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요즘세상!

오월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영원한 울트라 2007. 10. 20. 08:31
오월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가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한양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해와 감상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내용의 김영랑 표대시다. 1934년 <문학文學>지에 발표했고, 1935년 간행된 <영랑시집永郞詩集>에 수록되었다. '모란'을 봄의 절정, 즉 봄의 모든 것으로 상징화하면서 삶의 보람, 삶의 목적을 거기에 귀일시키고 있는 詩다.


이 시는 '기다림-좌절-기다림'의 순환 구조로 되어 있다. 이것은 계절의 엄연한 순환 질서와 맞물려 있다. 시적 자아가 유보시킨다고 해서 운행이 멈춰지는 것은 아니다. 이 외계의 질서 앞에 시적 자아는 순응한다. 그러기에 그가 취할 태도는 오로지 기다림일 뿐이다.

 

모란을 기다리는 일은 곧 봄을 기다리는 일이며, 그것만이 유일한 삶의 보람이다. 모란이 피는 봄을 마주 대하는 동안은 보람을 누리는 때이며, 모란이 지는 순간에 보람은 상실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랑은 슬픔을 찬란함으로 받아들이는 미의식을 깨닫고 있는 美學의 소유자였다.

 

이렇게 영랑은 이런 아픔의 순간에 절망해 버리기나 초극(超克)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적극적 태도 표명이 없다. 정관적(靜觀的)으로 바라보며 아픔에 순응하고, 그 아픔을 즐기는 것이다. 이것은 고상한 취미의 일종이며, 영랑이 대상과의 만남에서 일으키는 반응 양식이다.

 

영랑의 시를 읽으면 감정의 격랑이 없고 조용히 흐르는 정중동(靜中動)의 심상이 느껴지는데, 바로 영랑의 이런 태도에서 비롯한다.

영랑이 추구하는 것은 '감정의 섬세한 흐름', 그 주관화된 독특한 자기만의 미묘한 감정이며, 그것을 내적 쾌락으로 즐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슬픔은 찬란할 수 있는 것이다. 영랑이 진실로 바라는 것은 '찬란한 슬픔'이라는 지극히 유미적인 감정 그 자체라고 할 것이다.


김영랑(金永郞, 1903-1950) 시인

 

본명은 윤식(允植). 전남 강진(康津) 출생. 부유한 지주의 가정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자랐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3.1운동 때에는 강진에서 의거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학원에 입학하여 중학부와 영문과를 거치는 동안 C.G.로제티, J.키츠 등의 시를 탐독하여 서정의 세계를 넓혔다. 1930년 박용철(朴龍喆), 정지용(鄭芝溶) 등과 함께 <시문학(詩文學)> 동인으로 참가한다.

 

그는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한 그의 시는 정지용의 감각적인 기교, 김기림(金起林)의 주지주의적 경향과는 달리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에는 창씨 개명(創氏改名)과 신사 참배(神社參拜)를 거부하는 저항 자세를 보여 주었고, 8.15광복 후에는 민족운동에 참가하는 등 자신의 시의 세계와는 달리 행동파적 일면을 지니고 있기도 하였다. 6.25전쟁 때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은신하다가 파편에 맞아 사망하였다.

<자료:서주홍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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