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광양회 韜光養晦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의 식객 노릇을 할 때 살아 남기 위해
일부러 몸을 낮추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하여
경계심을 풀도록 만들었던 계책이다.
또 제갈 량(諸葛亮)이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를 써서 유비로 하여금 촉(蜀)을 취한 다음 힘을 기르도록 하여 위(魏)·오(吳)와 균형을 꾀하게 한 전략 역시 도광양회 전략이다.
서기 199년 중국 중원에서의 일이다. 세(勢)가 약했던 유비는 조조에게 몸을 의탁한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이던가, 둘은 서로 경계심을 풀지 못한다. 압박감은 유비가 더 심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조조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자신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비는 조조의 경계심을 풀어야 했다.
후원에 채소를 심고 물을 주는 일로 소일한다.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큰 뜻이 없음을 가장하기 위한 것이다.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이를 ‘도회지계(韜晦之計)’라고 했다.
‘재능을 숨기고 속으로 실력을 키우는 계략’이라는 뜻이다.
유비의 ‘재능 숨기기’는 치밀했다.
청매실(靑梅)이 익어가는 어느 날, 조조가 유비를 부른다.
둘은 정원에 앉아 ‘영웅’을 논했다.
조조가 손가락으로 유비와 자신을 번갈아 지적한 뒤 말하기를
“지금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그대와 나 둘뿐이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유비는 들고 있던 수저를 떨어뜨리며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한다.
'졸장부에 불과한 나를 영웅이라고 하니 놀라 자빠질 지경’이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
유비의 ‘도회지계’를 읽지 못했던 조조는 결국 호랑이를 키우게 되고, 훗날 낭패를 본다.
중국의 쉬창(許昌)에는 지금도 그들이 앉아 영웅을 논했다는
‘청매정(靑梅亭)’이 남아 있다.
재능을 숨긴다는 뜻의 ‘도회(韜晦)’는 ‘도광양회(韜光養晦)’라고 표현해야 그 의미가 더 뚜렷해진다.
‘빛을 숨기고(韜光) 어둠을 키운다(養晦)’는 얘기다.
도광양회가 널리 알려진 것은 이러한 고사 때문이 아니라, 1980년대부터 중국이 취한 대외정책 때문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한 이후 중국은 '기미(羈?)' 정책을 대외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기미란 굴레를 씌워 얽맨다는 뜻으로, 주변국을 중국의 세력 범위 안에 묶어두고 통제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중국은 그동안 초강대국인 미국의 그늘에 가려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덩샤오핑[鄧小平]은 1980년대 개혁·개방정책을 취하면서 도광양회를 기미정책을 달성하기 위한
대외정책의 뼈대로 삼았다.
이는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력이나 국력이 생길 때까지는 침묵을 지키면서
강대국들의 눈치를 살피고, 전술적으로도 협력하는 외교정책을 말한다.
이후 20여 년 간 도광양회는 중국의 대외정책을 대표하였다.
그러나 2002년 11월 후진타오[胡錦濤]를 중심으로 한 제4세대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도광양회는 새로운 외교노선으로 대체되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화평굴기·유소작위·부국강병 등으로 이어지는 대외전략이다.
그는 1989년 9월 4일 당지도부와 함께 국제 형세를 논의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냉정하게 관찰하고, 내 진영을 먼저 확고히 구축한 뒤, 치밀하면서도 무겁게 대응하라.
절대로 우두머리가 되지 말고, 앞에 나서지 마라. 바꿔 말하면 도광양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후 도광양회(중국어 발음은 ‘타오광양후이’)는 중국외교 정책의 핵심이 됐다.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해 대(對)중국 외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빛을 숨기고, 어둠 속에서 힘을
키우고 있는 중국의 속뜻을 간파하는 것이 첫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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