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라면 오스트리아제, 자동차는 영국제, 여자는 마릴린 먼로. 그 외 부친이 물려준 온갖 진귀한 골동품이 산처럼 쌓였지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서양화, 그것도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의 유화만 고집했다. 시계도 마찬가지였다. 롤렉스건 피아제건 인정을 안 했다. 오직 ‘쿼츠’ 제품만을 높이 샀다. 호화 여객선 ‘퀸 엘리자베스’를 타는 이유는 단 한가지. 거기서 연주하는 밴드가 맘에 들어서였다.
‘호랑이 기름(Tiger Balm)’으로 떼돈을 번 싱가포르의 갑부 후(胡)씨 가문의 3대째 사장 후이후(胡一虎·1995년 작고)의 집착은 이처럼 대단했다.
그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준 ‘호랑이 기름’은 20년대 그의 할아버지 형제가 만들어냈다. 장뇌(樟腦)와 박하 기름 등이 원료였다. 벌레에 물리거나 타박상에 쓰이는 약이었지만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덕분에 후이후는 전설적인 부자로 등극했다.
그의 부인은 일본인 아키코(曉子·80)였다. 후이후 못지않은 재벌가에서 태어나 부를 누리며 자랐다. 남편의 후광도 있어 그는 10개 이상의 회사 사장과 임원을 역임했다. 유대인 최고의 명문가인 로스차일드나 사우디아라비아 왕족 등 전 세계 부호들과의 친분도 깊었다. 그래서 아키코의 집에는 아베 신타로·후쿠다 다케오 등 일본 자민당의 당시 실력자들로 늘 붐볐다. 각국의 인맥을 소개받기 위해서였다. ‘자민당 싱가포르 사무소’로 불릴 정도였다.
후이후나 아키코가 권력과 부를 잡고도 잊지 않은 게 있다. 봉사 정신이다. “사회에 봉사를 하지 않는 부자는 진정한 부자가 아니다”는 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결론이었다. 그래서 적십자사 부총재직을 맡아 세계를 돌아다니며 봉사활동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부자 소리 들으려면 먼저 돈 쓰는 방법부터 배워라”며 기업인들의 자발적인 사회공헌을 촉구했다. 아키코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위해 분유와 겔(이동식 숙소)을 꾸준히 기부했다. 조만간 국제 자선교류단체도 설립한다.
6일 재판부가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에게 실형 대신 집행유예 판결을 내리며 사회봉사 명령을 부과했다. 개인 재산을 출연하고 강연이나 기고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회봉사 활동을 하라 했다. 하지만 그런 건 평상시에 당연히 해야 했던 덕목이 아닐까도 싶다. 굳이 이번 예가 아니더라도 한국 최고 수준의 부자 반열에 오른 이들이라면 스스로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봉사가 무엇인지 찾아 행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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