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ART 뉴스

신중산층

영원한 울트라 2007. 5. 9. 10:22
`집에 미술품 한 점 걸어야 신중산층` [중앙일보]
그림 구입 열풍 투자냐, 투기냐
서울 사간동 K옥션 2층 경매장에서 지난달 11일 열린 경매 장면. 종이작품과 소품 경매에 500여 명이 몰려 통로와 1층 모니터룸까지 찼다. 2시간 동안 미술품 158점, 8억9600만원어치가 팔렸다.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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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휴일인 5일 서울 인사동 '쌈지 아트마트'는 종일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은 미술품 상설매장이다. 1만원대 소품부터 100만원 안팎의 그림 등을 판다. 벽면에 빼곡히 걸려 있는 그림을 열심히 살펴보며 "이 작가는 더 오를까요" 등 시장성을 궁금해 하는 이가 많았다. 이날만 1000여 명이 다녀갔다. 양옥금 큐레이터는 "주말엔 늘 이렇다"며 "올해는 미술작품에 투자하겠다는 열기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2 "박수근의 드로잉 '시장의 여인'입니다. 시작가 5600만원, 200만원 단위로 올라갑니다. 응찰하실 분 계십니까?"

여기저기서 응찰 번호판을 번쩍 들었다. 치열한 경쟁에 가격은 '드로잉(소묘)' 최고가를 쳤다. 1억200만원 낙찰을 알리며 경매사가 망치를 '땅' 하고 내리치기까지는 2분 남짓.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사간동 K옥션 2층 경매장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이날 경매에선 준비된 150여 석이 모자라 통로까지 사람들로 메워졌다. 1층에서도 200여 명이 모니터를 응시했다. 응찰 참가자는 소수였다. 대부분 열심히 낙찰가를 메모하며 경매장 분위기를 익히는 모습이었다.

경제력을 갖춘 신(新)중산층 사이에 미술품 구매 열풍이 불고 있다. 신중산층이 새로운 '문화'로 즐기고 있는 클래식 음악, 와인에다 미술품을 합쳐 '삼종신기(三種神器)'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양대 미술품 경매 업체인 서울옥션과 K옥션에 따르면 미술품 시장 규모는 2005년 149억원에서 지난해 536억원으로 뛰었다. 박수근의 회화 한 점이 25억원을 기록한 올해는 시장규모가 1000억원 이상이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 떠오르는 '개미 컬렉터'=최근의 두드러진 현상은 미술과 미술 투자에 관심을 갖는 중산층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대개 소액으로 소품을 사고 있어 이들을 '개미 컬렉터'라고 부른다. 개미 컬렉터들은 은행.백화점.화랑 등에서 앞다퉈 마련한 '미술품 감상법' 등 교양강좌를 들으며 안목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 말 '가나아트센터'에서 개강한 '아트비즈니스 과정'엔 비싼 수강료(여덟 번 강의에 40만원)에도 수강생이 몰려 한 반을 더 개설했다. 이곳 관계자는 "수강생 절반 이상이 미술시장의 초보이자 개인"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9월 굿모닝신한증권의 '서울명품아트사모펀드'를 시작으로 미술품을 다루는 펀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주부들 사이엔 '그림계'가 유행이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김효란(50.여)씨는 "친구들과 돈을 거둬 100만원 안팎의 그림을 하나 산 뒤 값이 오르면 팔아 나눠 갖는 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 40대 신중산층이 주도=미술 열풍은 40대 이상 신중산층에서 특히 뜨겁다. 사회적으로 성공의 기반을 닦았지만 심리적 공허감을 느낀 세대가 문화적 갈증을 미술품 구입을 통해 풀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품 경매 전문회사인 K옥션의 김순응 대표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대에 나타나는 문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박승희(43.자영업)씨는 "지난해 연말 동창회 때 친구들이 자식 자랑과 정치에 이어 미술 얘기를 꺼내 놀랐다"고 털어놨다. 명품 수입업체에서 근무하는 정모(42)씨는 "몇 년 전의 와인 열풍처럼 요즘은 업무상 미술을 공부하는 샐러리맨이 많다"고 했다.



◆ 투기 우려도=미술시장의 과열에 대한 우려의 소리도 나온다. 투기 바람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낮은 예금 금리와 부동산 규제로 시중의 자금이 미술 쪽으로 흘러들어가는 현상이 확연하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시중에선 "부동산.주식 다음 미술"이란 얘기가 떠돌고 있다. 미술품에는 취득세.증여세 등 세금이 없다는 점도 일부 구매자를 유혹하고 있다.

실제로 '블루 칩'이라고 불리는 유명화가의 작품 중 100만원 이하는 별로 없는데, 100만원 이하 기획전에만 사람이 주로 몰리고 있다. 17년째 미술품을 수집하고 있다는 김모(56.사업)씨는 "경매에선 200만원도 안 될 것 같은 그림이 3000만원대에 낙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중 한 화랑의 관계자는 "계약금을 걸어놓고 며칠 후 잔금을 치르겠다고 한 뒤 구매한 그림을 제3자에게 팔러 다니는 사람도 있다. 미술품을 아파트 분양권 팔 듯 하는 '떴다방'까지 있다"고 말했다.

권근영.구민정 기자 <young@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