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성 민
박성민_Ice Capsule_캔버스에 유채_65.1×90.9cm_2006
박성민의 아이스 캡슐, 물질의 삼태를 담은 기억창고 ● 한 작가가 자신의 색깔을 찾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 색깔을 꾸준히 지속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문제다. 우리는 이 두 가지의 과제를 이뤄나가는 작가에게 신뢰감을 얻기 마련이다. 또한 그러한 과정을 함께 지켜보는 것은 더없이 소중한 기쁨이다. ● 처음 박성민의 작품을 대하게 된 대부분의 이들은 차가운 얼음에 대한 선입견으로 ‘박성민의 작품은 차갑다’라는 오해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유심히 그의 작품에 애정 어린 시선을 건넨다면, 의외로 ‘박성민의 얼음엔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차가운 기운보다는 오히려 생명의 싱싱하고 신선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는 점이 그의 매력이다. 마치 그 얼음 속엔 가장 화려하고 정점에 오른 생명력을 채집해 놓은 듯 삶의 환희와 미소가 한가득 피어오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박성민_Ice Capsule_캔버스에 유채_65.1×90.9cm_2006
물질의 삼태를 품은 아이스캡슐 ● 박성민 작품의 트레이드마크는 얼음조각 시리즈이다. 2002년 5월부터 시작된 얼음조각과 파릇한 식물의 만남, ‘박성민의 얼음’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 속에 품고 있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지만, 종종 의외의 색다른 정경을 연출하고 있는 그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 박성민의 일명 「아이스캡슐(Ice Capsule)」 시리즈는 다양한 의미를 띠고 있다. 우선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물질의 원성’이다. 물질은 보통 삼태(三態, 기체-액체-고체)의 순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박성민은 이러한 물질의 고유한 성질에 우리의 행동양식을 은유적으로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액체는 유기적인 사고, 고체는 고정된 기억, 기체는 망각의 존재성’ 등으로 말이다. ● 다른 한편으론 그의 「아이스캡슐(Ice Capsule)」 시리즈는 자연을 생태적인 측면으로 바라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우리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라는 과대망상적인 자세를 버리고, 최소한 지금 상태로나마 파괴를 멈추자는 역설적인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박성민_Ice Capsule_캔버스에 유채_65.1×90.9cm_2006
여기에 최근엔 작품의 주인공으로 ‘박꽃’과 ‘쪽지편지’에 이어 ‘색색 과일’을 등장시키고 있다. 먼저 박꽃은 풍성함이나 풍요로움, 그리고 순수성을 함축한 매력적인 소재이다. 또한 밋밋하고 소박하면서도 순백의 화려함을 동시에 지닌 감성적인 감흥을 전한다. 반면 쪽지편지는 기억, 첫사랑, 기다림, 소중함, 서정성 등으로 잠시 잊었던 추억을 되살려 주고 있다. 또한 가장 최근에 선보이고 있는 다양한 색조를 띤 과일은 우리가 지닌 수많은 감성적 욕망의 절제된 모습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박성민의 얼음덩어리 속의 작은 세상은 이미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이 캡쳐된 채 표본으로 남아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박성민_Ice Capsule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06
박성민 작품의 ‘고유한 스타일’이 화단에서 빛을 발하게 된 것은 2004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부터일 것이다. 또한 그 이전에 신사임당미술대전 대상이나 동아미술상 수상 등으로 이미 주목받아 온 터였다. 물론 공모전 수상이력이 작품의 질적 수준을 가늠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국내 현실을 감안할 때 장차 작가로서의 성장 가능성과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펼쳐나갈 비전(Vision)을 가늠하는데 어느 정도 객관적인 기준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박성민_Three States of Matter_캔버스에 유채_50×65.1cm_2006
더불어 박성민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너무나 정교하게 옮겨진 화면의 대상들이 모두 ‘100% 수작업’이란 점이다. 쉽고 간편한 화법을 선호하는 현대미술의 일반적인 성향을 감안한다면 박성민의 집중력이 돋보이는 작품은 예술가로서의 장인정신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 웬만한 작품 한 점을 완성하기 위해선 하루 꼬박 10시간씩 일주일 이상 걸리는 제작과정은 수도자의 진지한 수행과정과도 진배없다. 이렇듯 작가 박성민은 세상을 얼음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청명한 얼음 속에 자신의 체온과 열정으로 새로운 세상의 꿈을 구현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박성민이 말하는 물질의 삼태(三態)는 삶의 또 다른 모습이며, 그의 ‘아이스 캡슐(Ice Capsule)’은 삶의 아름다운 기억을 보관하는 사유의 장은 아닐까. ■ 김윤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