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예술과 반예술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시간에는 뒤샹이라는 다다이스트의 작품세계를 중심으로 20세기 초반의 전위적인 미술운동이었던 다다이즘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다다(Dada)는 세계 제1차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6년경에 시작되었습니다. 일전에 독일표현주의자 키르히너의 작품을 보면서 전쟁이 유럽인들의 사고에 끼친 영향을 이야기했었죠. 오늘날에야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 하면 인류의 종말을 생각하게 되지만, 1차대전이 발발할 당시 많은 유럽의 지식인들은 전쟁을 통한 일종의 세계정화 혹은 정의구현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전쟁은 그들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차대전이후 유럽인들 사이에는 전쟁에 대한 회의감이 팽배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향을 강하게 가진 미술가들이 1916년 2월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시작한 모임에서 다다라고 하는 반항기 강한 미술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의 세상에 대한 반항심은 곧 전쟁을 낳은 서구 전통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한 것이었습니다. 다다는 비단 미술가들만의 운동은 아니었습니다. 취리히 다다가 시작된 것은 후고 발이라는 극작가의 "카바레 볼테르"에서 였습니다. 이 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에미 헤밍스라는 배우, 트리스탄 짜라라는 시인, 리하르트 휄젠벡이라는 작가도 있었고, 물론 쟝 아르프, 마르셀 장코 같은 미술가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거의 매일 밤 이곳에 모여 일종의 공연을 했는데, 에릭 사티와 쇤베르크의 현대음악과 거의 소음이나 다름없는 잡음으로된(bruitist) 음악을 연주했고, 아프리카 부족의 시, 단어를 우연적인 순서로 나열한 시, 그리고 의미없는 음으로 이루어진 음성시(sound poetry)를 낭송하거나, 둘 이상의 시를 동시에 낭송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부조리한 행위들을 통해 그들은 기존의 미술에 대해 공격하였습니다.
[후고 발, 1916년 카바레 볼테르에서 음성시를 낭송하는 장면] 카바레 볼테르의 주인이었던 후고 발이 음성시를 연주하는 장면입니다. 음성시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특별한 의미도 없이 단어들을 운율만 맞추어 나열한 시입니다. 그런데 발의 복장이 아주 특이하지요? 그의 일기에 따르면 그가 이 공연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복장이라고 합니다. 다음은 후고 발이 발표한 시 중 하나를 감상해 봅시다.
'다다'가 무슨 뜻일까요? 미래파니, 야수파니 하는 명칭들은 금방 뜻이 들어 오는데, 다다는 그렇지 않죠. 사실 다다라는 명칭은 아주 우연히 지어졌습니다. 다다는 루마니아어로 목마를 의미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별 의미없이 지껼이는 음성어 이기도 합니다. 아직 말을 제대로 못하는 어린 아이가 "다다...다다..."하는 것 말입니다. 한마디로 별 뜻도 없는 말인데, 다다이스트들은 이 무의미한 음성어가 자신들의 작업과 목표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여 이것을 자신들의 명칭으로 삼습니다. 사실상 다다이즘은 미래파나 큐비즘, 야수파처럼 하나의 양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하나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즉 미술이란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기존의 관념에 대한 도전 의식입니다.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수는 방법은 각각의 미술가들에게 다르게 나타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부정성, 즉 모든 가치에 대한 무정부주의적 부정 행위에서 찾아집니다. 그들은 현존하는 모든 예술 형식에 대한 파괴를 감행하였고, 저항을 위한 저항을 감행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다다의 정신은 반대(anti)로 특징지울 수 있는데, 그들은 반종교, 반도덕, 반자연, 그리고 반예술에까지 나아갑니다. [마르셀 뒤샹, <세개의 표준정지장치> 1913-4] 다다이스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뒤샹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뒤샹은 1미터 길이의 실 세가닥을 각각 1미터 높이에서 떨어뜨렸습니다. 땅에 떨어진 실은 각각 우연하고 불규칙한 형태를 하고 있었겠죠. 뒤샹은 이 형태를 그대로 고정시켜서 일종의 자(measure)를 만들었습니다. 위의 사진을 봅시다. 세가닥의 실의 모양을 본뜬 그림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형태를 따라 만든 나무로된 자가 있습니다. 이것들을 뒤샹은 <세개의 표준 정지장치>라고 명명하고 자신만의 측정법으로 삼았습니다. 말하자면, 어차피 우리가 쓰는 미터법도 인위적인 약속일 뿐인데, 미터법을 마치 절대적인 척도인양 신봉하는 관습이 우습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마르셀 뒤샹, <표준정지장치의 회로> 1914] 뒤샹은 <세개의 표준정지장치>를 이용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세개의 자를 각각 세번씩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철도 지도같은 이 그림은 사실상 전적으로 뒤샹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이 그림이 만들어진 과정을 생각해 봅시다. 표준정지장치라는 자의 형태는 어디까지나 아주 우연히 얻어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할 때, 이 표준정지장치의 회로도 뒤샹의 의도뿐 아니라 우연한 힘에도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사실 미술작품이라는 것은 작가의 창조적 능력의 구현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선 뒤샹 자신이 결정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부분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습니다. 즉, 뒤샹은 자신의 작업에 우연 혹은 자연력을 개입시킴으로써 예술가의 독창성이라는 신화에 일격을 가하고 있는 셈입니다. [마르셀 뒤샹, <샘> 1917] 뒤샹의 작품중 가장 유명한 거죠. 뒤샹은 남성용 소변기에 사인을 하고 자신의 작품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작가가 직접 만들지 않은 기성품을 작품으로 제시한 것을 우리는 레디메이드(readymade)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미술작품이라고 부를 때는 그것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서 완성된 유일무이한 물건임을 말합니다. 예술가는 마치 신처럼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구요. 그런데 <샘>은 이 세상에 유일무이하게 존재하는 독특한 물건도 아니고, 이 작품에선 예술가의 독창성이 발휘되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 변기를 만드는 회사에선 하루에도 수천개의 변기를 만들어 낼 터이고, 뒤샹은 단지 그 중 하나를 구입해서 전시했을 뿐이죠. 사실 1917년 당시 뒤샹은 이 작품을 전시할 수 없었습니다. 전시회에서 받아들여 주질 않았죠. 우선 작가가 창조한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로 인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소변기라는 대상의 성격이 전시관계자들의 심기를 더욱 건드렸겠죠. 하지만 수십년이 지나고 나서 이 작품은 하나의 신화가 되었고, 미술애호가들에 의해 수집되기까지 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샘>이 하나의 미술작품이라면,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뒤샹이 이 물건을 선택하여 미술작품으로 결정하고 여기에 서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미술가는 작품을 창조하는 대신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예술작품으로 그가 이것을 스스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여느 미술가들처럼 그는 서명을 합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이름 대신 R. Mutt라는 이름을 써 넣었죠. 도대체 Mutt는 누구일까요? 그것은 실존인물의 이름도 아니고, 뒤샹의 가명도 아닙니다. 그냥 허구의 이름일 뿐인데, 사실 영어에서 mutt란 잡종개, 바보라는 의미를 지닌 명사입니다. 두번째로, 이 변기가 작품이 될 수 있는 요건은 이것이 미술관 혹은 그에 준하는 어떤 장소에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이 변기가 어느 화장실에 설치되어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성들의 배설욕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가 되겠지요. 하지만 <샘>이라고 명명된 이 변기는 그런 기능을 수행하지 않습니다. 사물이 놓여 있는 위치가 그 사물의 원래 기능을 전도시킨 겁니다. [마르셀 뒤샹, <자전거 바퀴> 1913] 뒤샹의 최초의 레디메이드라고 알려진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요? 자전거 바퀴와 의자를 연결해 놓았군요. 아주 엉뚱한 결합입니다. 다다이스트들은 이렇게 서로 아무 관련이 없는 사물들을 엉뚱하게 결합시키는 일을 아주 즐겼습니다. 이 작품은 문득 "파란 장미"와 같은 불가능한 문구를 연상시킵니다. 세상에 파란 장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린 "파랗다"라는 형용사와 "장미"라는 명사를 결합시켜 하나의 문구를 만들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전거와 의자는 서로 아무런 상관도 필요도 없는 물건들이지만 이렇게 이질적인 사물들을 결합시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겁니다. 이런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일상적인 사물에 대한 전혀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지요. [마르셀 뒤샹, <L.H.O.O.Q> 1919]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그림입니다.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지요. 그런데 좀 이상하다구요? 네, 콧수염이 있는 모나리자네요. 그러고 보니, 전혀 모나리자처럼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모나리자는 신비스러운 매력을 풍기는 여인인데, 이 그림 속의 인물은 수염이 난 남자입니다. 뒤샹은 모나리자를 복사한 그림위에 수염을 그려 넣는 장난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밑에다 <L.H.O.O.Q>라는 제목을 적어 넣였죠. 이 알파벳 문자열을 불어로 읽으면, "엘르(L) 아쉬(H) 오(O) 오(O) 뀌(Q)"가 되는데, 이것을 연음시켜 "엘라쇼오뀌"라고 읽으면 "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졌다(Elle a chaud au cul)"라는 문장과 같은 발음이 됩니다. 동음이의를 이용한 말장난(pun)을 하고 있는 거지요. 모나리자의 신비스런 미소는 사람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그런 상상의 여지를 풍부하게 하고 있는 것이 레오나르도의 천재성이기도 하고요. 여하튼 이 문제의 미소때문에 사람들은 갖가지 말들을 지어내곤 했었습니다. "그녀가 왜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지 알아? '난 사실 남자란 말이야. 레오나르도는 사실 호모였거든..'하면서 우릴 비웃고 있는거야...." 과연 뒤샹이 그녀의 얼굴에 수염을 그려넣으니, 모나리자는 정말로 남자처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수정된 레디메이드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샘>이라는 제목의 변기를 전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예술의 전통을 모독하는 행위로 읽혀질 수 있습니다. <모나리자>하면 우리가 명화의 대명사처럼 여기는 작품인데, 소위 명화의 권위와 그러한 권위를 부여하는 전통에 대한 조소어린 장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뒤샹은 20세기 미술의 역사에서 피카소에 비견될만한 영향력을 행사한 미술가입니다. 뒤샹은 그의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하여 미술의 정의와 미술가의 독창성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노골적인 도전을 하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의 미술은 다다의 정신을 적극적으로 표명합니다. [쟝 아르프, <우연의 원리에 의해 배열된 직사각형들로 만든 꼴라쥬> 1916-7] 쟝 아르프 혹은 한스 아르프라고도 하는 다다이스트의 작품입니다.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아르프는 쮜리히 다다의 멤버 중 하나였었죠. 이 작품은 그 독특한 제목 자체가 작품의 제작 경위를 설명해 줍니다. 아르프는 어느날 드로잉 작업을 하던 중, 작품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림을 찢어 버립니다. 그런데 바닥에 떨어져 있는 종이 조각들을 본 아르프는 드디어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찢어진 조각들의 배열을 본 순간 그는 "그래, 바로 이거야!" 했던거죠. 그토록 오랫동안 작업에 매달렸어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는데, 아르프는 우연의 법칙에 힘입어 작품을 만들게 된 겁니다. 그래서 그는 이 사각형들의 배열을 그대로 화폭에 옮겨 붙여(collage) 이 작품을 완성하였습니다. 뒤샹의 <세개의 표준정지장치>처럼 이 그림도 아르프라는 예술가가 전적으로 의도하고 계획하여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는 직사각형의 배열은 중력이나 공기의 유동 같은 자연력에 의한 것이죠. 다다이스트들은 이처럼 작가의 의도나 독창성을 최대한 배제한 우연에 의한 작품들을 즐겨 만들었습니다. 우연성 원리는 다다이즘의 반미학 정신에 크게 한몫하고 있는 셈입니다. [쟝 아르프, <토루소로 변형된 잎사귀> 연대미상] 우연을 법칙을 발견하던 시기에 아르프는 위의 그림처럼 유동적이고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곡선으로 된 형태를 다수 제작하였습니다. 이 그림은 목판화입니다. 아르프는 종이 위에 마치 낙서하듯이 어떤 형태를 그렸습니다. 처음엔 아무런 계획이나 의도 없이 손이 가는대로 그리기 시작한 그림인데, 나중에 완성된 형태를 보면 어떤 형상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마치 나뭇잎처럼 보이다가 한편으로는 사람의 형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토루소란 팔과 다리가 없는 몸통만으로 된 사람의 형상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이런 식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방법을 흔히 자동기술법(automatism)이라고 합니다. 낙서와 같은 방법으로 작가의 의식을 최대한 배제함으로써 무의식을 발현시키려는 것인데, 이러한 방법은 이후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하게 됩니다. 아르프는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조각 작품을 많이 했는데, 초기에는 나무로된 부조를, 후기에는 돌이나 금속 재료로 환조를 하였습니다.
[쟝 아르프, <에낙의 눈물>1917; <인간 구현체(human concretion)> 1935] 아르프의 조각 작품들입니다. 왼쪽의 부조 작품을 먼저 봅시다. 위의 판화를 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낙서같은 드로잉을 한후 그것을 그대로 나무판에 옮겨 채색한 것입니다. 이때 나무판의 배열도 물론 임의적으로 했습니다. 오른 쪽은 대리석으로 만든 환조입니다. 비록 재료는 변했을지 몰라도 아르프 특유의 유기적인 곡선을 드러내는 양식은 여전합니다. 조각의 개성적인 곡선은 유기적인 생명체를 암시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아르프는 그의 작품에 <인간 구현체>란 제목을 붙이고 있지요. 아르프의 유기체적인 조각은 이후 헨리 무어, 알렉산더 칼더, 바바라 헵워스 같은 조각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쿠르트 슈비터즈, <메르츠 410번: 무엇이든지간에(irgendsowas)> 1922] 하노버 태생의 미술가 슈비터즈는 꼴라쥬의 대가로 알려진 다다이스트입니다. 꼴라쥬는 신문지나 벽지 같은 일상용품을 화면에 붙임으로써 일상생활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입니다. '꼴라쥬'하면 피카소가 생각나지요. 미술에서 처음으로 꼴라쥬가 쓰인 것은 큐비즘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슈비터스의 꼴라쥬는 큐비즘의 구성적 꼴라쥬와는 아주 다릅니다. 그는 길거리에서 주워온 쓰레기나 다름없는 잡동사니들로 이러한 기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미술작품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의 작품은 독일 표현주의회화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슈비터즈는 자신의 꼴라쥬 작품들을 "메르츠(Merz)"라고 불렀습니다. 이말은 코메르츠(Commerz) 은행에서 따온 말인데, 독일어의 "schmerz(고통)"이라는 말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위의 <메르츠 410번>을 봅시다. 신문지와 각종 전단같은 종이들, 그리고 새의 깃털이 꼴라쥬되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 위로 무작위적인 붓질을 하고 있군요. 선명한 색채는 표현적 효과를 증대시켜 주고 있습니다. 메르츠 그림(merzbild)이 시들해질 무렵, 슈비터즈는 메르츠 환경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노버의 자신의 집에서 부터 시작하였는데, 메르츠 그림을 만들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온갖 잡동사니들, 즉 석고, 나무조각, 잡지 등 무엇이든지 메르츠 건물을 만드는데에 사용하였습니다.
[쿠르트 슈비터즈 <메르츠바우(Merzbau)> 1923, 하노버, 1930년경 촬영] 우리는 보통 '미술'을 값비싸고 고귀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미술작품이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미술작품을 우리의 일상생활의 허접쓰레기와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왠지 거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슈비터즈는 바로 그러한 통념을 깨는 역설적인 미술을 했던 겁니다. 다시 말해, 미술은 그것 자체만의 성역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하나의 일상으로 존재한다고 본 것입니다. 뒤샹과 다다이스트들이 등장한 이후 미술의 개념은 전보다 훨씬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공연(performance)도 이제 미술의 영역에 들어 오게 되었고, 일상용품도 미술작품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미술과 타예술 - 음악이나 무용같은 공연예술 - 간의 장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헸고, 미술과 일상간의 장벽도 허물어지게 되었습니다. 최근으로 올수록 미술에선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볼 때, 뒤샹을 비롯한 다다이스트들의 선구자적 역할을 새삼 되새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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