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본 웅[1906 ~1953]
호 서산(西山). 서울 출생. 구본웅은 1906년 진보적인 개화 가정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일찌감치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유학을 했으며, 그의 아버지 역시 서구식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부유하고 자애로운 가정에서 태어난 구본웅의 운명은 너무도 일찍 불행의 좌절을 겪어야 했다.
두 살이 되던 해 생모를 여의고, 그를 돌보아 주었던 가정부의 부주의로 마루에 떨어지면서 그는 척추 장애를 일으키며 불구의 몸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신체적 불구에도 불구하고 당시 화단에 등장한 그에 대해 주위 사람들은 찬양과 경탄의 뜻을 아끼지 않았으며,
‘서울의 로트렉'이라는 호칭을 부여할 정도였다.
표현주의적인 경향을 시도했던 구본웅은 고려미술연구소에서 이종우에게 유화의 기본을 익히고
YMCA에서 근대조각가인 김복진으로부터 조각을 배웠다.
1929년 니혼대학 미술과, 1934년 다이헤이요 미술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주로 도쿄에서 열린 이과전과 독립전 등 전위적인 전람회에 출품하고,
귀국 후에는 서화협회 전람회에 출품하였다.‘목일회’,‘백만회’등의 그룹 창립에 참여하는 한편, 미술비평에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였다.
정물 1929년, 59x71.5cm, Oil on canvas, 국립현대미술관
여인 1940, Oil on canvas,45.3x33.6cm,국립현대미술관
친구의 초상, 1935,Oil on canvas,62x50cm ,국립현대미술관
여인, 1930,Oil on canvas,49.6x37.8cm,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