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딘 붓이 총명함을 이긴다(鈍筆勝聰)고 하지 않습니까. 중국에 대한 착실한 기록 축적이 필요합니다.” 종합부동산개발업체인 프라임그룹의 임수영(林修永·사진) 중국 사장의 말이다. 상하이 한국상회 회장이기도 한 임 사장은 1992년 수교 이후 지금까지 줄곧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중국 전문가다. 대상그룹 중국 본부장을 거쳐 지난해 프라임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중국인들의 중요한 협상 무기 중 하나로 ‘철저한 기록에 의한 치밀한 사전 준비’를 꼽는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 한 토막. 최근 이명박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방한한 중국의 한 단체가 한국의 한 원로 국회의원을 만났다. 이들은 놀랍게도 한국 의원이 10여 년 전 중국을 방문했을 때 발언한 기록을 갖고 왔다. 이들은 또 이 대통령이 과거 현대건설 근무 시절 정주영 회장과 함께 중국을 방문했을 때 정 회장이 쓴 글 또한 챙겨 왔다. 한·중 친분을 강조하기 위해 준비한 것임은 물론이다.
임 사장은 비슷한 경우가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곧잘 발생한다고 말한다. 비즈니스 미팅 내용은 중국인들에 의해 꼼꼼히 기록돼 훗날 상대의 말이 달라질 경우, 이를 바로 잡는 압박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기록이 있으니 두말할 수가 없다. 또 적당히 둘러대는 말도 중국 기업인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한국 측 파트너가 하는 변명이 맞는가를 뒷조사한다. 맞지 않다는 결과가 나올 경우 ‘신의가 없는 것’으로 여겨져 더 이상의 거래는 없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 기업인들은 중국에서 보고 들은 것을 인천공항에 내리는 순간 다 잊어먹기 일쑤”라고 임 사장은 꼬집는다. 기록을 하지 않은 데 따른 결과란 것이다. 중국 파트너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적고 사전 준비 또한 소홀하다 보니 한 시간 미팅을 잡아놓아도 15분을 넘기지 못한 채 대화 재료가 부족해 쩔쩔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중국인의 꼼꼼한 기록 문화는 미 CIA의 연구보고서로 1994년 세상에 알려진 ‘중국인의 교섭술’에도 잘 소개돼 있다. 중국인들이 과거의 교섭 기록을 모두 마스터하고 협상장에 나오는 바람에 미국 측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내용이다.
유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