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도 한때는
평범한 아마추어 작가에 불과했다.
초기작을 보면 구도와 색채 등에서 어수룩하기 짝이 없다.
습작기 작품은 대가도
원래는 보통사람이었구나 하는 "안도감 "을 준다.
네덜란드 출신의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작품을 보면 고흐가 장
프랑수아,
밀레(1914-1875)에게서 어떻게 영향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작품에는 고흐가 밀레의 작품을
대놓고 베낀 흔적이 역력하다.
밀레 역시 선배 화가의 그림을 모방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밀레의 초기작 "정의"는 피에르 쉬블레라스(1699-1749)의 "정의"를 그대로 모방했다.
두 작품 모두
프랑스 셰르부르의 토마 앙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
이 작품은 앉아 있는 여인이 저울을 왼손에 들고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밀레는 파리 국립미술학교 시절에 셰르부르 미술관에 들러 쉬블레라스의 작품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밀레
작품은 쉬블레라스 작품의 인물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으나 머리색과 손의 모습 등은 살짝 바꿨다.
당시 밀레는
인물표현의 기본인 비례법을 적용하는 데 무척 서툴러
쉬블레라스의 작품과 비교하면 매우 투박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밀레는 후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특히 밀레와 고흐. 두 작가의 회화 중 작품 제목까지 똑같은
"첫 발자국"과
"낮잠" "씨 뿌리는 사람"을 직접 비교해보면밀레의 "첫 발자국"은
1858년작으로 고흐의 그것보다 32년이 앞서나 구도와 내용은
정확히 일치한다.
한 농부가 엄마와 함께 있는 아이를 쪼그려 앉은채 손을 벌려 부르는 장면이다.
"낮잠" 역시
24년의 시간적 차이는 있지만 건초 더미에 누운 농부 부부를 그렸다
는 점에서 같다. "씨 뿌리는 사람"은 배경은 서로 다르나
농부의 작업광경은 닮았다.
이밖에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 루이-레오폴 부알리(1761-1845),
아드리앙 안느망(1601-1671), 폴 들라로슈(1797-1856), 기욤 푸아스(1827-1895),
조르주
모틀레(1865-1923), 앙리 마르탱(1860-1943) 등 밀레를 전후한
작가의 작품들도 비교해보면 이들의 작품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보여준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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