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요즘세상!

궁궐의 이해

영원한 울트라 2006. 6. 18. 12:49

      
 



::::감히 어느것과도 비교할수 없는 "나랏님"이 사시는 공간이 바로 "궁궐"입니다::::.

    경복궁 근정전 옆에 놓은 향로처럼 생긴 그릇은 향로가 아닙니다,
 정(鼎)이라는 것인데 왕이 백성들의 안녕과 하늘의 복을 기원하는 상징물이며, 또한 강력한 왕권을 뜻하는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우리! 이런 무지함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본적인 "궁궐 상식"을 읽어보고 입궐을 합시다!

궁궐(宮闕)이란?

궁궐의 정의
궁궐이란 궁과 궐이 합친 말이다.
궁은 왕이 신하와 함께 정무를 보고 거처하는 곳이라면 궐이란, 그 궁을 지키는 "궁성과 성루와 성문"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를 들면 경복궁의 경우 광화문 동십자각 그리고 궁의 돌담등을 우리는 궐이라 한다. 또 궁전(宮殿)이란,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궁전은 궁궐안에 있는 전각을 의미하며,  임금님이 사용하는 사적 공적인 건물을 가리킨다. 예를 들자면 "근정전 사정전등"을 들 수가 있다.
궁실이란. 궁전 건물중 왕이 "사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을 말한다.
궁궐 >궁전 >궁실
별궁(別宮) 행궁(行宮)그밖의 궁(宮)의 의미
우리가 흔히 5대 궁궐은 "경복,창덕,창경,경운,경희궁"으로 나눈다. 하지만 궁궐은 아니지만 궁이라는 이름으로쓰여지는 건물이 있다.왕이 왕이 되기전 머물었던 잠저, 이를 "별궁"이라 하고.(예:효종의 잠저인 용흥궁)  왕이 궁궐을 떠나 잠시 경유하는 궁을 "행궁"이라한다(예:왕이 온천욕을 위해 온양에 잠시 머물렀던 온양행궁)등이 이에 속한다. 혹은 "왕의 아버지" 정도의 격이 되는 사람들의 집을 가리켜 "궁"이라고 붙이기도 한다(예:홍선대원군의 집 운현궁) 하지만 이들은 궁궐은 아니다. "궁실" 정도면 적당하겠다.

 

궁궐자리?

배산임수(背山臨水)
뒤로는 산이 감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물이 흘러야 한다. 우리가 흔히 명당자리의 기준이되는 조건이다. 실제로 경복궁의 경우 뒤로는 백악산 응봉상이 위치해있고 앞으로는 천계천이 흐르고있다..
좌묘우사(左廟右社)
궁궐을 바라보면서 좌측엔 "사직단"이 우측엔 "종묘"가 있어야 한다.
지금 경복궁에서 바라보면, 좌측엔 사직단(현 사직공원,사직동소재)이있고,우측엔 종묘(현 종묘공원 종로4가소재)가 자리잡고 있다.
"전하 종묘사직을 생각하시옵소서 !!!"
우리가 사극에서 흔이 듣던 종묘사직은 왕실의 사당인 "종묘"와 토지신 인 "사"와 곡식신 인 "직"에게 왕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농경사회(사직단)와 유교사회(종묘)인 조선에서 종묘와 사직은 국가 그 자체가 된다.
우리 조선의 궁궐은 뒤에는 백악산과 응봉산이 감싸주고 좌우에는 종묘과 사직단이 보호를 해주며, 그 앞에는 맑은 청계수가 흐른다!!(지금은 똥물의 대명사가 됬지만)
 

 

궁궐의 공간구조?

궁궐의 공간구조는 내전(內殿), 외전(外殿),  동궁(東宮),  주거공간,  후원(後苑), 궐내각사(闕內各司), 궁성문(宮城門), 궐외각사(闕外各司)로 분류된다.
내전(內殿)
내전은 왕과 왕비의 공적 사적 활동 공간으로, 위치와 기능면에서 궁궐의 중심이 되며 , 크게 대전(大殿)과 중궁전(中宮殿)으로 분류된다.
대전:왕이 기거하는곳으로 특히 대전의 여러채의 집들중 일상적인생활을 하는 공간을 "연거지소(燕居之所)" 또는 "침전(寢殿)"이라 하는데, 왕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며, 주 요인물을 만나는곳이므로 궁궐의 가장핵심이며, 조선왕조 역사의 시작과 같은 곳이다.
편전(便殿)은 왕의 생활공간 안에 만들어진 업무공간이지만 때론 외전에 속하기도 한다.
               예를들어 경복궁의 사정전,강녕전 /창덕궁의 희정당,선정전/ 경운궁의 준명전,함녕전
중궁전(中宮殿):우리가 흔히
"중전마마납시오"!! 라는 말에서의 중전은 중궁전의 약자이기도 하다. 중궁전은 왕비가 기거하는 공간으로 궁궐의 가장 깊숙한데 위치한다.
               예를 들어 경복궁의 교태전 / 창덕궁의 대조전 /
외전(外殿)
외전은 왕이 공식적으로 신하를 만나는의식 연회등 행사를 치르는 공간으로 가장 화려하고 권위가 있어 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곳이다.
외전의 중심은 "정전(正殿) 혹은 법전(法殿)"이라 부르는 건물이다.
정전건물 주변에는 회랑이라는 담이 둘러쌓여있고 그 회랑안 공간 즉 네모난 마당이
우리는 흔히 조정(朝廷)이라 말한다
"조정대신들은 뭘하고있는게야!!..."
동궁(東宮)
"동궁마마 어서 드시옵소서"(= "세자저하 어서 드시옵소서")
"동궁"이란 세자를 지칭하는 말이면서 세자가 기거하는공간을 의미한다.
동궁(세자)은 다음 왕통을 이을 예비국왕이다. 따라서  떠오르는 해가 동쪽에 있듯이 동궁의 위치도 외전의 동쪽에 위치한다. 또한 세자와 관련있는 관서도 같이붙어있는데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부서인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오늘날로 말하자면 과외선생님들의 교무실 )과 /세자의 경호를 담당하는 부서인 "세자익워사"(世子翊衛司 오늘날로 보면 경호실)
주거공간
외전과 내전 동궁주변에는 왕 왕비 세자등 주요인물들의 시중을 드는  내시, 궁녀,노복 ,군병들의 기거 공간으로 되어있다.
후원(後苑)
후원은 궁궐의 북쪽에 조성되있는 왕실의 공원인데,이곳은 아무나 들어갈수없는곳이다.현재에도 저기 남쪽에 청남대라고 해서 대통령이 휴가기간동안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있다.후원도 같은 기능을 하고있는데 당시에는 휴식말고도 과거시험도 치르고,왕이 직접 군사훈련도하고,조그마한 논을 만들어 친히 농사도 지어보는 공간으로 이뤄져있다.
궐내각사(闕內各司)
지금까지의공간이 왕실의 공간이라면 궐내각사는 신하들의 활동공간이다.
정규관리의 활동공간/군사기구/왕실시중과 궁궐관리기구등이 있다.

부서명

역할

빈청(賓廳):

고위관리들의 회의실

정청(政廳):

인사업무처리기관.

대청(臺廳):

사헌부 사간원 관리들이 업무활동을 논하는곳.

승정원(承政院)

:왕명출납기관*(비서관) "오늘밤 승정원 승지가 누구냐!!"

홍문관(弘文館

:왕의 학문을 돕는 기관 (왕의 자문기관)

예문관(藝文館)

:외교문서을 작성하는 기관

춘추관(春秋館)

:실록편찬을 기록하는 임시 기관

그외기관
이외에도 이들 기관에 소속된 아래 사람들과 왕실에 관계된 모든 업무 담당하는 이들의 의 활동공간등이 있다.
궐외각사(闕外各司)
광화문 남쪽 좌우에는 국가의 기간 고나서들이 위치한다 이들은 궁궐 밖에 위치하기 때문에 궐외각사(闕外各司)라 한다.
의정부(議政府):영의정,좌의정,우의정으로 구성된 정부 총 관리기관.
육조(六曹):이조<내무,총무>/홍조<재무>/예조<교육,외무>/병조<국방>/형조<법무>/공조<건설 상공부>
사헌부(司憲府)
한성부(漢城府):도성 관리기관
기타 등등

 

건물보기

건물의 서열 [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 ]
궁궐은 작은 도시이다 이 안에는 다양한 신분이 기거를 한다. 왕부터 궁녀 노복까지 그들이 기거하는 건물도 나름데로 신분이 주어진다. 건물마다 그 이름의 끝자는 서열이있다.

건물명

사진

설명

전(殿):

 

(왼쪽: 인정전)건물중 가장 격이 높은 건물이다.왕,왕비 또는 상왕 대비 왕대비등 궐안의 웃어른이 사용하는 건물에 붙는다.  예)근정전/사정전/교태전등

당(堂)

 

(왼쪽:양화당)전(殿)에 비해 규모는 비슷하나 격은 한단계 낮은 건물이다.전은 공식적 성격을 띈다면 당은 좀더 사적인 건물에 쓰인다. 예) 양화당/희정당등

합(閤)/각(閣):

 

(왼쪽:규장각)모두 그러는 것은 아니나 전(殿)과 당(堂)의 부속건물이나 혹 은 그것을 보위하는 건물이다.  규장각/동십자각/곤령합등

재(齋)/헌(軒):

 

(왼쪽:구성헌)모두 왕실의 주요인물보다는 왕실가족이나 궁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건물에 붙여지는데
재(齋)는 주로 일상적 주거용으로 / 헌(軒)은 공무적 기능을 가진경우가 많다.  예)집옥재/구성헌등

루(樓):

 

(왼쪽:융무루)바닥이 지면에서 사람 한길 높이 정도의 마루로 되어있는집이다.  예) 용무루등

정(亭)

 

:(왼쪽:유하정)흔히 정자이며, 휴식이나 연회공간으로 활용된다. 예) 향원정/상양정등

 

건물의 주요부분 명칭과 지붕의 종류

부분명칭:몇가지 참고문헌을 보았는데 너무나 어려운말들이 많아서 그림으로 설명을 해본다.건물의 규모를 나타네는 단위는 '간(間)'(칸)이다. 간은 기둥의 수로 따진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1간(間)이라 한다. 예를 들어 정면의 기둥이 6개라면 5간이 되고 측면의 기둥이 5개이면 4간이 된다 그럼 이 정면 5간과 측면 4간을 곱하면 20간이 되는데 이 건물의 규모는 20간이 되는 것이다.

건물 주요부분 명칭

주심포짜임

다포짜임

초익공짜임

2익공짜임

납도리/굴도리


기둥 위에 방고 보를 엮고 그위에 도리를 얹고 도리 위에 서까래를 거는 방식, 그러니따 크게 보아 기둥에 지붕을 얹는 방식은 민도리 공포 익공 세가지 가 있다. 보통 단촐한 민가에서 보듯 기둥 끝에 방을 가로지르고 그 위에 바로 서까래를 거는 가장 단순한 방식을 민도리라 한는데, 방의 모양이 둥글면 굴도리 원도리라하고 네모지면 납도리 평도리라 한다. 집의 규모가 커지면 자연히 지붕의 크기도 커지는데 큰 지붕을 기둥 끝에 바로 얹으면 전체적으로 집이 너무 낮아 겉에서 보기에도 답답하고 안에는 빛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해진다.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둥과 도리 사이를 띄어 지붕을 높어야 한다. 하지만 너무 높으면 껑뚱할 뿐만 아니라 비가 들이친다. 그러므로 지붕은 드 높이와 크기를 아주 세밀하게 계산 하여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기둥에서 도리를 떠받치기 위해 짜넣는 구성물을 공포라한다. 공초를 기둥 위에만 설치하는 형식을 주심포 양식, 기둥과 기둥사이에 두세 개 더 있는 형식을 다포식이라 한다. 공포는 소로, 참차 등으로 수성되어서 복잡한 모양을 하는데 그런 소로와 첨자 한 조로 짜여진 구조를 출목이라 한다. 서까래는 건물 안쪽이 놓고 바깥쪽이 낮게 경사져 있으므로 기둥 바깥으로 출목이 둘이면 안에는 셋, 바깥이 셋이면 안은 넷, 이런식으로 바깥보다 안이 하나가 더 많은 것이 공식이다. 공포는 도리를 기둥 위로 들어올리면서도 동시에 바깥쪽으로 내미는 기능도 한다. 이에 비해 소로와 첨차가 겹쳐지면서 도리를 바깥쪽으로는 나오지 않게 하면서 단지 위로만 들어올리는 기능을 하는 것을 익공양식이라 한다. 익공도 한번 들어올려 혓바닥같이 생긴 쇠서가 밖으로 하나 나와 있으면 초익공, 둘이 나와 있으면 이익공 하는 식으로 표기한다. 기둥과 도리 사이를 어떻게 처리하였는가에 따라서 지붕의 크기와 높이에 상당한 치아가 생기고 그따라 건물이 화려하게 또는 단촐하게 보이는 차이도 함께 나타난다.


지붕종류:
한옥건물의 인상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지붕이다 궁궐에는 대부분 기와지붕이지만 간혹 초가지붕도 있다. 지붕은 그모양에 따라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팔작지붕 삼지붕 육모지붕 팔모지붕"으로 나뉜다.

지붕의 종류

그림

설명

맞배지붕

 

가장 단순한 형태의 지붕으로 용마루만 있다.

우진각지붕

 

옆지붕면이 삼각형 모양을 하여, 그 꼭지점이 용마루 끝에 닿은 형태로서 내림마루와 추녀마루가 하나의 선을 이루어 용마루 끝에서 추녀로 비스듬히이어진다.

팔작지붕

 

옆 지붕면이 사다가리꼴을 이루어 건물 측면의 중간에가 닿아 거기서부터 용마루의 끝사이에 삼각형의 수직단면- 합각이 생기는 형태의지붕이다. 용마루 끝에서 수직으로 내림마루가 내려오고 내림마루가 중간에서 끝나고 거기서 꺽이어 추녀 끝으로 추녀마루가 이어진다. 팔작지붕은 크기도 크고 높이도 높아 웅장한 느낌을 준다.

사모지붕

 

정자의 지붕에 많이 쓰이는 지붕으로 모서리의 수에 따라 "4,6,8모"의 지붕형태가 존재한다.

육모지붕

 

팔모지붕

 


 

단청

궁궐건물에서 또한가지 보여지는 것이 바로 단청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숨이 막힐정도로  단정하다.수천년동안 대대로 내려오면서 그려왔으면서도 조금의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은 것이 단청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멀리보면 이처럼 자연과의 조화로운 인공물도 없을 것이다.
단청장이는 단청을 입히면서 거기에 자신의 감정을 배제했을 것이다. 철저하게 인간의 작위가 배제된 빛깔과 모양은 자연 그자체이다.
단청의 기본색은 자연의 원리인 오행설과 관계되어있다.(청 적 황 백 흑)
궁궐에서 볼 수 있는 단청의 종류를 4가지로 나눠보면

종류

그림

설명

가칠단청

 

동일색으로 된 단청

긋기단청

 

가칠 위에 흑백의 색선으로 그린 단청

모로단청

 

오색으로 금단과 같이 현란하게 그린 단청

금모루단청

 

모로단청에 듬단청을 병용한 단청

금단청

 

오색으로 금단과 같이 현란하게 그린 단청

 

문양

설명

                   그림

머리초문양:

처마아래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걸쳐있는 평방,창방,도리등 주로 부재의 양 끝모서리에  넣은 모양으로 "녹화 연화 주화 장고머리 병머리문양"들을 배열한다음 휘문양을 붙이는 것이 기본형식이다.

 

별지화:

평방 창방 도리등에 머리초모양을 넣고 그 공간 공백부분에 회화적인 수법으로 그려넣는 장삭화로 "용,말,사자,학등과 사군자(매,난,국,죽)"가 주로 그려진다.

 

비단문양

:크고작은 원형,삼각혀,육각형등 기하학적인 곡선과 직선 형태들을 서로 꿰고 묶어서 그것을 연속적으로 반봅하는 문양이다.  무늬가 반복적이면서 서로 연결이 되어있는 것은 형상이 연이어져 끊어지지 않는다 해서  최대의 길상을 나타낸다.

 

천장문양:

왕과 왕비가 거처하는 곳에는 용 봉황 학등 위엄있고 상서로운 동물을 쌍으로 도안화 한 것이 많다. 그리고 격이 낮은 건물에는 쌍희(雙喜),복(福), 수(壽) 연꽃등을 도안화하였다.

 

궁궐 건물중 단청을 올리지 않은곳이 2군데 인데 하나는 창덕궁의 "낙선재"와 "연경당"이다. 연경당은 익종이 사대부의 생활을 알기위해 궁중에 건립한 사가로 되어있고,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집에는 단청을 못 올리게 되어있다, 그리고 낙선재는 상중(喪中)에 있는 후궁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근신하면서 법도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단청을 하지 않았다.
 

 

잡상과 치미

                                        
      

궁궐의 지붕위 양쪽에는 조그마한 토기인형들이 줄지어 앉아있다.이들은 잡상(雜像)이라 부른다.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대당사부,손행자,저팔계,사화상,마화상,삼살보살,이구룡,천산갑,이귀박,나토두등 10가지 종류라고 하였다.이들 잡상은 서유기의 인물들과 토신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모두 살(煞)을 막아주는  신으로 알려져있다.
그리고용마루 양끝에는 치미라는 짐승이 앉아있다  치라는 것은 바다에서 사는 짐승이며 화마(火魔)를  막기위해 세워졌다.
조선시대 목조건물의 가장 무서운적은 "화재"이다. 그래서 화재가 나면 화마의 농간이라 믿었던 것이다.

    1) 대당사부
    (大唐師父)

     

    대당사부는 잡상의 첫순위 (맨 앞자리)에 놓인다. 대당사부는 당(당)나라때 현장(玄奬)이라는 승(僧)으로 법명이 삼장법사(三奬法師)이다. 삼장법사는 천축(天竺)으로 佛經을 구하러 가는 길에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을 데리고 간다. 천신만고 끝에 불경을 구하여 당나라로 돌아 오는 이야기를 엮은 소설이 서유기 (西遊記)이다. 대당사부는 실제 인물이었기 때문인지 사람의 얼굴 모습으로 삿갓을 쓰고 있는 형상이다. 창덕궁 인정문에 설치된 잡상에서 실측한 크기는 키 (높이)가 0.43미터, 어깨폭 0.27미터, 전후폭(발과 등) 0.35미터이다. (이하 수치는 창덕궁 인정문의 잡상의 크기를 실측한 수치로 다른 건물도 이와 비슷하다.)

    2) 손행자
    (孫行者)

    손행자는 孫悟空이라고도 한다. 돌원숭이인데 삼장법사를 따라 천축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삼장법사를 호위하며 길동무가 되었다. 서유기라는 소설속의 주인공이 되는 조화(造化)의 영물이었다. 손행자는 원숭이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삿갓을 쓰고 앞발을 버티고 앉아 있다. 키가 0.35미터, 어깨폭이 0.11미터, 전후폭이 0.9미터이다.

    3) 저팔계

    저팔계는 손오공과 갈이 삼장법사를 따라 천축에 갔던 멧돼지이다. 저( )는 돼지이고 八戒는 부처님이 가장 싫어하는 여덟 가지의 음식물을 뜻하기도 한다. 얼굴의 모양은 돼지의 형상이며 삿갓은 쓰지 않았다. 키는 0.35미터, 어깨폭이 0.13미터, 전후폭이 0.23미터이다.

    4) 사화상
    (獅畵像)

    사화상(獅畵像)은 사화상(沙畵像)이라고도 한다. "獅"자는 사자이고 "沙"자는 서유기에서 나오는 사오정(沙悟淨)의 '沙'자로 풀이하면 사오정 역시 손오공과 같이 삼장법사를 호위했던 괴물로, 원래는 옥황상제를 모시고 궁전에서 수렴지기를 했다는 짐승이라고 한다. 얼굴 모습은 사자상을 하고 있으며 삿갓은 쓰지 않았다. 크기와 앉은 자세는 저팔계와 비슷하다.

    5) 이귀박
    (二鬼朴)

    우리 나라의 용어에는 보이지 않은 단어로 불교의 용어를 빌려 풀이하면 '二鬼'는 '二求'의 다른 음(音)으로 보아, 二求는 중생이 가지고있는 두 가지 욕구인데 낙(樂)을 얻으려는 得求와 낙을 즐기려는 命求이다. 생김새는 허리의 앞과 뒤에 뿔이 난 짐승의 형상이다. 크기와 앉은 자세는 다른 잡상과 비슷하다.

    6) 이구룡
    (二口龍)

    입이 둘이어서 二ㅁ龍이라고 했을까? 머리에는 두개의 귀가 나있고 입은 두 개로 보인다. 크기와 앉은 자세는 다른 잡상과 비슷하다.

    7)마화상
    (馬畵像)

    마화상은 말(馬)의 형상을 하고 있다. 서유기에는 '필마온(弼馬溫)이라 하여 "馬"자를 쓴 것과 출세마왕(混世摩王)이라고 하여 '摩'자를 쓴 것이 있는데 지금까지 사용된 용어에는 음으로는 같으나 한자(漢字)가 다르게 馬畵 魔畵 麻畵등으로 표기 되어 있다. 크기와 앉은 자세는 다른 잡상과 비슷하다.

    8) 삼살보살
    (三殺菩薩)

    살(殺)은 살(煞)과 같은 의미이며 삼살(三煞)이란 세살(歲煞) 겁살(劫煞) 재살(災煞)등으로 살이 끼어서 불길한 방위라는 뜻으로 쓰이는 용어이다. 보살은 불교에서 위로는 부처님을 따르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에 버금가는 성인(聖人)이다. 이 두가지의 뜻으로 해석하면 삼살보살이란 모든 재앙을 막아주는 잡상이라고 생각된다. 잡상에서는 대당사부와 같이 인물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두 손을 합장하고 무릎위에 팔꿈치를 받치고 허리를 꾸부려 앉은 모습이다. 크기는 다른 잡상과 비슷하다

    9) 천산갑
    (穿山甲)

    인도 중국 등지에 분포된 포유동물의 일종이다. 머리 뒤통수에 뿔이 돋혀 있고 등이 다른 잡상보다 울퉁불퉁 튀어 나왔다.  크기와 앉은 자세는 다든 잡상과 비슷하다.

    10) 나토두
    (羅土頭)

     

     

    나토두의 형상은 상와도에 그려져 있지 않다. 나토라는 짐승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나티"의 다른 표기라고 생각된다. 나티는 짐승같이 생긴 귀신으로 작은 龍의 얼굴형상 또는 검붉은 곰의 형상이라고 한다.




 

정과 드므


경복궁 근정정 앞에는 향로처럼 생긴큰 그릇이 있다
.(왼그림)이것을 정(鼎)이라 한다 정은솥으로 배가 둥글고 다리가 셋에 귀가 둘 달였다. 처음에는 흙으로 구워 만들었으나 나중에는 청동으로만들었다. 정은 천자는 아홉 제후는 일곱 대부는 다섯 사는 세을 섰다. 중국 "하나라"에 이르러 전국 아홉주의 쇠를 모아 솥을 아홉 개 만들었으니,
정은 왕권과 구주를 상징하며 나아가서 백성들이 현안하게 살고 하늘의 복을 기원하는 상징물로 쓰였다.
 창덕궁 대조전 월대에는 넓은 솥같은 것이 있는 데 "드므"라는 것이다. 드므란 넓게 생긴 큰 독 이란 뜻의 순수 우리말인데 화재예방의 주술적 소방기구로 하늘의 화마(火魔)가 그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고 달아나라는 뜻이라 한다,
(오른 그림)

 
 

궁궐의 역사

선왕조 500년 동안에는 서울에 총 6개의 궁궐이 있었다.

법궁(法宮)과 이궁(離宮)

궁궐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매우 불안하다.따라서 반드시 2개이상의 궁궐을 건축해 비상시 대비를 해야한다(내란,외란 혹은 돌림병등)
임금의 주로 활동하는 궁궐이 법궁이되고 나머지 궁궐이 이궁이 되는 것이다. 조선초 개국때에는 원칙적으로 정해놓은 것이 바로 "경복궁이 법궁", "창덕궁이 이궁"이였으나 임진난이후 법궁이 창덕궁 이궁은 경희궁이 되었다(당시 경복궁은 소실됨) 조선왕조사는 "조선궁궐사"이기도 하다.

경복궁 창덕궁시대(양궐체제)

 어렵게 한성을 도읍으로 정한 태조는 1395년 경복궁을 완성한다. 그리고 태종대 여러 가지 정치적 혼란기에 개경환도와 한성 재천도를 단행하면서 이궁인 창덕궁을 짓게된다. 현재 남아있는 자료는 없으나 당시 태종은 왕자의난등 돌이키기 싫은 과거가 남아있는 경복궁으로의 임어는 달가울리 없을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경복궁과 창덕궁은 성종대 와서 당시 왕실의 웃어른이셨던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황후의 처소를 위해 창경궁을 짓는다. 이러듯 성종대에는 경복궁이 법궁이 되고 창덕궁 창경궁이 이궁이 되는 양궐체제가 완전히 완성되었다.

창덕궁 경희궁시대(양궐체제)

그 뒤 임진란이 일어나고 서울의 모든 궁궐은 소실되고만다.서울로 돌아온 선조는 정릉동 행궁(옛 월산대군의집과 그 주변 민가를 개조해 임시 거처를 만든다. 현 경운궁)
전쟁직후의 사회적 혼란기에 경제적 궁핍으로 궁궐 중건은 지연되다가 선조는 14년 4개월동안 정릉동 행궁에서 승하하고 만다.그 뒤 광해군때
경복궁은 불길하다 하여 경복궁을 제외하고 창덕궁중건에 들어간다. 하지만 광해군은 창덕궁이 완공된후 이어보름만에 다시 경운군(광해군은 정릉동 행궁을 경운궁이라 명 했다.)으로 돌아와 3
년이 넘는 기간을 보낸다.
창덕궁을 꺼린이유는 자신위 왕위계승의 정통성 문제와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그후 광해군은 결국 창덕궁으로 이어함으로서 창덕궁은 조선의 법궁으로 자리메김한다.창덕궁으로 이어한 광해군은 집착이다 싶을정도로 새궁궐 신축에 나선다. 이때 신축된 궁궐이 지금은 없어진 인경궁과 경덕궁(현 경희궁)이다. (이렇게 광해군이 궁궐에 집착한 이유는 1.왕위 계승의 정통성문제이다. 태종이 창덕궁을 창건한것과 같은맥락에서 보면 된다. / 2.궁궐신축에 본인이 깊숙히 계입하면서 경제권을 확고히 할 수 있고,/ 3.궁궐신축 기관에 자신의사람들을 기용함으로서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려는 것이다.)그러나 광해군은 인조반정에 의해 창덕궁에서 쫒겨나는 신세가 된다. 그 뒤 두차례의 호란과 이괄의난등 사회적 혼란기를 맞이한 인조는 인경궁의 건물을 헐어 창경궁을 수리하여 창경궁으로 이어한다.

다시 경복궁 창덕궁시대(양궐체제)

고종 대에 들어와 바닦까지 떨어진 왕권을 되살리기 위해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중건한다. 그리고 고종 4년인 1867년, 고종은 270년만의 경복궁 근정전에서 아침 조회를 연다.그 뒤 잦은 화재와 외세의 앞력등으로 고종은 창덕궁으로 경복궁으로 자주 이어를 행한다.

경운궁시대(단궐채제)

그러던중 외세의 압력은 더욱 거세졌고 고종은 경복궁을 버리고 아관파천을 한다(한나라 국왕이 자신의 궁궐을 버리고 타국의 대사관으로 피신을 한것이다.)그 뒤 고종은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이어를 한다. 경운궁에서 고종은 일제의 압력으로 순종에게 대리청정할 것을 결정하나 이완용등은 대리청정이란 말을 양위로 바꿔 고종을 강제로 물러나게 했다.그리고 순종에게 고종의 궁호를 덕수(德壽)로 부호를 승녕(承寧)으로 정하게 한다.이는 고종을 상왕으로 (당시에는 대한제국이였기 때문에 태황제임) 밀려나게해 모든권한을 박탈하려는 것이다.
1910년 일한병합 뒤에는 고종의공식칭호를 "덕수궁전하" "이태왕(李太王)"으로 굳혀지게되었다. 현재 덕수궁은 잘못된 것이다. 경운궁이라 해야할 것이다.
거기에 일제는 모든 궁궐을 마구 헐고 고치면서 한민족의 혼을 말살하려 한다.

창덕궁시대 (단궐체제)

고종에 이어 순종은 창덕궁으로 이어한다. 그리고 일한병합으로 국왕이 가져야할 모든권한을 일제에 넘겼으니, 이제 궁궐은 서서히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처럼 조금씩 말라가고 만다.

 

궁궐 연표


연대

 서기

주요 일지

태조4

  1395  

경복궁,종묘 창건

정조1

1399

경복궁 궁성축조

태종5

   1405   

향교동이궁,창덕궁 준공

     12  

 1412

경복궁 경회루,창덕궁 돈화문 완성

     18  

   1418  

창덕궁 인정전건립, 수강궁 건축완료

세종1

  1419

태조 초상화모실 목청전 완공

     3

  1421  

종묘(영령전) 창건

    13

 1431

경복궁 광화문 고쳐 지음.

      15  

 1433  

경복궁 문소전,신무문완공.강령전 다시 지음

     16

 1434

경복궁 보루각간의대흠경각 창건

     20

  1438  

흠경각에 옥루기륜설치 선원전 옮겨지음

     25

  1443   

건춘문 안에 계조당건축

     30

1448

내불당을 지음

       32  

  1450   

창경궁 홍화문 다시 지음 세종 후궁들 수불. 불상 내불당에 조성

단종1

  1453  

창덕궁 중수

세조8  

 1453  

경복궁 동궁 완성

       14  

 1468  

창덕궁 후원에 무일전

성종5

 1474  

경복궁 근정문 홍예문 광하문에 청기와 이으려다 방대로 중지

   9

  1478  

창덕궁 후원에 선잠단 설치

연산2

  1496

창덕궁 대조전 다시 지음.창경궁숭문당.희정당 창건

   11

  1505

창덕궁 인정전 선정전에 청기와 이름 서총대 축조

   12

  1506

경복궁 경회루 서쪽에 만세산 축조

중종24

 1529

왕비 내외명부 인솔하여 창덕궁 후원에서 누에를 치침

명종1

  1546

경복궁 간의대 중수

   5

   1550  

창덕궁 흠경각.창경궁 보루각 수리

     8  

  1553  

경복궁화재,사정전 이북 회진

     9  

 1554  

경복궁 중건역 시작

선조7

  1574  

경복궁 근정전 수리

    25  

1592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남은 궁궡이 전무

  26

 1593  

명례궁(정릉동)을 행궁으로 삼음,경운궁으로 개칭

   40

1607

창덕궁 돈화문 중건

광해1

1609   

창덕궁 중건역 방창

    3  

1611

창덕궁 중건역 완성

  6

  1614

창경궁 보루각 증건 경복궁 흠경각 재건

 8

  1616

창경궁 중건역 준공 인경궁 자수궁 경덕궁의 창건역 시작

12

 1620

경덕궁 창건역 완료

인조1

1623

인조반정시 창덕궁 화재

 2

 1624

이괄의 난 왕피난 창경궁에 화재

  11

   1633

인경궁 함인정 헐어다 창경궁에 옮겨 지음

  14

   1636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과 주변 정자 조성

   20

   1642

창덕궁 후원의 관덕정 건림

   21

    1643  

창덕궁 후원의 심추정 창건

   22

 1644

창덕궁 후원의 존덕정 건축

    23

   1645  

창덕궁 후원의 희우정 지음

     24

 1646

창덕궁후원의 벽하정 건립

     25

  1647

창덕궁후원의 취승정 관풍각건축. 인경궁을헐어다 창경궁 저승전 중건

효종2

 1651

창덕궁 경의재 완공

     4

 1653

창덕궁 천향각 준공

       5  

 1654

창덕궁 수정전 개건

   7

  1656  

창덕궁흠현각 터에 만수전 춘휘당 천경전영건.경덕궁 경화당 헐어다 창덕궁 춘휘당, 계월각 건립

현종5

1664

창덕궁의 관덕정 개수

   8

1667

창덕궁 집상전 영건

숙종8  

 1682  

창덕궁 대수리

      12  

1686

창경궁 취운정 건립

    14

 1688  

창덕궁 후원의 청심정 빙옥지 돌다리 축조

    17

 1691

창덕궁 능허정 창건

   18

 1692

창덕궁 애련정 건립 영화당 개건 불로문과 연당 조성 경덕궁 융무당 개수

    19

 1693

경덕궁 중수

     20

 1694

경덕궁 집희당 지음

     21

 1694  

창덕궁 춘휘전을 선워전으로 하고 초상화 봉안

     22

1696

경덕궁 양정각에 임금 초상화 옮김

     23

  1697

경덕궁 봉황정 죽정 건립

     24

  1698  

경덕궁 영휘전에 불 장서를 위한 흠문각 창건

     26

  1700

경걱궁에 문헌각 신축

     30

  1704

경덕궁에 대보단 축조 춘화정 신건

     33

  1707

창덕궁 부용전 창건 경덕궁 택수정 신축

영조2

  1726

종묘 영령전 증수

     6

    1730  

창경궁에 화재

     8

     1732   

경회궁 규정각 창건

     9

   1733  

경희궁 태령전에 임금 초상화 보관

     20

 1744

창덕궁 인정문 화재

     32

  1756

창경궁 저승전 화재

     52

     1776  

종부사에 지었던 건물 창덕궁에 이건 규장각이라 하였다.

정조1

  1777

경모궁으로 통하는 월근문 건립

    2

 1778  

영조 초상화 영희전에 봉안

      5  

 1781

김홍도화백.희우정에 임금님 초상화 그림      

     6  

1782  

창덕궁 중회담 건축

   9

 1785

창덕궁 수강재 신축

   14

 1790

창경궁 통명전 화재 여휘당 연소

   19

 1795

창덕궁 소서재 창건

    23

1799

창덕궁 대보단 서편에 경봉각 다시 지음

순조3  

1803  

창덕궁 인정 선정전 화재

    11

1811

창덕궁 인정전 서익랑 예문관 불에 타다

    24

 1824

창덕궁 경복전 화재

    26

  1826

창덕궁 후원 발갈이집 창건

     27

1827

의두각 후원에 다시 지음

      28

 1882  

창덕궁 후원 연경당 이전

        29  

  1829  

경희궁 융복전,흥정당,정시각,집경당,사현각이 불에 타다.

     30

 1830

창경궁환경전,함인정,공묵각,경춘전,숭문당,영춘현,양화당,오행각,빈양문에 화재 경희궁 불탄 건물 재건시작,창경궁 숭문당 중건.

    31

 1831

경희궁 불에 탔던 전각 전부 다시 지음. 창경궁 중건역 본격화

      33  

  1833

창덕궁 희정당.대조전 하재 곧 중건 창경궁의 여러 전각 증수.

       34  

  1834

창경궁 중건역 준공.

헌종2

1836

종묘 영령전 2칸 증축

    5

1839

경모궁 봉안각 하재 곧 재건에 착수

    13

   1847

창경궁 낙선재 준공

철종8

  1857

창덕궁 인정전 개수. 창경궁 선인문메 화재

        11  

  1860   

경희궁 보수

    13

1862

창덕궁 신우 화재

고종2  

 1865

경복궁 중건역 시작.광화문,영추문 상량.

      4  

 1868

경복궁 경회루 근정전 근정문 사정전 상량

    5

   1869

어의동 본궁 계조당 터에 이건,창덕,창경궁 수리

      7  

  1870

종묘 영령전 개수

   9

  1872

경복궁 신무문 개수

  10

  1873

경복궁 자경전 일원에 화재.건청궁 창건역 10년째 계속

  12

    1875  

헌종 철종초상화 경모궁 망묘루에 옮김. 경복궁 불탄 전각 증건시작

   13

  1876

불에탔던 경복궁 교태전,자격전,자미당 인지당중건역      완료 11월에 또 불이나서 800칸 소진

    14

 1877

소실된 경복궁 전각 중건,교태전 자경전 자미당 인지당 완료

   15

 1878

육상궁에 큰 불이 나서 123칸 연소 곧 재건

   18

  1881

경운궁 함령전 화재

  19

    1882   

육상궁에 다시 화재

     25  

 1888

경복궁 교태전 강령전 상량(1920년 창덕궁에 이건)

  26

   1889  

경희궁 숭전문 불에 타다

  28

 1891  

창덕궁 중희당 이건

    32  

1895

경운궁 증축 중수

  건양

   1896  

경운궁 공사 준공

 광무3  

1899

원구단에 황궁우 건립

    4

   1900  

경운궁 선원전에 화재 정관헌 구성헌준공 경복궁 궁성 축조 완료

     5

  1901

경운궁 중명전 순덕전 창건

     6

    1902  

경운궁 중화전 중화문 준공

    7

  1903  

경운궁 함령전에서 발화.즉조당 석어당 경효전 흠문각이 불에 타다.

     10

   1906  

경운궁 대안문 수리.대한문으로 이름 바꿈

순종1  

 1907

창경궁을 창격원으로 격하

       2   

1908

왜인이 창덕궁 진선문 헐어냄 인정전 중수

     3  

 1909  

덕수궁 석조전 완공

      4   

1910

왜인들이 경복궁 경희궁 전각 100여칸 헐어냄

 

  1911

창덕궁에 박물관 보관 식물배양실 신축 창경궁 춘당지에 왜식 수각 이층벽동 건물 74편 건립 박물관이라 하다

 

   1912  

창덕궁 대조전 수리 동물 온실 신축

 

    1917  

청덕궁 내전에 큰불

 

 1920

경복궁 내전 헐어다 창덕궁 내전을 중건

 

   1926

경희굴 숭정전 회산전을 불하 조계사로 이건 진정당은 광운사에 이건

 

    1932  

경희궁 홍화문을 왜인의 절 박문사로 이건

 

    

출처:http://ssong500.com/kp/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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