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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그늘

영원한 울트라 2008. 1. 28. 10:11
자유시장 경제질서’와 ‘사회적 시장경제’ - 이 두 개념을 대비한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언제 다시 읽어도 짐스럽다. 헌재는 2001년 6월28일 “우리 헌법의 경제질서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복지·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며 우열을 갈랐다(2001헌마132). ‘자유시장 경제질서’는 그 자체로 본질적 모순을 수반해 사회복지·사회정의와는 아무래도 멀다는 인식을 밑자락에 깔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좌향좌 10년이 ‘잃어버린 10년’ 한마디로 묶이기까지 헌재의 이런 경제관도 적잖이 거들어왔다(고 필자는 짚고 있다).

그렇고 그런 경제관이 현실적으로 무슨 복지와 정의를 과연 얼마나 더 넓히고 세워왔는가. 한나라당은 대선 공약집을 통해 “지난 10년간 경제 침체와 사회 분열의 늪에 빠졌다. 성장잠재력이 4%대로 추락하고, 역동성이 줄어들고 있다”고 시비했고, 그 시시비비에 공감한 국민은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했다. 그런 한나라당이고 또 이 대통령 당선인이지만 ‘자유시장 경제질서’가 아니라 맨 앞에 ‘자유’를 빼고 다른 수식어를 붙여, 이를테면 ‘따뜻한 시장경제’ ‘건강한 시장경제’를 말해왔다. 딱히 무슨 잘못이기야 하랴. 하지만 필자는 그런 조어(造語)의 어폐까지 어림해 ‘냉혹한 시장경제, 타락한 시장경제’가 이젠 역사의 화석(化石)이지 않으냐고 되묻고 싶다. 혹 그 밑자락에도 자유는 가진 자, 누리는 자의 자유이며 의미론으로는 아무래도 복지나 정의와 거리가 있다는 식의 인식이 흐른다면 그 역시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헌법 개정 논란이 자맥질할 때마다 ‘정치인을 위한, 정치인의 논의’로 겉돌릴 게 아니라 경제헌법 개정이 더 시급하다고 시론해왔다. 현행 경제헌법 첫머리, 곧 헌법 제109조는 1항에서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한다고 하고 이어 2항에서 ‘시장의 지배’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가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뒤집어 헌법 전반에 그늘의 흔단을 그어왔다. 오죽하면 헌법이 무엇인가를 선언하는 헌재마저 국가의 규제·조정권을 무슨 보도(寶刀)처럼 받들어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개념까지 다듬었을까마는 그런 각색도 헌법의 자유정신에 대한 왜곡 내지 분식(粉飾)에 가깝다.

헌법의 그 그늘을 걷자는 대안 제시는 줄잡아 두 줄기다.

첫째, 필자처럼 헌법 제37조 2항이 적시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 제한의 헌법적 한계를 좇아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은 하더라도 반드시 법률로써만 하게 하되, 어떠한 규제·조정도 창의와 자유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게 하자는 정식 개헌론이다(헌법포럼이 헌법 제109조 1, 2항을 다 바꿔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곧이곧대로 명문화하고 그 정상적 작동을 위해 국가가 규제·조정할 수 있게 하자고 한 2006년 1월 제안은 규제·조정권의 법률 유보와 한계까진 못미쳐 아무래도 아쉽다).

둘째, “자유의 ‘헌법정신’으로 무장하면 된다…자유의 소중함, 자유주의의 지혜를 강조하는 것도 자유의 헌법을 갖기 위한 한가지 노력”(민경국 저 ‘자유주의의 지혜’, 아카넷 2007.2.15)이라는 지적처럼 헌법을 자유의 장전으로 지켜내자는 제안, 곧 해석개헌론이다. 정식 개헌은 어차피 미래의 선택, 당장은 역시 ‘자유주의가 살길’이라고 자신하고 경제헌법 해석을 그야말로 제대로 해야 할밖에.

이 당선인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16일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할 때 “헌법이 15명의 국무위원은 있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어 그 밑선으로 더 욕심을 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했다. 헌법 제88조 2항이 ‘15인 이상 30인 이하의 국무위원’으로 못박아 15인에서도 더 줄이고 싶었으나 참았다는 그 말에 필자는 밑줄을 그었다. 그런 시각이 곧 자유주의이며, 경제헌법도 그렇게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 홍정기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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