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생 광
수묵화가 우리 화단을 휩쓸던 시기, 박생광은 독창적인 미감과 안목으로 우리 민족 안에
내재돼 있는 원색적이고 화려한 색감을 치밀한 구도 속에 끌어냈을 뿐 아니라 불교와
토속신앙,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해 민족혼과 문화적 자긍심을 불러일으킨 한국적인 화가다.
기러기를 안은 여인
무녀
수묵화를 '동양화'라 일컬으며, 중국 위주의 동양 테두리에 머물렀던 당대 주류 회화와는
달리 박생광은 상대적으로 도외시되었던 독창적 채색전통과 양식을 연구하여 '한국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발전시켜왔다.
무당
말년에 화업이 만개한 박생광 화백은 살아생전 단 3회 개인전을 열었고,
사후에도 그의 작품을 대규모로 볼 수 있는 전시회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무당
개인 소장품이 많아 미공개작이 대부분이며,
해방후 그림을 팔아 연명하던 시기의 수묵 작품들, 1960년대 후반 일본 전위화풍으로
그린 한라산, 1970년대 일본미술원전 수상작인 "밤의 매화" "노수"등 말년 작과 차이가 있다.
무속
그의 작품들은 그간 잊혀졌던 우리의 전통적인 색채에 대한 미감을 실감나게 분출하고 있으
며, 만년에 제작된 역사인물화시리즈는 민중과 민족의 시각에서 근대역사를 조명함으로서
미술사에서 독보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무속
그의 예술세계는 1985년 5월에 파리 그랑팔레에서 개최된'르살롱-85' '좌녀'가 포스터로 채
택되어지는 등 파리에서 재조명되었으며, 1986년 호암겔러리에서 1주기전이 개최된 바 있다
무속
작업노트에서는 많은 말을 남겼지만 1985년 숨을 거두기 일주일 전 윤봉길과 안중근을 그리
겠다는 계획으로 스케치를 한 작품에 歷史를 떠난 민족이란 없다. 傳統을 떠난 민족은 없다.
民族藝術에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 있다. 라는 말을 남겼다.
무속
이브
탁몽
탈
흰두 신
가야금산조 - 김죽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