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 미술 여행은 어느덧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것 같군요. 이 시간엔 추상미술의 다양성이란 제목으로 큐비즘의 영향을 받은 여러 추상미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909년 이태리에서는 일군의 예술가들이 모여 "미래주의"라는 단체를 발족시킵니다. 그 명칭이 시사하듯이 미래주의 운동의 핵심은 기술공학적인 발전에 힘입은 현대 문명의 발전을 찬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언문을 통해 미래주의자들은 기계의 위력에 의해 출현한 새로운 세계를 환영하는 한편, 과거에 대한 모든 집착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은 속도, 힘, 에너지, 기계, 역동성 등은 현대문명의 상징이므로 찬양하였고, 미술관, 박물관과 학교는 과거의 상징으로서 파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움베르토 보치오니, <마음의 상태: 이별> 1911]
미래주의 미술운동의 대표자격인 보치오니의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보치오니가 다른 미래주의 미술가들과 함께 파리의 최신 미술, 큐비즘을 보고온 직후에 그린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피카소와 브라크의 그림처럼 사물의 형태가 해체되어 잘 알아 보기가 힘듭니다. 보치오니는 원래 3면화의 형식으로 기차를 타고 떠나는 사람들, 기차역에서 서로 작별하는 사람들, 남아있는 사람들을 그렸는데, 이 그림은 그중 중앙에 위치합니다. 그림의 장면은 기차역에 기차가 들어오고, 아쉬운 이별을 하는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겠지만, 6943이라는 숫자를 달고 무지개색 증기가 흘러나오는 기차가 있습니다. 큐비스틱하게 해체되어 있는 기차는 기술공학의 상징입니다. 숫자는 피카소의 <Ma Jolie>를 연상시킵니다. 기차의 양편으로 서로 껴안고 작별의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잘 보세요. 초록색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한편 물결치는 듯 흐르는 색채는 이별의 정감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보치오니는 이 그림에서 기계적 에너지와 함께 감정을 잘 결합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에 있어서 큐비즘이 적절히 사용되고 있고요. 보치오니를 비롯한 미래주의자들은 큐비즘이 미래주의의 주제를 표현하는데 적절한 도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피카소와 브라크의 작품에선 주제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큐비즘이라는 방법자체가 더 중요해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그림은 거의 단색조입니다. 그와는 달리, 미래주의자들은 다양한 색채를 사용하고, 주제의식이 뚜렷합니다. 덕분에 보다 쉽게 대중성을 얻을 수 있었던 미래주의는 큐비즘이 널리 전파되는데 기여하게 됩니다.
[움베르토 보치오니,<축구선수의 역동성>1913; <공간에 있어서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1913]
현대문명의 상징으로서 힘, 속도, 에너지를 찬미했던 미래주의자들은 이러한 추상적인 개념들을 그림으로 형상화하곤 했습니다. 우선 왼쪽 그림을 봅시다. 큐비스트의 어법으로 해체되어 있는 이 그림의 주제는 열심히 달리고 있는 축구선수입니다. 축구선수의 이미지는 붉은 색과 푸른 색을 주조로 표현되고 있는데, 보치오니는 운동하는 신체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수의 몸에서 발산되는 에너지와 주변의 작용을 한꺼번에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이번엔 오른쪽 사진을 봅시다. 마치 <축구선수의 역동성>의 주제가 조각으로 연장된 것 같습니다. 역시 뛰어가는 사람의 움직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부에서 발산되는 힘과 주변의 움직임이 한꺼번에 표현되다 보니, 사람의 몸에서 불꽃같은 것이 튀어 나오는 것 같이 보입니다. 꼭 마징가 제트 같다구요? 여하튼 운동의 에너지를 조각으로 구현한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쟈코모 발라, <가죽끈에 매인 개의 역동성> 1912]
큐비즘을 사용한 건 아니지만, 움직임에 관심이 많았던 미래주의자 발라의 작품입니다. 움직이는 강아지의 모습을 아주 재미있게 그렸군요. 여러 순간의 동작을 동시에 표현하다보니, 강아지의 다리와 꼬리, 그리고 마나님의 발이 여러개가 되고 있습니다. 발라는 미래주의자의 주장이나 큐비즘이란 방법보다는 움직임이 가진 순수하게 지각적인 측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대 기술문명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기차와 비행기 같은 새로운 교통수단이 발명됨으로써 경험하게 된 속도, 운동감이었죠. 그래서 현대 미술가들은 새로운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이러한 경험을 즐겨 소재로 다룹니다. 이것은 비단 미래주의자들만의 관심사항은 아니었는데, 움직임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작가들의 미술을 우리는 "키네틱 아트"라고 부릅니다. 키네틱 아키스트들은 주로 움직이는 미술 작품을 만들었는데요, 이러한 미술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감상하도록 하죠.
[카지미르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 1913]
이번에는 러시아의 추상미술가 말레비치의 작품을 보도록 합시다. 흰사각형 안에 검은 사각형이 있습니다. 이것이 그림입니다. 이런 그림을 보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던지 간에, 말레비치는 이것을 하나의 작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기점으로 말레비치는 스스로 "절대주의(Suprematism)"라고 명명한 추상 미술을 시작하는데, 절대주의에서는 이제까지의 어떤 미술보다도 극단적인 기하학적 단순화가 시도됩니다. 큐비즘과 미래주의를 연구하던 말레비치는 1913년 '대상이라는 짐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을 시도합니다. 그는 화가에겐 객관적 세계의 시각적 현상은 무의미하며, 중요한 것은 화가의 감정 그 자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절대주의는 창조적 예술에서 순수한 감정이 갖는 절대권위(supremacy)로 정의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의 일상적 현실을 암시하는 요소가 거의 전적으로 배제된 <검은 사각형>이 순수한 감정의 표상으로서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는 종종 그의 기독교적 신앙의 표명으로 해석되곤 하는데, 말레비치의 의도가 반드시 기독교 신앙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의 미술이 모종의 신비주의를 지향했던 것 만은 확실합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 <절대주의 회화: 날으는 비행기> 1915]
1913년 말엽부터 말레비치는 기울인 직사각형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런 단순화된 구성을 통해 항공술을 비롯한 현대 기술공학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즉 비행의 감각, 금속성의 소리, 무선 전보의 느낌 같은 것을 기울어진 직사각형의 배열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한동안 이런 그림을 그리던 말레비치는 물질세계를 의미하는 제목에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말했다시피 그는 비물질적이고 비대상적인 실체에 가시적인 형태를 부여하고자 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1918년 다시 절대주의의 엄격성으로 되돌아 오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흰색 위의 흰색>입니다. 이 작품에은 <검은 사각형>보다도 더 단순화된 단계를 보여주는 군요.
[카지미르 말레비치, <흰색 위의 흰색> 1918]
이번엔 우리가 잘아는 추상미술가 몬드리안의 작품을 감상해 봅시다. 몬드리안은 원래 네덜란드의 농가의 풍경이나 나무를 즐겨 그리던 자연주의 화가였습니다. 큐비즘을 접한 이후 몬드리안의 그림은 점점 추상적이 되는데, 그가 애용하는 수평선과 수직선의 구도는 네덜란드 풍경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몬드리안은 당시 지식층에서 유행하던 신지학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거의 종교에 가까운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던 신지학은 일종의 철학 체계였었는데, 눈에 보이는 현상들 뒤에 숨어 있는 변하지 않는 보편적 실재를 탐구하는 학문이었습니다. 물질주의를 지향하는 서구문명에 식상해 있던 많은 지식인들이 이 동양적인 신비성을 띤 학문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칸딘스키와 클레같은 미술가들도 있었습니다.
[피에트 몬드리안, <수평선상의 나무> 1911]
몬드리안과 이 미술가들은 사물의 우연한 모습 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실재를 그들의 그림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그들 각각의 그림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데, 몬드리안은 그러한 실재의 기본 구조가 수직선과 수평선의 구성에서 찾아진다고 보았습니다.위의 그림을 봅시다. 가로로 뻗어 나가는 나무의 가지와 수직으로 서있는 나무의 기둥이 이 그림의 기본 구도를 제시합니다. 바탕의 십자형태는 이러한 기본 구도의 반복이 됩니다. 그가 색채의 수를 감소시키고 그림을 기본적인 선적 구조로 환원시키고 있는 것은 물론 큐비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피에트 몬드리앙, <파랑, 회색, 분홍의 구성> 1913]
위의 나무 그림보다 한단계 진전된 그림입니다. 처음에는 나무나 건물로 시작했던 몬드리안은 이제 완전히 일반화된 선과 색채의 구성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잘 보십시오. <수평선상의 나무>와 마찬가지로 이 그림에서도 기본 구도를 이루는 것은 십자형으로 교차되는 수직선과 수평선입니다. 이러한 선적 구조는 평면상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느낌을 주고요, 파랑, 분홍 등 교차선이 만드는 사각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색채는 화면에 입체감을 부여합니다. 즉, 밝은 색은 전진하는 느낌을, 어둡고 차가운 색은 후진하는 느낌을 느낌을 주지요. 몬드리안은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그들 사이를 메꾸는 색채라는 한정된 요소들 안에서 무한한 표현 가능성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리하여 이후 그의 그림들은 이 한정된 요소를 이용한 다양한 효과의 탐색이 되고 있습니다.
[피에트 몬드리안, <빨강, 노랑, 파랑의 구성> 1921]
색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삼원색과 수직, 수평선을 이용한 구성입니다. 약간의 변형은 있지만, 이런 유형의 몬드리안의 그림은 검은 색 선과 선들이 교차됨으로서 생기는 공간을 메우는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으로 되어 있죠. 바탕의 흰색까지 포함시킨다면 모두 5가지 색을 사용한 셈이 됩니다. 1920년 이후 몬드리안의 그림은 이러한 단순한 요소들의 다양한 변조가 됩니다. 말년에 몬드리안의 양식은 약간의 변화를 격긴 하나, 삼원색과 수직, 수평선이라는 기본 요소는 그대로 유지합니다.
[피에트 몬드리안, <빨강, 검정, 파랑, 노랑의 마름모꼴 구성> 1925]
몬드리안의 작품은 많은 디자이너들이 사용하여 우리들에게 더 친숙합니다. 위의 그림같은 디자인을 패션 디자인이나 은행 간판, 혹은 웹디자인에서 본듯 하지 않습니까? 사실 몬드리안도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한때 "데 슈틸(De Stijl)"이라는 디자인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데 슈틸에 참여했던 리트펠트가 만들었던 의자입니다. 검은색 선과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으로 이루어진 이 의자는 몬드리안의 구성 작품을 연상시킵니다. 리트펠트는 이와 같은 디자인을 다른 가구들과 인테리어에도 적용하고, 건축 디자인에도 적용했습니다.
[게리트 리트펠트, <의자> 1918]
이 시간에는 20세기 초의 대표적인 추상미술가들의 작품을 주로 감상했습니다. 보치오니, 말레비치, 몬드리안의 추상미술은 모두 큐비즘의 영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피카소와 브라크는 그들의 그림에서 어떤 주제를 보여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새로운 방법, 즉 큐비즘 그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겐 그림의 소재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었죠. 이와는 달리 이 시간에 만났던 3명의 추상미술가들은 비록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각자 분명하게 드러내고 싶은 주제가 있었습니다. 미래주의자 보치오니는 현대문명이라는 진보적 이미지를, 말레비치는 예술가의 순수한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신성을, 몬드리안은 보편적 실재의 구조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각자의 주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큐비즘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이용하였던 겁니다. 1910년대엔 많은 미술가들이 추상적인 작업을 했습니다. 이 시간에 언급된 작가들외에도 여러 사람이 거론될 수 있겠는데 그들 대부분은 큐비즘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미술이 추상적으로 되어가는 과정이 현대미술의 커다란 줄기를 형성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모든 미술가들이 추상미술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음 시간에는 추상미술과는 아주 다른 미술, 어떤 의미에서는 반대쪽 극단에 위치하고 있는 미술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 시간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고, 다음 시간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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