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TV가 미디어 빅뱅(대폭발)을 촉발시킬 것인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고 말 것인가? IPTV는 인터넷망(IP망)을 통해서 방송 또는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최근 IPTV가 화두로 등장하게 된 두 가지 사건이 있다. 지난 11월 14일 국내 최대 이동통신회사인 SK텔레콤이 하나로텔레콤의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초고속인터넷이 주력 사업인 하나로텔레콤은 IPTV 가입자 66만명을 확보한 IPTV 1위 기업이다. ‘하나TV’가 브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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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0일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에선 IPTV의 법적 근거가 되는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이 통과됐다. IPTV가 방송이냐, 방송과 통신이 융합된 서비스냐를 두고 논란을 일으키며 2년여를 표류하던 법안이다. 이제까진 IPTV도 방송의 한 가지이므로 ‘방송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방송계와 방송과 통신이 융합된 새로운 서비스이므로 새로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통신계의 입장이 맞서왔다.
내년엔 시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SK텔레콤이라는 강력한 사업자가 등장하고 법적 미비점도 해결되면서 IPTV가 중요한 화두 중 하나로 등장할 전망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KT의 메가TV와 하나로텔레콤의 하나TV가 IPTV의 선두주자다. KT의 메가TV는 2004년 만든 주문형비디오(VOD) 사업인 ‘홈엔’에 뿌리를 두고 있다. KT는 지난 9월 연내 가입자 30만명을 목표로 내걸고 전국을 대상으로 메가TV 상용화에 나섰다. 10월 말 현재 23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하나로텔레콤의 하나TV는 2006년 7월 서비스를 시작해 6개월 만에 3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다. 올해 10월 기준으로 66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7만여편 이상의 영화, 드라마,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서비스하는 IPTV는 완전한 형태는 아니다. 방송계와 논란이 있자 실시간 생방송은 제외하고 VOD를 골라 보게 하고 있다. 정식 서비스가 아닌데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어 IPTV의 파괴력은 시장에서 인정 받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케이블 방송이라는 검증된 시장을 놓고 볼 때 IPTV의 성장성이 크다고 보고 하나로텔레콤 인수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은 IPTV 가입자가 내년에 300만명을 넘어서고 2010년이면 최대 1000만명, 최소 5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할 것으로 내다봤다.
IPTV는 외형만 보면 케이블 방송과 구별하기 어렵다. 디지털 TV와 셋톱박스가 전부다. 케이블 방송과 다른 점은 셋톱박스가 케이블망에 연결돼 있지 않고 초고속인터넷망에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둘의 차이는 서비스 내용을 들여다봐야 알 수 있다. 70~80개의 채널을 갖고 있는 케이블 방송은 최근 영상압축 기술이 발달하면서 200여개의 채널을 넣을 수 있다. 그러나 IPTV는 이론상 무한대의 채널을 넣을 수 있다. 그래서 ‘999개의 채널을 넣을 수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같은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더라도 카메라 각도에 따라 여러 개의 채널로 보낼 수 있다. 특정 선수만 쫓아다니는 한 채널을 선택해서 볼 수도 있다. 현재 방송은 채널의 제약으로 인해 한 화면만으로 경기를 볼 수 있다.
IPTV는 초고속인터넷망을 통해 영화, 드라마 등을 보고 싶을 때 보는 VOD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노래방, 홈뱅킹 등 쌍방향 서비스도 가능하다.
규제의 차이에서 방송 내용의 차이도 있을 수 있다. IPTV가 방송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면 지나친 폭력이나 성적 표현 등을 규제하는 방송심의 규정에서 자유롭게 돼 내용이 다양해진다. 선정적 내용이 늘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화면에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광고 내용이나 문구를 삽입할 수도 있다.
IPTV가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면서 기존 지상파·케이블 중심의 방송 구도를 깨트리는 ‘미디어 빅뱅’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영석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IPTV는 통신업계뿐만 아니라 미디어업계의 인수·합병 등을 촉발시킬 뇌관이다”라며 “IPTV가 보편화되고 KT와 SK텔레콤의 통합 서비스가 자리를 잡을 경우 공영방송을 제외한 민영화 지상파 TV 사업자가 인수·합병 대상으로 거론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송계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대응 수위도 높다. 케이블 방송은 케이블망을 이용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판촉하고 있다. 케이블TV와 10Mbps(초당 10만비트의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속도)의 초고속인터넷을 같이 쓸 수 있는 서비스가 월 1만6000~1만8000원 정도다. 초고속인터넷도 쓸 수 있다는 IPTV의 장점을 무너뜨리는 전략이다.
디지털 케이블 TV도 확산시키고 있다. 디지털 케이블TV로 전환하면 IPTV와 마찬가지로 VOD를 볼 수 있다. 케이블 방송 가입자 1400만가구 중 지난 9월 말 현재 66만가구가 디지털 케이블로 전환했다. 2010년까지는 모든 가입자가 디지털 케이블 방송을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여기에 인터넷 전화까지 얹어서 통신업계가 줄 수 있는 서비스를 케이블 방송도 준다는 방침이다. 케이블 방송 업계는 2006년 8월 인터넷전화 사업을 추진할 한국케이블텔레콤(KCT)을 합작 형태로 설립했다. 김진경 케이블TV방송협회 부장은 “디지털 케이블 TV와 IPTV는 결국 서비스 내용이 같으므로 공정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동일한 규제를 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사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멀티모드서비스(MMS)를 도입하게 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멀티모드서비스란 현재 한 채널을 실을 수 있는 전파에 더 많은 채널을 얹어 송출하는 것이다. 아날로그 방송이 디지털로 바뀌게 되면 영상 압축 기술을 이용하기 때문에 채널당 6㎒가 할당돼 있는 전파에 여유가 생긴다. 같은 전파 대역에 MBC 한 채널이 아니라 MBC-1, MBC-2, MBC-3 등 여러 채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KBS, MBC, SBS 등 5개의 채널을 보내던 전파에 20여개의 채널을 보낼 수 있다. MMS는 2006년 월드컵 기간 중에 시범 서비스를 했다. 기존 채널에는 축구 경기를 내보내고 MMS로 추가된 신규 채널에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정규 프로그램을 편성해서 내보냈다.
멀티모드서비스 도입을 염두에 두고 지상파 방송사들은 때 아닌 안테나 보수에 나서고 있다. 대부분 아파트 단지에서 지상파를 수신하는 공시청망 안테나는 무용지물이 됐다. 대부분의 시청자가 케이블 방송으로 지상파 방송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MMS가 가능하면 공시청 안테나만 보수해도 무료로 20여개의 채널을 볼 수 있게 된다. 시청자가 자주 보는 채널은 10개 안팎이므로 케이블 방송이나 IPTV라는 유료 방송에 대항할 수 있다. 지상파 3사는 ‘무료디지털TV활성화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작년 5월 수도권 4000여가구를 대상으로 공시청망을 보수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IPTV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정부는 지상파 방송에도 MMS를 허용해 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상파는 전파를 이용하는 서비스여서 근본적으로 쌍방향 서비스가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미디어 빅뱅을 촉발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찻잔 속에 태풍이었던 경우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DMB(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다. 2005년 5월 위성DMB가 전파를 탔고 같은 해 12월 지상파DMB가 선보였다. 세계 최초 서비스였다. 출범 당시 ‘내 손 안의 TV’ ‘IT 징기스칸’ ‘꿈의 DMB’ 등으로 불리며 ‘혁명적 기술로 미디어의 패러다임을 뒤흔들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2년여가 지난 현재 위성DMB를 서비스하는 TU미디어는 작년 874억원의 적자를 내는 등 올해 상반기까지 2355억원의 누적 적자가 쌓여 있다. 한국DMB, U1미디어, YTN DMB 등 독립법인으로 설립된 지상파DMB 회사와 KBS·MBC·SBS의 DMB 부문은 초기 투자비용으로 1000억원 이상을 쏟아부었지만 전체 광고 매출은 월 5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익은 없는데 비용만 각 사별로 월 5억원씩 나간다. 적자가 누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볼 만한 콘텐츠가 적다면 시청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TU미디어는 지상파 방송의 재전송을 추진하고 있지만 방송 3사와 지루한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도 2002년 3월 개국한 뒤에 2년이 넘어서야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을 재전송할 수 있었다. 스카이라이프는 그 동안 4000억원이나 되는 누적 적자가 쌓였다. 작년에야 개국 후 처음으로 흑자(30억원)를 올렸다.
IPTV를 매개로 한 통신업체의 방송 진출이 과연 성공할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하는 전문가도 있다. 송재경 서울증권 리서치 팀장은 “양질의 방송 콘텐츠는 여전히 지상파 방송 3사가 가지고 있다”며 “KT나 SK텔레콤이 돈을 쏟아붓는다고 지상파의 경쟁력을 넘어서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뒤집어보면 양질의 콘텐츠가 있어야 IPTV가 미디어 빅뱅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TV가 가입자 수를 급격히 늘릴 수 있었던 것도 아동용 콘텐츠와 미국 드라마를 시청자가 보고 싶은 시간에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IPTV가 정착한 것은 축구 경기 중계라는 킬러 콘텐츠(시장을 주도하는 인기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통신회사들은 콘텐츠 확보를 위한 투자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KT는 2005년 영화제작사 사이더스FNH, 드라마 제작사 올리브나인을 인수했다. SK텔레콤은 경영권을 갖고 있는 종합엔터테인먼트회사 IHQ를 통해 영화사 청어람, YTN미디어 등에 투자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지상파방송이든 케이블방송이든 IPTV든 다양하고 유익한 채널을 선명한 화면으로 볼 수 있으면 된다. 실생활에선 거실에 있는 테이블에 있는 케이블 방송 셋톱박스를 치우고 IPTV의 셋톱박스를 설치하게 하는 경쟁이다. 아직까진 케이블방송이 가격 경쟁력을 가진다. 서울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100Mbps의 초고속인터넷을 사용하면서 TV와 VOD를 볼 수 있는 서비스를 받기 위해 디지털 케이블 방송을 선택하면 월 3만4000~3만5000원 선이 들고, 하나TV나 메가TV를 선택하면 3만8000~4만원 선이 든다.
경쟁사도 늘어날 전망이다. LG그룹의 LG데이콤과 LG파워콤이 연말까지는 IPTV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들은 속도를 무기로 들고 나온다는 전략이다. LG파워콤이 제공하는 100Mbps 속도의 초고속인터넷이 이점이다. 백용대 LG파워콤 부장은 “최저 속도가 30~50Mbps는 돼야 골프 중계 중에 스윙이 끊기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며 “100Mbps급에서 강점이 있기 때문에 늦게 진출해도 승산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IPTV
Internet Protocol TV의 약자로 인터넷망을 이용해서 보는 TV를 가리킨다. 방송위원회는 “텔레비전 등 방송프로그램을 인터넷망(IP망)을 이용하여 공중에게 보내주는 다채널 방송”으로 정의하며, 정보통신부는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하여 양방향으로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신규 통신방송융합 서비스”로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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