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해외작가소개방

에밀놀테2

영원한 울트라 2005. 12. 4. 10:05
고요한 밤의 찬란한 감동
에밀 놀테/ 성스러운 밤

 

 

 


   
▲ 에밀 놀데(Emil Nolde 1967~1956)의 <성스러운 밤> 1912.
아기 예수를 마리아가 들고 있는 이 그림은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엽기적이다. 자신의 몸에서 방금 태어난 아기를 그 어머니가 어떻게 위로 번쩍 치켜들 수가 있는가? 더구나 방금 해산한 산모의 모습과 지금 아기 예수를 들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적어도 마리아는 산모의 모습이 아니다.

사람은 과학적인 논리와 이성에 의해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이 사는 이유가 있다면 감동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다. 물은 화학기호 H₂O이다. 그러나 눈물을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사람의 존재는 한낱 존재하는 물질에 불과할 것이다.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 것은 눈물에 녹아져 있는 삶의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눈물의 성분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과학적이다. 이것에서 끝난다고 한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나 죽은 것이 끝이 아니고 부활이 있다는 것을 믿을 때 삶은 감동적인 그것이다.

에밀놀데(Emil Nolde, 1857~1956)가 그린 <성스러운 밤>(1912)은 감동을 그린 것이다. 이것은 사실보다 더 높은 인간 승화의 차원이며, 신적존재(아기예수)가 개입함으로 느껴지는 신비로운 감동인 것이다. 지금 이 그림은 아기 예수를 중심으로 별과 마리아가 대각선 상에 한 줄로 이어져 있다. 흔히 대각선 구도는 그 대각선 상에 있는 사물 모두가 한 본질이며, 한 소속이라는 것을 나타내듯이, 이 그림 역시 초월적인 세계인 별의 세계(하나님의  세계)로부터 아기 예수가 오셨고, 그 분은 이 땅의 사람, 마리아의 몸에 임하여서 하나의 본질이라는 상징적 구도를 만들었다. 또한 아기 예수는 마굿간이라는 이 땅의 공간과 별의 세계인 초월적인 공간 가운데 그 연결고리를 잡고 있다.

더구나 별이 품어내는 색을 받아 아기 예수와 마리아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노란색과 눈부신 마리아의 흰색 상의를 연결시켜 원색이 가지고 있는 환희와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고요한 밤에 찬란한 감동을 연출한 것이다.

지금 마리아는 해산한 산모의 모습이 아니다. 가장 귀한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수줍은 신부의 모습이다. 곧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최대의 선물이시다. 이것은 마리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기쁜 선물인 것이다. 마리아 옆의 요셉, 마굿간의 소, 이 광경을 보고 있는 목동, 그리고 모두에게 그 분은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최대의 선물로 오신 것이다.

마리아는 지금 어둠속에 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보면 이 그림과 같이 밝은 색의 옷을 입고 있을 수가 없다. 이런 찬란한 흰색과 경건한 붉은 색이 어둠 속에서는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기 예수를 들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녀의 옷은 어두움 속에서 환희로 빛나고 있다. 어두움 속에서 더 찬란하고 영화롭다. 이것이 과학이 주지 못하는 감동이다. 그렇다. 아기 예수 있는 곳에 어두움은 물러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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