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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라 요시토모

영원한 울트라 2008. 1. 30. 13:51
나라 요시토모(Yoshitomo Nara)의 그림세계
 

 

 

글/홍경한(미술평론)

 

  숨가쁘게 달려가는 오늘을 우리는 현재라 부른다. 현재에 있어 일반적인 관념은 과거로의 회귀를 쉽게 용납치 않는다. 마음과는 달리 그만한 여유가 없다. 이에 우리는 지난 기억과 단면들을 추억이라 이름 붙인 방에 때묻은 정서와 유년의 기억들을 싸그리 모아 가둬 놓아 버리곤 한다. 이는

 

스스로에게 불완전한 자유를 허락하는 매우 어리석고 잔인한 사고임을 알면서도 우린 그렇게 그렇게 현재를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의 심성이란 영원히 그 방을 빈방으로 남겨 두지 못하게 한다. 외롭거나 힘이 들 때,슬플 때나 무척이나 아플 때 가끔씩  스스로 만들어낸 방안에 놓여진 그 과거들을 파노라마처럼 끄집어 낼 필요성 역시 알고 있기 때문에 완곡한 절연은 피하려 애쓴다.

 

 어쨌든 우리는 마치 자물쇠가 달린 오래된 일기장을 서랍 귀퉁이에서 꺼내 몰래 몰래 들여다 보면서도 행여 누구에게 들킬세라 작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자신에게 소중한 기억들에 관대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와 세계를 향한 철저하게 은폐된 두 가지의 얼굴을 하고.

 

우리 기억 속 풍경을 그리다

 

 순수 미술 형식과 대중 문화의 정서를 결합한 복합적인 양상의 작업으로 국내외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의 '네오 팝아티스트'라 불리는 나라 요시토모(Yoshitomo Nara 奈良美智. 47).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일본 작가이자 우리나라에도 <작은별 통신(The Little Star Dweller)>이라는 서적으로 이름을 알린 인물인 그는 1959년 일본 아오모리현 출생으로 아이치현립예술대학을 나와 1988년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대학에서 유학 후 2000년까지 독일을 근거지로 활동하였고, 현재는 동경에서 작업 중이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한 활약을 통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았으며 지난해 6월 서울 로댕갤러리에서 한국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해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세계를 이끄는 것은 그가 창조해 낸 독특한 캐릭터에 있다. 실제로  2005년 열렸던 <요시토모의 아이들> 전시를 보았던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들에서 풍기는 묘한 감정을 체감했을 것이다.  '서울하우스'라는 작품 안에 놓여진 채 무언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한 아이들. 빨갛거나 파랗거나, 혹은 노란색의 밝고 앙증맞은 의복을 걸쳤지만 고독함과 우울함이 교차하는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웬지 모를 반항심. 괜스레 노려보는 꼬마들 때문에 상쾌한 마음으로 접근했다가도 불쑥 괘씸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하나 하나 유심히 뜯어 보면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애정이 스미는 야릇한 감정 역시 속일 수 없는 것이 또한 나라의 그림들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희한하고 괴상스러우며 시니컬하지만 호기심과 미소를 짓게 한다. 왜 그럴까?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터이지만 그의 작품들이 기묘한 것은 바로 나라의 아이들이 우리 어른들의 잃어 버린(혹은 잊어 버린) 과거를 투영하고 있는 상징적인 대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라의 아이들>은 소심하고 다소 비굴한 현대인들에 비해 무척이나 당돌하고 떳떳하다. 악동처럼 굴다가도 아무것도 아닌 작은 으름짱에 울먹이던 어릴적 철없고 순진했던 시절의 우리 모습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이 아이들은 나라 요시토모의 감성과 교배되어 세상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후 독일에서 수학한 그의 작업은 딱히 규정적이랄 수 있는 작업 성향을 갖고 있지 않다. 일본 'Neo Pop'에 속하는 그의 예술은 이른바 '오타쿠'라고 하는 일본 서브컬쳐 옹호 세대를 배경으로 탄생하였다. 일본의 동 세대가 전체적으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나라 요시토모의 경우 작가 자신의 유년~청소년기에 걸쳐 느꼈던 경험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물론 대중의 문화를 흡수하고 있기에 서양식 관점에선 팝아트로 분류되나 엄밀히 말하면 저항을 담은 혼재된 양식, 즉 펑크스타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일본과 서양미술사를 아우르는 예술 전통에 대한 애착 아래 한적한 시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 청소년기부터 심취해온 저항과 자유를 일러스트, 회화, 조각, 드로잉 등 영역의 경계를 초월한 현대미술을 통해 폭 넓은 예술적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첫 개인전에서도 그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최근까지 지난 20년 간의 활동을 망라하는 이벤트를 펼쳐 보였다. 회화와 조각들은 물론,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드로잉과 사진 등 다양한 작업이 포함되었으며 한국전을 위해 특별히 '서울하우스'를 설치하는 등 작가적 역량을 과시하기도 했다.)

 

 잊혀졌던 옛 물건들을 서랍 속에서 조금씩 살짝이 꺼내어 보듯, 과거의 자신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위한 힌트를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던 그의 전시는 수십만 명의 관객몰이에 성공하며 책으로 접했던 나라요시토모의 작품세계를 확실히 인지시켰으며 그 인기를 각종 아트 상품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라요시토모의 그림에 부정적인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꼬마들의 독살스런 표정들과 주변 사물들이 되레 일본풍을 강화시켜 정서적으로 어필하는 데 한계가 있다거나 팬시상품으로 활용될 가치가 클 뿐 '미술작품(그것이 설사 '네오 팝'이라는 미술사적 카테고리에 들더라도-미술사에 있어 양식명은 중요하지 않다. 이는 그야말로 갖다 붙이기 나름일 뿐이다.)'으로서는 수용이 어렵다는 일련의 냉소적 반응이 따랐다. 하지만 반항적이고 때로는 사악해 보이기까지 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곧 우리 내면에 감춰진 두려움과 고독감, 반항심, 잔인함 등 복잡한 현대인의 감정의 선을 잘 읽어내고 있으며 이같은 양면성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포커페이스'로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속내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점은 특별하다.

 

아무튼, 마음은 늘 동심으로 돌아가길 원하면서도 본의든 아니든 오늘 하루조차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비운의 현대인들.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의 슬픈 자화상을 저 꼬마들의 괴팍한 표정에서 읊어 낼 수 있는 것 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것이 나라요시토모 작품세계를 지탱시키는 뿌리이다.  

 

 

 

 

 

 

출처 : Artist 엄 옥 경
글쓴이 : 스카이블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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