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대 스타작가 키우기
"소장하고 싶은 작가?…글쎄요"
원로.외국작가 작품에만 관심 몰려
해외서 인정받는 스타도 국내선 외면
조우석 중앙일보 기자
"그림 그리는 데 이렇게 많은 돈이 들다니 정말 괴롭다. 동료인 고갱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림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일도 불가능하다니. 뒷시대 화가들이 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발판이 될 수 있다면…."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토해낸 고백 한 대목이다. 1899년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혔던 고흐의 소망은 20세기 들어 서구미술의 활력을 뒷받침하는 시장 인프라 형태로 폭넓게 깔려 있다.
이를테면 국내 금융권에서는 미술품 담보 대출을 취급하지 않지만, 선진국 대부분은 이를 얼마든지 인정해 준다. 김순응 서울옥션 대표 등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외의 경우 현대미술품은 투자가치 면에서 유가증권.부동산 등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더 유리하다.
웬만한 은행이 VIP고객의 투자를 돕기 위해 아트뱅킹 파트를 운용하는 것도 그 맥락이다. 미국에서의 미술품 투자 평균 수익률은 지난 3년간 물경 54%. 영국 철도연금기금의 경우 1970년대부터 기금 일부를 미술에 투자하는데, 연평균 수익률이 11%라고 한다. 국내 미술계는 선진국 미술 시장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국내 미술계의 더 화급한 위기 징후는 따로 있다. 스타작가의 기근 현상이 그것이다. 물론 90년대 초 미술값 거품붕괴의 여파라지만, 미술산업을 위한 성장 엔진이 결정적으로 부실한 것이다. 그 때문에 '시장 재건'을 위한 조치가 없다면 앞으로 10년 뒤 역시 별 비전이 없다는 게 미술계의 중론이다.
현재 40대 전후 작가들의 처지는 우울하다. 쉽게 말해 길 가는 이들을 붙잡고 "요즘 누가 미술계의 스타인가?"를 물어보자. 서너명의 작가를 떠올릴 사람들이 드물 것이다.
그것은 컬렉터 입장에서 보자면, '소장하고 싶은 작가(collectable artist)'층이 거의 없거나 극히 얇다는 판단으로 이어진다. 그런 까닭에 80년대 말 미술시장 개방 이후 일부 큰손 컬렉터들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매력적인 구입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에게 월드 마켓에서 통하는 40~50대 작가층이 없는 것은 아니다. 50대 작가로는 김홍주.고영훈.이상남 등이 거론된다. 주로 페인팅 분야의 이들은 이미 아트페어 등 해외 미술시장에서도 상품성이 입증됐다.
40대 중에서 경쟁력을 가진 작가들은 더 많다. 여성작가 이불을 비롯해 서도호.김수자.조덕현.이기봉.최정화 등이 그들. 요즘 각광받는 사진 장르에서도 민병헌.이정진.김아타 등이 포진했다. 이 작가들은 서구의 미술관과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해외 미술관들이 일찌감치 컬렉션을 해뒀을 정도다.
이들 외에 해외아트페어에서 판매가 되는 작가로는 전광영.정광호.노상균.김유선.김창영.함섭.양만기.김택상.함진 등이 거론된다. 그렇다면 작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애호가와 컬렉터들이 갖는 '작가 기근 심리'가 문제인 셈이다.
컬렉션을 하기에 전통적인 페인팅이나 조각 같은 친근감이 덜해서 그럴까? 아니면 그들은 90년대 초반 거품 붕괴의 피해자들이라서 그럴까? 그것이 대답의 전부는 못 된다. 현대미술은 어차피 대중문화산업처럼 스타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현재 미술계의 작가 기근 심리는 이들이 걸출한 작가 반열에 오르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말해준다.
어쨌거나 이들 작가들이 '컬렉션을 해두고 싶은 작가'로 선뜻 떠오르지 못한 것은 빈사의 미술동네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잠재력이 풍부한 40~50대 스타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마케팅 작업에 국내 문화기관이 어떻게 나서야 할까. 구체적인 지원 시스템과 인프라 구축 문제는 다음 회에 다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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