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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바뀌는 비리의 정의

영원한 울트라 2010. 8. 29. 10:30

우리 사회가 10여년간 쌓아온 고위 공직자의 도덕기준을 여권이 '8·8 개각'의 인사청문회에서 허물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2000년 국회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된 후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논문표절 등 과거 부적격 공직 후보자들을 걸렀던 잣대와 문턱이 무너지거나 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과거 정부와 현 정부의 집권 전반기에도 많은 고위 공직자나 공직 후보자들이 도덕적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낙마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주양자 보건복지부 장관은 일가족의 위장전입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취임 3일 만에 물러났다.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된 이후 부적격 공직자들의 낙마는 더 빈번해졌다. 2002년 사상 첫 여성총리로 발탁된 장상 당시 이화여대 총장은 위장전입 의혹 등으로 국회 본회의 인준에서 부결됐다. 한 달 뒤 총리로 지명된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사장도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당시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인준 반대를 주도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이기준 교육부총리는 세금탈루 의혹 등이 드러나면서 2005년 1월 취임 3일 만에 물러났다. 두 달 뒤에는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부인의 20년 전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돼 옷을 벗었고, 강동석 건교부 장관과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도 위장전입 의혹이 불거져 사퇴했다. 2006년 8월엔 '노무현의 남자'로 불렸던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논문 표절 및 중복게재 문제에 휩싸이면서 취임 13일 만에 물러났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부적격 공직 후보자'를 걸러내는 기준이 크게 완화됐다. 당장 여권은 자신들이 야당 때 다수 공직자들을 몰아냈던 위장전입과 관련, "자녀교육 목적이라면 수용할 수 있다"고 물러섰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김성이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김병준 전 부총리를 낙마시켰던' 논문 중복게재를 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임명을 강행했다. '8·8 개각'으로 임명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후보자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시절 논문 중복게재·자기표절 등이 나왔지만, 여권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정운찬 전 총리도 병역기피와 위장전입 의혹을 받았지만 임명됐다.

물론 현 정부 초반에 남주홍 통일부 장관, 이춘호 여성부 장관,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와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낙마한 전례가 있다. 이들의 허물은 '자녀 이중국적, 부동산 투기, 탈세, 부적절한 대북관'(남주홍 후보자) '부동산 투기, 부동산 과다보유 및 축소신고'(이춘호 후보자)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논문표절'(박은경 후보자) '스폰서와의 해외골프 여행, 위장전입'(천성관 후보자) 등 덮고 지나갈 수 없는 수준이었다. 모두 지금처럼 버티지 못하고 인사청문회 전후에 자진사퇴의 길을 택한 경우였다.

더 큰 문제는 여권의 행태가 미치는 악영향이다. '이중 잣대'라는 기술적·정치적 비판을 넘어,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낮추고 준법의식을 와해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대 교수는 "한나라당이 야당일 때 위장전입 하나만으로도 여러 후보들을 낙마시킨 경험이 있다. 야당에서 여당이 됐다고 바람직한 공직자의 기준이 바뀌느냐고 묻고 싶다"면서 "정부 리더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데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