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그림 이야기

[스크랩] 미니멀리즘

영원한 울트라 2008. 2. 27. 13:56
극도로 단순한 형태의 표현과 즉자적·객관적인 접근을 특징으로 한다.
ABC 아트라고도 불리는 미니멀 아트는 러시아의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흰색 바탕에 검은색 4각형을 그린 구성(1913)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던 현대미술의 환원주의적 경향이 절정에 이른 것이다.
 

 Suprematism - Self-Portrait in Two Dimensions, 1915

 

미니멀리즘 조각가 도널드 저드, 카를 안드레, 댄 플레빈, 토니 스미스, 앤소니 카로, 솔 레위트, 존 매크래컨, 크레이그 코프먼, 로버트 듀런, 로버트 모리스 등의 프라이머리 스트럭처(최소한의 조형수단으로 제작되는 조각)와 잭 영거먼, 엘스워스 켈리, 프랭크 스텔라, 케니스 놀런드, 알 헬드, 진 데이비스 등의 하드에지 회화(hard-edge painting:기하학적 도형과 선명한 윤곽의 추상회화)는 1950년대 전반을 통해 미국의 전위미술을 지배했던 직관적·자발적인 행위를 바탕으로 하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의 한 부류인 액션 페인팅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다(→ 조각).
액션 페인팅이 너무 개인적이고 비실체적이라고 믿는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예술작품에는 그 자체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주장했다. 평면성을 강조하고 보는 사람의 직접적이고 순수한 시각적 반응을 위해서 회화적 접근보다는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형태와 선을 사용했다(→ 회화).
그들은 추상표현주의의 색면 추상화가인 바넷 뉴먼과 애드 라인하르트의 침착하고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하드에지 회화는 평평한 표면에 크고 단순화된 기하학적인 형태, 정확하고 날카로운 윤곽, 밑칠하지 않은 캔버스에 원색을 직접 사용하는 것 등이 특징이다.
그것은 서정적이거나 수학적인 구성도 화가의 개인적 표현이 되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기하학적 추상과 구별된다.
하드에지 회화는 간단한 물체의 익명적인 구조이다. 미니멀 조각은 유리섬유나 플라스틱·판금(板金)·알루미늄 등을 원상태 그대로 두거나 그 표면에 원색의 공업용 물감을 고르게 채색한 극도로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미니멀 조각가들도 완전히 객관적이며 비표현적인 작품을 시도했다.
미니멀리즘은 에릭 사티의 음악과 존 케이지의 미학과 함께 미니멀 음악에도 뚜렷한 영향을 주었다(→ 서양음악사).
현대 음악의 복잡하면서도 지적으로 지나치게 세련된 양식에 반발하여 여러 작곡가들이 단순하고 즉자적 양식으로 작곡하여
극도로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라 몬트 영은 약간의 음조를 발생시키면 그것을 전자로 며칠이나 몇 주일 동안 한결같이 유지시켜주는 수많은 전자 〈연속진동환경 continuous frequency environments〉을 작곡했다.
그는 이 음조에 거의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고 세련된 변주를 없앴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턴 펠드먼도 변주를 없애려고 했는데
그의 작품은 천천히 이어지는 일련의 서로 무관한 부드러운 소리를 통해 혁신적인 악기의 음색을 탐색했다.
다른 일단의 작곡가인 필립 글래스, 스티브 라이크, 코넬리우스 카듀, 프레더릭 레즈위스키 등은 인도와 발리, 서아프리카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매우 반복되는 자신들의 음악에 단순한 유형의 화성과 선율을 사용했다.
음악과 시각예술 두 분야에서 미니멀리즘은 예술형태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를 탐구하려는 시도였다. 시각예술에 있어서의 미니멀리즘은 회화와 조각의 순수한 객관적·시각적 요소만을 드러내기 위해 개인적이고 행위적인 요소를 제거했다. 음악에 있어서는 대체로 서구의 청중에게는 낯선 음악적 요소인 음색과 리듬을 탐구하기 위해 형식과 전개에 대한 전통적인 방법을 거부했다.
 
한국의 미니멀리즘
서구의 미니멀리즘이 한국 미술에서 변형된 모양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성격규정에 있어 강한 논리성을 띠고 대두한 이 경향의 미술은 흔히 단색회화(모노크롬 회화)라고 불린다.
서구의 경우는 미니멀리즘의 개념·해석·평가를 놓고 열띤 비평적 논쟁이 있어왔으나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크게 부족한 실정이었다.
1970년대 들어와 아카데미즘의 아성인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권위도 상당히 퇴색했고 한국 현대미술이 국제미술의 무대로 진출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전후의 표현주의적 추상미술의 기반을 형성했던 앙포르멜 미학의 청산이 숨가쁘게 이루어졌고 각종 실험성이 강한 미술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서구 미니멀리즘 미술의 형식과 논리를 변형시킨 한국 모노크롬 회화가 나타났다. 한국의 모노크롬 미술이 처음 대두한 것은 1975년 동경화랑이 기획한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전'(권영우·박서보·서승원·이동엽·허황)이 개최되면서부터이다.
일본 전시는 미니멀리즘의 일본적 해석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의 '모노파'와 형식적으로나 논리상으로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개 모노크롬 화가들은 그리는 행위와 평면의 관계, 표면의 변화과정 등에 주목하면서 화면의 무표정·비활성·무생명·중성·무질서 등을 추구했다.
 
 
 

 遺傳質

 

선묘와 한지를 이용하는 박서보는 그린다는 행위의 원초적 궤적과 그 행위가 이루어지는 바탕과의 일치를 추구하며 한지 표면의 변화에 주목했다. 윤형근은 화면을 갈색조의 변화로 이루어진 넓은 색면으로 다루면서 염색하듯이 물감이 스며드는 과정을 드러내보였다.
권영우는 화선지에 구멍을 뚫거나 찍는 방식으로 행위의 우발성과 표면의 현상변화를 연결시켰다.
정상화는 캔버스에 부착된 백색의 한지를 작은 4각형으로 일정하게 분할·반복했다.
또한 김기린은 무거운 침묵의 단색조로 화면을 지배하며 물감과 화면의 일치를 도모했다.
이러한 특징들은 전반적으로 인위성이 최대한 배제된 상태에서 주객합일의 경지를 보여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단색의 화면이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소박함과 단아함을 두고서 일부 평론가들은 '한국적 자연주의 심성이 현대적 어법으로 승화된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 대해 '한국적 미감에 대한 편협하고 유치한 발상에서 빚어진 논리'라는 비판이 맞서기도 했다. 모노크롬 회화는 1970년대말로 접어들면서 양식의 획일화, 몰개성적 집단주의, 논리의 독단성 등을 드러내 화단 전체를 경직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다.
 
 
출처 : Artist 엄 옥 경
글쓴이 : 스카이블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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