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자정 계기 마련, 위작 밝혀내는 과학기법 활성화 기대"
검찰에 압수된 고 이중섭, 박수근 화백 위작 수천 점이 폐기되는 대신 전시회에 등장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난 2005년부터 2년여에 걸쳐 이중섭, 박수근 화백 위작 수사를 해온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7부.
검찰이 위조 그림을 유통시킨 혐의로 구속기소한 한국고서연구회 고문 김용수(68) 씨로부터 압수한 위작들은 그림과 판화를 총망라해 모두 2,834점에 이른다. 검찰은 최근 압수수색을 통해 김 씨가 가지고 있던 겸재 정선, 운보 김기창 화백 등의 그림 10여 점도 압수품 목록에 추가했다.
통상 위작 등으로 판정돼 압수된 미술품들은 법원의 ‘몰수 판결’을 거쳐 파기처분 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이번에 압수된 이중섭, 박수근 화백 위작들은 다른 운명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 변찬우 부장검사는 “미술계에서 위작도 위작 나름의 가치가 있으니 위작 전시회를 하거나 따로 전시관을 만들자고 요구하고 있다”며 “우선 법원의 몰수 판결을 받은 뒤 미술계의 요청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다”고 밝혔다.
변 검사는 이어 “그 동안 잦은 위작시비로 점철된 미술계에 위조된 작품들을 보여주는 것이 미술계 자정의 계기를 마련하고, 위작을 밝혀내는 과학감정 기법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위조 전문가(?)는 누구?
위조된 작품도 ‘작품’이라고 친다면 위조 작품에 작가도 있을 터. 하지만 검찰은 직접 위작을 그린 화가들이 누구인지는 밝혀내지 못한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 김 씨가 아직도 그 그림들을 70년대 초 인사동에서 일괄 구매한 진품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다만 “위작들에는 온갖 위조 방식이 총동원돼 있으며, 한두 명이 아니라 수많은 인원이 작품 위조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검찰은 또 물감성분 분석 등의 방식을 통해 대부분의 위작들이 지난 2000년에서 2002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한 상태다.
만일 작품들이 검찰이 추정하는 기간에 제작됐다면, 검찰이 작품을 위조한 범인들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처벌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화백들의 가짜 서명을 그림에 적어넣은 행위에 적용되는 ‘사서명위조죄’의 경우는 공소시효가 3년이기 때문이다.
이중섭 화백의 위조된 그림 5점을 판매해 9억여 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한국고서연구회 김 고문을 구속기소한 검찰은 김 고문의 아들(37)을 조작한 사진 등 조작된 증거를 법원에 제출한 혐의로 추가로 불구속기소 했다.
검찰은 또 위작 판매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지만 일본에 거주하면서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는 이중섭 화백의 아들 태성(58) 씨를 기소중지했다.
CBS사회부 심훈 기자 simhun@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