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후기인상파의 대가이자 서로 둘도 없는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고흐(1853-1890)와 고갱(1848-1903)에 대해 이야기해볼까한다.
※ 인상파 미술 : 자연을 하나의 색채 현상으로 보고 빛과 함께 색의 미묘한 변화를 순간 포착하여
주관적인 감각의 반영에 전념했던 인상파 미술은 1860년 구성된 이후 주로 파리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1888년 2월, 고흐는 파리에서 프랑스 남부의 아를(Arles)지방으로 옮겨가게 된다.
고흐는 이 곳에 일종의 예술가 마을을 세우고 싶어했으며, 그의 동생 테오 역시 형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테오는 폴 고갱에게 아를에 있는 고흐의 집을 함께 쓰도록 설득했다.
고흐는 아를의 작업실에서 고갱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고갱이 묵을 방을
해바라기가 그려진 연작으로 꾸며놓을 결심을 하게 된다.
고흐가 해바라기를 선택한 것은 어디까지나 꽃의 색깔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노란색은 우정을 상징하는 색이었으며,
고흐는 최대한 고갱을 환영하는 분위기로 그의 작업실을 장식하고 싶었던 것이다.
Vincent van Gogh, Sunflowers, 1888,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London)
당시 이 그림(고흐의 '해바라기')을 본 고갱은 매우 감동받았다.
고갱은 답례로 작업 중인 고흐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스케치 몇 점과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중 하나를 맞바꾸고자 했다.
Paul Gauguin,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 1888, oil on canvas
고흐가 들고 있는 붓은 가느다랗게 그려졌으며, 해바라기는 시들어 있다.
게다가 그림의 시점이 고갱이 스스로를 높이고 고흐를 낮추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러한 고갱의 의도를 눈치챈 고흐는 고갱에게 묻는다.
"이것이 나인가? "
"그래, 자네 아니면 누구겠는가? "
"이것이 분명 나라면 제 정신이 아닌 나로군"
"나는 해바라기를 열심히 그리는 자네에게 경의를 표하느라고 그린 것일세"
하지만 이런 두 사람의 진한 우정의 관계는 같은 아틀리에에서 지낸지 2달만에 끝이 난다.
고흐에게 있어 고갱과의 새로운 생활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었지만,
고갱은 고흐와의 생활을 오로지 돈! 사업상의 합의 정도로 여겼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의견충돌로 인해 자주 다투었고, 같은 해 12월 널리 알려진바와 같이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발작으로 우정을 끝낸다.
같은 인상주의 화가였지만 고흐와 고갱은 처음부터 각자의 개성이 전혀 달랐다.
고갱은 중산층의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화가라는 직업을 뒤늦게 택하면서
강렬한 색채와 보이는 것 이상의 상상과 내면성을 함께 그려내는 구성을 발전시킨 화가였다.
반면 고흐는 고갱보다 다섯 살 아래로서 과묵한 고갱에 비해 말도 많고
작품 제작 속도도 두 배는 빨랐으며 점과 선의 흐름과 순간 포착에 강한 화가였다.
이러한 두 사람의 개성 차이는 그들이 같은 장소에서 그린 회화를 통해
겹치면서도 다른, 독자적인 화풍을 비교해 볼 수 있다.
1988년 11월 고흐, <아를의 여인> 91.4cm *73.7cm,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1988년 11월 고갱, <아를의 밤의 카페 - 지누부인의 초상화> 73cm *92cm, 모스크바 푸슈킨 미술관
똑같은 모델을 그렸지만 느낌은 전혀 다르다.
그림속의 여인은 고흐가 처음 아를에 왔을 때 묵었던 라가르 카페의 주인인 지누 부인이다.
고흐는 자신이 이 곳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지누부인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고흐는 지누 부인에게 자신의 그림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했고, 그녀는 흥쾌히 허락했다.
아무것도 없는 탁자위에 포즈를 취한 지누 부인옆에 고흐는 책 몇 권을 가져와 놓고 그림을 그려내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던 고갱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술집 여자와 책은 전혀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했다.
고갱이 그려낸 지누 부인앞은 싸구려 압생트 술병이 자리잡고 있으며 뒤 쪽으로는
고흐가 평소 좋아하던 우체부 조셉 룰랭과 손님(고갱은 창녀라고 표현했다)들이 그려져있다.
고갱은 평소 고흐가 좋아하던 사람들을 창녀와 타락한 인물들로 그려냄으로써
스스로의 인격을 드러내게 되었고, 이로써 두 사람의 우정이 본격적으로 갈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Vincent van Gogh, 우체부 조셉 룰랭, 1889, oil on canvas
개인적으로 고흐가 더 좋다, 착하다. 라고 말하고 싶진않지만
불순한 의도와 감정이입을 그림으로 표출하여 공격한 고갱은
그다지 신사적이지 못한 화가가 아니었나싶다.
고갱과의 갈등이 많았던 시기여서였을까.
1888년은 고흐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된다.
당시 고흐가 앓았던 병은 간질로 알려졌는데 고흐는 극심한 환각과 공격적 성향,
심한 우울증을 동반한 경련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가 사망한 후에 의사들은 여러 원인들을 알아냈지만 확실하게 어떠한 진단도 정확히 밝혀내기 못했으며,
한 전문가가 인용한 대로 고흐의 병은 그의 예술만큼이나 독특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반 고흐의 일생 중 예술가로서 가장 풍성한 작품을 남겼던 기간은
그 자신이 정신적인 좌절과 붕괴를 겪었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러한 고흐가 겪었던 정신적 불안정은 오늘 날 우리에게 있어,
창조성을 위한 한 고독한 화가의 위대한 희생이라 여기고 싶다.
자료 출처 : 네이버 두근두근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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