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계에 이른 스트레스
과도한 업무 비해 연봉 불만
강압적 상하관계까지 겹쳐
88% "출근하기 정말 싫다"
경북 구미공단 인근의 M정신과는 10년 전만 해도 하루에 30여명의 환자를 상담했으나 최근에는 무려 80여명을 본다. 하루 내원 환자 수가 전국 최다 수준이어서 보건복지부가 허위 청구가 아닌지 감사를 나왔을 정도다. 이곳을 찾아오는 환자는 국내 유수의 전자 · 화학 · 섬유회사에 다니는 사무 · 관리 · 연구직과 생산직이 반반씩.직무에 상관없이 스트레스가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기 직전인 2007년 말 '태풍 전야'처럼 구미공단에 생산 물량이 줄고 대거 감원 바람이 불면서 환자 수가 급증했다는 게 이곳 전문의의 설명이다.
그나마 이처럼 드러내놓고 정신과를 다닐 수 있으면 다행이다. K화학회사 마케팅팀에 근무하는 조모 과장(37)은 요즘 토요일마다 경기 과천에 있는 정신과를 찾는다. 조울증 치료를 위해서다. 서울에 사는 그가 일부러 과천으로 가는 것은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서다. 그럼에도 매주 병원을 찾을 때마다 혹시 회사 동료를 만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는 상사와의 갈등과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감정 기복을 경험하고 있다. 동료들조차 요즘 그를 보면 이상하다고 말할 정도다. 사내 상담실이 있지만 괜한 소문만 날까봐 찾아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현재는 전문의의 상담치료만 받고 있지만 좀 더 상황이 악화되면 약물 치료까지 받을 생각이다. 조 과장은 "모두 쉬쉬하지만 생각보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동료가 많다"며 "겉으로 봐선 남 부러울 것 없어보이는 모 부서 팀장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얘기에 놀랐다"고 말했다.
◆직장 내 독버섯 우울증
한국 직장인 사회에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이 암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근본적인 요인은 하루의 3분의 2를 직장에서 보내고 세계 최장의 근로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의 근무 환경 탓이다. 한국의 상시 근로자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2008년 기준 2256시간이다. 2005년 이후 점차 줄어드는 추세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764시간(2008년)에 비하면 여전히 길다. 또 과중한 업무량은 야근과 잔업의 일상화로 나타나 마음을 되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과 교수는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1.5명(2006년)으로 OECD 회원국 중 헝가리 다음으로 높다"며 "OECD 최장 근로시간은 우울증 만연 등 최악의 스트레스를 거쳐 최고 수준의 자살률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우울증 환자 수와 진료비 증가 추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2005년 43만5000명에서 지난해 50만8000명으로,진료비는 1213억원에서 1788억원으로 각각 연평균 4.0%,10.4% 늘었다. 또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이 전국 12개 병원에서 18세 이상 성인 남녀 65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5.2%가 평생 동안 한번이라도 자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고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3.2%에 달했다.
◆경쟁의식과 스트레스가 원인
체면을 중시하고 남과 비교해서 뒤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경쟁의식도 스트레스를 발생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공포가 항시적으로 감도는 가운데 승진 경쟁,연봉제 등이 직장인의 정신건강은 물론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 노력 대비 낮은 보상,강압적인 상하 관계,보육의 어려움과 과도한 교육열,업무의 지나친 정보기술(IT)화로 인한 테크노 스트레스가 직장인의 마음을 상하게 만든다.
잡코리아(www.jobkorea.co.kr)가 최근 직장인 917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조직 피로도'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87.8%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심리적,신체적 이상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으로는 '과도한 업무량'(34.5%)을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이어 회사의 일관적이지 않은 정책(18.5%),무책임한 상사(13.0%),과도한 성과 창출 요구(11.3%),창의적 아이디어에 대한 부담(11.3%) 등의 순이었다. 이 때문에 거의 매일 아침 출근하기 싫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직장인도 25.6%로 4명 중 1명꼴이었다.
우 교수는 "웰빙상품 매출이 가파르게 오르고 요가 · 명상 학원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우울증 발병과 자살 건수가 급증하는 것은 직장인의 마음이 경쟁과 정보의 홍수에 피폐해졌다는 증거"라며 "조직 차원은 물론 임직원 스스로 정신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 우울증 (우울장애)
매사에 의욕을 잃고 말수나 행동,인지력이 떨어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정신질환의 하나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할 때 많이 생기며,생리학적으로는 뇌 내 신경전달물질 이상(세로토닌 도파민 아드레날린 등의 부족)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불행한 사건으로 유발되는 일시적인 우울감과는 다르며 생활습관 개선,상담 ·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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