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모처럼 되살아나고 있는 시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바로 유명 화가의 작품을 조악하게 베낀 위작(僞作)이 버젓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미술계는 지난 한해동안 이중섭·박수근 그림 위작 파문으로 큰 홍역을 치렀다. 뿐만 아니라 인천의 한 원로 기업인이 평생 모은 소장품 수천 점을 시(市)에 기증했으나 작품의 50% 가까이가 위작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미술계의 자정 능력이 부족해 법원의 판단에 매달려야 했으며 그 이후에도 위작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도 지난해 이중섭 그림 위작 파문의 중심에 섰던 서울옥션이 또다시 생존 작가 변시지 화백의 위작으로 의심되는 ‘제주 풍경’을 경매에 부치는 바람에 거센 비난을 받았다. 위작 논란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 미술관에 내건 이중섭 화백의 ‘바닷가의 아이들’도 위작이라는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관들은 위작 논란과 관련해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어물쩡 넘어가는 분위기다.
가짜 그림을 유통시켰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서울옥션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체 평가인단 등의 개선을 통해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말을 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평가인단이 어떤 방식으로 개선됐으며 어떤 전문가들이 영입됐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세계적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나 소더비가 작품도록에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리는 전문가들의 명단과 경력을 당당히 공개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철저한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계속 위작 논란이 일어나는 원인은 미술품 감정 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어처구니 없게도 감정위원들은 위작 시비에 휘말린 작품에 대해 재감정했다는 이야기가 한 번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 사람의 뇌리 속에서 잊혀지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감정위원들은 왜 침묵하고 있는가. 변시지 화백이 ‘제주 풍경’을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함에도 과학적인 감정을 통한 명쾌한 진위 감정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감정위원이라는 존재는 화랑가에서 20∼30년 눈으로 익힌 ‘눈썰미’로 작품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는 한 감정위원의 말을 곱씹어 보면 경매시장에 위작이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음을 짐작케 한다. 감정위원들이 특정 경매사나 화랑에 속해 있다 보니 이해관계에 얽혀 제대로 된 감정을 할 수 없음도 위작을 생산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미술 관계자들은 최근 활발한 논의를 펼치고 있는 ‘아트펀드’보다는 은행과 정부기관이 공동으로 출자하는 경매회사 설립이 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부동산 경매처럼 투명한 거래나 실질적인 시장 거래를 위해 화랑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된 경매회사가 필요하고 그래야 감정위원들도 제대로 된 감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지금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와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의 통합 작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문화관광부도 미술품 감정의 과학화와 감정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는 판단 아래 ‘미술품 감정 활성화 방안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양 기구가 통합될 경우 문예기금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유명 작가의 전 작품을 도록으로 만들고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해둔다면 위작은 발을 붙이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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