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건강

100세 시대 건강 지키기

영원한 울트라 2020. 11. 21. 09:59

74세 남상언씨는 두세 달에 한 번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과를 다닌다.

손자가 아파서가 아니라, 본인이 소아과 환자다. 그는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다. 좌우 심방 사이 벽에 구멍이 뚫린 심방중격 결손 환자다.

남씨의 취미는 동네 야산을 오르는 것. 그는 수년 전부터 언덕배기를 오르는데 숨이 찼다. '나이 들어 그런가' 했는데 숨찬 증세는 점차 심해졌다. 심장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니, 심방 벽에서 2㎝ 크기 구멍이 발견됐다. 이 구멍을 통해 좌심방에 있는 혈액 일부가 반대쪽 우심방으로 빠져나가면서 심장 박출량이 떨어져 숨이 찼던 것이다. 결국 남씨는 2014년 11월 심장 수술을 받았다. 어린이병원 다인실에서 꼬맹이 심장병 환자들과 함께 10여 일을 지냈다. 주치의인 김기범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과 전문의가 선천성 심장병을 가장 잘 알기에 성인 환자도 소아과에서 진찰했고 수술도 소아심장외과팀이 맡았다"고 말했다.

남씨는 왜 여태껏 선천성 심장병을 모르고 지냈을까. 여기에 고령 시대를 맞아 새로운 질병 발생 패턴이 숨어 있다. 심방중격 결손은 심장 박동 시 잡음이 작아서 어릴 때 소아과 청진기 검진에서 잘 잡히지 않는다. 심장 기형을 잡아내는 심장 초음파는 일반 건강검진에 포함돼 있지 않아 어른이 돼서도 모르고 지낸다. 그러다 남씨처럼 나이가 들어 심장 기능 자체가 떨어지면서 작은 기형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고령 사회 선천성 심장병의 귀환인 셈이다.

선천성 심장병은 고령 환자의 부정맥과도 연관된다.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는 부정맥은 일종의 낡은 전자제품의 고장과 같다. 고려대병원 부정맥센터 김영훈(심장내과) 교수는 "조그만 선천성 기형이 수십년간 지속하면 그 주변 심장 근육이 섬유화해 전기 전도를 방해하여 부정맥을 악화시킨다"며 "나이 들수록 되레 선천성 심장병이 심장 건강에 나쁜 영향을 주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강이석 교수는 "특별한 이유 없이 운동할 때 숨이 차거나 피로감이 크고, 가슴 엑스레이에서 심장 비대 소견이 있다고 하면, 심장 초음파 검사를 받아 선천성 기형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 더보기

누가 100세 건강 장수를 할지 미리 알 수 있는 심사 관문이 있다. 80세 통과 시점의 몸 상태다. 현대 의학 수준에서 이때 큰 질병 후유증 없이 일상생활을 활발히 잘하면 거의 모두 100세로 간다. 장수 의학계에서는 이를 '80세 컷 오프라인'이라고 한다. 그 이후에는 새로운 질병이 적게 생기고, 발생해도 진행이 느리다. 질병보다 낙상, 폐렴 등 몸 밖 요인이 더 큰 장수 방해 요인이다. 70대 건강이 100세 건강 장수를 결정 짓는 셈이다.

나이가 들면 신체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면서 질병의 위험이 커진다. 하지만 심신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건강상태는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건강하게 늙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노인성 근골격 질환인 골다공증 환자의 경우 2007년 53만여명에서 2014년 83만명으로 늘었다. 7년 동안 다른 세대보다 70대 골다공증 증가 폭이 가파르다. 고령 사회로 갈수록 골다공증 증가는 피할 수 없지만, 50·60대는 고령화 준비 세대, 70대는 준비 없이 고령화된 세대로 평가된다.

암(癌) 다음으로 사망 원인 2위인 뇌혈관 질환, 그 중 뇌동맥이 막히거나 좁아진 뇌경색의 경우 2014년 한 해 새롭게 발생한 환자가 여성의 경우 60대는 5만명이지만, 70대는 9만여명이다. 나이 들어 점차 증가하다가 70대에 훌쩍 뛰는 구조다. 뇌출혈은 인구 10만명당 발생 빈도가 70대 이상이 30대보다 34배 높다.

이처럼 노년기 질병 발생 패턴은 점진적 증가가 아니라 70대 절벽에 부딪혀 폭증하는 형태다. 그런 현상은 심근경색증을 일으키는 관상동맥 질환, 심장 판막 퇴행성 질환, 백내장·녹내장·황반변성 등 안과 질병, 척추관 협착증 등 거의 모든 노년기 질병에서 일어나고 있다.

70대 질병 절벽 패턴은 정신 질환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불안 장애의 경우 70대 환자는 2008년 6만명 선이었다. 그러다 2014년에는 12만명으로 뛰었다. 그 사이 다른 세대도 늘었지만 그 폭이 작다. 70대 이상이 60대 이하보다 세 배 많은 행태다. 우울증도 이른바 '후기(後期) 노인'인 75세 이상에서 발생 밀도가 눈에 띄게 높다. 수면 장애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100세 건강 장수하려면 70대 신체와 정신 질병 절벽을 뛰어넘는 판을 만들어야 한다. 노년기 질병의 두 축은 근골격계와 심혈관계다. 50대 중반에 근육 운동을 시작하여 60대 몸짱으로 유명해진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김원곤 교수는 "심혈관계 질병은 체중·혈압·혈당·콜레스테롤 수치를 적정 수준에 머물게 꾸준히 관리하면 막을 수 있고, 근골격계 질환은 계단 오르기, 스쿼트 하기 등 일상생활 속에서 근육운동을 꾸준히 하면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50세가 넘으면 매년 근육량이 1%씩 감소하므로 나이 들수록 근육운동량을 조금씩 더 늘려 가는 전략을 짜야 한다.

한국인의 소화기질환이 위아래로 급변하고 있다. 하부에서는 대장 외벽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이른바 게실병이 눈에 띄게 늘었다. 상부에서는 전통의 위·십이지장 궤양이 줄고, 위·식도 역류 질환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 식이 습관 및 사회생활 패턴 변화가 한국인의 소화기에 그대로 투영되는 모양새다.

게실은 장의 벽이 동그랗게 밖으로 튀어나온 상태를 말한다. 꽈리 주머니 모양과 비슷하다. 크기는 쌀알에서 콩 정도까지 다양하다. 그곳에 오염물질이 쌓여 염증을 일으킨 게 게실염이다. 주로 서양인에게 많은 병이었으나 최근 10년간 한국인에게 눈에 띄게 늘었다. 2008년 한 해 2만5000여 명이던 환자가 2014년에는 5만명이 됐다. 6년 새 두 배로 늘었다. 특히 40~50대 중년 남녀에게 많다. 환자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 나이 때에 복통이 생기면 이제 맹장염보다 게실염을 먼저 의심해야 할 상황이다.

대변의 볼륨을 결정하는 식이섬유 섭취가 부족하고 고기 식사를 많이 하면 장내 압력이 높아져 게실 발생 위험이 커진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이동호 교수는 "게실염은 발생 요인이 누적됐다가 중년에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나이 들수록 대장 탄력과 연동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게실병은 고령사회에 급속히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게실 존재는 대장 내시경으로 알 수 있다. 염증이나 합병증이 없다면 하루 20~30g의 섬유질 섭취로 예방과 치료를 겸한다. 게실염 치료를 받았다 해도 20~30%는 재발하니,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주부 권모(58)씨는 최근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을 겪었다. 평소 건강을 자신했던 권씨는 동네 야산을 올랐다 내려오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극심한 두통을 겼었다. 그러다 구토를 하고 의식이 혼미해지면서 쓰러졌다. 119 구급차로 실려가 병원에서 뇌 CT를 찍으니 뇌출혈이 보였다. 큰 병원으로 이송돼 뇌혈관 촬영술을 한 결과 오른쪽 뇌동맥 중간에 꽈리처럼 부풀어 오른 6㎜ 크기의 뇌동맥류(腦動脈瘤)가 보였다. 이것이 터지면서 뇌출혈을 일으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