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egel the Elder,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1558
고난에 관한여 그들은 결코 틀림이 없었다
옛 거장들은 참으로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그 인간적 상황을
누군가 식사를 하고 있거나 창문을 열거나
아니면 그저 어술렁 걷고 있을 때
늙은이들이 경건하게 기적적인 탄생을
열렬히 고대하고 있을 때
숲의 연못가에서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을
예컨대 브뤼겔의 이카로스를 보자
어떻게 만물이 재난을 외면하고 유유자적하는가를
농부는 아마도 무언가 풍덩 떨어지는 소리를,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으련만
그에겐 그게 별 대수로운 변이 아니었다
푸른 물결 속으로 사라지는 하얀 다리 위로
태양은 여전히 빛났고
한 아이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놀라운 일을 분명히 보았을 호화선은
어딘가 제 갈 데가 있어 고요히 항해를 계속한다
-오든(W.H.Auden), '미술박물관'
농부가 쟁기를 끌고, 양치기가 양떼를 돌보다 잠시 쉬고 어부가 낚시를 하는 한가로운 풍경, 바다엔 범선이 떠 있고 멀리 수평선 너머 태양이 빛난다. 그런데 그림의 제목은 엉뚱하게도 '아카로스의 추락'이라고 붙어 있다. 이까로스라면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미궁을 탈출하다 태양에 가까이 가는 바람에 날개가 녹아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하는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이다. 브뤼겔 왕립미술관의 고전미술 전시관, 브뤼겔의 유명한 작품 앞에서 서서 나는 적이 당혹스러웠다.
도대체 어디 숨었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한 소년이 사라진 자취가 보이지 않는다. 이카로스를 식별할 수 있는 얼굴이라든가 하다못해 날개의 한쪽도 보이지 않으니 숨은 그림을 찾듯 샅샅이 캔버스를 뒤진 뒤에야 겨우 그 몸의 일부를 발견했다. 오른쪽 하단에 수면 위로 삐죽 솟은 것이 발버둥치는 인간의 다리 같다. 그런데 중앙에 우뚝 선 농부의 두드러진 전신상에 비해 손톱만큼 죄그맣게 그려진데다, 브뤼겔이 즐겨 구사한 교묘한 대각선 구성으로 말미암아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바다와 육지를 나눈 대각선의 안쪽에서 관람자의 시선은 선명한 붉은색의 옷을 입은 농부에게 집중되어, 쟁기를 끄는 그의 진행 방향에 따라 화면의 왼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오른쪽 구석에 처박힌 이까로스의 두 다리가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다.
소년이 추락한 장소가 신화 속에서처럼 지중해가 아니라 화가가 살았던 플릉드르 지방의 바다, 즉 북해의 시원한 풍광에 가깝다는 것도 흥미롭다. 그 광활한 푸른 물결에 파묻힌 이카로스는 가느다란 갈색의 막대로서 존재할 따름이다.
◀ 낚시꾼 앞에 있는 이카로스의 허우적거리는 다리 모습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충고를 무시하고 높이 날다 태양에 감히 접근했던 이카로스는 자신의 과욕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 인간의 예기치 못한 재난 앞에서 세상은 정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늘도 땅도 바다도 평화롭기 그지없다. 오든의 시처럼 태양은 여전히 빛나고, 바다는 그대로 푸르다, 농부, 양치기, 어부-전경에 등장하는 이 세 인물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은 풍덩 물에 바지는 소리를, 살려달라는 외침을 들었으련만. 태평스레 자기 일에만 몰두할 따름이다. 낚시꾼은 바로 코 앞에서 소년이 물에 빠졌는데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카로스처럼 제아무리 특별한 인물일지라도 개인의 운명에 대해 철처하게 무관심한 세계.
Hunters in the Snow
'겨울'(1565)은 브뤼쎌의 부유한 은행가의 주문을 받아 제작된 '달력그림'연작 가운데 1월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추운 겨울날 북구의 소읍에서 화가가 직접 목격했을 한순간을 그대로 재현한 듯 시골의 일상이 시시콜콜히 담겨 있다. 강가에서 얼음을 지치다 벌렁 넘어지는 아이, 장작을 때는 어른들, 헐벗은 겨울나무에 앉은 새들, 그리고 이 모든 풍경을 향해 진군하는 사냥꾼들의 귀향.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냥 성적은 별로 좋지 않다. 세 명의 남자들과 그들을 뒤따르는 열 마리가 넘는 개들의 쪽수에 비해 노획물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젊은이의 등에 걸린 여우(?) 한 마리가 이들의 체면을 세월줄 수 있을는지, 기다리는 가족들의 주린 배를 채워줄 수 있을는지... 사냥꾼들의 무거운 발자국들만 하얀 눈 위에 어수선하게 찍혀 있을 따름이다.
그림의 전경에서 인물을 근접해 보여줄 때는 정면이나 프로필 자세를 취하는 상식을 깨고, 사냥꾼들의 뒷모습을 전경에 잡은 구도가 독특하다. 나무 기둥과 인체 묘사에서 세부를 생략하고 기하학적 형태로 환원시킨 것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나 당시엔 거의 추상에 가까운 시도였다.
그가 얼마나 신경을 써서 그림을 그렸는가는, 예컨대 사냥꾼들을 뒤따르는 개들의 털 색깔과 꼬리의 모양이 하나도 같은 게 없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The Census at Bethlehem
북유럽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인 브뤼겔이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1551년에 안트위프의 길드에 장인으로 등록된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장인 된 뒤에 그는 약 2년 동안 아탈리아를 여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를 다녀온 대부분의 북유럽 화가들과 달리 그는 고전미술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농민을 주로 그려 '농민 브뤼겔'이란 별명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브뤼겔은 교양이 풍부한 인문주의자였다. 그는 브뤼쎌에서 '사랑의 가족'이라는 다소 신비주의적인 써클과 연루되었다고 한다. 이 그룹은 1560년대 네덜란드를 분열시켰던 종교분쟁에 직면하여 '중용'과 '온건한 조화'를 옹호했다. 중용이나 조화니 하는 것들이 불온하게 간주되었으니, 16세기 북유럽에서 신,구교 간의 갈등이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그 혼란스런 사회상이 가히 짐작된다. 그는 이도 저도 아닌 중간노선이 오히려 급진적이던 광기의 시대를 살았던 모양이다. 그 영향을 받아서였을까. 그가 남긴 작품의 대부분은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에 대한 풍자가 주를 이룬다. 단순 투박한 선과 원통형 볼륨 등 그의 회화 기법은 일견 원시적이고 순박해 보이나 사물의 이면을 꿰뚫는 통찰력은 누구보다도 날카롭다.
'이까로스의 츠락'은 브뤼겔로선 예외적인 작품이다. 풍속화의 대가였던 그는 군중 장면을 즐겨 그렸는데 이 그림에선 인물이 셋에다 불완전한 두 다리만 등장할 뿐이다. 또한 이 작품은 그리스의 신화를 주제로 그가 그린 유일한 그림이다. 고대의 신화를 다룰 경우에도 그는 예이야기를 안일하게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당대 플랑드르의 범속한 풍경 속에 집어넣어 새로운 리얼리티를 찬조해냈다. 사실을 넘어선 진실의 탐구, 내가 감탄한 것은 바로 그 고통스런 자기인식이었다.
그림을 보며 나는 감탄과 동시에 쓴웃음을 지었다. 화가가 살았던 16세기나 지금이나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조건이 있다는 이치를 발버둥치는 두 다리가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최영미의 <시대의 우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