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비상!’(Keep it curious!) 레스페스트 2005가 온다. 다른 영화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자유분방한
리듬으로 무장한 영화제가, 오는 11월10일부터 19일까지 남산드라마센터와 서울애니시네마에서 열린다. 28개국 450여편에 이르는 장·단편이
상영되는 레스페스트 2005의 추천작을 꼽거나, 23개에 이르는 섹션을 세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재기발랄한 단편, 기기묘묘한
뮤직비디오와 CF,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 등 세개의 범주로 올해의 레스페스트를 검색해본다.
단편
15분 내외의 러닝타임 안에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주제를 녹여낸 극·실험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 세개의 섹션으로 나뉜 글로벌
단편 중 글로벌 단편3은 음울한 세계관과 블랙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을 모았다. <오픈 워터>를 떠올리게 만드는 광활한
바다에서 표류하는 남자의 영상과 그 영상을 카메라에 담는 촬영팀이 맞닥뜨린 끔찍한 현실을 나란히 배열한 <플롯섬/제트섬>, 아이를
주문하고 구매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로테스크한 3D애니메이션에 담은 <디자이닝 베이비>, 밑도 끝도 없는 영화 속 추격신이 실은
게임에 불과했음이 밝혀지는 <원칙고수> 등이 그 작품들. 레스페스트가 사랑한 작가, 크리스 커닝햄의 신작으로 돌연변이와 치와와의 어둠
속 기묘한 동거가 뮤직비디오 같은 화면에 펼쳐지는 <돌연변이 조니>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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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단편 <디자이닝
베이비> | |
전세계 주목받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디자인 세계는 모션그래픽과 방송디자인의 유명한 최신작이 모여
있다. 레고 스타워즈 시리즈와 연계한 작품(<클론 기병 오케스트라>)부터 혼다 광고(<GRRR>), 9·11 당시 납치당한
비행기 조종사와 관제사 사이의 교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모션그래픽(<유나이티드 항공 93편: 뉴어크 발 도착지 없음>) 등이 눈에
띈다. 컷&페이스트는 기존의 콜라주 아트에서 더 나아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이미지와 사운드를 엮은 작품이 상영된다. 올해
레스페스트가 새롭게 프로그래밍한 섹션이다. 레스페스트의 다른 작가들처럼 영화, 뮤직비디오, 광고, 디자인을 넘나들며 작업을 계속해온 마이크
밀스 특별전중 <행복하니?> 또한 놓칠 수 없는 단편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안락한 미국 주택가를 탐험하는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국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뮤직비디오와 CF
음악과 상품을 대중에게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다는 점에서, 그러나 때로 본래의 목적보다도 실험적이고 매력적인 영상이 먼저
눈길을 끈다는 점에서 뮤직비디오와 CF는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두 분야의 작업을 병행하고 있으며, 레스페스트는 그러한 작가들의
유명한 작품이 관객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올해는 3개의 특별전과 두개의 뮤직비디오 섹션이 준비되어 있다. 우선 개막작인 벡
특별전. 음악뿐 아니라 도전적인 뮤직비디오로 유명한 벡은, 함께 작업한 감독의 리스트 역시 화려하다. <이터널 선샤인>에
영감을 제공한 듯 보이는 해변의 책상이 인상적인 <Deadweight>(미셸 공드리), 서정적인 음악을 배경으로 음악가의 쓸쓸한
방황을 그린 <Guess I’m doing fine>(스파이크 존즈), 장난스런 그래픽 애니메이션이 맛깔스런
<E-Pro>(샤이놀라) 등 10년에 걸쳐 만들어진 17편에 달하는 뮤직비디오가 우리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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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보이 슬림의 <The
Joker> | |
불온하고 혁신적이기로는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창작집단 트랙터 특별전도 뒤지지 않는다. 섹스, 폭력, 공포,
혼돈이라는 키워드로 나뉜 48편의 CF와 뮤직비디오가 기대를 모은다. 성적이고 유머러스한 코드로 무장한 컵라면, 면도기 CF, 젖소농장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이 그 어떤 포르노보다 섹시한 프로디지의 뮤직비디오, 똥배와 닭을 공포스럽게 만든 스포츠용품 CF 등 무한한 상상력의 향연이
펼쳐진다. 인도, 미국 서부 등 전세계 곳곳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디젤 CF 중 구슬픈 <고향생각>을 BGM으로 깔고 북조선에서
진행되는 ‘한국편’을 놓치지 말 것. 조셉 칸,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자미로콰이, 윌로우즈의 뮤직비디오가 포함된 락뮤직비디오에서는
숨막히게 귀여운 아기고양이들의 터프한 여행을 다룬 팻보이 슬림의 <The Joker>가 단연 압권이다. XL 레코딩
특별전, 시네마 일렉트로니카역시, 만만찮은 뮤직비디오로 무장한 섹션들이다.
다큐멘터리
올해 레스페스트가 초청한 다큐멘터리의 특징은, 단순한 스포츠, 상품, 취미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 것들을 돌아본다는 것이다. <시티 오브 갓>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제작한 <징가>는 그
자체로 문화이고 일상인 브라질 축구를 우아하고 역동적으로 다룬다. 저스트 포 킥스는 백인들의 조깅화에 지나지 않았던 스니커즈가
오늘날과 같은 문화아이콘으로 부상하게 된 과정을 입체적으로 고찰한다. 1970년대 뉴욕에서 힙합과 함께 전성기를 누리게 된 스니커즈는 스포츠제품
기업과 만나면서 거대한 트렌드를 형성했다. 힙합가수, 운동선수, 디자이너, 마케팅 담당자 등의 인터뷰를 포함한, 스니커즈의 모든 것. 아디다스,
나이키, 퓨마 등의 익숙한 브랜드가 어떤 맥락에서 인기를 끌었는지, 평범한 스니커즈를 어떻게 신고 어떻게 끈을 묶을 것인지가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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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무엇을 혹은 왜가 아니라
예스> | |
복잡다양한 딜레마를 안고 있는 불법예술, 그래피티는 어떤가. 폐막작 <인파미>는 낯설고도 익숙한
그래피티 작가 7인의 일상을 통해, 단순한 반항에 그칠 수 있었던 ‘낙서’가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이
밖에도 실험영화 혹은 전시예술에 가까운 다큐멘터리도 눈길을 끈다. 마이크 밀스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어떻게, 무엇을 혹은 왜가
아니라 예스>는 18살에서 70살에 이르는 다양한 인종, 직업의 사람들 12명에게 단일한 질문을 던진 결과를 담았다. 질문은 하나.
“당신에겐 이제 살날이 석달밖에 남지 않았다. 꼭 하고 싶은 일 5가지는?” 가족을 챙기고, 어딘가로 떠나고, 스스로의 인생을 정리하는 등
비슷하고 또 다른 그 대답들이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일일이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풍부한 볼거리 못지않게, 다양한 즐길거리와 참여할 만한 부대행사 또한 푸짐하다. 특별전에 초청된
트랙터, HP광고로 주목받은 프랑수아 보겔, 일본의 티비 그래픽스, 독일의 인터필름 국제단편영화제의 프로듀서에게 그들만의 작업 아이디어를
들어보는 레스페스트 토크쇼가 행사기간 중 드라마센터 스튜디오에서 진행된다. 개막식에서는 개막작 상영에 앞서 VJ와 DJ가 함께 만드는 퍼포먼스를
감상할 수 있고, 11월12일에 레스 라운지에서 벌어지는 비디오 빅텀 파티에서는 티비 그래픽스와 펌핑 디제이스가 호흡을 맞춘다. 국내 작가
10인의 영상, 디자인, 일러스트, 그래피티는 행사장 곳곳에 전시되어 영화제를 찾는 관객에게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