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경매를 봐야만 이야기하기가 쉽다.” 인터뷰 요청에 대한 서울옥션 박혜경(39) 이사의 조언이었다. 지난 26일 박 이사가 진행한 101회 경매를 보고서야 그 까닭을 알았다.
200여 작품이 경매된 3시간은 박 이사의 단독무대였다.“하십니까(다른 사람보다 돈을 더 주고 물건을 사겠느냐)?”,“안 계십니까(지금 나온 경매가보다 더 돈을 지불할 의향을 가진 사람은 없느냐)?” 등의 말을 수백번 쏟아내고서야 경매는 끝났다. 잠꼬대를 하고도 남을 정도다.“처음 경매를 진행할 때는 정말 잠꼬대도 (매물)가격으로 해봤다.”며 박 이사는 웃었다. 경매가 있는 날은 도저히 다른 일을 할 수 없다고해 이튿날인 27일 다시 찾아갔지만 여전히 미술품을 파느라 바빴다. 경매 현장에서는 망설였던 고객들이 유찰된 작품을 사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박 이사는 국내 최초 미술품 경매사이다. 지난 1998년 9월 제1회 경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20여회 경매를 진행했다.1000만원 미만의 미술품을 파는 열린경매, 백화점이나 호텔 등의 고객들을 상대로 한 기획경매 등도 그녀의 담당이다.
백전노장이지만 아직도 경매장에 서면 긴장된다.200여명의 참가자들 사이에서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번호판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최대한 공정하게 낙찰가를 올려야 한다. 망설이는 참가자들의 움직임도 가급적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중간중간 전광판에 나오는 금액도 확인한다. 경매 시간 내내 긴장의 연속이다.
박 이사는 경매날짜가 정해지면 일주일전부터 ‘몸 만들기’에 들어간다. 경매는 한달에 한번 꼴로 열린다. 민감한 이야기는 가급적 피하며 심신의 안정을 취한다. 성대 보호에도 신경을 쓴다. 경매 당일날은 점심은 거의 거르고 즐기는 커피는 입에 대지 않는다. 과식은 발성이나 발음에 문제가 될 수 있고, 커피는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예상치 않게 유찰이 연속해서 나오면 식은 땀이 난다.
●사보에 난 기사가 전직의 기회
그녀의 첫 직장은 진로그룹 홍보실이었다. 사내 방송과 문화뉴스 등을 담당했는데 사보에 박 이사를 소개하는 글이 실렸다. 이를 본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대표가 미술품 시장에도 대중매체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전직을 제의했다.“대중을 상대로 한다는 개념은 똑같고 대중에게 소개하는 상품이 기업에서 미술품으로 바뀐 것뿐이라는 생각에” 직장을 옮겼다.
현실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작가들 이름도 몰랐고 미술품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도 몰랐다. 고객들과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는 섬세함, 미술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여성 파워 등이 큰 힘이 됐다. 가나아트센터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면서 작가와 소장가들을 찾아다니며 끊임없이 배웠다. 소장가들을 만나면 미술품을 사게 된 경위, 출처, 당시의 시장상황 등에 대해 꼼꼼히 물었다. 지금도 배운다. 고미술품이나 유물 전문가들을 정기적으로 만나 미술품이 나온 당시 시대상황과 작가에 대한 정보 등을 듣는다.
●미술품 임대로 먼저 안목을 키워야
몇년 전부터 박 이사는 미술품 경매사나 예술품에 대한 투자 등에 대해 묻는 이메일을 많이 받는다. 그동안 문의받은 궁금증에 대한 답도 쓸 겸, 지난해에 나온 ‘미술전시 기획자들의 12가지 이야기’(한길사)라는 책에 ‘사고파는 미술품’이라는 글을 썼다.
미술품 투자의 첫걸음은 ‘임대’라고 조언한다. 매달 작품값의 3∼5%를 임대료로 내면서 다양한 작품을 감상,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미술품 투자는 전망이 좋다고 덧붙였다. 국내 경매시장이나 해외 미술품 시장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해외 미술품에 대한 수요도 급격히 늘어났다.“주식시장은 1년반에서 2년 정도 미술품 시장을 선행한다.”는 것이 미술품 시장의 정설이라고 했다.
정작 본인은 미술품에 투자했을까.“처음 경매를 시작하면서 10년 정도는 오로지 배우겠다고만 생각했다.” 아직은 본인 소유의 미술품이 없다.
■ 박혜경 이사는
▲1967년 서울 출생▲1990년 단국대학교 사학과 졸업▲1990∼96년 진로그룹 홍보실▲1996년 가나아트센터 아트디렉터▲1998년 9월 서울옥션 제1회 경매 진행▲2006년 1월 서울옥션 이사
글 전경하 사진 안주영기자 lark3@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