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숙의 명화읽기 |신사와 악당
명성을 쌓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것을 지키는 일이라고 한다. 부를 이루는 것도 3년, 명성을 얻는 것도 3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고 보면 열심히 일해 인생의 정점에서 부와 명성을 동시에 움켜쥐는 순간은 너무나 짧다. 짧은 순간에 얻은 부와 명성을 어떻게 하면 실패하지 않고 지킬 수 있는가가 부와 명성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인생의 관리가 제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일찍이 부와 명예를 가졌던 사람일지라도 조금만 자기 관리가 소홀하면 금방 추락하고 만다. ‘추락하는 날개가 있다’라는 소설 제목처럼 추락할 때 날개라도 있으면 천천히 조금씩 추락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회는 추락할 때 엘리베이터를 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초고속 승진이야말로 기쁨을 주는 일은 없다. 직위는 곧바로 자신을 사회가 얼마나 인정해 주고 있느냐다. 승진은 능력을 인정을 하고 거기에 합당한 대우를 사회로부터 받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 관리를 못해서 초고속으로 추락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것도 원초적 본능 때문에.
여성을 유린하는 악당
남자의 한결 같은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죄악을 저지르는 일이다. 본능에 잠시 충실했다가 사회적 명망이 무너져 버린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남자가 본능에 충실하면 할수록 인생의 예정된 길에 점점 벗어나게 된다.
남자에게 허리 아래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속설이 있지만 그것은 봉건 시대적인 발상이다. 요즘 시대일수록 남자는 허리 아래를 잘 관리해야만 한다. 허리 관리 못하는 남자일수록 돈도 잃고 명예도 잃고 건강도 잃어버린다. 남자는 허리의 힘이 좋다고 자랑하지 말고 자신의 허리를 보호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남자는 사랑하면 할수록 아주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허리를 함부로 휘두르는 남자들이 이 사회에는 너무 많다. 허리의 힘 좋다고 함부로 휘두르는 남자일수록 여성에게 상처를 준다. 그런 남성에게 당한 여자들은 그것을 증명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특히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여성이 피해를 호소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치심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남자는 피해자가 침묵하고 있으면 서로 좋아서 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프라고나르(1732~1806)의 <빗장>은 여성이 강간을 당하고 있는 절박한 상황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화면 오른쪽에 여인은 도망가려고 문을 향하고 있고 남자는 억센 힘으로 여인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다. 남자는 완력으로 여인을 도망가지 못하게 하면서 오른손을 뻗어 빗장을 걸고 있다. 이 작품에서 빗장은 남녀의 성적 결합을 나타내고 있다. 여자의 손이 남자의 얼굴에 있다는 것은 남자의 강제적인 행위에 대한 저항의 표시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는 이 작품에서 밀폐된 공간인 침실에서 벌어지는 남자와 여자의 밀고 당기는 긴박한 순간을 묘사했다.
미녀를 구원하는 흑기사
남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축복인 동시에 재앙일 수 있다. 여자는 한 사람에게 사랑받으면 행복하지만 남자는 만인에게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는 남자의 도리만 강조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한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면 그것은 집안에서 도를 닦고 있는 것과 같다. 남자는 일에 대한 성취감이 가장 행복을 주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을 구해주는 남자에게 전부를 준다.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흑기사를 기다리는 여자들이 많이 있지만 특히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남자를 사랑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여자다. 너무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사회를 위해 불의를 보고 지나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인 것처럼 앵그르(1780~1867)의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 이 작품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름다운 미녀를 구하는 남자를 표현한 것이다.
화면 중앙에 있는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있는 벌거벗은 미녀가 안젤리카다. 안젤리카는 아리오스트의 서사시 <성난 오를란도>에 나오는 아름다운 공주로 많은 남자들의 흠모를 받았다.
안젤리카의 사랑을 받기 위해 서로 경쟁을 하고 있는 남자들 가운데 그녀의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노인 한명 있었다. 노인은 그녀를 섬에 가두고 괴물로 하여금 안젤리카를 지키게 했다. 이때 전설 속에 등장하는 용장 오를란도의 부하인 기사 로저가 히포그라프라는 말을 타고 와 괴물을 물리치고 그녀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이 서사시의 내용은 고대 신화 안드로메다와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비슷하다.
이 작품 속에서 안젤리카는 성난 파도에 휩싸인 바위에 두 팔이 결박당해 있고 왼쪽 다리는 앞으로 내민 채 서있다. 그녀의 머리는 뒤로 젖혀진 채 고통과 공포 속에서도 기사 로저를 바라보고 있다. 딱딱하고 어두운 바위는 그녀의 흰 피부와 대조를 이루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 그녀는 마치 바위와 일체가 되어 조각상 같이 느껴지고 있다.
앵그르는 고대 신화 안드로메다를 그린 다른 화가들과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기사 로저를 화면 정면에 배치시켰다. 그는 아름다운 미녀 안젤리카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괴물을 처치하는 데 온 신경을 쓰고 있다. 화면 아래에 있는 괴물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기사 로저의 창을 물고 있다.
앵그르는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왼쪽 있는 작은 배와 오른쪽 바위에 있는 등대 외에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았다. 로저가 타고 온 말은 독수리 머리와 날개를 가지고 있고 몸은 사자인 전설속의 동물이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는 이 작품에서 서사시의 내용을 옮기면서도 여성의 성적 매력을 부각시켰다. 이 작품에서 화면 중앙을 가로 질러 안젤리카의 몸을 지나 괴물의 입에 창끝이 물려 있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성적 결합을 상징하고 있다. 그 순간 안젤리카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는데 그것은 여자가 오르가슴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빗장>-캔버스에 유채, 73×93, 1776~78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캔버스에 유채, 147×190, 1819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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