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국내작가소개방

[스크랩] 전광영

영원한 울트라 2008. 2. 1. 09:20

세계적 한지 작가 전광영

 

 

 

작가 전광영 씨(62)의 경기도 판교 스튜디오 작업실에는 고서로 싼 작은 삼각형 뭉치들이 가득 담긴 포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 작은 수천개의 삼각형들은 밑그림이 그려진 화폭 위를 촘촘히 장식한다. 삼각형 속에 들어있는 건 가벼운 스티로폼에 불과하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오랫동안 마음에 쐐기처럼 박혀있던 무명의 설움을 꼭꼭 싸서 발현시킨 결정체이다.

세계적인 한지 작가 ‘전광영’을 키운 건 8할이 콤플렉스, 뚝심, 그리고 노력이었다.

한국 미술계를 양분했던 홍대 미대 출신에다 1960년대 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건만 13년 만에 귀국한 뒤 한국의 어느 화랑도 그를 대접해주지 않았다.

“고작 이러려고 아버지가 그토록 말렸는데도 그림을 그렸나 하는 회의가 들 정도였죠. 하지만 그래 해보자.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 정도로 꺾일까보냐 하는 오기가 났어요.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개인전을 했습니다. 내 돈 내고서 말이죠.”

강원도 홍천에서 건축업을 했던 부자 아버지는 자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한 아들이 ‘환쟁이’가 되자, 대학등록금을 한푼도 주지 않았고 부자간의 인연을 끊다시피했다. 하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고 ‘환쟁이 길’을 선택했다. 1969년 미국 필라델피아로 유학을 떠나 막노동까지 해가며 작가생활을 했다. 불법체류자로 이민국에 쫓기는 와중에 자살을 두번이나 시도할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나날들이었다. 귀국해서는 먹고 살기 위해서 미술학원까지 운영해야 했다.



1989년 오랫동안 추상화를 하던 그는 ‘이제 안되면 시장에서 수건장사나 해야겠다’는 배수진까지 치고서 부인과 함께 전국을 돌며 스스로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뭔가 마음을 끄는 곳이 있으면 수십번을 반복해 가서라도 그 근원을 파고 들었다. 온양민속박물관을 서른 번이 넘게 찾아갔고 제주도에선 똥통 앞에서 몇시간이고 서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한국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왜 이제껏 남의 것을 흉내냈던가 싶었다. 그러다가 퍼뜩 머리를 스친 것이 어릴 때 큰아버지의 한약방에서 본 천장에 매달린 약봉지들이었다. 고서들을 삼각형 모양으로 싸서 화폭에 촘촘히 채운 작품 ‘집합(Assemblage)’ 시리즈는 그렇게 탄생했다. 작가는 선인들의 손때 묻은 고서를 싸고 있으면 마치 그걸 읽던 옛 선비나 서당 학생, 오라버니 책을 어깨 너머로 훔쳐보던 댕기머리 소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더라고 했다.

“컬렉터의 부탁 때문에 할 수 없이 얼굴을 내민 박영덕 화랑 대표는 ‘어? 전작가 작품세계가 확 바뀌셨네요’하면서 즉시 개인전을 제안했어요. 그때 박영덕 화랑 대단했어요. 거기서 개인전을 열다니 …. 꿈꾸는 것 같았죠, 뭐.”

그렇게 나이 50에 첫 초대전을 열었고, 그후 LA 국제아트페어에서 최고의 화제가 됐다. 서양 미술평론가들은 ‘세포, 혹은 소립자를 연상시키는 개체들을 모아 화면을 이루는 동양적 방법과 군집을 이룬 개체들에서 느껴지는 삶의 유사성이 더해진 작품’이라며 극찬했다.

1997년 시카고 아트페어에 초대됐을 때만해도 아트페어엔 대가들만 나가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박영덕 화랑은 그와 함께 30~40대 젊은 작가들을 내보냈고, 이 시도는 그의 작품이 ‘솔드아웃’ 되면서 대성공을 기록했다.

올해만 해도 3월 세계 10대 갤러리에 꼽히는 애너리 주다 갤러리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고, 6월 네덜란드 비엔날레, 그리고 9월에는 싱가포르 정부 초청 전시회가 예정되어 있다. 또한 올해부터 사용되는 호주 고등학생용 미술교과서에도 그의 작품이 동양의 대표적 작가로 소개되고 있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세계무대에 데뷔한 지 겨우 10년 되었을 뿐인 걸요. 이젠 아트페어보다도 해외 유명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전시하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이제 ‘전광영 브랜드’의 가치는 아트페어를 통해 인정을 받았으니 더 명품화시키는 데 주력해야죠.”

50대에 인정받은 ‘미술계의 마라토너’ 전광영은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돈 것 같았다.

〈글 이무경·사진 권호욱기자 lmk@kyunghyang.com〉

◇작가 전광영은?

▲1944년 강원도 홍천생 ▲1968년 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1971년 필라델피아 미술대학원 회화과 졸업 ▲1995년 박영덕 화랑 개인전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전’ ▲2005 국제갤러리 개인전 ▲2006년 런던 아넬리 주다 갤러리 개인전, 싱가포르 테일러 프린트 인스티튜트 개인전 예정 ▲주요 소장처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이상 국내), 뉴욕 콜럼비아 법과대학, 뉴욕 록펠러재단, 호주 국립현대미술관(이상 해외)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회화 위주의 작업을 해오던 작가 전광영은 1995년 한지를 유화를 대신하는 매체로 도입하여 ‘집합’이라는 연작을 만들어 내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작가는 평면의 나무 프레임 안에 한지로 싼 수천 개의 삼각형 스티로폼을 한지로 꼬아 만든 끈으로 묶어 집결시킴으로써 회화적이면서도 부조(relief) 같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 작가의 최근작들은 각기 다른 크기와 다른 명암의 삼각형 쎌들이 집합되면서 사각 평면 안에서의 불규칙적 움직임을 이룸으로써 규칙적인 틀의 파괴를 표현하고 있다.

전광영 작품의 기본적 개념은 한국의 문화적 정서뿐만 아니라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한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적인 요소의 하나로 오래 전부터 대중의 일상생활에 많이 사용되었던 재료이다. 오래 전부터 한지는 서예나 책 등 문화적인 사용뿐 아니라 집안의 창문, 문, 벽지 및 물건 포장용 등 일상의 생활 재료로 이용되어 왔다. 한지의 내구성과 영구성은 이런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는데 있어 중요한 특질을 제공하며, 이러한 한지의 특수성은 이웃나라이면서 종이 제작의 창시 국가인 중국마저도 극찬할 정도이다. 이렇듯 한국을 대표하는 재료인 한지와 전광영의 관계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 의해 시작된다. 그는 어릴 적 한의사였던 큰아버지 댁을 자주 왕래하면서 삼각형 형태로 늘어져 천정에 매달려 있던 한지 약 봉투를 보게 된다. 한지 종이봉투에 얽힌 그의 향수 어린 기억이 오늘날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현대적인 스타일을 고루 갖춘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다.

전광영이 작품에 사용하는 재료나 작품의 기본적 개념은 매우 한국적이지만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표현 방식에서는 서양미술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1970년대를 미국에서 보내면서 접한, 당시 미국 미술계를 휩쓸었던 미술사조인 미니멀 아트 또는 개념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식물이나 차 등 자연적 요소에서 추출해낸 색조로 물들여진 한지 쎌들이 하나하나 나열되어 명암의 차이로 인해 배출되는 회화적인 면은 오히려 아주 단순하게 추상화되어 있다. 또 한지 단위들은 기본적인 삼각형 모양으로 배열되면서 부조 같은 성격을 드러낸다.
개념미술의 핵심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이디어와 개념의 구축에 있다고 할 때 전광영의 작품은 이러한 생각에 매우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완성된 작품 자체에서 보이는 외부적인 면 또한 보는 이에게 많은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지만, 그 내면에 내재된 작품에 대한 작가의 기본적인 아이디어와 개념인 ‘싸기’(wrapping)와 ‘집성’(assembling)은 작품에 한층 더 깊은 의미를 제공한다. 

신작들은 그 크기에서나 더욱 부각된 명암의 강약으로 이전보다 한층 역동성을 띠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작가의 열정과 야심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캔버스 안에 표현된 명암의 변화로 인해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면 마치 분화구 같기도 하고 멀리서 바라보면 은하계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전의 한지 작품들이 정서적인 고요함을 표현했다면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작품들은 보다 다이내믹한 운동감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또한 작가의 거대한 조각 작품 한 점이 소개된다. ‘심장’을 표현한 이 조각품을 통해 관객들은 한정된 사각이라는 프레임 안에 갇혀 있는 부조적 작품에서 나아가 한층 더 넓은 공간으로 침투하는 전광영의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다

 

 

 

 

 

 

 

 

 

 

 

 

출처 : Artist 엄 옥 경
글쓴이 : 스카이블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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