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요즘세상!

국새

영원한 울트라 2005. 12. 7. 19:10
“국새 1호 삽살개 국새는 가짜였다”

대한민국 수립과 함께 1948년에 제작된 ‘국새 1호’는 용일까, 삽살개일까. 아니면 용과 삽살개가 모두 만들어진 것일까. 정부가 잃어버린 ‘국새 1호’를 찾기 위해 현상금을 내건 가운데 이같은 국새 미스테리를 풀어줄 수 있는 단서가 발견돼 주목된다.

■印文에 ‘大韓民國之璽’로 새겨진 국새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국가기록원은 그동안 48년 8월15일부터 62년 12월31일까지 사용한 국새는 ‘삽살개 국새’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1948년에 ‘국새’를 제작한 옥새 전각장 석불 정기호 선생(1889∼1989)이 남긴 ‘고옥새간회정도(古玉璽看繪鄭圖)’를 보면 ‘국새’는 ‘태극익용(太極翼龍) 1호 국새’를 만든 다음에 또다시 ‘삽살개 2호 국새’를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석불은 구한말 황소산 선생의 뒤를 이은 옥새 전각장으로서 48년 ‘태극익용 국새’를 전통 옥새주조법에 따라 특별 주조해 정부에 납품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정부측에서 곧바로 국새 한 과를 더 만들어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이에 기분이 크게 상한 석불은 ‘(또하나의) 국새 제작건은 심히 유감이다. 그래서 뉴(손잡이) 조각을 삽살개로 한다(所件 有感…刻? ?煞犬)’고 적어놓았다. 이 같은 사실은 석불의 뒤를 이은 국내 유일의 옥새 전각장 세불 민홍규씨(52·경기도 이천시)가 유품을 정리하던 중 이상한 부분이 있어 ‘고옥새간회정도’를 조심스럽게 해체하면서 드러났다.

기록 그대로 석불은 정부 권력자의 부당한 압력에 의해 국새 1호인 ‘태극익용 국새’에 이어 국새 2호인 ‘삽살개 국새’를 1948년에 제작하게 된 것이다. 옥새전각장 황소산 선생이 제작한 ‘대한국새’(大韓國璽)를 국새 1호로 친다면 ‘태극익용 국새’는 국새 2호, ‘삽살개 국새’는 국새 3호가 되는 셈이다. 실제 석불 정기호 선생은 ‘삽살개 국새’를 만들면서 3호 국새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진짜 만들고 싶지 않은 국새를 누군가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들었음을 기록으로 남기고 밀봉해두는 한편, 작품에도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삽살개 국새’를 찬찬히 뜯어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오던 국새와 판이하게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새는 국가의 위엄을 상징하는 상징물로서 항상 머리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유독 ‘삽살개 국새’만은 뒤로 돌아앉은 채 엉덩이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게다가 전통 옥새전각주조법은 현대의 로스트 왁스 공법이 도저히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기 짝이 없는 주조법인데, 옥새 좌우 측면에 기포가 많이 발생했음이 사진에서 확인된다.

이를 종합해볼 때 석불은 진짜 만들고 싶지 않은 국새를 권력자의 부당한 압력에 의해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작품 속에 ‘개같은 놈’이라는 의미로 삽살개를 뉴 조각으로 새기게 되며, 그것도 머리가 정면이 아닌 엉덩이를 정면으로 내세워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민홍규씨는 “국운과 한 나라의 권위를 상징하는 뉴조각으로 삽살개를 썼다는 것은 권력자의 부당한 압력에 대한 무언의 항의의 표시”라며 “이같은 사실은 뉴 조각의 삽살개가 정면을 향하지 않고 뒤돌아앉은 모습을 볼 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삽살개 국새에 기포가 특히 많이 보이는 것도 스승(정기호 선생)이 별로 만들고 싶지 않는 국새에 성의를 다하지 않고 대충 만들었음을 보여준다”면서 “석불의 선비같은 절개를 엿볼 수 있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48년에 제작된 국새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음은 실제 국새를 사용한 노경호옹(84)의 증언에서도 드러난다. 1956년까지 국무원 사무국(과거 총무처)에서 직접 국새를 관리했던 노경호옹(84·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은 “국새 손잡이는 분명히 용이었다”고 증언함으로써 ‘태극익용 국새’와 문화공보처에 남겨진 사진 속의 ‘삽살개 국새’가 별개였음을 보여준다.

■국새는 언제 사라졌을까=먼저 ‘고옥새간회정도’에서 우리는 ‘태극익용 국새’와 ‘삽살개 국새’의 인문이 모두 ‘대한민국지새’로 똑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의 기록에 따르면 ‘태극익용 국새’와 ‘삽살개 국새’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한민국’이라는 인문을 가진 ‘거북이 국새’를 만들기전까지인 1962년 12월31일까지 사용됐다. 노경호옹이 1956년까지 ‘태극익용 국새’를 사용했다는 증언으로 미루어볼 때 ‘태극익용 국새’는 그 이후 곧바로 개인 소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1954년에 국새를 재등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추측하건데 ‘태극익용 국새’를 빼돌리기 위해서 ‘삽살개 국새’를 새로운 국새로 재등록해놓은 후 그동안 ‘태극익용 국새’를 사용했던 노경호옹이 그만둔 시점인 1956년 이후 처음 국새는 빼돌리고 나중에 ‘삽살개 국새’의 사진을 남긴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문화공보처에 ‘삽살개 국새’의 사진 10여장을 남겨서 증거를 인멸한 뒤 빼돌렸는데, 또 누군가가 63년 1월1일부터 국새가 ‘대한민국지새’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뀌자 다시 ‘삽살개 국새’를 빼돌린 것으로 추정된다.

■국새 1호 복원은 당연히 ‘태극익용’으로 해야=국가기록원이 추진중인 국새 1호의 복원은 ‘삽살개’가 아니라 당연히 ‘태극익용’으로 해야 한다는 게 옥새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왜냐하면 국새는 한 나라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기 때문에 ‘비아냥’의 의미를 담은 삽살개보다는 당당한 위엄을 드러내고 있는 태극익용이 더 적합하다. 국새 문화로 이어온 동양에 있어 만약 엉터리로 만들어진 ‘삽살개 국새’를 우리의 첫 국새라면서 복원한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문화후진국임을 자인하는 어리석은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국가기록원과 일부 민속학자들이 분명히 ‘삽살개’라고 못을 박은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는데도, 국새 1호의 설계도면과 이 증거자료를 무시한 채 ‘삽살개 국새’를 복원하려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어 심히 유감스럽다. 지금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받아들여 국새의 격에 어울리는 ‘태극익용 국새’로 복원하기를 촉구한다.

/ noja@fnnews.com 노정용기자

■사진설명=석불 정기호 선생이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만든 [태극익용 국새] 도면. 국가기록원이 사진으로 공개한 [삽살개 국새]보다 먼저 만들어진 국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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