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서만 봤던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일반에 공개된다. 딱 2주간이다.
해마다 봄 가을 두차례 기획전을 열어온 서울 간송미술관(관장 전영우)이 올 봄에는 더욱 뜻깊은 특별전을 준비했다.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62) 선생의 탄신 100돌을 기념하는 ‘간송 탄신 백주년 기념 특별대전’(21~6월4일)이다.
이 전시에는 이 미술관이 소장한 국보 12점과 보물 10점 등 대표작 100점이 나온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손으로 넘어갈 뻔한 한국 문화재 수천점을 가산을 털어 지킨 간송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여간해선 보기 힘든 명품만 골랐다. 국보 보물이 일제히 공개되기는 지난 91년 이후 15년만이다.
간송 생전에 그와 교유했던 미술사학자 고유섭 선생은 “간송의 생애는 100으로 계산할 수 없다. 간송의 생은 100에 100을 곱해도 모자란다. 간송이 지금도 저 높은 곳에서 겸재(謙齋)와 단원(檀園)의 산수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아니 보이는가. 백자그릇을 쓰다듬는 모습은 100년 후에도 보일 것이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십만석 재산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간송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문화적 자존의식을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술관이 특별전과 함께 내놓은 논문집 ‘간송문화’에 소개된 일화도 흥미롭다. 1943년 경상도 안동에 훈민정음 원본이 나타나 1000원에 팔린다는 소식을 접한 간송은 거간꾼에게 돈 1만1000원을 내주며 “1000원은 수고비요”라고 한다. 기와집 한채가 1000원이던 시절이다. 시세의 열배를 치르고 산 훈민정음 원본은 그래서 미술관의 소장품이 됐고, 지금 국보 70호로 지정돼 있다. 간송은 원주인이 작품가치를 잘 모르고 값을 싸게 불러도 두배, 세배로 값을 치렀다. 일급 문화재들이 모여들 수 밖에 없었던 것.
이번 전시에는 한국 문화재의 ‘별 중의 별’이 총출동한다. 간송 소장품의 전모를 살필 수 있도록 도자기 그림 글씨 불상 등 각 부문별 대표작이 망라됐다. 그중에서도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간송컬렉션의 간판스타다. 청자색 바탕에 창공을 날아오르는 학의 모습이 일품인 이 도자기는 1935년 일본인 골동중개인의 소개로 거금 2만원을 주고 사들였다. 간송의 도량과 담력을 읽게 해주는 대목이다. 또 국보 제73호 ‘금동삼존불함’, 겸재 정선의 ‘풍악내산총람’,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대표작, 추사 김정희의 글씨 등 모두 한국미술사를 빛낸 걸작들이다.
이처럼 간송 한 사람이 이룬 컬렉션은 한 나라 박물관을 능가한다. 간송의 정신을 받들어 40년간 미술관을 지켜온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간송이 있어서 겸재, 추사 연구가 가능했다”며 “1971년 겸재전을 열 당시 ‘이거다, 이것으로 말로만 운위됐던 식민사관을 확실히 극복할 수 있겠다’고 쾌재를 불렀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번 기념 전시는 간송 컬렉션의 전모를 보여주고, 민족미술의 흐름을 짚어줄 수 있는 값진 전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위창 오세창 등에 사사한 간송의 서화 솜씨를 엿볼 수 있는 글씨와 문인화 8점도 함께 전시돼 눈길을 끈다. 고졸한 그림 속 외로운 선비는 곧 간송 자신같다. 무료관람. 02-762-0442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