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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미화씨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건 KBS가 2010년 11월 9일 고소를 취하했다고 한다. 이것으로 김미화씨 ‘블랙리스트 발언’ 사건은 일단락됐다고 모두들 안도하는 분위기다. 김미화씨도 “고소 취하가 이뤄진 만큼 향후 이번 일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기를 바란다. 긴 시간 내가 힘들어 할 때마다 용기주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드린다”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심정을 밝혔다.
KBS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7월 ‘KBS 출연 블랙리스트’ 발언을 한 김미화씨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를 취하한다고 밝힌 이유에 대해, “KBS에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판단했고, 대승적 차원에서 고소를 취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KBS의 보도 자료 전문에 어떤 식으로 정리했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않았지만 고소취하의 이유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라는 주장은 매우 자의적이라 공감하기 쉽지않다. 이번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 되겠지만 KBS 등 언론기관 종사자나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문제점들을 제기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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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화씨가 지난 8월 영등포 경찰서에 두 번째로 출두하면서, 기자들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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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우선적인 문제로 언론기관이 트위터, 블로거 등 소셜 미디어 이용자로부터 문제제기, 비판 등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KBS는 김미화씨의 블랙리스트 발언에 대한 진위를 묻는 내용에 대해 두 가지로 대응했다. 먼저 전파력에서 비교가 되지않는 KBS 공중파 방송을 통해 ‘대응 및 비판 보도’ 형식으로 반격했다. 이것으로 부족하다고 판단해서인지 그 다음 단계로 다시 형사고소를 했다.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할 대표적 언론기관이 소송에 나선다는 것은 자칫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위태롭게 할 위험성이 높다. 그래서 법원에서는 소위 ‘무기대등의 원칙’차원에서 언론사간 비판, 비난성 보도에 대해서 가급적 법적 책임을 묻지않는 편이다. 상호 무기를 대등하게 동원하여 얼마든지 반론, 재반론 등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KBS는 영향력에서 비교가 되지않는 정규방송을 통해 일개 트위터에 대해 과잉대응을 했다고 할만큼 충분히 반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소송으로 가더라도 KBS가 이기기 힘든 법리가 되는 셈이다. 처음부터 언론기관이 무리한 형사고소를 한 것으로 판단했고 이 소송은 끝까지 가봐야 승산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예상대로 KBS는 도중에 고소를 취하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김미화씨는 수사기관에 수차례에 걸쳐 출두하여 조사받는 인간적 아픔과 고초를 겪었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KBS에 블랙리스트’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주장하는 쪽은 사실상 ‘KBS'만이 외롭게 목소리를 높였다. 대신에 KBS 블랙리스트가 있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방송인 유창선 박사를 비롯해서 다수가 실제 자신이 겪은 사례를 제시하며 김미화씨의 입장에 힘을 실었다.
시청자들은 과연 KBS의 주장처럼 “KBS에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KBS가 “대승적 차원에서 고소를 취하하기로 했다”는 말에 공감을 표현하고 있을까.
수사기관에서 김미화씨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소환, 수사를 했을 뿐 검찰의 기소여부나 법원의 유죄판단여부가 나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KBS 블랙리스트 의혹만 커진 상황에서 갑자기 ‘사회적 공감대’운운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그런 공감대를 형성할 논리적 근거나 토대가 없는데 갑자기 ‘사회적 공감대’를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법적으로 고소 사안 자체가 되기 어려운 이슈를 형사고발한 것이나 수사중간에 돌연히 고소를 취하한 것이나 모두 언론기관답지 못하다. 법을 강자의 악세서리로 만든다는 비판은 이런 경우에 해당될 수 있다.
한 개인이 상대하기에 언론사의 힘과 조직은 너무 강대하다. 그런 우월적 위치에 있는 언론기관 그것도 국민의 방송을 자처하는 한국의 대표적 공영방송 KBS가 방송뉴스로 한 개인에 대해 충분히 반론, 비판보도까지 하고 여기다 형사고소까지 했다는 것은 언론사적으로 수치스런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소송은 진실로 억울한 힘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가 돼야 한다. 권력자들, 국회의원들, 언론기관 등이 법이라는 합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상대적 약자에게 고통을 줄 때 법치사회는 멀어진다. 사회적 강자들의 절제와 예의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