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미르 세베리노비치 말레비치
Kazimir Severinovich Malevich
1878.2.23~1935.5.15
우크라이나 키예프 출생
몬드리안, 칸딘스키와 함께 추상예술의 개척자
자호상(Self Portrait), 1933
말레비치는 창작의 마지막 단계로서 자신과 주변의 인물들을 실제 크기의 4분의 3정도로 담은 커다란 크기의 초상화를 제작했는데, 이 그림들에는 그의 최후의 관심사였던 불멸화에의 욕구가 표출되어 있다.
표현된 인물들은 얼굴이나 의상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전통적 초상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그것이 주는 전체적인 느낌은 비(非)사실적이며 초월적이다.
먼저 정적인 느낌을 주는 동결된 듯한 자세와 위를 향하여 약간 내뻗은 손의 제스쳐는 러시아 이콘에서 많이 쓰였던 정형화된 인물의 자세를 따른 것인데, 특히 위를 향해 올린 오른 손은 전통적으로 이콘에서 축복의 자세로 쓰여왔던 것을 감안할 때 그가 이 인물들에 신의 지위를 부여하고자 했음이 나타난다.
이들의 시선도 전과는 달리 정면을 향해 관람자를 바라보지 않고 옆을 향한 자세로 위쪽의 먼 곳을 응시함으로써 초월적 세계를 꿈꾸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고, 의상 또한 화려한 원색이 극적인 대비를이루면서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데, 그 디자인은 어떤 특정 범주로 분류하기 어려운 독특한 것들이다.
처음에는 후기인상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나중에 M.F.라리오노프 및 러시아의 전위파(前衛派)
시인들과 친교를 맺고, 쉬프레마티슴(Suprematism, 절대주의)을 주창하였다.
1911년 다이아의 잭’이라는 그룹에 참가하여 러시아의 입체파운동을 추진하였다.
1912년 파리 여행 후 페르낭 레제 풍(風)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발표하였으며,
그 이후로는 급속히 자기 방법을 발전시켜,
1912년의《흰 바탕에 검은 네모꼴》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어 원 ·십자 ·삼각형을 추가하고,
그러한 기본형태에 의한 추상예술을 이론화하여
쉬프레마티슴이라 이름 짓고, 1915년 V.V.마야코프스키와 함께 선언문을 작성하였다.
혁명 직후의 소비에트정부에 의해 모스크바의 국립응용미술학교 교수로 임명되었으나,
1921∼1922년의 미술정책의 반동적 전환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졌으며,
자유를 잃은 채 지냈다.
그 동안 1926년에는 독일에 가서 쉬프레마티슴 선언을 상세히 설명한
《비구상의 세계 Die gegenstandslose Welt》를 바우하우스를 통해 간행하였다.
이 밖의 작품에《흰색 위의 흰색 White on White》(1918) 등이 있다.
Reaper on Red Background, 1912-13
농부는 전신상으로 확대된 채 도끼나 긴 낫을 든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정면을 향하고 있어 신인간의 이미지가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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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viator, 1914
An Englishman in Moscow, 1914
Soldier of the First Division, 1914
Suprematist Composition, 1915
Suprematism - Self-Portrait in Two Dimensions, 1915
Supremus No. 56, 1916
Suprematism, 1916-17
Complex Presentiment - Half-Figure in a Yellow Shirt, 1928-32
Running Man, 1932-34
1. 러시아의 화가. 추상화의 절대주의 유파를 창시했다. 말레비치는 키예프 미술학교와 모스크바 미술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다.
2. 초기에는 인상파나 야수파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으나 1912년에 파리를 방문한 뒤로는 피카소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잭 오브 다이아몬드'라는 단체의 일원으로서, 러시아 입체파 운동을 이끌었다.
3. 1913년에 말레비치는 그가 절대주의라는 이름을 붙인 기하학 추상형식을 만들었다. 1919~21년에 그는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서 그림을 가르쳤으며, 죽을 때까지 레닌그라드에서 살았다.
4. 그는 1926년에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를 방문했을 때 바실리 칸딘스키를 만나, 〈비구상의 세계 Die gegenstandslose Welt〉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이론에 대한 책을 출판했다. 나중에 소련 정치가들이 현대 미술을 탄압하기 시작하자, 말레비치와 그의 미술은 파멸의 운명을 맞았다. 그는 세상에서 잊혀진 채 가난속에서 죽었다.
5. 말레비치는 추상적인 기하학적 요소로 이루어진 그림을 발표한 최초의 화가였다. 그는 미술에서 모든 관능과 묘사를 배제하고, 순수하며 지적인 구성 작품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의 유명한 〈흰색 위의 흰색 White on White〉(1918, 미국 뉴욕 시 현대미술관 소장)은 절대주의 이론에서 나온 논리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절대주의, Suprematisme(쉬프레마티즘)>
러시아의 화가 말레비치Kasimir Malevich(1878~1935)에 의해 시작된 기하학적 추상주의의 한 흐름. 원래는 입체주의의 미학에서 파생한 것이다. 말레비치는 1913년 가을에 <태양에 대한 승리>라는 미래파적인 오페라의 조형적인 연출(장식과 의상들) 작업을 하는 동안에 구상 작업을 포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약적인 진전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게 되며, 회화를 모방적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2년간의 힘든 작업을 필요로 한다. 1915년 6월 말레비치는 회화의 단면으로 나타낸 하얀 바탕의 작품 위에 하나의 검은 사각형을 그린다. 기하학적인 단순한 형상을 표현하는 것과는 달리 이 사각형은 자율적인 실재를 가지고 있으며 역동적인 무게와 함께 율동감을 지니고 있다.
그의 첫번째 시리즈 작품들은 이차원적 색채의 형상을 지닌 구상들로 순수한 색감들의 절대성을 강조한다. 이것들은 수많은 면들의 율동감을 보여준다. 회화 외의 대상 세계와의 관계를 거부하면서 말레비치는 이 미술을 '비객관적'이라 명명하며, 절대주의라는 순수한 색감들의 절대성에 대한 시스템 정의를 내린다.
단어를 통해 미래의 구원자를 신비적 능력의 소유자와 연결시킨다.
또한 이것은 특별한 의도로 분절됨으로써 다의성을 지니는데, 이 중 'КА'는 흘렙니코프가 쓴 시 제목이자 그의 다른 글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으로서, 그는 시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난 연대를 기반으로 비밀스러운 연관성을 찾아내는 신비적 능력의 소유자였다.
<복잡한 예감>, 1928
뒷배경의 인물이나 세부적 풍물이 사라지고 땅은 수평의 띠로 감축되며 하늘은 우주의 일부로서 광활함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로써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하늘을 향한 수직성이 강조된 인물들은 지상과 우주 사이에 위치한 중간적 존재로서 우주와의 합일의 소망을 강하게 드러낸다. 또한 얼굴에서 눈, 코, 입과 같은 세부는 모두 사라져 어떤 심리적이거나 일상적 내용도 제거됨으로써 초월성의 주제만이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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