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요즘세상!

소개팅이 두렵다

영원한 울트라 2010. 10. 12. 12:01

SNS 신드롬

사생활을 보호하라
모니터 화면은 업무관련 설정…투명 대화창은 기본 중의 기본

나도 신세대였는데…
디카·MP3 얼리어답터였지만 트위터 등장하면서 구세대 전락

입력: 2010-10-11 17:28 / 수정: 2010-10-12 05:08



"내가 정상인지,중독인지 솔직히 헷갈리죠."

직장인 9년차 김 과장.그는 요즘 '무엇에 홀린 듯한'느낌을 자주 받는다. 뒤늦게 폭발한 이른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본능' 때문이다. SNS로 하루를 시작하고,SNS로 하루를 마감하는 게 그의 요즘 일과다. 컴퓨터를 켜면 '학교가기'가 시작된다. '두두둥' 동시에 떠오른 MSN 네이트온 미스리 FN 등 각종 메신저에 아침인사를 남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체크도 필수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관리도 잊지 않는다. 최근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시작한 카카오톡은 벌써 광팬이 됐다. 전화번호부에만 있었지만 자주 연락하지 않던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관리를 할 수 있어서다. 업무에 지장이 없다는 건 거짓말임을 스스로도 인정한다.

◆기술이 소통을 만든다

SNS가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사람 사귀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이성친구가 특히 그렇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P대리(30)는 예전에는 소개팅을 나가기 전 상대방 뒷조사를 위해 미니홈피를 뒤졌다. 그러나 동명이인도 많고 프로필 사진을 설정해놓지 않거나 일촌공개로 제한해 둘 경우 사진을 캐내기가 어려웠다. 카카오톡은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줬다. 스마트폰을 지급하는 회사가 많아지면서 카카오톡을 사용하는 직장인도 많아졌기 때문.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해 스마트폰에 저장해두면 바로 친구 등록이 된다. 대부분 프로필에 얼굴 사진도 올려 놓는다. 따라서 품을 들이지 않고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문자보다는 부담이 없어 소개팅을 하기 전 먼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P대리는 "부작용을 굳이 따지자면,얼굴이 쉽게 공개된다는 점"이라며 "올려놓은 얼굴이 영 아닌 데다,재미까지 없으면 소개팅에 나갈 의욕이 싹 사라진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배문수 대리(29)는 카카오톡 덕분에 옛사랑을 찾은 케이스다. 3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의 전화번호 목록이 사진과 함께 자신의 스마트폰에 뜬 것.옛 여자친구가 카카오톡 친구 추천에 올라온 걸 보니 그녀가 아직도 배 대리 전화번호를 지우지 않은 게 분명했다. 아직 미혼인 배 대리는 "조만간 옛 여자친구에게 메시지를 남겨볼 생각에 설렌다"며 "스마트폰이 옛 여자친구의 흔적을 찾게 해줄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생활 보호 진기명기

문제는 중독성이다. 일할 시간을 빼앗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기업 전자회사에 다니는 김모씨(30)는 하루에 5시간 이상을 트위터에 쓴다. 인터넷에 접속해 있을 때는 구글 크롬을 이용해 자동으로 타임라인이 업데이트되는 PB트위트 등을 활용한다. 자리를 뜬 경우에도 스마트폰으로 쉴 새 없이 트위트를 체크한다. 김씨는 "업무에 30분 정도 집중하고 있다가도 어느 새 트위터 친구들이 내게 보낸 메시지(멘션)를 확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며 "전화비가 수십만원씩 나오면서도 끊을 수 없었던 옛날 PC통신과 비슷한 중독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메신저족에게 보안은 생명이다. 자신만의 은밀한 세계를 들키지 않고,언제 어디서나 '유비쿼터스'로 즐기기 위한 안전장치다. 필요는 진화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중견기업 총무과 직원 하상태 과장(33)이 쓰는 무기가 바로 투명창 기능.창의 투명도를 가장 높게 설정해두면 메신저를 한다는 사실을 상사나 동료가 쉽게 눈치채기 어렵다. 아무것도 없는 화면을 보고 낄낄 거리는 모습을 자주 연출해 '사내 이미지'가 구겨지는 것이 단점 중 하나다. 하씨는 "친구와 한창 모 팀장을 씹으면서 킥킥 거리는데,그 상사가 다가와 '재미있는 거면 같이 보지?'라고 화면을 들여다 보는 바람에 식은땀을 흘렸다"며 "다행히 못 알아보는 눈치였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상사는 대부분 불청객이다. 때론 갈등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L대리(31)의 SNS 이용 철칙은 상사와는 일촌 혹은 친구를 맺지 않는 것.어느 날 꽤 친한 Y과장(37)이 일촌을 맺자고 쪽지를 보내왔다. L대리는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정중하게 "회사 사람들과는 일촌을 맺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그랬더는 그 상사는 회식할 때마다 서운함을 두고 두고 표시했다.


◆세대 속 세대차이?

SNS는 같은 세대 내에서 세대를 가르곤 한다. SNS를 하느냐가 곧 기준이다. 나이든 사람은 '그러려니'하지만 젊은 사람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돌아온다. 국내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김모 과장은 올해 36살이다. 94학번인 그는 대학시절 '신세대','X세대'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2000년대를 전후해 인터넷이 전면 보급하기 시작할 때도 그는 '얼리어답터'축에 속했다. 하지만 김 과장은 최근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부터는 '구세대'로 취급받는다. 이로 인해 스트레스도 심하다.

◆SNS 뜰수록 회의는 삭막해지고

SNS는 회의 분위기까지 바꾸기도 한다. W과장(38)은 "SNS가 보편화되면서 직원들 간 대화가 줄어든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는다. W과장이 다니는 회사는 몇 달 전 갤럭시S를 전 직원에게 지급했다. 회의실 풍경이 달라진 게 그때부터다. 예전에는 타 부서와 회의를 하는 경우 조금 일찍 도착하는 사람들은 먼저 온 사람들끼리 대화도 나눴지만 이제는 스마트폰만 쳐다본다. W과장은 "온라인과 모바일 상에서 관계가 강화되는 것은 좋지만 회사 내에서 사람 냄새 나는 관계는 약해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카카오톡의 푸시 기능도 가끔 문제가 된다. 카카오톡에 푸시 기능을 설정하면 문자가 울리듯 채팅 메시지가 올 때마다 알림 메시지가 뜬다. N대리(28)의 경우 회의 시간에 카카오톡 진동이 격렬하게 울려 핀잔을 들었다. 회의 직전 친한 친구들이 만든 채팅방에 초대를 받아 접속했는데,이후 사람들이 몇 마디만 해도 '드르륵 드르륵' 거렸기 때문.처음 진동이 한번 울렸을 땐 '문자려니'했지만 이후 친구들의 답변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조용한 회의실에 드르륵 드르륵 진동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결국 타 부서 팀장이 "뭐야 그게?!"라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N대리는 휴대폰 전원을 꺼버려야 했다.

▶이 기사는 독자 kgb222님의 아이디어 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이관우/이정호/김동윤/이상은/이고운/강유현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