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그림 이야기

[스크랩] 벡신스키

영원한 울트라 2008. 2. 15. 16:01
죽어가면서도 놓을 수 없었던 사랑.. [폼페이 화산 유적에서 발굴된 두 남녀].. 대략 이런 내용으로 한 동안 인터넷에 떠돌던
그림입니다만, 사실은 러시아 화가 벡신스키가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을 처음 보시는 분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시지요?
아래 본문 중에..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작가의 특별한 의도보다는 그림을 보시는 분들이 느끼는 대로 감상하시면 될 듯..

 



백신스키(Zdzislaw Beksinski) / 무제(untitled) / 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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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그림을 나도 잘 모릅니다. 굳이 이해하려들지 마십시오.
그림에 대한 의미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난 그림을 무슨 상징 따위를 갖고 그리진 않습니다.

이미지에 대한 명백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런 이미지들에 난 늘 끌립니다.
만일 그 이미지가 하나의 상징으로 귀결된다면,,,
그건 더이상 예술이 아닙니다.. 단지 일러스트일 뿐이죠,"


- 벡신스키 -


사춘기 내내 2차대전을 겪었다는 작가, 그 탓일까. 그의 작품 세계는 온통 그로테스크한 부조리와 우울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1984년 作으로 "영원한 사랑"을 의미한다는데 그의 작품은 제목이 없는 게 특징이다.(모든 작품명은 untitled임), 몸이 바스러지도록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저 해골은 남과 여의 이룰 길 없는 절절한 고독감을 그려내는 듯하다. 이러한 백신스키의 은유법은 대부분 삶의 단조로움을 표현한 것이며, 그가 나타낸 에로틱한 꿈과 상상력의 세계는 '환시 미술'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구축하였다.

이미지에 대한 명백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예술을 함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자세인 것 같습니다. 이미지를 유동적인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는 것이 예술가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이미지가 하나의 상징으로 귀결된다면 독자의 '마음대로 해석하기'의 권한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의미의 강요가 되고 마는 것이겠지요. 비단 예술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에 있어서도 하나의 뜻으로만 해석되는 것들은 거의 없습니다. 오차허용범위를 넓게 잡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변화에 대한 지혜로운 대처라는 생각이 듭니다.





You needed me - Boyz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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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벡신스키, 죽음을 넘어서는 환상
    죽음과 에로티즘이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있는 벡신스키(1929-)의 
    그림(1984·그의 작품들은 이름이 없다)은 죽음이 우리에게 
    에로티즘의 경로를 통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주는 사례다. 
    그동안 벡신스키는 소수의 회화과 학생들과 환타지 매니아들이 몰려든 처소였다. 
    벡신스키의 작품에선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가 들린다. 
    루마니아 출신 유태인 시인 첼란과 이 폴란드 출신 화가의 젊은 날에 
    바쳐진 청춘의 송가는 2차 대전의 포성이었다. 
    독가스에 얹힌 '죽음의 푸가' 선율을 붓의 터치로 바꾼다면 
    그것이 벡신스키의 작품이 될 것이다. 
    '죽음의 푸가'가 나치 장교로 짐작되는 살해자의 연애편지와 유태인들이 맡는 
    독가스의 선율 을 교차시키는 푸가의 기법을 통해 죽음을 연주한다면 
    벡신스키는 죽음을 뚫고 일어서는 에로티즘의 앙상한 힘을 단선율로 보여주고 있다. 
    단조로운 톤으로 그려진 황량한 배경. 한 쌍의 남녀가 와락 서로를 껴안고 있다. 
    이들의 몸은 몰골이라고 해야 옳을 처참한 육체다. 
    헐벗은 등뼈에 의지해 벌거벗은 남녀가 서로를 품고 앉아 있다. 
    불거져나온 뼈, 뒤통수와 가느다란 팔 다리에서 화석처럼 굳은 실핏줄, 
    해부학교실에서 불려나온듯한 민머리는 시체와의 구별을 허용하지 않는다. 
    건드리면 와르르 먼지를 흩날리며 무너져내릴 것같은 이들의 육체는 
    보는 이의 눈을 거칠게 뚫고 들어온다. 
    그러나 이들의 포옹은 너무 격렬해 서로를 감싸고 있는 손들은 마치 서로의 
    육체 안으로 뚫고 들어가는 것만 같다. 
    남자의 목을 감싼 여자의 가느다란 손은 남자의 살 속으로 파고들 듯 
    억세게 남자의 몸을 움켜쥐고 있다. 
    골격만 남은 이들의 육체는 서로를 빈틈없이 껴안고 있다. 
    작품에서는 서로의 육체를 향해 온몸으로 밀고 들어가는 뜨거운 체온이 느껴진다. 
    이들의 허리, 엉덩이, 허벅지와 배가 밀착되어 이룬 에로틱한 곡선을 보라. 
    크라코프나 아우슈비츠 수용소 또는 시체공시소에서나 나옴직한 이 기괴한 한쌍은 
    죽음을 뚫고 일어서는 에로티즘을 소름끼치게 보여준다. 
    기괴하고 왜곡된 육체를 통해 작가는 삶과 죽음이 지나가는 
    장소로서의 육체에 주목하게 한다. 
    죽음은 벌써 그들을 관통했을 것 같은데, 이들의 에로티즘은 
    살아있는 이들의 에로티즘보다 더 뜨거워 보인다. 
    - 문학평론가 이종도님의 글의 일부입니다. 
    
출처 : Artist 엄 옥 경
글쓴이 : 스카이블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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