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삶의등대▲

e-메일

영원한 울트라 2007. 9. 27. 15:13
e-메일을 통해 번지는 컴퓨터 바이러스의 이름이 요상 야릇해지기 시작한 건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던 2000년 5월께다. ‘I love you’라고 쓰인 e-메일을 호기심 많다는 죄로 열어봤다가 애꿎게 고생한 네티즌이 많았다. ‘사이버 악당’들은 그때 재미를 톡톡히 봤는지 야한 이름의 악성 코드가 한동안 창궐했다.

미국의 레이 톰린슨이란 30대 초반의 프로그래머가 1972년 첫 e-메일을 친구한테 날릴 때만 해도 이 발명이 인류의 의사소통에 얼마나 큰 변혁을 초래할지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어의 전치사 ‘at’의 약자를 뜻하는 ‘@’는 그 모양대로 골뱅이(한국)·생쥐(중국)·양배추(영국) ·달팽이(프랑스·이탈리아) 등으로 나라마다 다양하게 불렸지만, 인터넷의 총아로서 지구촌을 하나로 만들어 갔다. 비즈니스 민주화에도 기여했다. 영세업자들은 공룡 같은 다국적 기업의 틈바구니에서 e-메일 마케팅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롱테일(Long tail) 경제’의 가능성을 열었다. 2002년 대선에서 ‘정치적 중소기업’이던 노무현 후보가 ‘정치 재벌’이라 할 이회창을 상대로 막판 역전극을 펼친 것도 노무현 지지표를 독려하는 젊은 네티즌들의 벌떼 같은 e-메일 선거운동 덕분이었다.

문명의 이기(利器)는 편리함의 대가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는 e-메일이 겪게 된 3대 고초로, 바이러스 이외에 스팸과 피싱(개인정보 유출)을 꼽았다. 하지만 이들에 못지않은 공포의 대상이 있다. 프라이버시 침해다. 언제부턴가 자기 직장의 공용메일로는 진솔한 메시지를 주고받지 않는 풍토가 생겼다. 부하 여직원에게 보낸 e-메일 연서(戀書)가 배달사고를 일으켜 결국 사직한 기업 경영자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회자된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정아씨 간에 오간 e-메일로 인해 세간이 시끄럽다. 시쳇말로 ‘부적절한 만남’에 의한 스캔들로 비화될 조짐이다. 호사가들한테는 좋은 입방아거리일지 모르지만, 하루 수십 통씩 e-메일을 주고받는 네티즌들 입장에선 모골이 송연할 일이다. ‘아이 러브 유 바이러스’로 엉망이 된 컴퓨터처럼, 삭제한 메일이 복원돼 한 개인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고 생각해 보라. ‘프라이버시를 희생함으로써 얻은 보상이 너무도 흔해진 까닭에 프라이버시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렉 휘태커, 『프라이버시의 종언』). e-메일이 프라이버시를 얼마나 더 위협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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