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주 공중부양 연대기, 혹은 ‘의자’의 ‘낯선 표류’기
반이정 미술평론가 dogstylist.com
사진 자료에 의존하면 공기압축으로 팽창된 투명 우레탄 비닐 속에, 왜소한 나무의자가 갇혀 허공에 떠 있는 <의자 A chair>는 98년에 이어 2000년 두 차례 출품된 것으로 되어있다. 독일에서 막 귀국한 유학생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평범한 일상 오브제를 희롱하는 개념주의적 잔재를 보는 느낌이 강한 진지한 실험작인데, 유감스럽게도 현재 이 작품은 남아있질 않다. 다른 작품들이 근접거리에 나란히 설치된 2000년의 설치 장면보다 단독자의 의지가 강렬했던 1998년 설치가 깊은 인상을 남긴 까닭은 실재(의자)를 바닥 면으로부터 분리시킨 일개 압축공기의 집결체(투명 우레탄비닐)의 존재감이 다른 오브제의 간섭 없이 제시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의자는 마치 얼핏 중력의 논리에 비논리적 저항으로 공중에 떠있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은 제조 원리상 오래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시간경과에 따라 유출되는 공기의 의지마저 거스르긴 어려웠을 터이다. 오브제를 바닥에서 떠올리는 제작 원리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김건주에게서 끊임없이 발견되는 저항 논리다.
김건주_낯선표류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6
물론 세간의 평가처럼 작품들 간 외관상의 유기성이 결여된 것도 사실이지만 상호무관 해 보이는 작품 연보를 잇는 것은 가시적인 연관성이 아니라, 무게감을 저버린 공중부양이라는 비가시적 개념 그 자체다. 지난 과거 국내 미술대학의 고전주의 도그마가 젊은 학생들의 상상력을 유린하고 황폐화 시킨 혐의는 근자들어 발견되는 무게감 없는 조각 작품의 열기를 통해 충분히 반증되는 분위기다. ‘톤(ton)’ 단위의 중량감 있는 덩어리를 비로소 조각으로 인식했던 아카데미의 요구와 경직된 미감에 증오를 품었던 학생 김건주는 그때부터 줄곧 경량화 된 조소의 가능성을 타진 중이었다. 재료의 무한 혹사를 포기하고 가벼운 조각가로 거듭나는 부활의 장면은 이제 기성화단의 조각은 물론 미술대학 과제전에서조차 흔쾌히 발견되는 현상이 되었지만 적어도 그가 재학 중이던 그때 상황은 그렇질 못했다. 98년 의자에서 상징적으로 시작한 그의 ‘가벼운’ 행보는 같은 해 투명 비닐에 스크래치를 낸 여행가방 작품, <여행 Travel>에서도 목격되며, 이태리 카라라에서 우연히 주운 미가공 상태의 백색 대리석을 공기 압축된 투명 비닐 위에 눌러 붙여, 꽃 아닌 꽃을 제조한 2000년 작 <Stone>으로도 연보를 잇는다. 그러나 막연히 소재의 질량을 줄이는 것만이 그가 전념한 경량화 노력의 전부는 아니다.
한해 지난 2001년 <몽환의 숲 Phantasy forest>은 측정불가 한 무한 질량의 숲을 작가가 무게감 제로(Zero)상태의 개념으로 환원시킨, 진정 가벼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사물의 본질을 사물의 볼록한 외관과 그걸 둘러싼 오목한 공기로 인식한 2000년 <Island-7 door>가 요철효과를 물질적 차원에서 고민한 거라면, <몽환의 숲>의 시도는 요철 효과는 고스란히 차용하되 실험 대상을 연장(延長)성 있는 물질이 아닌, 작가의 의식 속에서 탈 물질화된 숲에 대한 기억을 선의 흐름으로 환원시킨 경우이다. 다시 98년 <의자>로 돌아와 보면 무게감 논의를 잠시 접고, 의자가 무엇이었는가를 따져보자. 여기서 김건주의 비유기적 유기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공중 부양한 의자는 기실 작가 자신의 ‘붕 떠버린’ 처지가 물성으로 재현된 경우일 것이다. 이 사실을 보강하는 경우는 제목부터가 1인칭 시점을 고수한 2002년 작 <독백 Monolog>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도식화된 인체 입상의 실루엣이 연장되다가 중간에서 약 60도 각도로 한차례 ‘꺾이면서’ 불길 실루엣으로 전이되는 작품이다. 무게를 측정하기 어려운 불길(불은 실체는 가시화되지만 연장성이 있다고 간주하긴 어렵다)과 작가를 등가물로 처리한 이 작업은 <의자>가 대리한 작가의 붕 떠버린 위상을 가시화한 결과일 것이다. 2006년 김건주는 공중부양을 재시도 중이다. 지난 고양 스튜디오에는 백색으로 도배된 전시 공간 속에 거듭 백색을 더한 오브제들이 허공에 떠 있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향유고래, 소파, 숲, 펼쳐진 책, 상의(上衣)를 형상화환 다섯 점의 가벼운 오브제들은 그가 처한 무의식, 관계, 자연, 의식, 인간을 각각 표상한단다. 한편 함께 전시된 <Moving>은 그의 고양 스튜디오 방문자를 촬영한 후 이미지를 원심회전 시켜 방명자의 아이덴티티를 화면에서 몰아내고, 최소화된 색채의 조형성만 남겨둔 얄미운 작업이다. 이제 허공으로 사라진 대상은 작가뿐 아니라 그와 관계하는 외부 방문자까지 전이되고 있는 중이다. 그의 오브제는 언제쯤 허공에서 내려와 낯선 표류기의 종지부를 찍을까.
김건주_Moving_컬러인화_120×150cm_2006
출처: art critic_ 반이정(baan)_ http://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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