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전시소식

오미순 개인전

영원한 울트라 2007. 4. 22. 08:52

오순미개인전

'의도된 허구와 실재'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작가상세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07년 5월 21일 ~ 6월 9일

갤러리 파란네모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92 윤성빌딩 1층(압구정역 3번출구)

 

초대 : 2007. 05. 21(월요일) 오후 6시

관람 시간: 10:00~18:00 (공휴일, 일요일 휴관)

 

 

 

현대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유리에 대한 가치는 높아져 왔다. 장식품이나 식기 등을 제작하던 작은 범위에서 벗어나 건축재료라던가 보다 활발히 응용되어 왔다. 오순미도 이러한 과정을 밟아온 작가다. 유리라는 재료를 다양하게 구사하고 점처 그 규모를 확대해 왔다. 현재에는 유리 중에서도 거울을 주 재료로 하여 작업하고 있다.

유리란 친숙하면서도 낯설고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재료이다. 누구나 아침마다 자신의 옷 매무새를 고치거나 스스로 모습을 비추기 위해 사용되는 실용적인 물건이기도 하지만 반면 자아를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를 삼을 수 있는 신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언젠가 문득 유심히 들여다 본 자신의 모습에서 낯선 모습을 발견했던 기억들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순미의 거울 작업들은 이러한 성찰을 유도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현대적인고 생경한 이미지를 만드는 도구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순미의 작업은 거울을 가지고 공간에 설치하여 관람자가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2007년 전시도 2006년 작품과 유사한 맥락에 있다. 거울을 이용하고 비치는 상들로 사람 눈에 착각을 주는 전략을 다시 한번 구사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온통 거울로 뒤덮인 방이 아니라 거울과 실제 나무로 이루어진 벽들이 공존한다. 끊임없는 허상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실재 사물을 대면하는 ‘진실’에 마주 대하게 된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바로 이 점에 중점을 둔다. 실재 모습도 허상일 수 있고 거울에 비춰진 모습도 진짜 영상이라는 것을 말이다. 설치된 공간에서 관람자가 새로운 영상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전시를 위한 서문 중에서

이상한 나라에 들어가게 된 앨리스처럼 거울로 설치된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우리는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다시 살펴보면 이 전시의 주인공은 작가가 아니라 바로 관람자임을 알 수 있다.

 

 

의도된 허구와 실재

이주리_미술사

몇 년 전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는 실재와 허구에 대한 전복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 그 영화를 보고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영화에 나온 내용처럼 만들어진 허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순간 두려워했던 기억이 난다. 간혹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가 진짜 존재할까 혹시 사람이 만들어낸 허구의 공간은 아닌가 하는 상상도 해본다.  

오순미의 작업은 이러한 허구의 상을 주제로 한다. 관람자가 들여다 보고 있는 그의 작품은 거울로 제작했다. 그는 작품의 재료를 초기부터 거울을 주재료로 하여 선보였다. 하지만 거울에 비춰진 상들은 실재로 존재하는 것들이 아닌 이미지일 뿐이다. 거울이라는 특성상 그 이미지는 반사되어 나타나고 또 반사되어 끊임없이 나타난다. 수학에서 의미하는 끝나지 않는 수열처럼 혹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상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작가는 작품에서 반복과 순환을 의도하고 제작했다고 한다.

 

 

거울은 고대 신화 나르시스 이야기에서 근원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르고 물 위에 비친 용모가 너무 아름다워 깊은 물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뛰어들게 된 나르시스. 그래서 어쩌면 거울은 본래 물과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초기에 제작한 <세상으로의 통로>(1998)도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물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그의 작품은 푸른색과 물결 무늬를 형상화 하여 유리 세공 방법으로는 전통적이라 할 만한 스테인드글라스 기법으로 제작했다. 그의 작품 제목에서 암시하듯 거울은 이쪽이 아닌 거울 저쪽 공간을 이어주는 통로가 된다. 물에 빠진 나르시스 또한 수면 뒤 또 다른 공간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물의 이미지는 그의 작품 속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2005년 이주영과 공동 제작한 <파란 상상>은 온통 푸른 빛으로 보여진다. 앞선 작업이 벽면에 걸 수 있는 다소 크기가 작은 작품들로 제작했다면 이 작품 이후 점점 더 큰 규모로 나아가게 된다. 사방 벽면을 푸른 색으로 마감한 공간은 깊은 물 속을 나타내듯 보여지고 작품을 보면서 사람들은 단일한 색이 주는 어떤 눌림을 경험하게 된다. 누구든지 물속에 자신을 담궈 본 사람이라면, 혹은 강이나 바다 깊은 곳까지 잠수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물 속에서 몸이 부유하는 자유로움과 함께 물의 무게가 주는 압박을 느껴 보았을 것이다. 작가는 그러한 경험을 푸른빛으로 환기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가 2006년 이후 해온 작업은 위에서 설명했던 물이 지니는 일반적 이미지 보다 비치는 모습에 더 관심을 모은 것 같다. 다시 말해서 나르시스가 궁금해 했던 수면 위에 비친 누군가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니다. 물의 표면에 드러난 허상처럼 눈에 보이는 이미지 자체로 집중한다.

 

 

거울 상은 언제나 작가들에게 흥미로운 주제가 되었고 이미 미술사적으로 많은 작품에 나타난다. 파르미지아노의 <자화상>(1503)은 곡면 거울을 통해 왜곡되어 보이는 자화상을 그렸다. 그리고 벨라스케즈는 <라스메니나스>(1656)를 통해 공간 확장을 꾀한 작가로 기억된다. 하지만 오순미의 거울 작품들은 현대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작품을 떠오르게 한다. 그들은 산업용 재료들을 가지고 작업하는데 많은 관심이 있었다. 작품들은 단순한 구조로 제작되었고 강철과 알루미늄, 거울과 유리도 즐겨 사용했다. 오순미가 2006년에 <상을 반복하다>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거울과 유리를 사용한 미니멀리즘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실제로 작가는 미니멀리즘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다. “솔 르윗(Sol Lewitt), 도널드 저드(Donald Judd) 등 단순한 기본적 구조와 절대적 요소로 작업하는 그들을 매우 좋아해요. 거울을 사용하게 된 계기는 어느 날 책을 보다가 작품에 거울이 사용된 모습이 순간 내 눈을 사로 잡았습니다.”

<상을 반복하다>는 언뜻 보기에 복잡한 구조를 가진 듯 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전면이 거울로 싸인 방이 몇 개 상자 형태 거울 구조가 설치되어 있을 뿐이다. 이 상들이 반사되어 수많은 상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상자 구조물들은 솔 르윗의 <연속 프로젝트 Ⅰ(ABCD)>(1966)을 닮아 있는데 기본 구조물을 반복한 그의 전략과 다르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니멀리스트들 또한 거울을 작품의 재료로 자주 사용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오순미의 거울 사용은 앞서 살펴 본대로 <세상으로의 통로>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반사되는 상을 이용한 것은 <Another>(2006)이 진정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미니멀리스트 중 래리 벨(Larry Bell)의 작품과 유사성을 가진다. 벨의 <무제(Untitled)>(1977)에서 보면 거울 두 장을 직각으로 세워 붙여 놓고 그 사이에 앤디 와홀(Andy Wahol)을 앉힌 뒤 그가 비춰진 상을 주시하도록 만든 작품이다. 벨이 거울을 세운 것과 사람의 모습이 비춰진 것이 오순미의 작업과 유사성을 가진다. <Another>에서 상이 겹쳐지고 반복되는 패턴도 벨의 전략과 비교해 볼 수 있다. 그도 거울과 유리로 시각적 효과를 이용하여 관람자의 몸이 거울에 비춰지도록 의도하였다. 벨이 관람자의 개입을 염두해 두었듯이 오순미도 작품에 사람들의 적극적 행동 개입을 중요시한다. 그는 ‘작품이 어떠한 장르이고 어떠하다.’라고 규정짓는 것에 반대한다. 관람자가 체험하고 보고 느끼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혹자는 “거울을 통해 반복된 상 때문에 공간이 무한히 펼쳐진 것 같아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큰 전시장”이라는 평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듯 관람자 나름 해석을 의도한다.

 

 

2007년 전시도 2006년 작품과 유사한 맥락에 있다. 거울을 이용하고 비치는 상들로 사람 눈에 착각을 주는 전략을 다시 한번 구사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온통 거울로 뒤덮인 방이 아니라 거울과 실제 나무로 이루어진 벽들이 공존한다. 끊임없는 허상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실재 사물을 대면하는 ‘진실’에 마주 대한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바로 이 점에 중점을 둔다. 실재 모습도 허상일 수 있고 거울에 비춰진 모습도 진짜 영상이라는 것을 말이다. 설치된 공간에서 관람자가 새로운 영상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오순미의 작업은 형태적으로 미니멀리스트들과 닮아 있다. 그러나 이미 유행처럼 회자되는 시뮬라크라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작업에 나타난 내용이 다분히 포스트모던적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늘 염두해 두고 있는 무한한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 시뮬라크라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작품에서 보이는 반복과 복제라는 전략은 그가 현대적 작품 흐름 안에 자리잡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전시장을 지나치다 보면 어떤 정보를 주지 않는, 그러나 반드시 있어야 할 것 같은 점들을 발견한다.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을만한 눈에 띠는 점들이다. 점은 때때로 모여 있다가 흩어져 있다. 정렬되어 있는 모습이 어떤 문자와 같다. 점자 같기도 하고 무선 통신에서 사용하는 모스 부호, 주사위에 표시된 기호 같다. 이 점들은 ‘오순미 거울 나라’에서만 통용되는 무한대를 나타내는 문자다. 이 문자들이 다시 거울에 반사되면서 더욱 복잡한 상들을 이룰 것이다. 부호 내용을 정하는 것은 관람자의 몫이다. 누군가에게 이 기호들로 떠오르는 상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그 의미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단순히 거울에 비치는 상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에서 관람자가 상상하는 각자 머리 속에 담긴 공간까지 새롭게 하고 싶은 것이다.

작가는 작품 완성이 갤러리에 설치된 작품만이 아니라 관람객 상상 안에서 이루어짐을 이야기한다. 직접 보고 느끼면서 새로운 상상을 담아가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오순미 작업에서 진정한 마무리가 될 것이다.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새롭고 즐거운 이미지들을 상상하면서 웃으며 지나가는 당신을 만나고 싶다.

전시관련문의: 017-360-6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