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국내작가소개방

안성하

영원한 울트라 2006. 12. 15. 11:09

버려질 것들을 간직하기. 또는 씻어내기



안성하_담배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04





버려질 것들을 간직하기. 또는 씻어내기 ● 언제 어디에도 제 역할을 다하고 찌꺼기가 되어 버려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더럽다. 또한 그 찌꺼기들을 받아 제 몸에 간직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더럽혀진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더럽혀진 것을 신선한 물에 헹구어 깨끗하게 만들려는 욕망이 (그리고 그럴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항상 존재한다. 깨끗한 것에 대한 욕망은 더럽혀진 것을 사이에 두고 더러운 것들과 대결한다. 이 대결은 끝을 알 수 없는 대결이다. 더럽혀지고 깨끗해지고, 또 다시 더럽혀지고 깨끗해지고. 그리고 삶은 이 반복에 걸터앉아 있다. 계속해서 더럽혀지든, 더러움과 깨끗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든, 완전히 깨끗해지든지 간에 말이다. 「담배」라는 표제로 통칭되는 안성하의 근작들은 이 대결의 한복판에서 삶을 이야기한다. 그것들은 실상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더러운 것들과 항상 정면에서 마주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용인하고 공표하면서, (더러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뱉어내는 일을 반복한다.




안성하_담배_캔버스에 유채_194×88cm_2004


안성하의 근작들에서 찌꺼기가 되어 버려지는 더러운 것은 담배-좀 더 정확히는 담배꽁초-이다. 일상에서 담배꽁초는 그 속성상 버려질 수밖에 없는,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서 '버려지기 위해 존재하는' 담배의 찌꺼기다. 그런데 지금 안성하에게서 찌꺼기는 단순히 (일상적 지시물로서의) 담배만이 아니다. (담배를 담배꽁초로 변하게끔 한 갖가지) 이유들도 버려진 찌꺼기들이다. 이 찌꺼기들은 시간의 흔적들이다. 여기에는 간직하고 싶은, 버리고 싶은 온갖 기억들이 불가분하게 얽혀 있다. 이 찌꺼기들이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 용기에 담겨 있다. 투명하기에 그것은 더러운 온갖 것들을 낱낱이 보여준다. 그런데 역설적인 사실은 안성하의 그림들에서는 이렇듯 일상에서는 '버려진' 혹은 '버려질' 것들이 (화가에 의해) 그려짐으로써 오히려 '간직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러운 것(담배꽁초)과 더럽혀진 것(유리 용기)이 신선한 물에 헹구어질 날은 무한히 연기된다. 이와 더불어 모든 찌꺼기들, 그리고 기억들은 버려짐이 없이 고스란히 간직된다. 그리고 화가의 시선은 그 사이에 걸쳐 있는 무수한 감정의 기복과 변화를 빨아들인다.




안성하_담배_캔버스에 유채_73×73cm×2_2002



안성하_담배_캔버스에 유채_227.3×109.5cm_2004


이처럼 온갖 찌꺼기들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안성하의 유리 용기는 온갖 이타적인 것들을 한 몸에 지닌 채 껄끄러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과 닮아 있다. 다만 그것이 우리들의 삶과 다른 것은, 걸러냄이 없이 이타적인 것들을 간직한다는 점이다. 걸러냄이 없이 이타적인 것을 간직한다는 것은 간직하고 싶은 깨끗한 것과 버리고 싶은 더러운 것이 항상 불가분하게 엮여 있으며, 이 양자 가운데 어느 하나를 버리면 다른 하나는 이미 예전의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더러운 것과 함께 있는 모든 것은 더럽혀지기 마련이다. 더럽혀진 더러운 것, 곧 걸러지지 못하고 갑갑하게 속으로 자꾸만 스며드는 온갖 것들은 화가의 의식을 부러뜨리고 자르고 조각낼 것이다. 더러운 것의 실체는 실상 폭력인 것을.




안성하_담배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02



안성하_담배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04



화가가 이 폭력을 감당할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더럽혀진 것을 신선한 물에 씻어 깨끗하게 만들 수 있을까? 다시 '유리 용기'를 보자. 투명하고 깨끗한 유리 용기는 담배꽁초들에 의해 더럽혀졌으나, 더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차라리 그것은 절대로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억압의 상태에 두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은 스스로를 해방시킬 줄 아는 주체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이 주체는 물론 충분히 폭력을 이겨낼 수 있는 주체다. 그러나 나는 이 유리 용기가 너무 깨끗하고, 너무 단단해 보이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그것은 게다가 깨지기 쉬운 유리로 만들어져 있지 않은가! ■ 홍지석

출처:네오룩,2004년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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