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부터 8월 15일까지 천안시 신부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중국(타이완 포함), 인도작가 전시전이 열린다.
‘부유하는 시간의 무게(Weight of Floating Time)’란 주제를 갖고 있다. 주제가 상정한 시공간의 개념은 과거, 현재, 미래, 가상, 역사, 문화적 공간, 지역과 세계를 넘나든다. 부유하는 시공간들은 각 작가들의 미디어적 시선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흩어지며 재구성된다.
서구 중심의 현대미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중국과 인도의 완성도 높은 미디어 작품들은 이미 지난 몇 해 동안 미술계에 꾸준히 소개돼 왔다. 특히 첸 시에전, 날리니 말라니 등 중국과 인도 미디어아트의 개척자, 혹은 선구자 격의 작가들이 주축이 된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들 작품의 성숙한 면모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작가들과 더불어 예 링한, 실파 굽타와 같이 현재 급부상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을 통해 중국과 인도 미디어아트의 현주소와 가능성을 함께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 작가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은 중국 인도의 현대미술이 이들의 사회 문화 역사와 지속적으로 연계돼 있을 뿐 아니라 ‘현대’라는 맥락에서 이미 활발히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작가들의 미디어를 통한 다양한 시도는 이미 이들 작가들에게 미디어가 현대성을 경험하는 차원을 넘어섰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과 소금, 바닥과 천정, 벽 전체를 통괄하는 화면들로 이루어진 대형 비디오 설치(날리니 말라니), 퍼포먼스와 미디어아트와의 결합(소니아 쿠라나), 미디어아트의 사회, 역사 다큐멘터리적 접근(첸 시에전), 드로잉과 미디어아트를 결합한 장소특정적 경험의 구현(실파 굽타), 초현실적 애니메이션 비디오(예 링한), 극영화의 참고(왕 지엔웨이), 회화와 비디오의 경계 실험(랑비르 칼러카) 등이 그것이다. 또한 작품들만의 고유성과 풍부한 서사성은 이들 작가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왜곡된 현실 및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디어아트를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 눈여겨 볼만한 작품들
1. 예 링한 Ye Linghan (1985년생 China)
글로벌 정보화 시대와 함께 성장한 중국의 빠링허우 (八零後 80’년대 이후 태생한 세대)에 속하는 작가 예 링한에게 뉴미디어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매체일지 모른다. ‘최후의 실험적 비행물체 (Last Experimental Flying Object)’라는 이 작품은 실제와 가상의 이미지가 정교하고 미니멀한 방식으로 중첩되어 나타난다. 배경은 폐허가 된 중국의 한 공장이다. 시간은 멈춰버린 듯 하고 고요함 만이 흐른다. 어느덧 그 적막 속에서 육중한 고래가 유유히 공간을 가르고 정체 모를 인류 최후의 비행물체들이 공간을 가득 점유하고 빠져나감을 반복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초현실적 공간은 어느덧 보는 이들이 심리적 공간과 맞닿아 육중한 비행물체들은 심해 속을 가르며 지나가는 듯 하다.
2. 랑비르 칼러카 Ranbir Kaleka (1968년생 India)
랑비르 칼러카는 인도 펀자브 출신으로 오랫동안 인도미술계에서 화가로 알려져 있다가 1999년도부터 회화와 비디오 프로젝션을 결합한 작품으로 세계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수탉을 들고 있는 남자-2 (Man with Cockerel-2)>는 도망가려는 어린 수탉을 놓치지 않고 잡으려는 남자를 슬로우 모션으로 잡은 단채널 비디오 영상이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마치 떠있는 거울과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설치에 아련한 회색이미지의 영상이 투영된다. 수탉을 잡으려고 애쓰는 남자를 포착한 이 단순한 비디오 영상을 통해 작가는 성공과 도전, 탈출과 포획, 나타남과 사라짐을 반복하는 순환적인 인간의 삶을 말하려는 듯 하다. 즉 남자는 인간의 삶을, 수탉은 삶에서 희구하는 무엇인 것이다.
3. 첸 시에전 Chen Chieh-jen (1960년생 Taiwan)
타이완의 대표적인 미디어아티스트인 첸 시에전의 2003년 작인 ‘Factory’는 제목처럼 지금은 가동하지 않는 공장과 당시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에 관한 필름이다. 작가는 리엔푸 (Lien fu) 의류공장에 예전 그 곳에서 일했던 노동자들과 함께 찾아간다. 시간은 같은 인물, 같은 장소, 같은 물건들을 다른 맥락에 놓이게 한다. 어제와 오늘의 간격을 낡은 다큐멘터리 영상과 실제 촬영한 영상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의미를 상승시킨다. 낮은 시점에서 관조적인 태도로 바라보는 카메라는 천천히 전체를 조망한다. 20여 년간 자신의 청춘을 바쳐 일했던 당시 노동자들은 이제 반백이 되어 당시의 건물과 의자, 책상, 미싱기들 속에 선다.
4. 날리니 말라니 Nalini Malani (1946년생 India)
1991년대 초 비디오 아트를 인도현대미술에 도입시킨 선구적 인물 날리니 말라니에게 새로운 매체는 회화를 주로 다루던 작가 개인의 표현적 가능성을 열어줌과 동시에 더 자유롭게 망각의 역사 속 금지된 언어들을 표출하는 장이 되었다. 하이네 뮐러(Heiner Muller)의 동명 희곡을 기초로 한 『햄릿머쉰 (Hamletmachine)』은 물로 채워진 바닥과 세 벽에 비춰지는 4채널 대형 비디오 설치작품이다. 작품은 일본의 부토 무용가인 하라다 노부오 (Harada nobuo)를 등장시켜 그의 몸을 스크린 삼아 역사의 이미지를 문신처럼 투사한다.
5. 왕 지엔웨이 Wang Jianwei (1958년생 China)
‘날고 있는 새는 움직이지 않는다 (Flying Bird is Motionless)’는 그리스 철학자 제논 (Zenon)의 가설에서 따온 것이다. 시간이 만약 수많은 순간들의 집합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 순간순간에서는 날고 있는 새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아이디어를 통해 연속적인 시간이라는 것이 순간순간이라는 불연속의 합체로, 우리가 알고 있는 완전한 세계에 대한 정의는 실은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혹은 받아들여지기 쉬운 방식으로 가공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김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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