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그림 이야기

새로운 원시주의

영원한 울트라 2005. 10. 8. 01:57

이제까지 우리는 19세기 낭만주의이후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를 거쳐 현대미술이 어떻게 변모했는지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19세기 말의 화가들, 즉 마네와 모네, 반 고호, 세잔 등은 20세기의 미술이 전개되는데에 발판을 마련해준 현대미술의 선구자들입니다. 이 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20세기의 미술을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피카소, 마티스, 칸딘스키, 뒤샹, 달리 등 낯익은 20세기 미술가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시간엔 20세기 초에 있었던 야수파란 그룹과 그 그룹의 리더격이었던 마티스(Matisse)의 미술세계를 탐험해 보겠습니다. 우선 다음 그림부터 봅시다.

 


[앙리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 1905]

 

마티스 부인의 초상화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화려하다 못해 현란한 색채가 가장 인상적입니다. 바탕을 보십시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핑크... 적어도 5개 이상의 색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티스 부인의 얼굴에도 온갖 색깔이 다 쓰였군요. 마치 가면을 쓴 것 같은 모습입니다. 마티스는 동료 화가들과 함께 이 그림을 <가을전>이라는 전시회에 출품했습니다. 다른 화가들의 그림도 마티스의 것과 비슷하게 강렬하고 비자연적인 색채가 특징이었죠. 그들의 그림은 당시 사람들이 보기엔 너무나 자유분방하고 거칠어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 동물을 연상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야수파(Fauvism)"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 <서커스> 1906]
 

야수파의 일원이었던 블라맹크의 작품입니다. 역시 거친 붓놀림과 강렬한 색채가 야수적인 특성을 말해줍니다. 블라맹크는 이런 원시적인 강렬함을 몹시 사랑했던 화가였습니다. 20세기 초 서구의 많은 미술가들은 미개부족이나 동양의 미술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원시부족의 가면이나 조각에선 서구 전통 미술에선 볼 수 없었던 직접적이고 강렬한 표현 효과가 있었습니다. 원시 미술의 단순한 선과 강렬한 색채가 주는 직접적인 효과는 당시 화가들에게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던 것입니다. 블라맹크는 원시주의를 매우 노골적으로 표방했던 화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루브르 미술관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도 그에겐 자랑거리였구요. 대신 그가 자주 드나들었던 곳은 파리의 민속박물관과 인류학 박물관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아프리카 조각상과 같은 원시미술과 접할 수 있었죠.

 

 


 

[앙드레 드랭, <마티스의 초상> 1905]

 

 

마티스의 어린 동료였던 드랭이 그린 그림입니다. 마티스와 드랭은 나이차가 꽤 많았지만 한때 공동 작업을 할만큼 가까웠습니다. 드랭의 부모는 그가 화가가 되는 것을 극구 반대했었습니다. 그런데 점잖고 교양많은 마티스의 설득으로 드랭은 화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드랭이 색을 사용하는 방법도 마티스와 비슷합니다. 마티스 부인의 초상화처럼 마티스의 얼굴도 대담한 색채로 채워져 있습니다. 얼굴의 색깔은 어떤 색이어야한다는 고정 관념이 완전히 깨져 있지요. 이러한 색채의 자율성 혹은 회화의 자율성의 선언은 야수파라고 불리우던 화가들 모두의 공통된 특징이었습니다. 마네이후 많은 화가들은 회화의 세계는 일상적 생활 세계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고유한 영역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주제를 위해 색채와 드로잉을 자유롭게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미술의 자율성에 대한 생각이 20세기의 미술이 전개되는데 하나의 원동력으로 작용합니다.

 

 


[앙리 마티스, <초록의 선> 1905]

 

 

마티스가 <모자를 쓴 여인>을 그리고 나서 불과 몇달 후에 그린 마티스 부인의 초상화입니다. <모자를 쓴 여인>과 이 그림을 비교해 봅시다. <초록의 선> 역시 강한 보색 대비를 사용하고, 색채의 자율성을 주장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모자를 쓴 여인>이 야수파란 이름에 걸맞게 충동적이고 통제되지 않은 색채와 산만한 구성을 보여준다면, 이 그림은 상당히 잘 정돈된 느낌입니다. 구성이 훨씬 안정감있게 되어있죠. 그런데 이 그림의 구성을 견고하게 해 주고 형태를 명확하게 해 주는 것은 바로 색채입니다. 이 그림에서 마티스는 전통적인 명암법이나 원근법을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그는 색채대비를 통해 훌륭하게 입체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마티스 부인의 얼굴 중앙을 가로지르는 초록색의 선이죠. 이 대담한 선으로 마티스는 코의 입체감을 표현하는 동시에 그림 전체에 균형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그림이 초록의 선을 중심으로 두 부분으로 나뉘고 있음을 알수 있죠. 마티스 부인의 얼굴은 초록의 선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 쪽의 색이 다릅니다. 햇빛을 받는 쪽은 보다 경쾌한 색으로, 반대쪽은 그늘진 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이번엔 바탕색을 봅시다. 왼편의 주황색은 대상을 가깝게 느껴지게 하고요, 오른편의 차가운 녹색은 대상을 뒤로 물러나 보이게 하지요. 마티스는 이 그림을 기점으로 야수파의 즉흥성을 탈피하고 견고한 구성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앙리 마티스, <빨강의 조화> 1908-9]

 

 

마티스는 이제 더이상 야수파가 아닙니다. 이 그림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그림안의 모든 요소들은 잘 조화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불필요하게 그려진 것이 없이 아름답게 통제된 우아한 양식이 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매우 평면적으로 보입니다. 벽지와 식탁보가 동일한 패턴으로 연결되어서 거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마치 벽지의 무늬가 식탁보를 타고 내려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번엔 왼편의 창을 봅시다. 창밖으로 나무가 있는 풍경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창밖의 풍경입니까? 혹시 풍경이 그려진 그림 아닐까요? 애매합니다. 하지만 마티스에겐 그것이 무엇인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빨간색에 대응하는 녹색의 풍경이 그곳에 필요했을 뿐이니까요. 결국 마티스가 이런 그림을 그린 이유는 단지 장식적인 효과를 위한 것입니다. 마티스가 이그림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순수하게 시각적인 세계였던 것입니다.

 

 


 

[앙리 마티스, <춤> 1910]

 

 

 

[앙리 마티스, <음악> 1910]

 

 

원래 벽화로 제작된 이 그림들은 상당히 스케일이 큰 작품입니다. 얼핏 보았을 때 이것들은 아주 쉬운 그림처럼 보입니다. 주제도, 기법도 너무 단순해 보이죠. 그런데 이 단순한 그림들이 우리를 춤과 음악이 시작된 그 옛날로 데려가 주는 것 같지 않습니까? 혹은 춤과 음악이라는 본능적이고 순수한 행위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를 어떤 단일하고 근원적인 경험으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마티스의 <춤>과 <음악>은 원시주의적입니다.

사실 마티스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수 많은 습작을 했습니다. 그는 선 하나하나에 무척이나 고심했습니다. 예를 들어 <춤>의 맨 왼쪽에 있는 여인의 몸통을 봅시다. 그는 이 여인의 복부를 그리면서 이 선이 전체 구성에 미칠 효과를 면밀하게 검토했을 겁니다. 활처럼 둥글게 표현된 여인의 몸은 그녀의 신체적 특징을 약화시키고 있기는 하지만, 둥글게 손을 맞잡고 돌아 가는 춤을 표현하는데는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형식적 구성을 염두에 두고 그림을 보게 되면, 왼쪽의 여인의 자세가 비정상적으로 뒤틀려 있는 이유, 오른쪽 하단에 있는 여인들이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된 이유 등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마티스는 색채의 효과를 누구보다도 잘 이용할줄 알았던 화가인 동시에 누구 못지않은 탁월한 구성력을 가진 화가였던 것입니다.

 

 


 

[앙리 마티스, <붉은 방> 1911]

 

 

마티스의 화실 풍경이군요. 그런데 온통 빨간색이네요. 마티스의 화실이 진짜로 그랬냐구요? 그럴리 없죠. 앞서 말했듯이 이건 순전히 회화적인 효과를 위한 겁니다. 앞서 본 <빨강의 조화>가 생각납니다. 거기서와 마찬가지로 이 그림에서도 어디까지가 벽인지 바닥인지 얼핏봐서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방의 3차원적 구조와 식탁의 존재를 암시하는 어렴풋한 선이 있어서 방의 구조를 알아보는 것이 어렵진 않죠. 벽에는 온통 마티스의 그림이 있군요. 조각도 더러 보이구요. 마티스는 자신의 그림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인물들을 조각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아래의 조각을 보십시오. 마티스의 화실 오른쪽 구석에 있는 청동 조각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식탁위엔 도자화도 보이네요. 이런 모든 대상들이 마치 하나의 붉은 색 평면 위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티스는 이런 순수한 공간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 겁니다.

 

 

 


 

[앙리 마티스, <곡선의 여인상> 1909]

 

 

이 시간엔 마티스의 초기 미술을 중심으로 야수파 회화를 감상했습니다. 물론 마티스가 내내 야수파로 활동한 건 아니었습니다. 야수파라는 미술운동은 1900년대 중반에 불과 몇년동안 존재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야수파의 성향이 마티스의 미술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마티스의 그림에선 화가의 의지에 따라 색채가 자유롭게 표현되고, 형태가 변형됩니다. 이러한 회화적 자율성의 주장은 이후 추상미술에서 보다 극단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미술사랑 > 그림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딜리아니  (0) 2005.10.20
[스크랩] 고디바  (0) 2005.10.13
클림트의 사랑이야기  (0) 2005.10.10
이중섭화백의 위작 논란  (0) 2005.10.08
이중섭 위작 수법  (0) 2005.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