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해외작가소개방

[스크랩] 세잔

영원한 울트라 2008. 1. 29. 17:02

 

 

1839년 엑스에서 오귀스트 세잔이라는 모자 제조업자와

그 가게의 점원인 안느 엘리자베스 오베르 사이에서 태어난 세잔은 원래 사생아였다

부모가 정식 결혼을 하기 전까지 합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그는

소심하고 의심이 많았던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가로 인정받았지만 항상 엄격해서

세잔은 어려서부터 수도승과 같은 삶을 살았다.

그에게는 절제와 검소가 미덕이었고

경건하게 신앙심 깊은 생활을 하는 것을 기쁘게 알았다.

이런 성격은 후에 세잔의 작업에도 나타나 여성의 누드를 그릴 때에도

모델을 쓰지 않고 상상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계단 난간에서 미끄럼 타던 꼬마와 부딪혀 다친 이후로는

사람과의 접촉도 끔찍히 싫어하는 일종의 대인관계 적응성 결여와 같은 증상도 나타내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절친한 친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에밀 졸라이다.

 

두사람은 같은 중학교 출신으로 학창시절 졸라를 괴롭히던 친구들로부터

세잔이 그를 감싸주면서 그들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당시 숨막히는 생활을 하던 세잔과 조숙했던 졸라는

함께 사춘기를 보내고 서신을 교환하면서 꿈을 키워 나갔다.

특히 졸라는 세잔이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고는

아버지의 강요로 법학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꿈인 미술을 함께 공부하던 세잔이

미술에 매진하도록 종용했다고 한다.

다행히 어머니와 누이들이 그를 후원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반대에도 화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에밀 졸라의 모습                    

 

하지만 이 둘의 우정은 1870년경부터 멀어지게 된다.

에밀 졸라가 성공가도에 올라서고 호화롭게 살았던 반면,

세잔은 당시 전통이던 인상주의 아래에서 그에 따른 회화의 전통들을 거부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졸라는 당시 지속적으로 미술평을 하고 있었지만 세잔이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것은 졸라가 세잔의 커다란 성격적 단점들을 잘 알고 있었고

당시 인상파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결국 그들은 1886년 졸라가 세잔을 모델로 작품을 출간하면서 우정의 종지부를 찍고 만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천재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실패하여 자살하는 인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세잔은 화가이자 연구하고 실험하는 과학자였다.

그는 자연의 모든 형태를 원뿔, , 원통 모형으로 작품에 담고자 했다.

즉 사물이 갖는 여러 가지 형태를 단순화시켜

작품 속에서 나름의 질서로 배열하고자 한 것이다.

세잔은 순간적인 빛을 쫓고 일순간의 외관을 추구하는데

회화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회화란 구도와 채색이 오랜 노력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믿었으며,

그 질서를 통해 초월적인 자연의 힘이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사과는 보는 각도에 따라 

때로는 빨간색, 때로는 주홍색 등으로 색채가 수시로 변한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사과에서 나오는 빛의 순간적인 변화를 그리기 위해 급급했다면

후기 인상파의 대가 세잔은 언제 어디서나 영원히 변치 않는

사과의 고유 형태를 그리기 위해 몰두했고

형태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 이를 왜곡시키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이런 노력 끝에 세잔은 1895년 최초의 대규모 개인전을 열 수 있었고

그의 개인전은 그 무렵의 젊은 화가들을 놀라게 하였다.

인상파이면서도 훨씬 지적이고 신선한 야성미가 넘치는 세잔 예술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세잔은 그런 명성이나 판매에도 무심했고 세속의 미술계와는 거리를 두고 지냈다.

 

 

1888-1890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           

 

그러다 1902년 졸라가 사망한다.

그리고 4년 후 졸라의 흉상 제막식에 참석한 세잔은 제막식 내내 흐느꼈다고 한다.

아마 자신을 독려하여 화가의 길로 이끌었으면서도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은 가장 가까웠던 벗에 대한 섭섭함과

지난 시절의 후회가 밀려 오지 않았을까…?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같은 해 10월 그림을 그리다가 쓰러져 그 역시 세상을 떠난다.

 

 

1890-1894 풍경화      

 

놀라운 사실은 그의 작품의 주요 수집가 대부분이

동시대 화가인 피사로, 모네, 드가, 르누아르, 마티스, 시냐크 등으로

그들은 세잔의 작품을 장식품이 아닌, 자신의 예술을 위한 지침서로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현대 미술의 거장 피카소 역시 세잔이 자신의 유일한 스승이며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그 스스로 다른 화가들의 뮤즈가 된 셈이다.

 

그는 죽기 한 달 전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매우 심한 정신적 동요산태, 거대한 혼돈에 빠져

      한동안 내 약한 이성으로는 도저히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 잡혔었다.

      이제는 좀 나아져서 내가 탐구해 가고 있는 방향을 좀 더 명확히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과연 그렇게 애타게 찾고 오랫동안 추구했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

      지금도 여전히 나는 자연에 대해 탐구하고 있으며 조금씩 진전이 보이는 것 같다.

 

 

자신의 작품인 '목욕하는 여인들' 앞에 앉아 있는 말년의 세잔           

 

그는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고 칩거하면서 오로지 작업만을 생각하고 연구했다.

죽기 바로 전까지 화가로서 그림에 대해 탐구하고 노력한 진정한 예술가였던 것이다.

 

 

 

 

출처 : Artist 엄 옥 경
글쓴이 : 스카이블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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