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큰 뜻을 품게 되었다. 이날 그는 끝내 사나운 야성의 얼룩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다. 눈길이 마주치자 인량법사의 마음 속에는 문득 끝없는 자비가 일게 되었으며 두 눈을 살며시 감고 입으로는 일심불란하게 염불을 외웠다. 얼마간 대치한 후 그 호랑이는 놀랍게도 땅에 엎드려 귀담아 듣기 시작하였다. 이로부터 인량법사는 그 호랑이를 위하여 설법하였고 매일 식사할 때가 되면 호랑이는 마치 고양이처럼 법사를 따라 사찰에 들어가 죽을 마셨으며 그 후부터 다시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한번은 사찰에서 법사(法事)를 하게 되어 많은 하객들이 오려고 하였다. 인량법사는 호랑이가 사람들을 놀라게 할까 걱정되어 사찰 안에 있는 한 동굴 속에 가두어 두었다. 7일이 지나갔지만 그 호랑이는 동굴 속에 엎디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설사 법사가 먹이를 주는 것을 잊어 버렸다고 해도 호랑이는 절대 홀로 나가서 먹이를 찾지 않았으며 그저 동굴 속에서 조용히 엎드려 있기만 하였다.


수많은 해가 지나간 후 인량법사는 원적 하였다. 그 호랑이는 은사의 자비로운 구도(救度)에 감격한 나머지 인량법사의 뫼 앞에서 피눈물을 뿌리며 통곡하다가 사망하였다. 사찰의 스님들은 호랑이의 성심에 감격하여 주지스님의 허락을 받고 하탑원(下塔院)의 옆에 한 채의 "호탑(虎塔)"을 건축하였다.


"호탑"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곧 그곳에 우뚝 서있으면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불법은 가없으며 법은 중생을 제도한다. 사나운 호랑이마저 불법을 듣고 악행을 멈추는데 대륙의 경찰들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상사람들은 자비로운 홍법과 세인들을 구도하는 대법제자들을 어떻게 대해주어야 바람직한가?!


대법제자들은 세인들에게 "진, 선, 인"과 법륜대법의 진상을 알려주기 위하여 천고의 억울함을 당하고 있다. 진실된 말 한마디하기 위하여 그들은 집이 있어도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고 직장을 잃고 투옥되어 혹형을 당하고 있으며 지어 생명을 잃기까지 하였다. 이토록 사악한 선전과 잔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50여 개 나라와 지역의 무수한 제자들은 여전히 대법의 뒤를 바싹 따르고 있으며 진리의 휘황한 빛발이 전 세계를 널리 비춰주게 하였다.


역사는 언제나 어제 날의 폐허 위에 건립되는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지난날의 흔적을 밟고 다가오는 것이다. 과거를 잊는 것은 바로 오늘날에 대한 배반이다. 흘러간 세월은 원고(遠古)의 기억을 희미하게 씻어버린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사람들은 예수, 석가모니를 신화 속의 전설로 여기고 있다…….


인과와 윤회, 인연으로 발생되고 인연으로 멸망된다. 신불(神佛)의 존재는 사람들의 의지에 의해 전이되지 않는다. 옳고 그름 앞에서, 역사의 이 관건 적인 시각 앞에서 우리 매 한 사람마다 모두 행동으로서 자기 생명 중의 영원한 위치를 배치하고 있다. 일념지차(一念之差)로 무생(無生)의 문으로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선악은 결국 보답을 받게 되는데 이는 깨뜨릴 수 없는 만고의 진리이다.

 

 

 

 

24.계대사

 

계대사
북경서쪽 문두구 경내에 있다. 사찰은 산세를 타고 축조되어 구조 가 특이하며 그윽한 운치를 남긴다. 사찰내의 포탑송, 와룡사, 활 동송, 자재송 등은 원근에 이름이 있다. 전인이 지은 한수의 고시에는 <담자사는 샘물로 이름있고 계대사는 소나무로 이름이 났거늘 나무마다 모양이 달라 조물주와 재간을 겨루도다>라는 글귀가 있다

개장시간: 매일 8.30-17.30

계대사를 먼저 갔는데, 주차장이 입구 바로 앞에 있어서 좋았다.그런데 건물 자리 하나가 아예 다 공터로 비어있고 공사하는 중이었다. 알고보니 천불각을 복원하듯. 주말인데도 오전이라 그런지 몰라도 사람이 적어 불편하지는 않았다.요금 35원.

 
 

건물 옆에 소나무가 기이하게 자라있었는데, 밖으로 나온 부분이 누운 모양을 하고 있어서 와룡송이라고 쓰여있었다.


 

천왕전. 안에는 가운데 미륵보살(布袋和尙)이 있고 양옆에 사천왕 상이 있다. 미륵보살 상 뒤에는 법신상이 있다.

 

 

절 안에 한쪽에 탑 두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꽤 높았다.


 

 

 

 

 

 

25.공자묘

 

공묘(孔廟, 공자사당)

 북경의 고궁(故宮), 제남의 태산에 있는 대묘(岱廟), 그리고 중국의 3대궁전 건축물의 하나로 알려진 것이 공묘(孔廟)이다. 춘추시대의 사상과 공자를 기원하는 사당(廟)이다.

 노나라의 哀공이 공자가 죽은 이후 묘를 세운 것이 시작으로 그 후의 역대황제로 이어져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의 길이가 약 1km, 면적이 22ha에 달하고, 용의 승천하는 모양이 새겨져 있는 거대한 18개의 석주를 가진 장대하고 아름다운 대성전, 53개의 돌비석이 세워져있는 13비정(十三碑亭)등, 공묘내에는 귀중한 건축물이 많이 세워져 있다.

 대성전과 대성문 좌우에 있는 건물을 새로 개장한 진열관(陳列館)으로 사용하고 있다. 오래된 건물을 사용하고 있지만 내부는 개수가 되어서 공조시설도 갖추고 있어서 소중한 문물의 보존을 완벽하게 하고 있다. 전시물은 북경의 역사를 대표하는 문물을 전시하고 있다.

o 입장료 :10元

 

 

 

26.대관원

선무구 남채원가에 위치해 있다  중국의 고전명작 <홍루몽>에 근거하여 설계,축조한 중국

고대 식원림이다. 원내에는 여기저기서 시냇물이 흐르고 랑하가 구불 구불 뻗어있으며

절묘한 가산 속에서 새들이 지겨귀며 생기발랄한  원림 정취를 만끽할수 있다.

 

 

점유면적이 13ha에 달하는 범위내에 세워진 높은 정자와 누각만해도  40여개나 되며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징 대관원에서 대관원정문, 이홍원, 도행촌, 로설정, 등 많은 곳들이 주요건축물 이나  모두

홍루몽작품에서 상세한 묘사를 곁들이고 있서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깊은 의미를

다시한번 실감할수 있을것이다  춘절이 오면 옛날 왕비가 친정 방문하던 상황을 재연한다

 

개장시간: 8.30-17.00

 

 

 

 

27.석화동

석화동 石花洞
방산구 하북향 남동영촌(房山區 河北鄕 南東營村)에 있으며 북경에서 56km 떨어져 있다. 동굴안의 벽에는 10 여개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 십불동(十佛洞)이라고 한다. 十花洞은 여러층의 암석 동굴로서 그 규모가 커 화북암석제일(華北岩石制一)이라고 한다. 이미 6층 암석 동굴이 발견되어 그 총 길이가 3000 m 며 현재 1,2층이 개방중이다. 1층은 지층과 평형되고 2층은 1층의 30m 아래에 있는데 춘하추동 12℃ 온도를 유지하며 련화지(連花池)의 월내석(月乃石)은 전세계에 보기 드문 기이한 모습이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월내석, 높이18미터나 되는 도럽 종유석, 500여개의 석편이 쌓여서

이루어진 10미터 높이,18미터넓이의 대형석만은 웅장수려하여 관람객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28.백운관

  북경에서 제일큰 도교사원으로 노자를 모신곳이다. 당나라 때 세운 절로 북경의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29.계태사

  계단사(戒壇寺)라고도 칭하며 문두구마안산(門頭溝馬鞍山) 허리에 위치하며, 북경성에서 약 35 km 거리 이다. 요나라, 원나라 고탑, 불상, 경문이 있는 탑원이 있으며, 그리고 老松은 奇松으로

유명하다.
당나라 때(622년)지어진 절로 13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 는 주변 환경이 아름다우며 500년 이상 된 고목들로 기묘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개장시간 7.30-16.20

 

 

 

30.와불사

와불사

향산의 동쪽 베이징식물원 입구 끝머리에 있다.

당나라 때에 창건되어 1,000년의 역사를 가진 고찰로 거대한 석가의 열반불(涅槃佛)이 있다.
이 열반불은 전체 길이가 약 5.4m 정도 되고, 무게는 285t이나 되는 청동으로 된 것이다. 이 불상이 만들어진 것은 1320년으로 그 이전에는 향나무에 조각된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청나라 때인 1734년에 보수하여 십방보각사(十方普覺寺)라는 정식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지만, 경내에 누워 있는 열반불이 있는 까닭에 와불사라고 불리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경내에 있는 오래된 노목은 인도에서 운반된 것이라고 전해진다. 석가가 이 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든 것을 기념하여 심었다고 한다.

베이징 시의 중심에서 차로 약 40분 정도 소요되며, 향산이나 벽운사와 묶어서 하루 코스 관광으로 즐길 수 있다.

 

 

 

 

 

 

31.벽운사

   

벽운사/삐웬스/碧雲寺
위치 : 향산공원 북문 부근.
개장시간 : 8:00~16:00
연락처 : 62591155-470
교통편 : Bus: 331, 737, 854, 904 삐웬스 하차

  벽운사는 향산공원 북문 쪽에 있는 사찰로 향산공원에 갔다면 한번쯤은 가 볼만한 사찰이다. 보통 관광객들이 향산공원을 관광할 때 서문으로 들어가서 북문으로 나오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다. 원래 이 곳은 사찰은 아니었으나 원나라 시대에 이곳을 사찰로 만들었고 사찰의 이름을 벽운암(삐윈안: 碧雲庵)으로 하였다. 1784년 청나라 시대에 사찰을 더욱 확장하여, 여러 개의 불당과 500여 나한상과 금강보좌탑(진깡바오쭤타: 金鋼寶座塔)을 만들었다. 이중 500여 나한상은 남중국 항조우 지역에 잇는 정자사(징츠스:淨慈寺)에 있는 나한상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 벽운사는 청나라 시대에 궁궐의 왕후와 후궁들이 즐겨 찾았던 곳으로 베이징에 있는 다른 사찰과는 다르게 동서를 축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고, 그 규모도 다른 사찰에 비해서 크다. 오백나한당(우바이뤄한탕: 五百羅漢堂)은 500여 나한상을 모셔놓은 곳으로서 진흙으로 빚은 실물크기의 나한상은 각각의 손동작과 얼굴 표정들이 모두 다른 모습을 띄고 있으며, 하나하나가 실제 살아 움직일 듯한 모습을 생동감을 보여주고 있다. 500여 나한상 중에서 다른 나한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는 나한상을 볼 수 있는데, 이 나한상의 이름은 지공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나한상은 술을 먹고 취해서 이곳에 늦게 와서 그 벌로 자리에 앉지 못하고 기둥을 떠 받치고 있다고 한다. 이 나한상은 북쪽 기둥을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벽운사 가장 안쪽에는 금강보좌탑이 있다. 이 탑은 현재 중국에 있는 인도풍의 탑 중 가장 크고 오래된 탑으로 석가모니가 보리수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고 불교를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탑의 높이는 34.7m로 하얀색 대리석으로 만들어 졌다. 표면에는 무인, 봉황, 사자, 코끼리 등 각종 부조상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탑 꼭대기에 오르면 베이징시내 전경을 볼 수 있다. 1925년 손문이 죽은 후 그의 시신이 1929년 남경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이곳에 안치되어 있었다. 현재 탑에는 손문이 사용했던 모자의 옷들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벽운사 서쪽에는 와불사(워풔스:臥佛寺)가 있고, 그외에 앵도사(잉타오스:纓桃寺)와 식물원(즈우웬:植物園)이 있다.

 

 

 

 

32.로구교

  북경서쪽 교외풍대구 영정하에 있으며 시내 중심으로부터 2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북경에 현존하는 가장 오랜 아치형 석교이다. 다리 난간에는 크고 작은 엎드린 돌사자 485마리가 조각되어 있는데 각기 생동한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다리동쪽 끝에는 건륭황제가 쓴 <로구효월>이란 네 글자가 있다. 중국 역사상 ( 7.7사변)이 바로 여기에서 발생하였다

 

서남쪽 영정하라는 강에 놓인 다리로 13세기 말엽 이곳을 방문한 마르코폴로는 "세계 최고의 다리"

라고 극찬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이곳을 마르코폴로 다리 라고 부르기도 한다

 

 

 

 

33.북경(베이징)대학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
개교연도 1898년
구분 국립 종합대학
소재지 중국 베이징
본문

전신은 1898년 창설된 경사대학당()이며, 1912년 중화민국 성립에 수반하여 베이징대학으로 개칭되었다. 1916년 학장으로 취임한 차이위안페이[]의 개혁으로 신문화운동의 중심이 되어 근대 학술연구와 토론의 자유 학풍을 확립하였고, 특히 1919년의 5 ·4운동이 재학생들에 의해서 추진된 이후 학생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1952년의 대학 재편성에 의하여 옌징[]대학 ·칭화[]대학과의 조정이 단행되어 문 ·이과계의 기초이론을 중심으로 한 종합대학으로 개편되었으며, 1977년부터 국가통일 입시제에 의하여 입학자를 선발하고 있다.

법률학 ·중국언어문학 ·수학 ·경제학 ·철학 ·역사학 ·국제정치학 ·사회학 ·고고학 ·물리학 ·컴퓨터과학기술학 ·전자공학 ·생물학 ·지리학 ·화학 ·영어문자학 ·동방언어문자학 ·서방언어문자학 ·심리학 ·러시아언어문자학 등의 학부가 있으며, 동방어문학 계열의 각 전공 및 서방어문학 계열의 전공은 5년이고 그 외에는 모두 4년제이다.

 

 

 

34.청화(칭화)대학

중국 베이징[]에 있는 종합대학.
개교연도 1911년
구분 국립 종합대학
소재지 중국 베이징
본문

의화단()사건에 대한 배상금을 재원으로 1911년 미국유학생 양성기관으로 설립, 당초에는 칭화원[]이라 하였다가 후에 칭화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28년 국립대학으로 개편하였다. 중일전쟁 중에 베이징대학, 난카이[]대학과 함께 오지()로 소개()·합병하여 시난[西]연합대학을 조직하였다.

1952년 중국정부가 결정한 ‘전국 공학원() 조정방안’에 따라 공학부에 베이징대학과 옌징[]대학의 공학계통을 통합 흡수하고, 문학·이학·법학은 베이징대학교로 옮겼다. 과학, 경제·경영, 건축 등의 학부가 있다.

 

 

 

35.왕푸징거리

 

북경최대의 번화가 왕부정(王府井, 왕푸징)거리

 북경시 최대의 번화한 거리로서, 시 동편에 길게 늘어선 상점거리다. 약 1km가량의 거리 왼편으로 약 100여개의 각종 상점이 들어서 있는데, 우의상점을 비롯해 신화서점 등 유명한 상점을 비롯해 우의빈관과 같은 호화호텔도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일찍이 황실의 저택이 있던 곳으로, 황실의 우물이 있었는데 그 이름을 따서 왕부정이라 불리게 되었다.

북경-王府井.JPG

 황실이 있던 곳이어서인지 이곳은 아직도 화려하고, 호화스러운 상점과 빌딩이 많으며 유리창거리가 우리의 인사동거리와 비교되는 것처럼 이곳은 우리의 명동, 압구정거리쯤으로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쇼핑에 빠지지 않는 먹거리도 가득한 곳으로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다양한 간식거리가 있어서 역시 음식천국이라 불리는 중국을 실감케 한다. 특히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한 불빛으로 행인들을 유혹하는데, 군것질을 하며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여유가 북경여행을 더욱 즐겁게 할 것이다.

 

 

 

 

 

 

 

36.용경협

계림의 축소판 용경협(龍慶峽 : 롱칭시아)

 북경 외곽에 위치한 팔달령에서 40분 정도가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남방 산수의 부드러움과 북방 산수의 웅장한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또한 "작은 계림(小桂林), 작은 삼협(小三峽)"이라고 불릴 만큼 높이 솟은 가파른 봉우리들이 장관을 이룬다. 북경의 16명소 중의 한 곳으로, 전체 면적은 119㎢이며, 주요 명소는 70m 높이의 콘크리트 댐으로 중국의 북방 지역에서는 최대 규모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곳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여름에는 폭포, 겨울에는 얼어붙은 폭포를 볼 수 있다.

 7㎞ 길이의 배유람은 또 하나의 졀경을 연출한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나와 산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10분 간격으로 유람선이 대기하고 있다.

 그러면 배를 타고 진강사와 같은 역사적 장소들도 구경할 수 있다. 강은 절벽 측면을 따라 흐르며, 관광객들은 종산(鍾山), 봉관도(鳳冠島)와 같은 깎아내릴 듯한 절벽 등의 30여 가지의 절경을 즐길 수 있다. 이 곳은 여름의 평균 기온이 6.4℃로 북경 시내보다는 낮다.

 봄부터 가을까지 "작은 계림"이라 불리며, 시원한 아름다움으로 빛을 발하던 용경협은 겨울이 되면 물이 얼어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곳은 아쉬움 대신 환상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환상적인 얼음의 축제, '빙등예술절(氷燈藝術節)'이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매년 1월부터 약 두달간 4,000㎡의 얼음바닥 위에서 진행된다. 빙등제는 이미 하얼빈의 것으로 유명해졌지만, 이곳의 빙등제를 "작은 하얼빈의 빙등제"라 불러도 될 만큼 그 재미와 아름다움에 있어서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용경협은 하루 안에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차를 타고 입구에서 내려서 20분 정도 걸으면 댐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258m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된다. 이 에스컬레이터는 1996년에 완공되었으며, 용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길이면에 있어서 기네스북에 올라 있기도 하다.

 

 

집필자:스피너

5월 1일 딸랑 하루를 쉬면서 어디라도 가고 싶어 간곳...  [용경협]

 

천진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하여서 9시 반쯤 용경협에 도착...

 

주차장이 작아서 차세울때가 없다...

 

그때 음식점 아줌마가 자기 가게 앞에 세우고 국수 한그릇씩 먹고 가라고 한다..

 

차를 세우고 산나물 한 접시 하고 찹쌀떡 같은거 한접시 하고 새우튀김한접시하고 먹었다...

 

다 먹고 계산을 하니 120원이란다...ㅎㅎ 산나물 한 접시에 4종류가 나오는데 한 종류당 20원이란다...ㅋㅋ  완전 바가지...

 

참고로 산나물 하나도 못먹었다는   ㅎㅎ 같이간 조선족도 못 먹겠다고.....

 

중국이 다 그렇듯 한번씩만 가볼만한곳...  [용경협]

 

근데 겨울에 한번 더 가보고 싶은곳...  [용경협]











 
 

 

 

 

 

 

 

37.모주석기념관

 

모주석기념관/마오쭈시진니엔�/毛澤東紀念館
위치 : 北京市市中心天安門廣場, 천안문 광장 남쪽 
개장시간 : 8:30~11:30,14:30~16:40(월,수,금 휴식,화,목,토 오전 휴식)
연락처 : 65132277
교통편 : Bus: 9 지하철: 2호선 치엔먼(前門)
  모주석기념관은 천안문광장 남쪽에 위치해 있다. 거대한 대리석 정방형인 건물인 모택동기념관은 중국공산당의 총서기였던 모택동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기념관은 모택동이 죽은 1976년 11월에 건설되기 시작해서, 다음해인 1977년 9월에 완공되었다. 44개의 팔각형 화강암 기둥과 황금색 기와 그리고 이중 지붕형태로 만들어진 기념관은 크게 3부분으로 구분된다. 첫번째 방 중앙에는 중국대륙을 수놓은 거대한 양탄자를 배경으로 모택동 대리석상이 있다. 중앙홀에는 검은색 대리석기단에 크리스탈 관으로 만들어진 모택동의 시신이 안치되어있다. 마지막 방은 다른 방보다 작은 방으로 금으로 도금된 모택동의 자필 시가 걸려 있다.

 

 

 

 

38.북경(베이징)오리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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