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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동향

영원한 울트라 2005. 9. 17. 13:23

현대미술의 동향


박만우(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전 큐레이터)

 

I. 문화행위와 현대미술의 감상


1. 문화실천의 관점에서 본 현대미술의 이해

 

  화랑이나 미술전시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자체가 현대적 문화실천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면 이는 지나치게 이론적 편협함에 사로잡힌 주장일까? 물론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현대미술을 위한 고유한 감상법이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되며 이러한 법칙 혹은 문법이 있다면 이는 개별적인 미술작품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현대미술이라는 전체 구조와 연관시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흔히 예술을 언급할 때 맨 처음 연상되는 것이 창작 또는 창조라는 단어일 것이다. 마치 조물주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우주의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것처럼 예술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에서 창작이란 어휘를 사용한다. 그러나, 예술가의 창작과 결부된 우리의 선입견은 무엇보다 예술은 예술가만의 몫이라는 통념에 기인한다. 현대미술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가장 먼저 바로 잡아야 할 것이 이러한 잘못된 인식의 틀이다. 즉 현대미술은 본질적으로 예술가들만의 것이 아니고 현대미술의 구조자체가 관람객, 감상자의 적극적인 개입, 참여 그리고 반응을 요청하는 특수한 형태의 문화적 실천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현대미술의 구조를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파악하자면, 미술의 무게중심이 19세기말 20세기 초엽까지의 근대미술에서는 작가측에 놓였고 이후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다다이즘 등의 역사적 아방가르드 미술 등을 거치면서 점차로 작가의 의도나 예술적 의지보다는 작품의 형식적 가치 쪽으로 중심축이 옮겨갔다. 따라서 미술이해의 핵심도 작가의 직관, 상상력 그리고 작가를 지배했던 세계관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작품이 지니는 형식적 구조의 분석으로 전이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현대미술이 이 시대의 미술, 즉 당대(contemporary)의 미술로 자리잡게 된 2차대전 이후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극사실주의, 프로세스 아트(process art) 등을 거치면서 미술행위 자체가 관람객의 참여 없이는 그 작품 혹은 미술작업의 의미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로 수용자의 개입은 없어서는 안 될 필요충분한 사항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현대미술은 작품을 사이에 두고 작가의 반대편에 서있는 관람객 혹은 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수용자에게 무게중심이 실리게 되었다.

  현대미술에 대한 구조적 이해를 앞서와 같이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틀로 이해해 보려는 시도는 현대미술 역시 한 시대의 역사, 사회적 요청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좀 시각을 달리해 보자면 흔히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커뮤니케이션의 사회라고 한다. 더 나아가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 의사소통, 의견교환, 협업, 다양한 사유방식의 공유 등에 있다고 할 때 점점 더 그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발신자의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남의 생각, 욕망,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귀 기울이고 이해할 줄 아는 자질 혹은 능력, 즉 수신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미술작품의 감상행위가 올바른 문화실천이 되기 위해서는 현대미술을 대상으로 했을 때 그 관람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개입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감상자, 관람자, 관조자 등의 용어는 더 이상 현대미술의 수용자를 지칭하기에는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 단순히 바라보고 느끼는 역할에 안주하는 문화상품의 소비자가 아니라 자신의 신체를 통해 물리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물론 사회, 문화적인 교육, 지식, 관습 등을 총동원해서 또 하나의 미술행위에 가담하는 협조자 혹은 동반자인 것이다.

    

2. 현대미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


  현대미술의 실천행위의 주체가 작가뿐만이 아니라 수용자에게로 까지 확장되는 현실은 이 시대의 문화실천 전반에 걸쳐 확인 할 수 있는 문화논리에 따른다. 방송, 언론과 같은 대중매체에서도 ‘수용자주권’과도 같은 말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지 않은가? 작가, 저자(author)라는 신비한 개념이 사라지면서 현대미술에서도 일종의 가치전도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수용자들은 보다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현대미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 질문하고 현대미술의 실천형태에 대한 정당성을 따지고 나섰다.

  아마도 이러한 움직임의 발단은 이미 현대적 미술비평의 발생구조에서 감지되고 있지만 이제는 비단 미술전문가들 만이 아니라 보다 많은 미술수용의 기회가 주어진 확산된 일반 미술 수용자들이 자신들의 주권을 지키려는 노력을 강구하면서 가시적으로 들어나기 시작했다. 현대미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 현대미술이 더 이상 미술시장만을 통해 소비, 전달,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 미술관, 아트센터 등의 공공제도를 통해 중재 혹은 매개되어지는 미술실천의 방식과 그 궤적을 같이한다.

  다시말하자면, 한 작품을 통해서 야기되는 미적 관심은 수용자로 하여금 한 작품에서 어떤 상징화된 가치들에 주목하게 만든다. 이런 가치들은 그 작품을 지각하고 체험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러한 미적 계기가 아니고서는 결코 찾아 볼 수 없는 특정한 관계를 맺어준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경제적 이해관계나 권력적 지배관계와 달리 더불어 살 수 있는 공동체의 논리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상호주체적 관계설정일 것이다. 한 작품에 대해 일반 수용자들이 갖는 이해관계란 다름아닌 그 작품에만 고유한 이러한 상징화된 가치들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을 때만 성립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이질적인 경험, 또는 유사한 경험을 맛보았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몰랐던 경험의 내용이 담겨진 작품앞에서 공감하고, 반응하고, 체험함으로써 우리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타자성에 대한 감수성(sensibility to the otherness)을 함양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II. 현대미술의 논리와 탐구영역


1. 현대미술과 표현매체


  현대미술의 논리라고 할 경우 예술과 논리의 상반된 가치영역으로 인해 다소 혼란스럽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전개는 자신의 내재적인 문제틀을 가지고 끊임없이 그 문제의 지평을 확장하고 문제점들을 극복하려 했다. 이런 시각에서 현대미술의 논리를 재구성해 본다면 그 중앙에는 미술의 표현매체의 특성에 대한 연구가 자리잡는다.

  19세기 중엽 서구의 시각문화가 고안해 낸 최상의 발명물인 사진의 등장은 근대회화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예술이 절대적으로 신뢰해왔던 원근법적 재현체계가 사진을 통해 보여진 이미지들에 의해 하루 아침에 더 이상 현실을 재현해 내는 절대적인 수단이 아님을 확인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 등장한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TV, 비디오카메라 등의 활용은 우리의 시각경험의 장을 무한히 확대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미술에게는 표현기술의 측면에서 커다란 위협 혹은 경쟁적 상대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현대미술의 내재적 전개논리는 끊임없이 자기만의 고유한 표현매체의 특성을 개발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파악될 수 있겠다.

  오늘날 현대미술의 주요 표현매체들이 회화나 조각에서 탈피하여 퍼포먼스, 설치, 비디오, 비디오설치 등으로 그 외연이 확장되었던 것도 대중매체의 문화가 무기로 삼았던 엄청난 파급효과의 시청각의 표현수단이 가능하게 했던 문화환경에 따른 필연적인 대응이었다. 그러나, 지난 20여년간 현대미술의 발전이 노출했던 특정 장르 전문주의는 조금씩 퇴조하고 있고 오늘의 작가들은 비디오매체 전문, 설치미술 전문 등의 딱지를 과감히 탈피하고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넘다들고 있다. 특히 이러한 장르간의 벽허물기 현상은 미술의 영역 내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미술과 인접한 미술분야, 즉 건축, 디자인, 애니메이션, 영화, 무용, 연극, 문학에 이르기 까지 상호교섭을 시도하고 있다.  

  다양한 매체들을 활용하고 타 분야와의 상호교섭을 시도하는 현대미술의 특성은 그 재료들과 소재들을 완벽히 정복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앞서 말한 상징적 가치란 작가와 작품 그리고 수용자가 몸담고 있는 현실의 진정한 모습과 연관이 있기에 현대미술작품이 말하려고 하는 것, 미적인 차원에서 주장하려는 것은 기존의 문화적 공간 특히 대중매체가 지배하고 있는 공간에선 그 발언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일종의 ‘묻혀있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미술이 여타의 문화예술의 영역과 공유하는 표현매체를 통해 그 메시지가 구현되는 방식은 그 외견상의 매끄럽지 못함, 오히려 그 소재 혹은 질료와 싸우고 혹은 소재와 질료가 저항하는 부분을 일정 받아들이는 태도가 반영된 그러한 혼재된 상태라고 하겠다. 아마도 현대미술의 이러한 방향은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태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 사회가 지니는 갈등이나 모순의 국면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려는 태도, 대중매체가 지배하는 우리의 문화적 현실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국면들을 소재로 삼는 예술가의 감수성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표현매체와 부딪치고 씨름한 흔적으로 남는다.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작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듯이 일상적으로 텔레비젼을 시청할 때 정상적으로 대하는 화면이 아니라 위,아래로 흘러내리는 주파선의 현란한 운동과 선명치 못한 색조대비 등이 현대미술 작가들이 표현매체를 두고 고민한 흔적의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2. 현대미술의 논점과 주제들


  예술과 삶을 하나로 통합시키려고 했던 20세기 초 역사적 아방가르드 미술의 시도는 그 이후 사회비판이나 현실참여적인 미술의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현실을 보다 심화시켜 볼 수 있게 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려는 현대미술의 시도는 이제 다양한 문화적 담론의 주제들을 새롭게 걸러내고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려는 노력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주제들은 인간과 자연환경의 새로운 관계설정, 현대사회의 노동과 여가 사이의 애매한 경계, 세계화 시대의 지역 문화의 특수성과 차별성, 새로운 형태의 도시 공공미술, 강력한 효과의 영상이미지가 범람하는 시각환경 속의 현대미술의 표현수단, 작품제작 과정상의 작가와 공동체와의 협업, 기계복제 시대의 미술의 독창성의 문제 그리고 대중문화와 고급예술 사이의 부단한 상호침윤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서구의 근대미술은 3차원의 현실을 2차원의 평면위에 회화적인 재현기법을 통해 충실히 모방하려 했던 부단한 문화적 욕구의 산물이다. 그러나, 20세기 초 서구의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적 이해에서 출발한 입체파, 추상회화, 초현실주의 회화 등의 미술사조에 의해 시작된 해체의 작업은 마침내 1950년대, 60년대에 이르러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등이 가세하여 근대적 회화적 수단의 마지막 보루까지를 무장해제시켰다. 그 이후 다원주의의 기치아래 현대미술은 방향성을 잃고 포스트모던 등의 수식어만이 유행할 뿐 향후의 발전을 전망하기 어려웠다. 이제 발전과 성과만을 중시여겼던 20세기를 뒤로하고 현대미술은 이제 성찰과 과정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자기 반성적인(self-reflective)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이제 현대미술은 교양있는 소수의 미술애호가들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현대미술의 일상의 삶의 공간에 보다 밀착되기 위해서는 미술작업의 소재가 거창한 이념이나 정치적 구호를 설명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전락하기 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이벤트로서의 미술행위가 펼쳐져야 했다. 미술관의 울타리를 벗어나 거리의 미술, 도시 공간의 설치미술이 이제는 병원, 학교, 백화점 등의 공간으로 확대되고 있다. 마치 종교적 성소를 방문하던 미술관 관람의 실천방식이 저잣거리와 같은 공간에서 미술행위를 통한 의사소통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취지 하에 요즈음의 현대미술이 가장 고민하고 있는 점은 어떻게 미술작품이 대중과 만나게 되는가 하는, 일종의 매개(mediation)의 장치에 대한 노력이다. 관람자는 미술작품과 대면하게 되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매개의 장치를 필요로 한다. 미술작품을 선정하는 전시기획자, 평론가 들이 있고 화랑이나 미술관 더 나아가서 미술전문잡지, 방송 등의 제도가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미술제도의 시스템 자체가 정책이나 상업성 등에 의해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진정한 만남을 왜곡할 수도 있다. 대중문화 산업의 제작 시스템과 달리 작가, 전시기획자(curator) 그 외의 미술전문인들 사이의 새로운 유형의 인간관계가 모색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필요성에 기인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분배될수록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이 현대미술이다. 현대미술의 대중적 확산은 작가를 위시한 현대미술 분야의 종사자 모두에게 주어진 당면과제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http://art.metro.busan.kr/education/edu_data_list.j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