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의한 새로운 의제설정 모델의 적용
:의제파급(Agenda-Rippling)과 역의제설정(Reversed Agenda-Setting) 기능을 중심으로
김 성 태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교수)
이 영 환
(고려대학교 언론학과 석사과정)
인터넷에 의한 새로운 의제설정 모델의 적용
:의제파급(Agenda-Rippling)과 역의제설정(Reversed Agenda-Setting) 기능을 중심으로*
김성태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교수)
이영환 (고려대학교 언론학과 석사과정)
논문개요:
기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의 이론이나 모델들은 신문이나 텔레비전과 같은 매스미디어의 효과를 전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인터넷의 등장으로 기존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새로운 적용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본 논문은 기존의 미디어 의제설정 (Agenda Setting) 이론에 인터넷의 상호 작용성이라는 기술적 특징으로 인해 출현한 능동적 수용자들에 의한 공중의제 설정의 사례 연구를 통해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는 의제파급 (Agenda-Rippling)과 역의제설정 (Reversed Agenda-Setting) 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찾고자 한다. 이는 기존 이론에 대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나타난 기능의 추가를 통해 이론적 적용 범위를 높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 본 연구는 현재 진행중인 working paper이기에 논문으로서의 완성도를 갖추지 못하고 시론적인 논의 위주로 작성된 draft입니다.
1. 서론
의제 설정 이론 (Agenda Setting Theory)은 미디어와 여론 형성의 관계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효과 연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어지는 이론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미디어의 의제가 공중 의제와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요지로 하는 의제 설정 모델은 그 이론적 발전과 수정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수용자를 미디어의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로 인식하는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21세기 뉴미디어의 총아인 인터넷의 등장과 그 확산은 이러한 의제 설정 모델에서 상정했던 수용자관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2000년 이후 전세계에 유례없는 인터넷 인구의 급격한 확산을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 인터넷의 영향력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예를들면, 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두 여중생을 보도한 인터넷 독립 언론인 오마이뉴스의 영향력과 웹상에 올린 한 시민의 제안서가 추동한 촛불 시위의 규모는 한국 사회에서의 인터넷의 위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들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수용자라고 이름 붙여졌던 일반 시민들이 더 이상 전통적 미디어의 의제 설정에 종속되어 있는 객체가 아니라,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그 의제가 역으로 기존 미디어에 의하여 수용될 수 있도록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주체로서의 가능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예전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들이 그러했듯이 인터넷 역시 기존의 권력 집단에 의하여 전유될 것이라는 우려 역시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웹 공간은 인터넷이 태동했을 무렵의 이상인 ‘자유로운 정보 유통’으로부터 기존의 권력 집단인 대기업과 지배 엘리뜨 그룹에 의한 지배와 통제의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 (Hesmondhalgh, 2002). 또한, 거대 미디어들은 여전히 여론을 주도하는 힘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은 커뮤니케이션의 민주화를 위한 중요한 기제로서의 가능성을 여전히 갖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일반 시민의 의제 설정은 세 가지 경로를 통하여 가능하다. 첫째로, 일반 시민들이 블로그, 개인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온라인 토론장 등에서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직접적으로 공중과 연결되어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 둘째로, 이러한 활동을 오마이뉴스를 위시로 한 인터넷 뉴스 사이트가 보도하거나 시민들이 직접 시민 기자로서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으로, 시민 커뮤니케이터들의 활동을 기존 거대 미디어들이 보도함으로써 공중 의제를 설정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러면, 구체적인 사례들 속에서 실제로 인터넷이 매개되는 공중 의제 설정은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질까?
본 연구에서는 인터넷을 수단으로 하는 시민 커뮤니케이터의 의제 제안이 공중 의제화한 사례들을 추적하여, 의제화의 경로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를 규명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론적 고찰을 통해서, 인터넷 시대에 맞는 기존 미디어 의제 설정 모델의 발전과 적용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2. 의제설정이론과 인터넷
1) 매스 미디어 의제 설정 기능 이론의 전개와 능동적 수용자 이론의 등장
1972년 맥콤즈(M. McCombs)와 쇼(D. Shaw)에 의하여 처음으로 제기된 매스 미디어 의제 설정 이론의 아이디어는 이 모델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리프먼(W. Lippmann)의 1922년 저서인 “Public Opinion"의 서장인 ‘외부 세계와 우리들 머리 속의 상(The world outside and the pictures in our heads)’에서 제시된 바 있으며, 이와 비슷한 아이디어를 공유한 많은 학자들이 있어 왔다(Park, 1925; Lazarsfeld, Berelson & McPhee, 1954; Lipset, Lazarsfeld, Barton & Linz, 1954; Long, 1958; Cohen, 1963).
매스 미디어 의제 설정 기능 이론을 명시적으로 주창한 맥콤즈와 쇼에 따르면, 매스 미디어는 수용자의 태도의 방향 또는 강도에 대하여는 매우 미미한 영향을 가지는 반면, 각각의 정치 캠페인의 의제를 설정하여 수용자로 하여금 정치적 이슈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데 있어서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McCombs & Shaw, 1972, pp 177). 이를 통하여 매스 미디어가 수용자의 태도와 행동에 즉각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던 20세기 초엽의 탄환 이론에서의 극단적으로 수동적인 수용자 상과 구별되는 상대적으로 덜 수동적인 수용자 상을 의제 설정 이론이 상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쇼(Shaw, 1979)는 자신들의 이론이 능동적인 수용자 상을 주창한 대표적인 연구 경향인 이용과 충족 접근으로부터 영향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 고백이 미디어 의제 설정 이론이 효과 이론이냐 기능 이론이냐 하는 이론적 모호성을 증폭시킨 측면도 있지만, 필자는 이를 효과 이론의 역사에서의 수용자 상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암시로 인식하고자 한다.
맥콤즈는 미디어 의제와 공중 의제간의 인과 관계의 단순한 모델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통하여 보다 폭넓은 의제 설정 기능 이론(broader theory of agenda-setting)을 제시했다(McCombs, 1981). 쇼와 맥콤즈는 이전에도 의제 설정 과정에 대한 새로운 모형을 제시하였는데(Shaw & McCombs, 1977), 이 모형에서 중요한 점은 수용자의 속성을 중요 변인 중 하나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특히, 위버(Weaver, 1977)의 정향적 욕구(need for orientation) 개념을 수용하여, 주어진 이슈에 대한 수용자들의 관심과 지식은 그 이슈에 대한 정향적 욕구를 높게 만들어서 결과적으로 미디어 보도에 대한 보다 많은 노출을 촉진시킨다고 하였다. 즉, 수용자들의 이슈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의제 설정의 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는 쇼와 그의 동료들이 의제융합 (agenda melding) 개념을 제시하기는 했는데, 이는 좀 더 능동적인 수용자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 모델에 따르면, 인간은 특정집단에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해 그 집단의 의제를 학습하고 거기에 동화되는 지속적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특히 의제융합의 진행과정에서 의제를 설정하는 주체의 범주에 매스 미디어 뿐만 아니라 특정 집단이나 개인도 포함시킴으로써 의제 설정 이론의 진화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상호작용성을 전제로 하는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은 의제 융합 모델에서 새로운 미디어의 적용을 설명할 수 있고, 또한 본 연구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의제파급 (agenda rippling)이나 역의제설정 (reversed agenda setting)의 새로운 기능적 모델은서 기존 의제 설정 이론의 적용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간추리면, 탄환 이론으로부터 초기의 매스 미디어 의제 설정 기능 이론과 폭넓은 의제 설정 기능 이론으로의 전개는 극단적인 수동적 수용자로부터 비교적 ‘능동적’인 성격의 수용자로의 변화를 수반하였다. 그러나, 뉴미디어의 등장 이전까지, 아직 의제 설정 기능 이론에서 수용자는 수동적 위치로부터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
물론 효과 연구의 전통과 구별되는 수용자 중심 모델은 1960년대 중반 이후 커뮤니케이션학에서 중요한 흐름으로서 존재하여 왔다. 특히, 이용과 충족 접근과 수용자 중심의 문화 연구가 대표적인 수용자 중심 모델이다. 이용과 충족 접근은 수용자들의 매스 미디어 이용에 초점을 둔 ‘수용자 중심의 모형’으로서 “사람들이 미디어를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 하는 질문의 연구방향이다. 문화연구의 수용자 연구는 미디어에 의하여 부호화(encode)된 메시지가 다양한 사회계급적 기반의 수용자들에 의하여 다의적으로 해독(decode)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대단히 능동적인 수용자상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접근에서는 공히 일반 시민들이 메시지를 생산하는 커뮤니케이터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즉, 두 모델 모두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의 일방향성은 여전히 전제되어 있었다는 한계를 가진다.
2) 인터넷의 의제 설정 기능 연구
이론의 주창자인 맥콤즈와 쇼 이후, 매스 미디어 의제 설정 기능 이론은 주류 효과 이론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전통적 미디어의 의제 설정 기능에 대한 수많은 실증적 연구가 이루어졌다. 반면,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 미디어의 의제 설정 기능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들 역시 최근 들어 진행되어 왔다(구교태, 2002; 김학수・오연호, 2003; 윤태일・심재철, 2003). 최근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인터넷 연구들에 대한 메타분석에서도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의제설정 효과에 관한 실증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음이 나타났다 (Kim & Weaver, 2002, 우형진, 2005).
인터넷의 의제 설정 기능 연구는 기존의 전통적 미디어 의제 설정 기능 연구와 몇 가지 점에서 차이를 가진다. 이러한 차이는 인터넷이 기존 미디어와 경쟁하는 대안적 미디어라는 점, 기존 미디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콘텐츠 용량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인터넷 미디어의 기술적 특징으로 말미암은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으로부터 기인한다.
기존의 의제 설정 연구가 미디어 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반적인 미디어를 상정하는 것에 대한 반론은 이미 있어 왔다. 인터넷이 중요한 미디어로 등장하기 전, 여러 미디어 중에서도 의제 설정의 리더쉽을 갖는 미디어가 있다는 미디어간 의제 설정 (inter-media agenda setting) 기능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최근에는, 인터넷이 텔레비전이나 신문같은 전통적 미디어의 의제 설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한 사례에서 입증된 바 있다(구교태, 2002). 구교태는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웹사이트 캠페인이 기존 뉴스 미디어의 캠페인 의제와 공중의 의제를 설정하는 데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음을 경험적으로 입증했다. 이는 전통적 미디어의 여전한 강세 속에서도 대안 미디어로서의 인터넷이 공중 의제 설정에 관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전통적 미디어의 의제 설정 연구의 일반적 경향에 비해, 인터넷 미디어의 의제 설정 기능 연구들은 대체로 미디어 이용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보다 중요한 변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기존 미디어의 공간적 제약과 구별되는 사이버 공간의 방대함과 다양함으로 말미암아 웹사이트에 대한 노출이 인터넷 미디어 의제 설정에 있어서 중요한 변인으로 등장했다(윤태일・심재철, 2003). 연구자는 이것이 미디어 의제를 측정하기 위한 인터넷 콘텐츠 분석이 기존 미디어의 내용 분석과 같은 방법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방법론적인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본다. 인터넷 미디어의 점증하는 영향력의 근원은 특정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이용자 집단의 역량에 있다는 연구 결과 (박선희・주정민, 2004)는 미디어 파워와 피플 파워의 긴밀한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 신문의 의제 수립에 있어서 일반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 행동이 중요한 요인이라는 연구 결과는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초점이 미디어가 시민에 끼치는 영향으로부터 시민이 미디어에 끼치는 영향으로 옮겨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김학수・오연호, 2003). 반면, 인터넷 이용자의 적극적인 참여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뉴스의 생산에 있어서 이용자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선희(2002)는 《오마이뉴스》사례연구에서, 인터넷 이용자의 뉴스 생산은 양적으로 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런트 페이지에 오른 기사는 제한되며, 특히 톱기사의 비중이 낮음을 밝혀냄으로써, 뉴스 생산 과정에서 저널리스트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비해, 그리고 전통적 미디어의 경우와 비교하여 현대 인터넷 미디어 의제 설정에 있어서 일반 시민의 역할이 현저히 증대하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상의 논의들을 보충하기 위해서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가능토록 한 인터넷의 기술적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인터넷의 기술적 특성으로서의 상호작용성(Interactivity)
대표적인 뉴미디어 기술인 인터넷 테크놀로지는 과거 전제되었던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일방향성을 수정하도록 강제하는 기술적 가능성을 제공한다. 즉, 뉴미디어 테크놀로지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의 일반 시민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 지반이다.
이러한 변화에 있어서 핵심적인 개념은 뉴미디어의 상호작용성이다. 대인간 커뮤니케이션의 근본적인 특징이라고 간주되어온 상호작용성은 이제 인터넷을 비롯한 뉴미디어의 중요한 특징으로 인식되고 있다(Rafaeli, 1988; Morris & Ogan, 1996). 매체 이용자가 콘텐츠를 어떤 방법으로든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다소 폭넓게 정의될 수 있는 상호작용성(송민정, 2002, 117쪽)은 인터넷의 등장 이전에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시대에는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테크놀로지는 상향(Upstream) 및 하향(Downstream) 전송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공급자와 이용자 간의 기술적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였다.
여러 학자들은 상호작용성 개념을 보다 세분하였는데, 그 분류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다(최영・김춘식・G. A. Barnett, 2004). 첫째, 상호작용성의 수준에 따른 구분을 들 수 있다. 윌리암스, 라이스, 그리고 로저스(Williams, Rice, & Rogers, 1989)는 상호작용을 낮은 수준의 상호작용, 중간 수준의 상호작용, 마지막으로 높은 수준의 상호작용으로 분류했다. 라피엘과 서드웍(Rafaeli & Sudweeks, 1997) 역시 유사하게 비상호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유사 상호적인 반응 커뮤니케이션, 완전한 상호작용적 커뮤니케이션으로 분류했다. 두 번째 분류 방식은 사람들 사이에서의 상호작용, 기술에 의한 상호작용, 사람과 기술 양쪽을 포함하는 상호작용으로 나누는 것이다(Lee, 2000).
연구자가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상호작용적 커뮤니케이션은 가장 높은 수준의 상호작용 또는 완전한 상호작용적 커뮤니케이션이며, 사람과 기술 양쪽을 모두 포함하는 상호작용이다. 완전한 상호작용적 커뮤니케이션은 그보다 낮은 수준의 상호작용적 커뮤니케이션인 반응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히 한편에서 다른 한편에 대해 반응하는 형식인데 반하여, 후행 메시지가 선행 메시지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선행 메시지들 간의 관계성까지 고려되는 것이다(Rafaeli & Sudweeks, 1997; 최영・김춘식・G. A. Barnett, 2004에서 재인용). 이 모델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접속이 가능한 인터넷 매체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최영・김병철, 2000).
사람과 기술 양쪽을 모두 포함하는 상호작용이란, 메체 이용자의 다양한 선택, 매체 이용자에 대한 시스템의 반응 정도, 매체 이용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시스템에 대하여 정보를 추가할 수 있는 정도, 개인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 등 여섯 가지 차원에서 분석된다(Heeter, 1989; 최영・김춘식・G. A. Barnett, 2004에서 재인용). 상호작용성을 단순히 기술적 차원에서만 분석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기술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상호작용의 기제가 항상 효율적으로 이용되고 있지는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최영・김병철, 2000). 즉, 상호작용적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기술적 기제의 제공과 함께 상호작용적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할 시민 주체들의 형성이 완전한 상호작용적 커뮤니케이션의 전제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는 시민 저널리즘의 가능성과 그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4) 게이트키핑 구조와 시민 저널리즘의 가능성
화이트(White, 1950)는 언론인들이 미디어 메시지의 게이트키퍼로 작용한다는, 즉 언론인들이 하루하루의 사건 중에서 ‘뉴스’가 될 만한 것을 선택한다는 것을 참여 관찰을 통해 입증하였다. 게이트키핑은 결국 누가 미디어 의제를 결정하는가의 문제인데, 리즈와 슈메이커(Reese & Shoemaker, 1991)는 게이트키핑 모델을 언론인, 미디어 관행, 조직, 외적 영향, 이데올로기 등의 위계 구조로 정교화 하였다.
기존의 시민 저널리즘 논의들은 인터넷 언론에서 네티즌들이 자유롭게 상호작용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제들에 대하여는 활발하였지만(최영, 2002; 최영・김춘식・Barnett, 2004),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참여하려는 시민 주체에 대하여는 많은 논의를 할애하지 않았다. 문화 연구 진영의 헤게모니 이론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 하의 권력 투쟁은 정치 사회의 억압적 통치와 그에 대한 저항이이면서 동시에, 시민 사회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이다(Gramsci, 1971). 정치 사회와 시민 사회의 이분된 구조에서 언론계와 여론 시장은 시민 사회의 영역에 가장 중요한 영역 중 하나에 속한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 하에서 사회 구조의 변동은 여론 시장에서의 지배 블록과 피지배 블록의 쟁탈전 여하에 많은 부분이 달려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개혁적 시민 사회의 역량은 2000년 ‘총선연대’로 집결된 시민 사회 단체의 낙선 운동이 경합지의 다수 후보들을 낙선시킴으로써 증명된 바 있다.
리즈와 슈메이커의 모델에서 드러나는 것은 뉴스의 선택의 각 게이트키핑 과정에서 사회의 지배 집단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일반 시민과 진보적 집단의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미디어 관행 수준에서 언론의 주요 정보원이 정부나 기업이라는 점, 조직의 수준에서 미디어 기업의 소유자가 조직에 대한 일정한 수준의 통제력을 갖는다는 점, 미디어 외적 수준에서는 기업 집단과 대체로 일치하는 광고주와 정부가 영향력을 가지며, 이데올로기 수준에서는 그 이데올로기가 지배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반면, 진보적 집단의 영향력은 미디어 외적인 압력 단체로서의 영향력 정도에 그친다. 일반 수용자의 경우, 단지 광고주가 원하는 목표 수용자라는 측면에서만 고려될 뿐이다. 결국, 전통적 미디어에서 지배적인 의제 설정 그룹은 정부, 정치권, 기업 등의 지배 집단이며, 개혁적 시민 사회 단체와 일반 시민들은 의제 설정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그러나, 앞서 고찰했던 인터넷의 상호작용적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기술은 구조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이들 집단을 의제 설정에 있어서 영향력을 갖는 집단으로 격상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였다. 단, 기술은 단지 가능성을 제공할 뿐, 실제로 일반 시민들이 커뮤니케이션의 주체로서 역할하는 것은 시민들의 정치적 역량에 달려 있다. 2000년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NGO는 개혁적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시민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3. 의제파급 (Agenda-Rippling)과 역의제설정 (Reversed Agenda Setting)
: 사례를 중심으로
사례 1) 2000년 386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광주 술판 사건’
1998년 인터넷 보급률이 6.7%에 불과했던 한국은 1999년에는 23.4%의 보급률을, 그리고 2000년에는 40.3%로 아시아 최고의 보급률을 기록했다. 높아진 보급률에 따라 인터넷의 영향력도 새삼 느낄 수 있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을 수 있는 사건이 사회의 중요 이슈로 부각된 것이다. 2000년 총선 이후, 386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광주 민주화 운동 20주년 기념 전야제 후 술판을 벌였다는 속칭 ‘5.18 광주술판’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정치인들이 5월 17일 전야제 후 고급 단란 주점에서 여종원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등 흐트러진 술자리를 벌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5월 24일 오전, 그 술자리에 잠시 합석했던 임수경씨가 이 문제에 대한 비판글을 386세대 모임 ‘한국의 미래 제3의 힘’이라는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파문을 고려하여 그녀는 이 글을 몇 시간만에 삭제하였으나, 같은 날 그 글을 읽은 한 네티즌이 글을 옮겨 동아일보 인터넷 신문인 동아닷컴 독자토론 코너에 글을 게재하였다. 네티즌들의 비판 여론은 곧바로 인터넷망을 통해 확산되었다. 관련된 정치인들의 홈페이지에는 비판글이 쇄도했고, 동아닷컴 게시판과 당시 활발했던 PC통신 토론방도 이 이슈로 후끈 달아올랐다.
애초에 이는 하나의 단발적 사건에 불과하기 때문에 주요 공중 의제까지 될 수는 없었지만, 큰 파문을 일으켰던 것은 사실이다. 이 사건은 사이버 공간이 갖는 파괴력을 보여주는 예이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네티즌의 역량은 의제 설정에 있어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예측되었고, 실제로 그것은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에 대한 항의와 SOFA 개정을 촉구하는 촛불 시위에서 실현되었다.
사례 2) 2002년 SOFA 개정 촉구 촛불 시위
2002년 12월 14일 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인 KBS는 ‘여중생 추모 대규모 촛불 시위’라는 기사를 9시 뉴스 톱기사로 올렸고, 이어진 4개의 기사가 모두 촛불 시위 또는 미국 대통령 부시의 여중생 사망 문제 사과 등을 다루는 기사였다. 당시가 대선을 불과 며칠 앞두지 않은 상황이었음을 고려한다면, 가히 촛불 시위와 SAFA 개정 문제가 당시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라는 것을 거대 매체 KBS가 인정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대선 토론회에서 SOFA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보도되고(12월 3일 KBS 9시 뉴스 톱기사- TV토론, SOFA 등 대미-대북 정책, 12월 4일 16번째 기사- 최대변수 “대미관계”),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당선자가 SOFA 개선 또는 촛불 시위에 관한 발언을 하였으며, 언론은 이를 중요한 뉴스로 다루었다(12월 9일 9시 뉴스 톱기사-김대통령, 소파개선 미 의회 협조 당부, 12월 3일 9시 뉴스 10번째 기사-김대통령 ‘SOFA 개선 방안 마련하라’, 12월 10일 10번째 기사-김대통령, ‘SOFA 납득할만큼 개선해야’, 12월 28일 톱기사-노 당선자, 촛불 시위 자제 당부). 급기야는,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과 SOFA 개정을 촉구하는 촛불 시위는 2002년 한국 10대 뉴스 중 다섯 번째로 선정되기까지 하였다.
이 의제가 공중 의제로 부각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인터넷의 역할을 보기 위하여, 2002년 11월 18일부터 12월 14일까지 벌이진 일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KBS 9시 뉴스가 이 사건을 얼마나 보도했는지를 기준으로 이 이슈의 의제화 정도를 가늠해 보도록 하겠다.
<표 1> KBS 9시 뉴스에서의 관련 이슈 보도
날 짜 |
기사 순서 |
기사 제목 |
2002. 11. 18 |
25 |
장갑차 사건 미군 재판 첫 공개 |
2002. 11. 19 |
- |
- |
2002. 11. 20 |
26 |
여중생 장갑차 사건 관제병 무죄 판결 |
2002. 11. 21 |
15 |
장갑차 운전병 첫 공판, 대책위 거센 반발 |
2002. 11. 22 |
16 |
미 운전병 공판, 시민단체 반발 가열 |
ʺ |
17 |
‘SOFA 개정해야’ |
2002. 11. 23 (토) |
16 |
전국 곳곳서 미군 무죄 평결 규탄시위 |
2002. 11. 24 |
- |
- |
2002. 11. 25 |
18 |
미군 무죄 판결 항의 격렬시위 |
2002. 11. 26 |
9 |
대학생 등 50명, 미군 영내 진입 시위 |
ʺ |
10 |
주한 미군 사령관, ‘여중생 재판 공정했다’ |
ʺ |
11 |
김대통령, ‘폭력 시위 엄정 대처’ |
2002. 11. 27 |
10 |
부시 미 대통령, 여중생 희생 유감 표명 |
ʺ |
11 |
미군 2명 출국, 곳곳에 항의시위 |
ʺ |
12 |
미군 운전병, ‘지휘관 책임’ 주장 |
2002. 11. 28 |
단신 |
미군부대 영내시위 대학생 영장기각 |
2002. 11. 29 |
- |
- |
2002. 11. 30 (토) |
9 |
‘미군 무죄평경’ 항의집회 잇따라 |
ʺ |
10 |
SOFA 무엇이 문제인가 |
2002. 12. 01 |
11 |
미군 무죄 평결 항의 시위 잇따라 |
2002. 12. 02 |
11 |
여야의원 SOFA재개정 국회결의 추진 |
ʺ |
12 |
방미 투쟁단 출국 |
2002. 12. 03 |
1 |
TV토론, SOFA 등 대미-대북 정책( |
ʺ |
10 |
김대통령 ‘SOFA 개선 방안 마련하라’ |
ʺ |
11 |
미군범죄 초동수사 참여 양해각서 추진 |
ʺ |
20 |
미군부대 또 기름유출 의혹 |
2002. 12. 04 |
16 |
최대변수- “대미관계” |
ʺ |
20 |
방미투쟁단 유엔본부 앞 항의시위 |
ʺ |
21 |
미군범죄 초동단계부터 수사참여 |
ʺ |
22 |
미-일 성폭행 미군 체포장 갈등 |
2002. 12. 05 |
20 |
전국 곳곳 여중생 추모 항의 시위 |
2002. 12. 06 |
6 |
한,미, SOFA 운영 개선 합의 |
ʺ |
7 |
방미투쟁단, 백악관 앞 시위 |
ʺ |
8 |
김대통령 ‘극단적 반미 안돼’ |
2002. 12. 07 (토) |
1 |
SOFA 개정 한 목소리 |
ʺ |
8 |
미군 재판 규탄, 전국서 촛불시위 |
ʺ |
9 |
백악관에 항의서한 전달 무산 |
ʺ |
10 |
반미 확산 한,미 관계 냉각 |
2002. 12. 08 |
17 |
방미 투쟁단 격렬시위, 미 경찰과 충돌 |
ʺ |
18 |
미군 무죄평결, 휴일에도 항의집회 |
ʺ |
19 |
반미감정 원인과 대책 |
2002. 12. 09 |
1 |
김대통령, 소파개선 미 의회 협조 당부 |
ʺ |
2 |
정치권 반미 기류 제동, 선거이용 경계 |
ʺ |
3 |
미군 무죄판결 항의 시위 이어져 |
ʺ |
4 |
반미감정은 미국의 고압적 태도 때문’ |
ʺ |
단신 |
용산 기름 오염 기준치 8배 |
2002. 12. 10 |
10 |
김대통령, ‘SOFA 납득할만큼 개선해야’ |
ʺ |
11 |
SOFA 개정 요구 시위 확산 |
ʺ |
12 |
방미투쟁단, LA서 촛불시위 |
ʺ |
13 |
WP, ‘한국 뒤덮은 반미 분노’ |
2002. 12. 11 |
21 |
한미, SOFA개선 특별팀 구성 합의 |
ʺ |
22 |
교통사고 미군 하사 징역 8월 선고 |
ʺ |
23 |
미군 차량도 보험 가입해야 |
ʺ |
24 |
SOFA 개정 요구시위 |
2002. 12. 12 |
19 |
SOFA 운영 개선에 한,미 의견 접근 |
ʺ |
20 |
SOFA 개정 촉구 집회 이어져 |
2002. 12. 13 |
17 |
SOFA 개정 요구 집회 이어져 |
ʺ |
18 |
정부, ‘여중생 사망’ 평화적 추모 당부 |
2002. 12. 14 (토) |
1 |
여중생 추모 대규모 촛불 시위 |
ʺ |
2 |
월드컵 이후 최대인파 소파개정 촉구 |
ʺ |
3 |
부시, 여중생 사망 사과, 북핵 평화 해결 |
ʺ |
4 |
부시 사과 배경, 한미 공조 걸림돌 판단 |
ʺ |
5 |
미국을 움직인 시민의 힘 |
2002. 12. 15 |
10 |
촛불시위, 성숙한 시민의식 세계에 알렸다 |
ʺ |
20 |
술취한 미군 3명, 택시 승객 폭행 |
2002. 12. 16 |
- |
- |
2002. 12. 17 |
- |
- |
2002. 12. 18 |
- |
* 대통령 선거일 |
2002. 12. 19 |
- |
- |
2002. 12. 20 |
- |
- |
2002. 12. 21 (토) |
15 |
전국서 촛불 시위, 인간띠 잇기 |
2002. 12. 22 |
- |
- |
2002. 12. 23 |
19 |
SOFA 형사재판권 운영합의 |
2002. 12. 24 |
8 |
광화문서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 |
2002. 12. 25 |
22 |
2002년 시민 혁명의 원년 |
ʺ |
23 |
미, 한국의 변화에 귀기울여야 |
2002. 12. 26 |
- |
- |
2002. 12. 27 |
- |
- |
2002. 12. 28 (토) |
1 |
노 당선자, 촛불 시위 자제 당부 |
ʺ |
2 |
여중생 추모 촛불 집히 열려 |
2002. 12. 29 |
- |
- |
2002. 12. 30 |
22 |
촛불집회 한 달, ‘반미 그만’ 여론 확산 |
2002. 12. 31 |
15 |
국내외서 여중생 추모 촛불 집회 |
원래 이 사건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중 6월 13일 일어났으나, 월드컵 뉴스와 6.13 지방 선거 보도에 밀려 주요 언론 매체에 의하여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사안이었다. KBS 9시 뉴스 역시 이를 6월 13일 단신으로 보도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후에 일부 시민 사회 단체와 학생 단체에 의한 항의 시위가 일어나거나 관련 재판이 일어난 날에 한하여 이따금 언급되었을 따름이었다. 한동안 보도되지 않던 이 이슈에 대해서, 11월 말경 장갑차 사건 미군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이 보도되고, 무죄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26일 이전까지는 사회 기사로 한 두 꼭지가 15번째 이후 기사로 보도되는 정도였다.
11월 27일, 앙마라는 아이디의 한 네티즌이 인터넷 한겨레 자유 토론방에 11월 30일 광화문앞 촛불 시위를 제안하는 글을 올렸고, 단 하루 만에 그 글은 ‘퍼나르기’를 통해 퍼졌으며, 온라인 세계에서 하나의 화제로 떠올랐다. 그리고, 유력 인터넷 언론인 오마이뉴스의 한 시민 기자가 “네티즌, 광화문의 촛불 시위를 제안하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올리면서(후일 이 시민 기자가 촛불 시위를 제안한 네티즌과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조작 논란이 일어났지만, 이는 이 연구에서 중요한 사안은 아니다.), ‘퍼나르기’는 정점에 달했고, 마침내 11월 30일 기존의 시위대와 촛불 시위가 광화문에서 합류하며, 첫 촛불 시위가 시작되었다. 첫 촛불 시위 보도에 있어서 가장 적극적이었던 언론은 오마이뉴스였다. 오마이뉴스는 이 날 촛불 시위 전과정을 10신에 걸쳐 톱화면에서 리포팅하면서 촛불 시위를 개혁적 네티즌들에게 알렸다.
이후, 촛불 시위는 매일 진행되었지만, 대규모 집회는 매주 토요일로 예정되었다. 이후 한미 관계에 대한 이슈는 대선에서의 중요 이슈로 부각되었고, 정치권과 미국 정부, 해외 언론도 촛불 시위를 예의주시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최대 규모의 12월 14일 촛불 시위는 KBS 9시 뉴스 톱뉴스로 올랐고, 미국 대통령 부시의 사과마저 끌어내면서, 대선과 맞물려 2002년 연말 최대 이슈로 부각되었다.
이 과정의 중요한 특징은 한 평범한 네티즌의 온라인상의 글이 여중생 사망과 SOFA 개정 문제가 공중 의제화되는 과정에서 강한 촉매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그 글이 삽시간에 온라인상에서 퍼지는 과정은 인터넷의 속도와 상호작용성에 바탕한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기존 미디어 의제 설정 기능 이론에서 미디어 의제가 공중 의제화되는지, 공중 의제를 미디어가 반영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촛불 시위와 SOFA 개정 문제가 주요 의제화되는 과정이 드러내는 점은 주요 공중 의제가 아니었던 이 이슈가 인터넷을 촉매로 공중 의제화될 가능성을 높이고, 그것을 거대 미디어가 반영하면서, 비로소 공중 의제화 과정이 완성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사례 3) 친일인명사전 모금
2003년 12월 국회에서 친일 인명 사전 편찬 관련 예산 5억 원이 전액 삼각되었다. 친일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이 국회에서 무산된 것과 관련하여 이 소식은 개혁적 성향의 국민들의 실망을 자아낸 소식이었다. 한 네티즌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1월 7일자 정운현 칼럼 ‘다 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라는 기사 아래 ‘<친일인명사전> 발간 비용을 모읍시다’라는 독자 의견을 냈고, 다음 날인 1월 8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 공동의 국민모금 운동 <친일인명사전 발간, 네티즌 힘으로!>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4일 후 12일 오전에 모금액은 1억 원을 넘어섰으며, 14일 2억 원, 15일 3억 원을 돌파하였다. 관련 정부부처인 행정자치부는 이 모금행위가 불법이라며 모금 중단을 민족문제연구소에 통보하였다가 오히려 여론의 된서리를 맞고, 4시간 만에 통보를 취소하였다. 마침내, 19일 오전 캠페인 열 하루만인 19일 오전 2만 2천 500여명이 참여하고 모금액은 5억 원을 넘어섰다. 법적으로는 불법이었던 이 모금 운동은 국무 회의에서 합법화되고, 마침내 모금 운동은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당초 민족문제연구소가 모금액 5억 원 달성을 8월 15일로 잡았던 점을 고려할 때 놀라운 속도의 운동이 아닐 수 없었다.
오마이뉴스는 모금 상황을 십일일동안 톱화면에서 생중계하며 모금액의 급속한 증가를 이끌었다. KBS 9시 뉴스는 1월 13일 ‘친일 인명사전 모금 1억 원 돌파’, 15일 ‘친일 인명사전 모금에 행자부 브레이크’, 19일 ‘친일 인명 사전 모금 5억 돌파’ 등의 기사로 상황을 비중있게 다루었다. 이 사례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촛불 시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의제화의 첫 단계에서 평범한 시민 커뮤니케이터가 역할했다는 점이며, 오마이뉴스 자신이 진행하는 캠페인인 만큼 어느 미디어보다도 적극적으로 이 사안을 다루었고, 결과적으로 의제화에 있어서 중요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이다.
4) 사례 4:여당 의원 독립군 조상 사칭 의혹 사건
열린 우리당 김희선 의원은 자신의 작은 할아버지가 광복군 지대장 이라면 독립군의 자손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토대로 정치 경력을 쌓아온 정치인이다. 그러나 네티즌과 전통언론의 추적 취재 결과, 김 의원이 독립군의 자손이 아니며 오히려 그의 부친이 만주국 경찰이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 의원 측은 이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네티즌과 오프라인 언론이 뉴스의 발굴 보도에 있어서 각자의 취재력을 이용해 미디어 의제를 공중 의제로 함께 키워나간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수상해”라는 ID를 쓰는 익명의 네티즌은 2004년 7월 22일 인터넷 사이트의 토론방에 “김희선은 과연 독립군의 후손인가”라는 글을 게재했다. 그는 이글에서 첫째, 동아일보 인물정보와 야휴 사전 검색 결과 김 의원과 김 의원이 작은 할아버지라고 주장하는 김학규의 본관이 다르다. 둘째, 안동김씨 출신이 인터넷에 올린 안동김씨의 항렬 내력 조회 결과 김 의원의 할아버지 김성범과 작은 할아버지 김학규의 항렬이 다르다라는 두가지 사실을 근거로 김 의원의 조상 사칭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네티즌들은 김 의원은 김성범과 김학규가 친형제라고 주장하는데 둘의 출생지가 다르며, 김학규의 별세 당시 거주지와 김 의원이 학창시정을 보낸 곳의 주소지가 다르다며 새로운 근거를 추가하면서 의제를 키워갔다. 이후 “월간조선”은 10월호에서 현지 취재를 통해 김 의원의 부친이 일제하 만주국 경찰이었다고 보도했으며, 미국 교포인 한 네티즌은 김 장군의 딸과 전화통화를 통해 이를 확인하는 글을 인터넷에 게재했다. 그 후 “월간조선”은 2005년 6월호에서 김 의원이 부친의 친일행적을 확인하고도 은폐했다고 추가 보도함으로써 김 의원 사퇴 압력을 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사례는 오프라인 신문 방송의 경우 취재 인력의 제한으로 모든 유력 인사들에 대한 과거사 검증작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온라인상에서 수많은 네티즌, 특히 의제 확산자로서, 들이 알고 있는 작은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검증해가며 집단으로 오프라인 매체를 능가하는 정보력과 취재력을 보여주며 공중의제화한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4. 인터넷 시대 의제설정에 관한 모델
이상의 사례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중요 의제들이 처음에는 단 한 명의 네티즌의 발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사례 1의 임수경씨를 제외한 경우에서, 그 한 명의 네티즌은 무명의 시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제안은 사이버 공간에서 엄청난 속도로 전파되었으며, 온라인 공간이나 후에 오프라인 공중에게도 중요 이슈로 부각되었다. 초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그 사안을 다루는 매체는 오마이뉴스같은 인터넷 언론이며, 그 단계에서 이미 온라인 세계에서는 그 사안이 주요 의제화되고 있는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전통 미디어는 상대적으로 늦게 그 이슈들을 보도하였는데, 이슈의 비중에 따라 특정 의제는 오프라인 세계에서도 공적 의제화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모델화하면, <그림2>와 같다.
최초의 발화자는 한 명의 평범한 시민 커뮤니케이터이다. 그들의 메시지 자체를 직접 접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메시지를 접한 초기 확산자 그룹은 이 메시지를 퍼나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례 2에서 한겨레 토론게시판의 글을 복사하여 온라인 공간 이 곳 저 곳으로 퍼나른 네티즌들과 사례 3에서 오마이뉴스 댓글을 복사하여 퍼나른 네티즌들이다. 이를 통해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 이슈들이 확산되고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그것을 인터넷 언론이 중요하게 보도함으로써 이 이슈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중요 의제화한다. 즉, 인터넷 언론의 의제가 보다 많은 네티즌들의 의제가 되는 과정이다. 물론, 신문과 방송이라는 전통적 미디어가 온라인 공간의 중요 이슈를 보도하는 경우도 많지만, 초기에 주요 의제로서 보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이 단계를 ‘온라인 공간에서의 의제 설정’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본 연구자는 이 새로운 의제 확산 과정을 “인터넷을 통한 의제파급” (internet-mediated agenda rippling) 이라고 명명했다.
<그림 2> 인터넷이 매개된 공중 의제 설정 모델
(Internet-Mediated Agenda Setting Functions)
*모델에서 실선(→)은 직접적인 의제설정을 의미하고, 점선(⇢)은 간접적인 영향에 의한 설정을 의미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중요 의제화된 이슈는 전통적 미디어 역시 중요하게 다룰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을 본 연구자들은 “인터넷을 통한 역의제설정” (internet-mediated reversed agenda setting)이라고 명명했다. 기존 의제설정 이론이 미디어가 공중의 의제에 영향을 미친다면, 역의제설정의 방향은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상의 의제가 기존 미디어의 의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반대의 의제 설정 방향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네티즌의 인구는 아직 전체 인구의 다수를 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온라인 공간에서의 의제 설정이 곧 공중 의제화라고 볼 수는 없다. 전통적 미디어가 온라인 공간의 의제를 사회의 중요 의제로서 보도할 경우, 그것은 공중 의제화된다. 공중 의제화를 완성하는 단계에서 전통적 미디어는 반드시 매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때의 의제는 인터넷이 없던 시대, 소수 게이트키퍼들에 의한 닫힌 의제 설정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다. 특정 이슈에 관한한 온라인 공간에서의 시민 커뮤니케이터들의 활동이 인터넷 언론과 전통적 미디어의 의제 설정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인터넷 시대의 의제 설정에서 일반 시민은 더 이상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메시지 생산자로서의 기능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5. 결론 및 제언
본 연구에서는 의제 설정의 차원에서만 인터넷 이용자의 적극적인 역할을 고찰하였지만, 실제로 인터넷 이용자의 역할은 의제 설정 이외의 다른 차원을 갖는다. 특히, 블로그는 1인 미디어로서의 영향력을 여러 방면에서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2004년 이라크 전쟁에서 대안 미디어로서 그 영향력을 보여준 살람팍스 블로그는 CNN 등 주요 언론이 포착하지 못하는 시각의 뉴스를 제공함으로써, 이미 형성된 공중 의제의 프레임을 바꾸는데 있어서도 인터넷과 시민 커뮤니케이터가 주목할 만한 영향력을 가짐을 잘 보여주었다. 또한, <파워라인>은 기존 언론의 오보를 밝혀냄으로써 올해의 블로그로 선정되었다. 그런 점에서, 매스 미디어를 대상으로 했던 다수의 커뮤니케이션 이론들이 인터넷에 의하여 수정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 연구는 그러한 이론들 중 의제 설정 이론의 측면에서 어떠한 수정이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시론적 탐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는 수정되어야할 이론 또는 모델이 무엇인지는 제시하였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증하려고 한 연구는 아니었다. 따라서, 이 모델의 현실적 적합성을 실증하기 위한 후속 연구도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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