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초한(楚漢)시대 항우(項羽)는 거의 모든 면에서 유방(劉邦)보다 나았지만 결국 유방에게 졌다.
항우는 귀족 출신에 기개가 넘치는 영웅이었다.
반면 유방은 출신이 불분명한 무뢰배에 건달이었다.
천하의 영웅이 그토록 허망하게 패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패한 항우는 스스로 장렬하게 목숨을 끊었고, 승리한 유방은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과연 무엇이 천하를 다투는 결전에서 승패를 갈랐을까.
이중톈(易中天)은 『품인록(品人錄)』에서 그 이유를 항우의 독불장군 식 인사와 유방의 실용적 인사의 차이에서 찾았다.
힘과 재능을 겸비한 항우는 공격하는 성마다 초토화시켰고 적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반면 유방은 초나라와 결전을 치르기까지 직접 전투를 지휘한 적도 없었고 뛰어난 계책을 내놓지도 못했다.
그가 한 일이라곤 장량(張良), 한신(韓信), 진평(陳平) 같은 인재를 발탁해 쓴 것뿐이었다.
항우는 제 잘난 맛에 인재를 옆에 두고도 제대로 쓰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내쫓았다.
반면 유방은 필요하다 싶으면 누구나 기꺼이 끌어들였고 끝없는 신뢰를 보냈다.
오만한 항우는 재능이 뛰어난 한신을 내쳤고, 유방은 그런 한신을 받아들여 부하로 삼았다. 철저한 실용주의 인사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의 초반 인사는 아쉬운 점이 많다.
청와대 비서진과 초대 내각이 과연 능력 위주의 실용적 인선이었느냐는 여전히 의문이다.
문화예술계 인사에 대한 코드 청산작업은 절차가 매끄럽지도 않았고, 대상의 옥석을 가리지도 못했다.
이제 총선이 끝나면 또 한 차례 인사태풍이 불 것이란 소문이 자자하다.
바로 공기업과 금융권에 대대적인 인사가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인사의 기본은 원칙과 기준이 분명하고, 절차가 정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 임명됐다거나 관료 출신이라 해서 모조리 몰아내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거꾸로 챙겨줄 사람이라 해서 아무 자리나 함부로 내줘서도 안 된다.
일의 성격과 사람의 능력을 견주어 제대로 된 인물을 적합한 자리에 앉혀야 한다. 그것이 일하는 정부의 실용적 인사가 아니겠는가.
금융계에 떠도는 흉흉한 소문 중의 하나가 이른바 ‘이헌재 사단’의 퇴장론이다.
이헌재 사단이란 외환위기의 해결사였던 이헌재 전 부총리와 함께 일한 인연으로 금융계 곳곳에 포진한 인맥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 이헌재 사단이 최근에는 흡사 금융권의 불가촉(不可觸) 기피 집단이 되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모피아니, 이헌재 사단이니 하는 세력이 더 이상 금융권에 발 붙이지 못하게 하라”는
엄명을 내렸다고 알려지면서부터다.
그러나 이헌재 사단은 실체가 없는 집단이다.
이헌재가 발탁했거나 함께 일했다 해서 한 묶음으로 분류할 수도 없거니와 싸잡아 매도할 근거도 없다.
그런 기준이라면 금융권에서 걸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 불분명한 딱지를 붙여 인사를 단행하는 것은 개혁도 아니거니와 실용주의와도 거리가 멀다.
예컨대 우리은행의 박해춘 행장의 경우를 보자.
삼성화재 상무였던 그를 20조원의 부실 덩어리 서울보증보험을 살려내라고 떠민 사람은 이헌재였다.
그는 부도 위기에 몰린 서울보증보험을 5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회생시켰다.
박해춘은 2003년 카드사태로 9조원의 부실자산을 안고 있던 LG카드의 해결사로 다시 동원된다.
그는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던 LG카드를 1년 만에 되살려냈다.
그리고 공모를 통해 당당히 우리은행장에 취임했다.
이런 인물에게 이헌재 사단이란 딱지를 붙이거나 전 정권에서 임명됐다는 멍에를 지우는 것은 억지다.
나라가 그의 능력을 절실하게 필요로 했기에 쓴 것이고, 그는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입증해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것뿐이다.
유능한 인재를 내친 항우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오로지 능력과 실적만을 보고 천하의 인재를 찾아 쓴 유방의 지혜를 닮을 것인가. 새 정부의 인사 향배가 새삼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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