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국내작가소개방

피카소의 여성편력 완전해부!

영원한 울트라 2005. 10. 4. 11:25



피카소의 사랑

 

사랑은 짧다. 세상에는 아주 많은 사랑이 널려 있어 한 사람만을 사랑하기에는 삶이 너무 길었던 화가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8).

 살아 생전 여성운동가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던 그는 넘치는 사랑을 주체할 수 없어 자신의 생애 동안 벌어진 모든 사랑을 즐겼다. 그는 열네 살 때 정부(情婦)를 두었고 열여섯 소년의 나이에 성에 대해 성인 남자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았다고 한다. 섹스에 탐닉했던 애정 행각은 소년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피카소는 생애를 통해 많은 여성을 유혹했고 그 여성들과 더불어 작품 세계가 다양해졌다. 그에게 여성은 또 다른 창의력의 표현이다. 파리에서  작업을 같이 하던 모델들과의 문란한 성생활을 즐겼던 피카소. 그는 그림과 섹스를 즐겼던 청춘 시절을 지나면서 그의 여성 편력도 점점 늘어갔다.  그의 명성과 천재성이 여인들로 하여금 그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었다.

결혼 2번, 공식적인 연인이 7명이었지만 피카소는 만족하지 못한다. 피카소의 작품 성향이 바뀌는 것처럼 그는 한 여자에게 머물지 못하고 다른 사랑을 찾았다. 피카소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집요하게 접근하지만 여인이 출산을 하면 열정이 식어 다른 사랑을 찾아다닌다.

사랑하지만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피카소의 성격 때문이었다. 피카소에게 버림을 받은 공식적인 연인들은 그를 떠나지 못하고 주변에서 사랑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이 멈출 줄 몰랐던 것처럼 섹스에 대한 그의 생각도 멈추지 않았다.
 
피카소의 섹스에 대한 탐닉은 시간이 갈수록 도를 더해 갔고 나이가 들수록 그의 명성에 비례해서 젊은 여자들을 원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 여인들에게서 피카소는 청춘을 느꼈다.

피카소는 사랑을 예술로 승화시킨 반면 그를 사랑한 여인들은 불행에 빠졌다.  피카소와 이별한 후 그를 사랑했던 여인들은 스스로 그 사랑 안에서 용해돼 버려 권총 자살하거나 정신질환을 앓는 등 불행한 삶을 살았다.




※ 첫번째 연인-페르낭드 올리비에

피카소와 동갑이었던 그녀는
검붉은 머리에 키가 크고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육감적인 여자였는데
항상 쾌활한 성격으로 피카소를 기쁘게 했다.
피카소는 페르낭드를 만나면서 청색시대를 마감하고
장밋빛 시대로 접어든다




※ 두번째 연인- 에바구엘

피부가 무척 하얗던 여인.
피카소는 구년에 걸친 페르낭드와 동거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그녀를 선택한다.
유달리 몸이 약했던 에바. 1차세계대전 이듬해인 1915년 12월 14일 이 젊은 여인은 결핵으로 죽는다.




※ 셋번째 연인- 올가 코클로바

<퍼레이드> 공연 때 만난 러시아 무용수,
피카소가 서른 여섯 살 때 처음으로 결혼을 한 여인이다.
올가는 서민적이고 편안한 것을 즐겼던 피카소와 달리 깔끔하고
상류사회적인 기질을 가졌다.
그녀는 피카소의 첫 아들 파울로를 낳는다.




※ 네번째 연인- 마리 테레즈 발터

피카소가 마흔다섯 살이 되던 해인 1927년 당시 열일곱 살의 건강하고 관능미 넘쳤던 소녀.
페르낭드와 에바, 올가가 갈색 머리카락을 가졌던 것과 달리 그녀는 금발이였다.
피카소의 두 번째 아이 딸 마야를 낳는다.
피카소에게 가장 창조적인 영감을 준 여성이었다고 전해진다,




※ 다섯번째 연인-도라 마알

친구인 폴 엘뤼아르의 소개로 만난 화가이며 사진작가.
피카소의 다섯 번째 연인인 도라는 지적이고 교양을 갖춘 여성으로
현대 미술에 열중했으며 특히,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 여섯번째 연인-프랑스와즈 질로

2차 세계대전 중에 만난 그녀는 아주 젊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류화가이다.
피카소가 예순세 살 때인 1945년부터 함께 살게 되는데 이 때, 그녀는 스무 살이었다.
완벽주의자이고 독점력이 강했던 프랑스와즈는 아들 클로드와 딸 팔로마를 낳는다.
피카소는 이대에 자신의 아이들을 소재로 해 매혹적이고도 생동감 넘치는 초상화들을 남겼다.
여기서 아이들은 때로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모습으로,
때로는 자기들끼리 놀이에 빠져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 1953년,72세에 만난 자클린 로크


피카소의 마지막 연인이 된 그녀는 커다랗고 짙은 눈망울을 지닌 지중해 풍의 여인이다.
자클린은 1961년 피카소와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후에 서른 살의 젊은 여인이 어떻게 곧 여든이 되는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느냐는 말에 그녀는 말한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과 결혼했어요. 오히려 늙은 사람은 나였지요"
그녀는 피카소에게 헌신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바친다.
피카소가 죽고 난 며칠 뒤 그녀도 그를 따라 죽음을 선택한다.

 


그의 여인들...

'그림의 암살자'라고 불리는 너무 나도 유명한 피카소,
그에게도 예술가로서의 고통과 고뇌가 있었지만,
여성편력 또한 그의 생애에 걸쳐 이어졌다.
그는 80여점의 여인들,친구들,시인들의 초상화를 남겼다.

피카소의 여인들은 대부분 불행하게 일생을 마감했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두고 피카소가 여인들의 영혼을 양식삼아
작업한 벰파이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인들은 피카소의 그림 속에서 영원히 살아남아 있다.



피카소는 파리 초기시절 몽마르트 언덕에 사는 친구 막스자콥의 방에 끼어살면서
막스가 일하러 나가는 낮에는 자고 밤에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곤했다.
막스의 방에는 침대가 하나뿐이었다.

세기말의 영향으로 피카 소는 이 시기에
페시미즘적이고 고뇌주의적인 분위기에 휩싸인다.
그의 그림의 주조가 짙은 푸른색으로 나타나는 청색시대이다


어려운 시기, 피카소는 마들렌느를 만난다.
몽마르트에서 캬바레를 운영하며 가난한 예술가를 후원하던 예술애호가의 딸이다.
이 초상화는 청색시대에서 분홍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이다.
피카소가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음산한 분위기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갑자기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피해 피카소가 고양이를 안고
어느 집으로 들어갔는데 그 집이 페르낭드 올리비에 집이었다.
그녀는 피카소의 첫인상을 "그는 작고 까맣고 후줄근했으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눈빛만은 정열로 가득차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두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피카소는 페르낭드의
사랑과 함께 우울한 청색시대를 이별하고 분홍의 시대로 넘어간다 .
1905년의 마들렌느를 그렸을 때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과 색채로 스페인 특유의
따뜻함과 포근함이 드러나고 있다.

 


피카소가 세번째 여자 올가를 만난 것은 장콕토 때문이었다.
1917년 장콕토는 에릭 사티가 음악을 하고
디아길레프가 무대화하려는 발레의상을 부탁하기 위해 피카소를 찾았다. 피카소는 완강히 이를 거부 하다가 발레리나 올가 코클로바를 보고 첫눈에 반해 응하고 만다. 디아길레프는 피카소에게 그녀는 유뷰녀이니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둘은 이듬해에 정식 결혼을 한다. 올가는 피카소에게 자신을 그리려면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그려달라고 부탁을 한다. 피카소의 그림이 고전주의로 회귀하는 계기가 된다. 올가의 초상은 피카소의 작품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고전주의 미학에 충실하고 있다.




피카소는 1927년 올가와 헤어진다. 그리고는 라파예트 백화 점앞에서 희랍풍의 금발의 미녀 마리테레즈를 만난다. 당시 17세도 안된 그녀를 붙들고 46세의 피카소는 유혹한다. "나는 피카소라는 사람인데 우리 함께 대단한 일을 해보자" 지금까지 나온 그녀의 초상화는 10작품 이상이 된다. 큐비즘, 초현실주의 등 미적 실험을 통해 그려진 그녀의 초상화는 조각난 반짝이는 유리 영혼처럼 얼굴의 실체를 알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녀의 초상화들을 통해 머리 속에서 그려보면 사진보다 명료하게 영상이 떠오른다


 


' 피카소는 마리테레즈에게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셍 제르멩 거리 카 페에서 브르통, 엘류아르 등 초현실주의자들과 잡담을 하다가 도라라는 지적이고 신비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를 만난다


도라를 모델로한 '우는 여자'는 피카소의 걸작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도라는 의문의 자살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 마리토레즈, 도라와의 관계를 유지하던 62세의 피카소는 1943년 어느날 식당에서 21살의 프랑수와즈 질로를 만나 찻눈에 반한다. 아래의 사진은 1952년 지중해에서 바캉스를 즐기고 있는 피카소와 그 녀의 모습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사진이다

1954년 도라와 프랑수와즈가 피카소를 떠나고 58년 마리테레즈마저 떠난다. 그러나 피카소는 곧바로 자켈린이라는 여자를 만나 결혼, 92세로 1973년 생을 마감한다.

 

Un Piano Sur La Mer 바다 위의 피아노/앙드레 가뇽

결혼을 할 수 있느냐는 말에 그녀는 말한다.
" 나는 이 세상
내마음의 캔버스는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