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크림트(The kiss serpents1)1862~1918
구스타프 크림트는 1862년 7월 14일,오스트리아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나서 1918년 사망. 1905년 크림트의 탈퇴로 처음과 같은 생명력은 상실되었으나. 크림트의 특이한 색채, 공간구성은 그후...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와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1980)와 같은본격적인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전수되었다.크림트 예술의 큰 특징은세밀하고 아름다운 장식성과 여성의 이미지 표출이며. 크림트 작품의 특징인 수직으로 중심을 가르는 인물,골격이 튀어나오는 마른 몸매와 비틀린 자세... 장식적인 배경을 기본으로 하고있다.
황금빛의 화려한 화면과 장식성. 클림트의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은 화폭에 담겨진 화려함에 금새 매혹되고 만다. 세기말과 세기초, 낡은 전통과 새로운 도전이 혼재된 이 시기에 클림트는 벌거벗은 여성들을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킨 화가였다.
일상의 단조로움을 파괴하고자 비엔나 분리파의 선구자를 자처하며 시대정신을 대변했던 클림트. 후기 상징주의 회화의 대표 화가가 뭉크라면 구스타프 클림트는 전혀 다른 양상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상징주의는 모더니즘의 선구이자 제1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유럽 문명의 마지막 꽃이었다. 그리고 클림트의 상징주의적인 요소는 이 같은 시대적인 흐름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1862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빈의 근교였던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난 클림트는 극심한 빈곤에 허덕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데생 솜씨를 눈여겨 보았던 친척의 도움으로 그는 미술의 길에 들어선다.
스물 한살이 되던 해부터 화가로서의 명성을 구축해 나갔지만, 상징주의적인 요소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서른 살이 될 무렵이었다. 이 때부터 그의 작품은 강렬한 느낌을 자아내며 관객들을 사로잡기 시작한다.
클림트의 작품에는 유난히 많은 여성이 등장한다. 그리고 클림트에 의해 표현된 여성상은 ‘요부'인 동시에 ‘어머니'라는 대조적인 상징성을 동시에 부여한다. 이는 클림트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었던 어머니에 대한 고착 현상과 여성을 통한 시대정신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당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 가던 분위기에서 그는 여성들이 발휘하게 될 엄청난 힘을 미리 예견하면서, 작품 속에서 남성의 파경을 그렸던 것이다. 하지만 클림트는 외설과 퇴폐적인 요소로 당대의 전통 화단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특히 빈 대학의 천장화가 많은 논란이 되었지만, 그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그려 나갔다.
이후 보수적인 미술 집단이었던 ‘쿤스틀러하우스 Kunstler-haus(미술가의 집)'의 회원이었던 클림트는 그 동안 화가들에 의해 제작되어져 왔던 작품들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고 이후 비엔나 분리파를 주도적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분리파의 목적은 미술과 삶의 상호작용을 이룩하는 것에 있었다. 대중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낡고 판에 박힌 사상에 의존하지 않는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그는 <철학>, <법학>, <의학> 등의 작품으로 당시 충격을 주며 논쟁을 일으켰다.
클림트를 비롯한 분리파의 화가들의 가장 큰 특징은 풍부한 장식성에 있다. 당시 도형미술을 비롯한 의복, 건축 등 모든 분야를 휩쓸며 유행했던 정사각형은 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클림트 역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자신의 작품에 사용한 중요한 화면상의 규칙이 바로 정사각형이었다.
클림트는 정사각형 속에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 넣는 일 뿐만 아니라, 정사각형 자체의 이미지를 여러 가지로 변형하여 시도하기도 했다.황금색의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구성. 클림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 같은 장식성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클림트가 미술교육을 받았던 응용미술학교의 자연스러운 영향도 있었지만, 이는 당시의 유행하던 미술사조인 아르누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또한 클림트의 작품에서는 자연스러운 공간성의 파괴를 목격하게 되는데 이는 물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범하게 된 오류였다. 장식성을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클림트는 상징주의적인 요소를 배제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에서 발산하는 창조적인 힘은 지극히 파괴적인 힘을 갖고 있었다.
♪팝페라 임형주---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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