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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의 사과는 왜 유명한가?

영원한 울트라 2005. 9. 17. 13:36

폴 세잔 (Paul Cezanne 1839.1.19~1906.10.22)
 



- 세잔의 사과

 

 인류에겐 3개의 유명한 사과가 있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20세기 미술의 지평을 열었다는 세잔의 사과가 그 것이다. 상징주의 화가이자 미술학자인 모리스 드니는 "보통 화가의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넨다"고 말했다.

 

 세잔과 사과와의 인연은 그의 30년 지기인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Zola, Emile)와 함께 1852년 남부 프랑스의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 간다. 당시 가난하고 몸집이 왜소했던 에밀 졸라는 어느 날 급우와 다툼이 있었는데 이때 세잔이 나타나 도와주게 되며, 에밀 졸라는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세잔에게 사과를 선물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평소 소극적이었던 세잔은 에밀 졸라와 더욱 친해지면서 활발하게 시와 예술을 논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법률가로 성공을 원하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1861년 세잔은 파리로 나와 모네, 드가, 르느와르 등과 사귀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인생을 살게 된다. C.피사로의 영향으로 1872년 경부터 인상주의 회화에 관심을 갖게 되나, 70년대 말에는 오히려 인상주의 화가들이 몰두 했던 광선과 색채 변화에 대한 추구가 형태와 구성을 말살 시키는 행위로 간주 하였고, 결국 인상파와 멀어지는 경향을 띄게 되었다. 이러한 전향은 그를 인상주의를 뛰어넘어 후기 인상주의의 탄생을 주도하게 하였고, 야수파와 입체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20세기 회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원천을 제공하게 된다.


 당시의 인상주의 화가들의 사과는 찰나의 빛과 그에 따라 변하는 외관을 쫓는 구성으로만 그려졌다. 하지만 세잔의 사과에는 그러한 순간적인 구성은 없어 보인다. 대신 그의 가슴속에 있는 불타는 색채 감각을 가는 필촉으로 여러 번 덧칠하여 화폭에 새로운 질서를 성립해 냈으며, 소재가 왜곡되더라 할지라도 순간순간 변화하는 현실의 사과와는 다른 영원히 변치 않는 매우 훌륭한 또 다른 사과를 그림으로 창조해 내었다.

 

즉, 세잔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림은 결코 실제의 사과를 그릴 수 없다는 점"이라는 명제가 필요한 것이다. 세잔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물의 형태를 그리기 위하여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색을 그대로 칠하는 것이 아니라 색을 이루는 많은 조각들을 수없이 계산된 부분 부분에 적용해서 입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었다.

 

또한 사물이 갖고 있는 고유의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그는 전통적인 명암법을 포기하고 인위적인 명암을 만들었다. 더구나 세잔은 형태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 이를 왜곡시키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세잔의 작품에 나타나는 사물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세잔의 사과가 딱딱하고 맛없어 보이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세잔은 사물이 갖는 실제적인 명암이나 색채를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화폭 위에 나타나는 이 소재들은 실재감과 완벽한 형태감을 자랑한다. 이는 현대 회화의 발전을 예고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고, 세잔을 20세기 회화의 선구자로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