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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드라마의 법칙'

영원한 울트라 2007. 9. 27. 14:53


《‘미드(미국드라마)’ 마니아들은 9월만 생각하면 설렌다.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3, CSI 라스베이거스 시즌8, CSI 마이애미 시즌6,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4 등 손꼽아 기다려 온 인기 미드의 새 시즌이 다음 달 미국에서 방영되기 때문. ‘일드(일본드라마)’의 인기도 미드를 따라잡고 있다.

케이블채널 XTM의 ‘화려한 일족’, MBC무비스의 ‘노다메 칸타빌레’는 케이블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2% 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미드나 일드 마니아는 한국 드라마는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드라마 전문가들은 미드, 일드에도 ‘전형적인 법칙이 있다’고 주장한다.

9월 4일부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한미일 드라마에 새겨진 국적성’을 강의할 문화평론가 이영미(한국), 정여울(미국), 김준양(일본) 씨가 각국 드라마 법칙을 분석했다. 》

동일설정 3국 비교 & 평론가 완전분석

이런 상황 한미일 드라마는 이렇게 처리한다… 누리꾼들이 동일한 설정에 한미일 드라마 법칙을 적용시켜 본 사례.

#설정

‘가난한 집안 출신의 장동건이 우연히 만난 재벌가의 딸 김태희와 사랑에 빠지지만 태희 측 집안의 반대에 부닥친다.

동건은 태희의 아버지(이순재)를 설득하기 위해 약속 장소에 나간다.’

한국

순재는 인자한 웃음으로 “자네 정도 되는 사람이면 말이 통하겠지. 섭섭하지 않을 걸세”라며 동건에게 봉투를 내민다. 동건은 이를 내치며 “저희 사랑은 진실해요”라고 절규한다. 태희와 동건은 사랑의 도주를 계획한다. 그 순간 태희가, 순재가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기 전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임이 밝혀진다. 동건과 태희가 남매라는 반전이…(태희가 이름 모를 불치병에 걸렸다는 또 한 번의 반전도 있다).

〉〉모든 것 뒤에는 ‘가족’과 불치병이 있다

이영미 씨는 문제의 해결 수단으로 ‘여자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것부터 지적했다. 한국 드라마에는 ‘모든 문제는 가족과 연관된다’는 법칙이 있다. 뿌리를 중시하는 한국인의 의식이 반영된 것. 한국 드라마는 가족 간 갈등을 푸는 것만으로도 이야기 전개가 된다.

따라서 ‘재벌’보다 ‘재벌가()’를 중시한다. 가난한 동건과 재벌가 태희가 만나는 신데렐라형 설정도 개인의 만남이 아니라 가계() 간 충돌이다.

다 큰 성인들이 사랑하는 데 부모가 끼어드는 이유도 가계를 통해 무언가 결정되는 구조 때문. 태희가 출생의 비밀을 가진 것 역시 순재의 옛 사랑이 가족 간 문제로 좌절됐기 때문이다.

불치병은 한국의 사회상과 연관된다. 1990년대 초중반 신세대 문화는 1980년대식 사랑을 진부한 것으로 치부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대중은 신세대의 ‘쿨’함보다는 순정적 감정을 중시하게 됐다. 외부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내적으로는 위안을 받고 싶은 심리가 작용한 것.

드라마는 대중이 원하는 ‘현실에서는 만들 수 없는 사랑’을 완성시키기 위해 누군가를 죽게 만듦으로써 영원한 사랑을 구현해냈다. 주로 남매 관계로 설정되는 출생의 문제도 극복할 수 없는 장애로 설정돼 사랑을 더욱 완벽하게 만드는 장치. ‘가을동화’(2000년) 이후 한국 드라마를 지배한 구조다.

이 씨는 “한국 시청자는 논리적 구성보다 감정적인 장면과 대사에서 받는 풍부하고 강렬한 느낌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미국

순재의 바닷가 별장에서 만나기로 한 동건. 오픈카를 타고 해변도로를 달린다. 놀랍게도 동건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피살된 순재의 시체. 당황스러운 순간, 순재의 수행 비서는 동건을 신고하고 용의자로 몰리게 된 동건은 경찰에게 쫓기게 된다. 동건은 누명을 벗기 위해 냉철한 두뇌와 과학 수사 기법으로 자력 수사에 나서고, 배후 인물이 드러나려는 순간! 시즌 2로….

〉〉‘과학’을 무기로 재난과 싸워 이겨라

미국 드라마에서 순재가 죽어 있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재난의 법칙’ 때문. 정여울 씨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민족들이 하나의 미국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이들을 묶어줄 무언가가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일반인에게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재난”이라고 말했다.

9·11테러, 버지니아 총기 난사 사건 등 각종 대형 사고가 많은 미국에서 범죄는 남 이야기가 아닌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 재난이다. 미드는 시청자에게 행복이 일상적인 재난(살인사건 등)으로 파괴될 수 있다는 것과 이에 맞서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급작스러운 재난은 미드 특유의 미스터리 구조로 연결된다. 재난을 극복하려면 그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 의학이나 범죄물뿐만 아니라 중산층 주부들의 이야기를 다룬 ‘위기의 주부들’ 같은 드라마에도 추리적 요소가 들어갈 정도다.

동건이 치밀한 논리로 자력 수사를 하는 것은 서구적인 영웅 서사의 변형이다. 과거 ‘슈퍼맨’이 근육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면 요즘 영웅은 이성과 논리, 즉 ‘과학’을 무기로 삼는다. ‘CSI’, ‘프리즌 브레이크’가 그런 예다. 그리고 과학은 미국의 우수성을 상징한다.

시즌제는 영웅이 레벨을 하나하나 밟아 가며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미드는 ‘재난은 곧 전쟁이고 그 안에서 미션을 완수한다’는 구조다. 미드도 많이 보면 똑같아서 지겹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재난→미션 완수’의 구조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일본

프로그래머인 동건에게 태희는 처음 사귀어 본 여자다. 여자친구의 아버지를 만난다고 하자 직장 동료들은 동건을 위해 깜짝 파티와 대처 방안을 조언해 준다. 동건은 과장스럽게 웃으며 “아∼ 공부가 되는군요”를 남발한다. 하지만 동건의 나이, 마흔여덟. 태희보다 스물다섯 살 연상이다. 순재와는 두 살 차. 화창한 오후, 순재를 만나는 순간 동건은 쓰러진다. 자외선에 노출되면 죽음에 이르는 ‘색소성 건피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조직’ 안에서 자라난다

48세 ‘아저씨’ 동건이 여자를 처음 사귀어 본다는 설정은 경제적 자립도가 높아진 일본 여성은 결혼에 대한 강박이 없는 반면 남자는 결혼하고 싶어도 못하고 한 가지 취미에 집착하는 ‘오타쿠’(마니아)로 늙는다는 일본 사회상이 반영된 것. 드라마 ‘전차남’이 그 예다.

일드는 직장에서의 성장을 다룬 드라마가 많다. 주인공의 연애도 직장에서의 성공과 나란히 진행된다.

김준양 씨는 “일드 주인공은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미국식 히어로가 아니다”라며 “주인공은 직장 동료들의 도움을 통해 성장한다”고 말했다. 연애할 능력이 부족한 동건이 직장 동료의 조언을 들으며 “공부가 되는군요”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은 가족 간 관계가 개개인을 지배하기보다 직장 안에서 인간관계가 더 중요한 사회이기 때문에 드라마 속 주인공의 성장은 곧 조직사회 안에서의 성장이다.

일드에서 한드의 ‘출생의 비밀’이나 미드의 ‘재난’에 해당되는 설정은 주인공의 ‘특이함’. 자기 마음을 다른 사람이 읽어 버리는 주인공(사토라레), 햇빛을 보면 쓰러지는 주인공(태양의 노래), 피아노 천재(노다메 칸타빌레) 등 특이성을 띤 주인공이 집단 안에서 동화되는 과정은 조직에서 배제되길 원치 않는 일본인들의 정서와 맞닿는다.

일본 드라마가 인물 간 감정 대립이 크지 않으며 잔잔한 일상을 다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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